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오전 7시 양재동 서초구민회관 앞, 선후배 30여 명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학생시절 수련회에 갈 때처럼 들뜬 표정으로 만난 이들은 20여 년 전, 명동성당청년단체연합회, 애국크리스찬청년연합,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등을 통해서 함께 활동하던 사이다.
매년 5월 18일 즈음이면, 이들은 망월동에 잠들어 있는 친구들, 선배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이 자리에서 어김없이 만났다. 올해는 이 여정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학생들과 담당신부가 함께 했다.
80년대 ‘청년 예수’를 따르고자 고군분투했던 이들은 형님 삼고, 친구 삼았던 예수보다 훨씬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그 시간을 살고 있다. 시간은 혼자였던 그들을 엄마로, 아빠로 만들었고 자신들을 빼어 닮은 아들, 딸의 손을 붙잡고 있다. 제 엄마와 아빠가 어떤 사람들과 무엇을 꿈꾸며 살았는지 보여주고 싶은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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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들은 열사들의 묘를 돌면서 열사의 삶을 기억하고 기도를 드렸다. (사진/정현진 기자) |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광주 망월동 묘역은 예전 같지 않았다. 5월 18일 즈음이면 걷기 힘들 만큼 북적였던 이곳이 몇 년 사이 한산해졌다. 풀이 듬성한 봉분, 아직 누구도 다녀간 것 같지 않은 묘석은 쓸쓸했다.
1981년 5월 27일 ‘전두환 물러가라’는 외침과 함께 투신한 김태훈(다두) 열사, 1991년 5월 19일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한 박승희(아가다) 열사, 1986년 ‘전방입소 반대, 반전반핵’을 외치며 분신 후 5월 26일 운명한 이재호(스테파노) 열사, 1991년 5월 18일 ‘공안통치 종식,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분신한 이정순(카타리나) 열사, 그리고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조국 통일, 양심수 석방’을 외치며 할복, 투신한 조성만(요셉) 열사의 앞에 차례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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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많았다. 어른들은 묘지앞에 쓰인 내용을 읽어주고, 열사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사진/정현진 기자) | 열사의 삶과 죽음을 읽어 기억하면서 제 품었던 사랑을 온전히 내어놓은 이 열사들에게 평화의 안식과 영원한 빛을 비추어달라고 기도했다. 아마도 이 짧은 시간동안, 몇 줄의 글로 정리될 수 없는, 각자의 머릿속에 각인된 열사들의 삶이,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되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느슨해진 삶을 추스르듯 구호를 외쳤다. “열사정신 계승하며 하느님 나라 이룩하자!”
“열사들에 대해 접했을 때, 한 선배가 ‘무서웠다’고 말한 것에 공감해요. 늘 열사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 개인이 겪었던 고통, 피해, 죽음에 대한 느낌을 너무 강하게 받았어요.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는 ‘옳은 일을 하면 그렇게 되는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죠.
올바르게 살아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고, 그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삶은 묻혀버린 것 같았어요. 개인의 고통과 아픔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그리고 그 안에 자리잡은 삶에 대해서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처음엔 부모님의 영향으로 이런 것들을 접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이젠 성인이고 선배들의 삶을 통해서 제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망월동을 찾은 한 가톨릭학생회 회원은 이렇게 자신의 체험을 고백했다. 열사들의 죽음은 극적이었지만, 사실상 더 극적인 것은 그 죽음을 만든 생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열사들의 마지막 외마디 외침으로, 유서로, 또 생전의 그를 기억하는 누군가의 증언으로 그들이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을 했었는지 들어 알기도 한다. 하지만 왜, 어떤 시대의 흐름이, 어떤 신앙 고백이 그들을 이끌었는지 더 길고 깊은 눈으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열사들의 죽음은 세상으로 깨쳐 나와 유구하게 전해져야 함에도,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지인들의 뒤안에 서럽게 숨어들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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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정현진 기자 |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사도행전 2,36-37)
이날은 순례 중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우리의 삶과 열사들의 영혼, 유족들을 위해 기도한 이 미사에서 이승민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 귀를 기울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물음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열사들의 삶을 단순히 옛 기억이 아닌 살아 이어지도록 하는 것, 이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부활 신앙처럼, 전승으로써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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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만 열사의 평전을 묘 앞에 바쳤다. (사진/정현진 기자) | 이날 일정을 마무리 지으면서, 한 참석자는 “역사는 국가에 의해 호도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죽은 역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그렇기에 할 일이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시간은 30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외침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니 고통은 훨씬 더 다양하게 복제됐다. 여전히 군부 독재의 자리를 금권 독재가 차지하고, 분단이 지속되며, 도처의 생명이 아우성치고 ‘가난’이 모멸당한다.
사건은 지나갔지만, 삶의 자리와 죽음의 흔적은 아직 피를 흘리고 있다. 역사가 말했던 것들, 그 시대를 건넜던 열사들의 희망과 삶을 기억하자. 그리고 지금을 사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우리 안에 그들의 평전을 한 권씩 써내려가자. 그 속에서 도래할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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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이들의 눈에 불의와 애석한 죽음이 담기지 않기를. (사진/정현진 기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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