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나는 조르바를 미리 만나보았다. 여기저기에 있는 조르바의 엽기적인 행각들을 미리 접하면서 난 책에 대한 흥미를 느꼈고 기다려졌다. 드디어 책을 받고부터 마지막장을 읽기 까지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책에 집중하고 못하고 잡생각이 드는 짬짬이 나의 인생과 자유라는 것 내가 추구하는 삶 등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지루함의 중간 중간 나오는 조르바의 엽기적 행동들에 나는 충격을 받기도하며 지루함을 그럭저럭 달래갔다. 물레를 돌리는데 불편함을 느껴 새끼손가락을 도끼로 찍어내고 그렇게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하며 가위를 들고 다니며 치모를 모았다는 그런 엽기적 행각...... 이런 엽기적 행각을 하는 소설속이 주인공인 조르바가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인을 만나면 눈빛부터 무슨 광채가 나올 것 같았다. 소설 중에도 조르바가 노새를 보고 있자 노새의 주인이 아니 왜 이렇게 악마 같은 눈으로 보고 있느냐고 묻는데 아마도 이런 광기가 분출되어 나와서일 것이다.
조르바는 여자가 혼자 잔다면 남자들의 잘못이라고 하며 여자에 대한 봉사를 거절하고 도망간 놈은 노새가 된다고 말한다. 또 여성을 묘사하는 단어들도 암말이니 암컷 화냥년 육식동물 등 이런 말을 접할 때는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이런 이인인 조르바를 동경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자, 작자는 조르바와는 반대되는 인물로 주위를 의식하고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한다. 감정에 충실한, 남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은 그런 본능적인 삶을 사는 조르바와 작자 중 난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인물일까? 쓸데없이 생각이 많고 남을 너무 의식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들 때 나의 소심함을 자책하기도 한다. 나의 이 행동과 무심코한 말들이 남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이런 생각을 하고 또 생각하곤 한다. 결국엔 별것 아닌 일인데 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뒤끝을 남기며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조르바처럼 화끈하게 훌훌 털어버렸음 할 때가 많이 있다.
조르바는 기분이 내킬 때면 산투리를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감정이 고조될 때엔 주체하지 못하고 춤을 춰 재낀다. 몸이 원하는 데로 내키는대로 말이다. 어린 아들의 죽음에도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조르바. 몸에서 나오는 대로라! 춤을 춘지도 너무 오래되어 어쩌면 나도 작자처럼 춤을 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안의 느낌을 끄집어내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하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 역을 맡은 ‘안소니 퀸’이 해변에서 그런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적이라고 한다. 주위 비디오가게에서는 빌릴 수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꼭 빌려볼 생각이다. 비디오를 통해 보는 조르바는 내게 더 정열적으로 다가 올 것 같다.
책 중에 조르바, 요셉, 호자 같은 마음속의 악마가 나온다. 수도승 라브렌티오 신부는 터키의 호자라는 이름을 지어놓고 ‘호자는 성금요일에 고기가 먹고 싶다. 호자가 여자랑 자고 싶다. 호자가 수도원장을 죽이고 싶단다. 그래 호자가 하는 짓이지 내가하는 짓이 아니야’하며 이것을 악마의 탓으로 돌리며 교회 벽에 대가리를 찧는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악마가 있다. 내안에도 여러 악마가 있는데, 늘 그렇게 잠을 자고 게임을 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악마가 있다. 지금도 한 악마가 지금 레포트 쓰는 것도 딴지를 걸고 있다.
자유로운 삶이란 어떤 삶일까? 자유로운 삶이란 하나의 로망이자 꿈꾸는 그런 삶인데 언제가부터 자유라는 단어는 자유라는 두 글자 보다 뒤따라오는 체면, 책임이라는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온 것도 같다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행동하기엔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재고 있다. 현실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그래서 글의 작자처럼 나도 조르바의 매력에 끌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고이고이, 모험이 두려워서 누군가에게 속박되고 구속되길 은연중 바라는 것은 아니었는지......
새장속의 새와 자유롭게 나는 새. 나는 어떤 새에 가까운지 지금의 현실에서이게 사회로 날개를 펴고 날아가야 할 때, 가끔은 두렵고 낯선 무언가 때문에 계속 학생이란 굴레에 안주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이 소설로 인해 화제가 되고 조르바형 인간이 새로운 인간형의 모델도 생겼다고 하는데 조르바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하고 가진 모든 것을 거는 바람 같은 생을 산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가끔은 조르바 같은 삶이 생각나고 내안의 악마가 꿈틀거리며 나를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나는 또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재면서 우유부단하게 보이는 나를 문득 보게 될지라도 나의 인생은 너무도 소중한 한번뿐인 인생이기에...... 그래도 어쩌다 괜시리 부리는 객기는 내 삶의 윤활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주제 :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구성(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최홍민, 민성사)
p45 : 아테네 시민 여러분 이 사람은 프뤼타네이온에서 접대를 받아야 옳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외추방을 제의할까요? 아마도 여러분께서는 나를 위해 그러한 형을 청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선택한다면 나는 생명에 애착을 느끼는 것이 됩니다.
p47 : 나를 고발한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매우 영리하고 민첩하여 그 민첩한 것, 즉 사악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p49 : 남들처럼 구구하게 변명을 하면서 살기보다는 떳떳한 말을 하고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전쟁의 경우나 재판의 경우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죽음에서 벗어나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싸움터에서 목숨만을 유지하려면 무기를 내동댕이치고 공격해 온 적에게 굴복하고 애걸하면 생명을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위험을 당했을 때 아무 짓이나 가리지 않고 한다면 목숨을 건지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를 사형에 처한 여러분들에게 예언을 하려고 합니다. 나는 지금 죽음에 임박해 있으므로 사람으로서 제일 예언을 잘 할 시기입니다. 나는 난에게 사형을 투표한 여러분에게 예언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죽은 후에 곧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제우스에게 맹세하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이 나를 사형에 처한 것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려운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p50 : 나에게는 다이몬의 예언이 지금까지 종종 있었습니다. 내가 하려는 일이 옳지 않을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반드시 반대하였습니다.
p51 : 누구나 사람이 죽는 것을 재앙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그걸 옳지 않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 커다란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하려고 한 일이 옳지 않았다면 신께서 나에게 그것을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큰 소득이라고 하겠습니다.
나는 죽음을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의견
소크라테스는 과연 죽을 수 밖에 없었을까?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 소크라테스하면 ‘너 자신을 알라’ 또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는가!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 외에도 겸손함을 알아야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받고 사람들에게 변명하는, 자신의 죽음의 부당함과 부당하지만 받아들이겠다는 변론을 하는 내용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것 정말 제목대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 정도의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게 보였다.
책 내용 중 소크라테스는 국외추방을 제의할 수도 있고 제의하기만하면 사형에서 벗어나 추방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다. 또 그 생활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젊은이들이 있어서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젊은이들의 부형들이 자신을 다시 내 쫒을 것이다. 라고 말하며 내쳐질 것을 겁내하며 추방을 제의하지 않은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변명을 하면서 남들처럼 구구하게 변명을 하는 것을 아주 비겁한 짓으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변명하는 것 외에는 죽는 방법 밖에 없었을까? 주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망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것처럼 도망도 비겁한 짓이라 한다면 죽는 것은 이런 것들 보다 현명한 선택이었는가!
또 소크라테스가 죽음에 앞서서 시민들을 설득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설득하였는가! 소크라테스의 변론 내용을 보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대목들이 눈에 띈다. 프뤼타네이온에서 접대를 받아야 옳을 것이라고 자기의 입으로 말하고 있으며, 중간 중간 거론되는 다이몬이라는 신의 존재도 그러하다. 다이몬이라는 신이 소크라테스에게 계시를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것으로 소크라테스는 미신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투표한 사람들에게 사형보다도 더한 견디기 어려운 형벌을 받게 될 거라고 위협하는 일종의 저주를 한다.
이것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사람들에게 구구하게 변명을 하고 눈물로 애걸 하는 것이 비겁한 짓 이라고 생각되어 그러지 않았다면 겸허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비굴하지 않게 설득을 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책에 나온 변론의 내용으로는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하며 자신은 충분히 죽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럴 능력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 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것 같은 어조가 없지 않다.
자신이 잘못한 게 없고 옳다는 신념이 그토록 강하다면 주위의 모함으로 사형의 경우가 까지 오게 되었을 때 도망을 좋게 말해서 망명을 가는 것이 비겁한 짓일까? 소크라테스의 같은 경우는 주위에서 따르는 제자들도 많았고 도망을 권유하기 까지 하였다. 그때 도망을 가서 제2의 도약을 마련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죽음을 유익한 것이라며 미화하고 있다. 이것은 변명을 하다가 죽게 되자 어쩔 수 없는 자기 합리화처럼 보여 진다. 또 죽음에 대해 의연한 자세를 보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여 진다.
정리하여 보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은 사악에 사람 잡힌 사람들이고 투표한 사람들은 엄청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소크라테스 자신은 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비겁한 짓을 하지 않고 유익한 죽음을 맞이하겠다. 라고 변명을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죽지 않을 수도 있는 여러 기회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맞았고 이것도 역시 소크라테스의 선택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의견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제1장. 역사주의와 운명의 신화
역사주의의 원리
역사는 특수한 역사적 법칙이나 진화적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며, 우리가 이 법칙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운명을 예언할 수 있다.
선민사상
선택된 민족은 신이 선택한 도구로서 이 세상을 잘 다스려나갈 것이라고 가정.
가장 오래된 형태의 역사주의.
사회생활의 부족적인 형태에서 성장.
역사의 궁극적 결과에 대한 확신 목적이 먼 미래에 놓여있으므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 길을 가야만 한다. 모든 역사적 사건을 해석의 도식 아래 집어넣을 수 있다.
유신론적 해석 : 신을 역사적 무대에서 공연되는 연극의 작가로 해석.
역사적 발전의 법칙은 신의 의지에 따라서 세워진다.
부족주의
역사주의 이론에서 발견되는 한 요소
부족이 존재하고 개인이 존재 부족>개인
집단주의
근대적 역사주의도 집단주의의 요소를 유지하고 있다.
단체나 계급의 중요성 강조 계급>개인
역사주의의 두 이론
우파
좌파
인종주의·파시즘 역사철학
마르크스적 역사철학
선민사상 : 선택된 인종이 지상을 다스려감
선택된 계급이 지상을 다스려감
자연 법칙
경제적 법칙
선택된 인종이 갖고 있는 혈통의 생물학적 우월성이 역사의 전 과정을 설명
지배권을 향한 인종간의 투쟁
경제적 패권을 위한 계급간의 투쟁
선택된 인종: 운명의 도구로서 뽑힌 인종
선택된 계급: 계급 없는 사회를 창조하기위한 도구 지상을 다스릴 운명 지어진 계급
역사적 예측의 기초를 역사 발전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역사적 해석에 두고 있다.
2장 헤라클레이토스
호머의 유신론적 및 다신교적 해석
역사는 신의 의지가 낳은 산물이다.
궁극적 운명이란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신비에 싸여 있는 것이라 주장
역사의 통일성결여
헤시오드
역사주의의 원리를 보다 분명하게 도입한 최초의 그리스인
비관적인 역사의식
헤라클레이토스 이전
동양적 관념의 영향 세계(우주)를 거대한 건축물로 봄
철학·물리학의 탐구=세계를 이루는 원자료에 대한 탐구
접근법-과정 : 근본적으로는 정지 상태에 있다고 보이는 구조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간주
헤라클레이토스
변화의 관념을 발견 변화의 강조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과정, 사물의 총계가 아닌 사건·사실들의 전체로 봄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 좌우명 : 모든 것은 유전하며 그대로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위대한 발견으로 많은 영향을 미침
자연뿐 아니라 윤리 정치적 문제까지 다룬 최초의 철학자
‘모든 물질들은 불꽃과 같은 것, 그들은 사물이라기보다는 과정이며 그들 모두는 불의 변형이라는 이론을 낳게 한다.’고 주장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요 왕이다. 전쟁은 어떤 자는 주인으로 어떤 자는 노예로 만듬으로써 어떤 자는 신이고 어떤 자는 단순한 인간임을 증명한다. 우리는 전쟁이란 보편적인 것이며, 정의-소송-은 투쟁이며, 모든 것은 투쟁을 통해, 그리고 필연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냉혹하고 변치 않는 운명의 법칙에 대한 믿음과 결합되어있는 변화에 대한 지나친 강조
파르메니데스 와 플라톤
플라톤 : 초기 그리스 철학자에 의해 나타난 역사주의사상의 절정기
우리가 살고 있는 변화하는 세계는 하나의 환상이며 변하지 않는 참된 세계가 존재함을 주장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애
에페소스 왕실의 후예였지만 형을 위해 자신의 지위를 포기했다고 함
혁명세력의 조류를 막으려했던 귀족주의자들의 대의명분 지지
헤라클레이토스 작품 중 말
현대역사주의자들의 특성이나 반민주주의적 경향을 볼 수 있다.
헤페소스인들은 성인들 모두가 차례로 죽어야 하며, 그리하여 국가는 어린이들에 의해 통치되도록 해야한다.
우리들 중에 특출한 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면, 다른 곳이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를 그렇게 되게 하라고 그들은 말한다.
······군중은 금수처럼 배를 채운다.······그들은 음유시인과 대중적인 미신을 그들의 길잡이로 삼는다. ····테우타메스의 아들인 비아스는 프리네에 살았는데 그의 말은 다른 사람의 말보다 더욱 중요하다.
법률도 역시 일인의 의지에 복종해야 함을 요구할 수 있다.
국민은 법률이 흡사 국가의 방벽인 것처럼 법률을 위해 투쟁해야한다.
헤라클레이토스 변화의 이론의 느낌을 나타낸 말
모든 것은 유전한다.
우리는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는 좁은 식견으로 키운 아이들과 같이 행동해서는 안된다.-현존하는 사회질서가 영원하리라는 믿음 반박
신비주의의 요소
헤라클레이토스의 이성에 대한 이론은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우리는 공통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이론은 이차적인, 상징적인, 신비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그것은 선택된 자들에게 주어진 신비적 직관의 이론이다.
사회 동태학의 중요성 강조
헤라클레이토스의 동태학은 그의 철학이 그가 경험한 사회적, 정치적 혼란에 자극 받았음을 보여준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투쟁이나 전쟁이, 모든 변화와 모든 차이의 창조적 원리이며, 동시에 동적 원리라고 선언하였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전형적인 역사주의자로서, 역사의 심판을 도덕적 심판으로 받아들였다.
변화하는 사물은 어떤 속성을 포기하여야 하며 그 반대되는 속성을 획득하여야한다. 변화하는 사물은 사물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상태에서 반대되는 상태에로 이행해 가는 과정이며, 그러므로 대립되는 상태의 통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