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일기]
구월의 마지막 주말, 비가 온다는 예보와 달리 가을볓이 참 좋은 날입니다.
오후부터 오두막 나들이가 있는 날, 한주거른 고추따기를 하려고
아침 일찍 영팔이님과 빈가을님을 태우고 밭으로 향합니다.
국도를 벗어나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자동차 시동이 스르르 꺼져버립니다.
바쁜 마음에 연료표시등에 불이 들어온걸 무시했더니
기어코 일을 치릅니다.^^*
자동차 보험에 전화를 넣고 길옆 개울가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며칠 내린 비로 맑은 개울물이 넉넉하게 흐릅니다.
그러고 보니 몇 해를 지나쳐 다니기만 했던 개울가에서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기도 처음입니다.
늘 자유로운 삶을 그리워하면서도
우리는 또 다른 굴레를 스스로 만들고 있나 봅니다.
한시간여를 보내고 나서야 비상연료를 얻어
근처 주유소를 찾아가 기름을 채우고 밭에 도착합니다.
시간상 고추 따기를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한가해집니다.
차 한잔 끓여 마시고 나서 밭을 둘러보며 토마토와 호박 몇 덩이 따고,
단감인지 떫은 감인지 아직도 분간이 안가는 감도 몇 개 따고
정오경 밭에서 내려옵니다.
중국으로 출장을 가야 하는 영팔이님을 내려주고
한바퀴 돌아 수암님 집에 도착하니
벽산님이 두 아들과 함께 분양 받은 텃밭에서
늦은 배추모종을 심고 있습니다.
자고 있던 수암을 깨워 마당에 걸려있던 가마솥 들어내어 차에 싣고
들깻잎 한 봉지 따서 챙겨 들고 나들이 장소인 만세공방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안강읍을 들려 끼니를 준비 할 쌀과 부식을 사고
길가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장면 곱빼기로 시장기를 달랩니다.
만세인과 세바님도 아침부터 공방을 청소하고
탁자와 의자들을 마당으로 옮겨 손님 맞을 준비를 마치고
찻상 만들기 목공 실습 준비도 다 해놓으셨습니다.
배추 씻어 국거리 준비하고, 가마솥 걸어 불을 지핍니다.
지난번 모임에서 남았던 돈으로 수암이 마련한 내의들을
함지박에 두 개에 황토를 풀어서 두 번에 걸쳐 주물러 널고 나니 출출..
구수하고 시원한 배추국으로 먼저오신 님들과 이른 저녁식사를 합니다.
각본도 없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지만
모두들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내어 거드니
손발이 척척 맞추어집니다.
식사를 마치고 모닥불 피워 삼겹살을 굽는 솥뚜껑 주위로
둥그렇게 자리를 마련하여 문화행사(?)를 진행합니다.
막걸리와 함께 한분한분 돌아가며 근황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만의 만남의 기쁨과 반가움을 함께 합니다.
야간업무로 자리를 뜬 수암의 빈자리가 커 보여 그런지
결국은 안강읍내의 노래방까지 출전하여 끝장을 보고야 맙니다. ^^*
인근에 사시는 님들은 집으로,
먼 길 오신님들은 여기저기 불편한 잠자리에서
새벽녘이 다 되어 잠시 눈을 붙이기로 합니다.
저도 집에 돌아와 누었다 싶었는데 눈을 뜨니 아침 열 시가 넘었습니다.
부랴부랴 공방에 당도해보니 그 새 아침식사를 마치고
만세인님의 지도로 일일 목공체험을 시작합니다.
찻상 만들기를 목표로 홈파기, 문양 따내기, 다듬기 조립하기...
언젠가 비인님이 그러셨던가요?
“술은 둘이서, 차는 혼자서...”
제 눈엔 쇠주 한 병과 김치종지 하나 올려놓고
혼자 앉아 홀짝거리기에 딱 좋을 술상으로 보입니다. ^^*
작업 도중에 점심시간에 맞추어 잔치국수로 점심을 먹고
한참을 더 뚝딱거려 찻상을 완성합니다.
자랑스런 나만의 작품을 들고 사진 한장 박음으로써
일박이일의 가을나들이 일정을 모두 마칩니다.
두 아들과 옆지기를 대동하신 벽산님,
부산에서 오신 삼천언님과 옆지기(여울님^^*)
다음달 귀농을 앞둔 늘 씩씩한 처자 철수깜맘,
가을겆이에 바쁜데도 찾아와 준 참 농부들인
보현의 선재형, 하늘정원의 문수화와 기홍씨,
하루네 가족들, 그리고 위대한 영웅,
대구에서 어려운 걸음 하신 두둥실,
선재형이 제일 반긴 두 총각 공병과 거칠마루,
지난주 드디어 질긴 사슬을 끊고 자유를 찾은 비인,
집 짓기 바쁜 와중에도 참석해주신 꽁지머리의 웃는 돌과 로그보스,
얼마 전, 터를 마련하여 농촌행을 준비중인 영일만 친구와 옆지기,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애써주신 만세인과 세바, 그리고 수암과 빈가을..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모든 오두막 식구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늘 모임을 마치고 식구들을 떠나보내고 나면
몹시도 외롭고 허전해집니다.
하지만, 신념을 잃지 않는다면
시간은 우리편이라고 우겨봅니다.
결과가 쉽게 눈에 보이지 않아 쓸쓸해지더라도
어둠 속에 촛불을 켜는 작은 일들이 모이면
우리가 꿈꾸는 가치 있는 삶, 조화로운 삶의 길이
찾아지리라 믿습니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사람을 멀리하고 길을 걷는다
살아갈수록 외로와 진다는
사람들의 말이 더욱 외로와
외롭고 마음쓰라리게 걸어가는
들길에 서서
타오르는 들불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고독하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면
어둠 속에서 그의 등불이 꺼지고
가랑잎 위에는 가랑비가 내린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정호승)
첫댓글 초대해 주셔서 그리고 유익한 시간 좋은 경험과 소중한 만남과 따뜻한 정을 느끼고 왔습니다 어렵게 틈을 만들어 낸시간들이 아깝지 않았구요 여러님들 너무 반가웠고 따뜻했고 특히 나무지기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오랫만에 할매 푼수끼를 드러내놓고 행복해하며 웃었습니다 님들 감사했습니다
여울할매 애써주신 덕분에 분위기 만점이었습니다.^^*
귀거래 샘~ 철수깜맘 귀농지가 각북 근처라 들었는데 두 처자가 서로 의지가 되면 좋겠네...^^*
작은모임이라도 맘 쓰이는데가 많을텐데...애쓰셨네 갑장~~^^*가을 깊어지면 어디서든 다시한번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