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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싱싱한 시어를 기다리며
2003-06-21 [00:00:00]
편지를 띄웁니다. 부산의 허만하(71) 시인과 경남 진주의 유홍준(41) 시인이 매주 번갈아 편지를 주고 받는 새 기획물 '문학편지'를 싣습니다. 삶의 감성이 물씬한 시인들의 편지가 담긴 '우체통'을 함께 열어보시길 권합니다.
▲ 유/홍/준
허만하 선생님!
이렇게 지면으로 첫인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이미 선생님의 문학적 성취와 또 의욕적으로 생산해 내시는 작품들을 놀랍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태도, 엄청난 독서량에 늘 감탄합니다. 그런 가운데 시를 인식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저와는 다르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론이 거의 전무합니다. 그래서 늘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감각만에 의존한 글쓰기, 무식한(?) 글쓰기, 게으르고 나태한 글쓰기, 그리고 다짜고짜 언어의 멱살을 움켜쥐고 덤벼드는 막무가내의 글쓰기, 이런 것들로 문학을 하고 있으니, 따지고 보면 저에게 시인이란 호칭은 참으로 가당치 않은 듯도 합니다.
저는 엊그제 삼천포를 거쳐 남해엘 다녀왔습니다. 아직도 두 지역 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름을 짓지 못한 연륙교를 건너, 그 아름다운 물건리 숲까지 갔다 왔는데요, 삼천포 실안 바다 그리고 남해 창선 바다에서 옛 방식 그대로 만들어놓은 죽방렴들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죽방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돌아와 저는 다음과 같은 메모를 하였습니다.
물살 센 남해바다 물에 잠긴 죽방렴을 바라보았다. 죽방렴 위에 앉아 있는 물새 몇 마리. 그렇다,내 마음의 들물과 내 정신의 날물이 드나드는 물목에, 깊은 말뚝을 박고 죽방렴 하나 만들어 보려고 했다. 싱싱한 물고기 한 동이 잡아 보려 했다. 언젠가 죽방렴에 갇힌 멸치떼를 보았다. 뼈와 지느러미, 비늘 하나 다치지 않고 온전한 죽방렴 멸치, 그 멸치떼의 파닥거림! 그것들은 그토록 내가 찾던 시의 문자, 시의 형상 같았다. 제 몸 속 똥까지 온전하게 우려내 국물 보시를 하는 멸치들! 저 물살 센 남해바다보다 더 유속이 빠르고 때로는 더 강한 태풍이 몰아치는 시의 정신 시의 몸 안에,아직도 나 그 죽방렴 하나 만들어 보려는 꿈 버리지 않았다, 비린내나는 시의 물고기 한 동이 얻어 보려는 꿈 접지 않았다. 평생 시의 멸치떼 시의 언어떼 잡으며 살아보려는 죽방렴지기의 꿈!
선생님. 저는 요즘 우리나라 젊은 시인들의 시에 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신인으로 불리며 시를 쓰고 있지만, 요즘 대다수 젊은이들의 시는 도대체 읽히지 않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고 재미가 (감동이)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과연 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생겨나곤 합니다. 자동기술법의 시들에 관한 괴리감! 그것이 문득 저에게 찾아온 듯 합니다. 날것 그대로의 시, 한 영혼의 육화를 거쳐 태어난 시, 정말 한 영혼의 처절한 몸부림 끝에 벼락과 천둥처럼 불쑥 나타난 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쓴 시, 그런 것들을 요새는 좀체 만나기 어려우니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요? -유홍준 올림
*** 유홍준 시인은 경남 산청 출생으로 1998년 계간 '시와반시'를 통해 등단했으며,2002년 대산창작지원금을 받았다. 그의 시들은 '시의 미적 균형이 재능 속에 생래적으로 버무러져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새것은 언제나 낯설게 다가와
2003-06-28 [00:00:00]
유홍준 형.
모처럼의 편지 반가웠습니다. 답신을 드리기 위하여 펜을 잡아 유 형! 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평소 작품으로 대해 왔던 사귐에서 우러난 친근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주에 이르는 고속도로 길섶에 조팝나무 흰 꽃이 허드러지게 피어 있던 어느 하루 나도 새로 열린 연륙교를 건너 창선 땅을 밟았었습니다. 설천 들머리가 만발한 벚꽃에 묻혀있던 봄날에 찾아보았던 남면 가천리(다랭이 마을) 앞 바다 물빛을 이른 여름 햇살 밑에서 다시 살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덤으로, 새로 생긴 다리 때문에 접근이 쉬워진 창선 서쪽 바닷가에 있는 왕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276호)를 만나보고 싶기도 했던 것입니다. 널찍한 왕후박나무 그늘에서는 엷은 갯내와 풀 냄새가 났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왜병을 물리치고 이 나무 밑에서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살아 있으니 이 거수 나이를 대충 짐작할 수 있겠지요.
유 형이 아름다운 상징의 실마리를 얻었던 죽방렴은 바닷가 길이 창선교에 가까워질 무렵 보았었지요. 물위에 구조의 일부를 울툭불툭 드러내고 있는 검은 항목과 띠목에서 억센 힘을 느꼈던 일이 생각납니다. 유 형의 메모가 보여주는 은백색 멸치의 싱싱한 번득임에 내 눈이 미치지 못한 일이 아쉽습니다. 그만치 내 상상력이 선도를 잃어가고 있는지 두렵습니다. 멸치처럼 뛰어오르는 살아 있는 언어를 잡는 시법은 죽방렴 같은 원시적인 힘을 가진다는 멋진 은유가 녹아있는 유 형의 메모를 되풀이 읽었습니다. 물살과 태풍을 견디며 언어의 죽방렴지기로 살겠다는 형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언어의 멱살을 움켜쥐고 달려드는 가식 없는 유 형의 문체가 많은 시인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한 계기가 있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 나는 형이 발표한 최근 작품 전편을 다시 읽으며 경호강 물굽이에 비치는 산청의 산을 떠올렸습니다.
옛날에 내가 보았던 죽방렴 말뚝은 참나무였습니다. 지난번에 보았던 죽방렴은 뜻밖에도 철도 레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참나무에서 철도 레일로-그 동안 죽방렴도 적잖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나는 지족해협의 연푸른 물살을 바라보며 과연 새것이란 무엇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살은 유속이기도 하지만 밀고 들어오는 새물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새것은 하나의 가치입니다. 새것은 언제나 낯선 것으로 다가온다- 이 이질적인 미지와의 만남은 삶의 본질적인 구조다- 이런 두서없는 생각을 간추리지 못한 채 지족을 떠나야 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시와 독자의 관계도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시의 난해성도 이 양자의 관계에 환원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가 주권을 가지고 태어나기는 했지만 독자의 책무는 가볍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시의 독자는 읽는 일과 쓰는 일 사이에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건승을 빕니다.
* 허만하 시인은 1932년 대구 출생으로 1957년 '문학예술'로 등단했다. 시집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등을, 산문집 '길과 풍경과 시' 등을 냈으며,'이상화 문학상' '박용래 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허만하 선생님께
시인은 흉터투성이 도마
안녕하세요, 허만하 선생님.
막스 피가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읽다가 선생님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의 시를 읽으며 산청의 경호강에 비친 산봉우리를 떠올리셨다고요. 선생님, 추측이지만 그 산은 혹시 필봉산이 아닌지요? 왜냐면 문학을 하는 저에게 필봉산은 무엇보다 소중한 고향의 상징이고 제 문학의 더없이 커다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필봉에 드리우는 노을을 무척 좋아합니다. 도장빛 붉은 노을이 번지던 해거름의 필봉산. 그 장엄한 자연이, 진종일 쓴 문장 아래 붉은 노을 인주를 묻혀 낙관을 찍는 광경! 그렇습니다. 노을은 우주의 붉은 피이고 모름지기 시인은 자신의 피로 쓴 필생의 문장 끝에 낙관을 찍어야 한다는 최초이며 최후가 될 인식을 저는 필봉산에서 얻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지난 오월 말 전남 구례의 전통가옥 운조루를 거쳐 매천사(梅泉祠)엘 다녀왔습니다. 구한말의 어지러운 나라와 시대상황에 맞서서 '절명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 선생! 그 분의 죽음으로 실천한 정신을 다시 만나보고 싶었던 까닭이었습니다. 운조루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마을 앞에 웬 화물차 한 대가 세워져 있더군요. 쑤세미며 세제 같은 잡화, 고무래와 갈퀴 같은 농사도구, 드라이버 펜치 따위의 철물들을 싣고 다니며 파는 화물차였습니다. 저는 3천원짜리 무쇠칼 하나를 샀습니다. 왜 갑자기 그 식칼이 사고 싶었던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제 동행도 그 칼을 쥐어보길 원했고 잠시 칼의 느낌을 전해 받으려는 눈치였습니다. 그는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였습니다. 그는 은근히 칼을 가지길 원했지만 저는 끝내 주지 않았지요. 무작정 그 칼을 사게 된 의미를 제 나름으로 해석하고 정리하고 싶었던 까닭이었습니다.
선생님, 칼의 가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마, 칼보다 더 생명이 질긴 도마, 시인은 그런 도마가 아닐까요. 제 몸 위의 무수한 흉터로만 존재하는 도마 말입니다. 시인은 제 몸의 흉터로 말하는 자이고요. 도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은 도마 위의 살점이 아니라 도마 자체인 시인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아닐까요, 아예 비명 지를 주둥이마저 잘려버린, 봉해져 버린 도마, 그것이 시인이라고 저는 무쇠칼을 쥐고 매천사로 향하는 길 위에서 거듭 생각해 보았습니다. 흉터가 많은 시인일수록 더 진실해진다고요. 시인이란 언제나 칼에 정면으로 맞서는 도마여야 한다고요. 그러니 시여 도마처럼 넓고 평평한 나의 등짝에 보다 커다란 흉터를 그어다오 라고요.
선생님. 날씨가 더워질수록 '침묵의 세계'가 더 깊어 보입니다. 건강하십시오.
- 유홍준 올림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산청의 풍경과 노을의 의미
한달음 내달리는 붓끝과 '노을낙관' 어울린 詩 기대
2003-07-12
유홍준 형에게
유홍준 형, 산청하면 깨끗한 공기와 경호강 물길을 따라 흐르는 길 위에서 바라보는 필봉산 모습이 떠오릅니다.
경호교가 가까워질 무렵이면 봉우리를 드러내는 필봉산 모습을 먼저 만나보고 싶어 연신 창밖을 살피는 버릇이 있습니다. 한번은 밤머리재 고갯마루에서 필봉산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남원을 찾던 길을 그 쪽으로 잡았던 것입니다. 대원사 계곡에서 밤머리재에 이르는 뒷길은 호젓하기도 하지만 단풍나무 가로수가 있어서 밟아 볼만한 길이었습니다. 그때 적어둔 즉흥시 한 구절이 앨범의 필봉산 사진에 붙어 있습니다. '밤머리재 넘자, 목숨을 걸고 상소문 쓰던 붓끝 하늘을 찌르고'-라는 한 줄입니다. 유 형의 어린 시절 추억이 우거져 있는 회양목 숲이 있었다는 사실은 칠칠한 엄천강 물길을 따라 산자락을 달릴 때도 몰랐습니다. 더욱 필봉산에 드리우는 노을은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필봉산의 노을! 생각만 해도 황홀합니다. 노을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말을 잃어버립니다. 노을은 하나의 놀라움입니다. 철학은 바깥에 대한 놀라움으로 시작된 체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철학은 모름지기 시의 형식으로 쓰여져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최근에 읽었읍니다)은 시의 뿌리에 대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유 형의 가슴에 살아 있는 필봉산의 노을. 그 장엄한 풍경을 마음에 그리며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노을은 2월에서 봄철에 걸쳐 더 아름답지요. 시인이 노을의 인주로 찍는 최후의 낙관,최고급의 은유입니다. 유 형은 도리 없이 시인이군요,유 형! 도장나무 숲과 일필휘지하는 필봉산 붓끝과 노을의 낙관이 어우러진 아름답고도 웅장한 한 편의 시가 태어날 날을 두루미 목을 빌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내가 보았던 필봉이란 이름의 산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셋 있습니다. 하나는 영양 일월면 주실마을(조지훈 생가)에서 바라본 필봉, 다른 하나는 해남 윤선도 고택 녹우당에서 바라본 안산 바른편 필봉, 그리고 산청의 왕산 옆 필봉산 입니다. 이 가운데 산청의 필봉이 으뜸입니다. 어느 방위에서 보아도 수려하고도 우뚝한 기개를 잃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붓 대롱을 휘어잡고 붓끝을 먹물에 담그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정기라 부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구례의 매천사는 시인이면 한번은 참배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담에 기대고 있던 산수유나무 연초록 잎새들은 이번 장마에 살이 좀 올랐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선친께서 물려주신 '매천야록 상·하(梅泉詩集 上·下)'를 이따금 펼칩니다. 지난주는 전남 벌교에 들렸다 기러기재를 넘었었습니다. 그때 나는 1932년에 이 마을에 있었던 '벌교 인쇄소'와 '박 수용(受容)상점'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무렵 금서였던 이 한적을 시골에서 외롭게 출판했던 문화의 뿌리를 꼭 살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매천이 남긴 절명시 4수의 칼날 같은 번득임을 나는 이 책에서 보았습니다. 그의 시가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서천을 물들이는 장대한 치자빛 노을이기도 한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비에 젖은 대숲으로의 산책
문장 빌리지 말란 당부 문학도로서 새겨둬야
비 때문에 저는 지난 주말을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 베트남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를 빌려보며 보냈습니다.
선생님, 또 하나의 필봉이 있다는 주실마을은 제 눈엔 뭐니뭐니해도 지훈 시비가 서 있는 주곡쑤(숲)가 압권이었습니다.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우연히 주곡쑤 뒤편 '둠벙'에서 물 위를 노니는 원앙 한 쌍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편지를 읽으며 지훈 동탁이 태어난 조씨 가문의 빌리지 말아야 할 세 가지라는 뜻의 가훈 '삼불차(三不借)'가 기억났습니다. 재물과 사람, 문장을 빌리지 말라는 뜻의 삼불차, 그 중에서 유독 제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람'과 '문장'이고요, 후손을 보지 못해도 시앗을 보지 말라는 가훈은 참 앞서간, 사랑과 평등의 정신이었다 싶습니다. 아마도 제가 주실에서 만난 원앙의 의미가 바로 이 가훈을 접하기 위한 전조가 아니었나 여겨집니다. 또 다른 가훈, 남의 문장을 빌리지 말라는 당부는 자존심 강하고 지조 있는 한 가문의 도도한 정신이 깃든 것임을 느끼게 되는데요. 여기서 빌린다는 의미는 차용이 아니라 훔친다는 뜻일 테고, 문학을 하는 저로서는 늘 곁에 두고 새겨야 할 정신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 제가 사는 동네엔 산자락에 연해 커다란 대밭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시골집 뒤꼍도 온통 대나무 천지였는데, 아무래도 저의 삶은 대나무와 분리해 생각할 수가 없는가 봅니다. 비가 갠 오후, 흐린 눈을 닦고 창밖 대밭을 건너다봅니다. 어느 때보다 싱싱한 댓잎을 볼 수 있습니다. 저 대밭 밑 땅 속에,황소 수천 마리가 숨어 사는지 사력을 다해 뿔(죽순)을 돋우어 올리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벌써 햇대 이파리는 하늘을 가리고 남을 만큼 자랐습니다. 저 대나무는 뻔질나게 강으로 쫓아나가던 어릴 적 제 낚싯대였지요. 그렇군요. 저기 수백 대의 낚싯대(대나무)가 서 있지만 대숲은 아무 것도 낚으려 들지 않는군요. 대숲은 이미 제 낚싯대 끝에 수천 마리 푸른 피라미떼(이파리)를 달고 있기 때문이군요.
비가 갠 날 오후에 대숲 아래를 지나가 보았던 경험도 생각납니다. 그때 저는 알았지요. 누군가(무언가)를 잘못 건드리면 물벼락 맞는다는 거요. 그래도 비에 젖은 그 대숲 지나가 보는 거 괜히 마음 설레고 이상하던 것, 아무것도 (누구도)건드리지 않고 대밭을 (세상을)지나가긴 참 어렵다는 것 말입니다. 맑디맑은 가을 날 대숲을 지나가 보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대숲 속을 지나갈 땐 아무리 뒤꿈치를 들어도 들킨다는, 들켜버린다던 생각. 낙엽 깔린 세상 지나가는 사람의 자취가 다 이렇다던 생각…. 안되겠습니다, 편지를 접고 검은 우산을 쓰고 대숲으로 산책을 나가 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 산책길의 동행은 아무래도 선생님입니다. 선생님과의 인연에 감사합니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고향의 흙냄새를 생각하다
2003-08-09 [00:00:00] | 수정시간: 2009-02-17 [03:53:37]
▲ 허/만/하
유홍준 형에게
고향에 돌아가서 쓴 유 형의 편지는 고향의 참된 의미를 묻고 있는 깊이를 담고 있었소. 편지를 읽으면서 마른 풀잎을 물고 산 쪽으로 멀어져 가던 한 마리 들새를 보았던 일이 생각났소. 지리산 북쪽 광활한 고원을 가로지르는 운봉길에서 보았던 광경이오. 나도 모르게? 집 떠난 새 옛날 숲 잊지 못하고?(覇鳥戀舊林)란 도연명의 시 구절이 떠올랐었소.
귀향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귀향이란 어머니의 품 안으로 돌아가는 일 아닐까요. 젖꼭지에 소태를 바르시던 어머니 모습을 회상하는 일 그 자체가 벌써 귀향이지요. 젊은 날의 릴케는 한 편지에서 새의 둥지는 자연이 새한테 준 야외에 있는 모태란 말을 하고 있소. 겉으로는 수저를 들고 열무김치 시원한 물맛부터 확인하는 절차가 될지 모르지만, 사실은 일상적인 시간을 벗어나 본질적인 시간을 사는 일이 귀향이 아닐까요. 나는 그것을 원형에 대한 향수라 이름짓고 있소. 누구나 그곳에서는 시인이 되는 신비한 자리가 고향이지요. 이 더위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다시 하이데거의 '횔덜린 시의 해명'을 읽고 있소. 그는 횔덜린의 시에서 귀향의식을 찾아내고 그것을 그의 철학의 모태로 삼은 것 같소. 그가 말한,모든 사색은 시작(詩作)이고 시작은 사색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저녁이오. 시인은 심정으로 사색하는 사람 아닐까요. 고향집에서 쓴 유 형 편지를 읽고, 그가 말하는 대지를 흙이라 번역해 보았소. 유 형,농경민족인 우리에게 흙은 곧 운명이었지요. 질 좋은 흙을 손의 감촉보다도 냄새와 맛으로 가려내었던 도공의 감각으로 언어를 다룰 수는 없는지 깊이 반성하고 있소.
유 형, 유 형이 모처럼 쉬고 있는 고향집 동구 밖에서 바라보는 똥뫼산은 행여 수산 마을 쯤에서 경호강 물길에 발을 담그고 있는 조그마한 야산은 아닌지요. 언젠가 달맞이꽃과 버들강아지 무더기를 발목으로 밀치면서 이 산 발치에 서서 장대한 경호강 하류를 바라본 적이 있소. 아무 근거도 없이 혼자서 그 산이 똥뫼산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n저번 편지로 인사를 나누었던 유 형 집 나무들과 마음으로 사귀면서 이 편지 쓰고 있소.
점놈이라 불리면서도 도공은 이름을 하늘에 뜬 한 포기 구름 같이 생각했소. 굽는 그릇에 이름을 남기는 일을 치욕으로 알았다 하지 않소. 기와를 굽던 와공도 예외가 아니었소. 장독 옆구리에서 보는 물결 무늬에서 무심의 경지에서 작업하는 그들 정신의 맑은 높이를 나는 읽었소.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 무늬에 우리 겨레의 심성이 살아 있소. 무기질인 흙에 목숨의 숨결을 불어넣던 도공들. 우리 겨레 미의식은 이름 없는 민초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요. 그제는 경호강 물길의 시작을 더듬어 덕유산 품속으로 찾아 들었소. 오랜만에 참매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소. 아버지의 지게를 지고 고향 흙을 주물렀던 손으로 다시 시를 쓰고 있는 유 형의 모습 상상하며 이만 줄이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더 이상 태어나지 않을 시인(?)
·허만하 선생님에게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은 제 기억 속의 샘(泉)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우물에 관한 기억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지만 샘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더라고요.
선생님, 제 나이 상고머리 열 살 무렵이었나 싶습니다. 아버지 병원비로 지금은 남의 논이 되어버린 그곳에 부모님 따라 일 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새참 때가 되자 어머니가 미숫가루 타 먹을 물을 떠오라고 시키셨습니다. 저는 종지와 커다란 양푼을 들고 개울가로 쫓아갔습니다.
거기 살구나무와 머루넌출이 드리우고 있는 그늘 아래 작은 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저는 작은 손바닥으로 그 샘을 싹싹 퍼내어 청소를 하고 새 샘물이 가득차기를 기다렸지요. 부옇게 흐려졌던 샘이 새로 솟는 물에 의해 맑아지는 광경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기다림 그 광경이 얼마나 좋았던지요.
그것은 저에게 아주 특별한 체험으로 남아 있답니다. 흐려졌던 물거울에 차츰 제 얼굴이 나타나고 드디어 머루 잎새 사이로 일렁거리는 햇살이 비치면 저는 부모님께 가져갈 샘물을 퍼 담기 시작했습니다. 양푼 밖으로 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모둠발을 하며 걷던 기억!
선생님, 저는 그 샘을 통해 무엇을 경험했던 것일까요.
요즘도 간혹 등산을 갔다 올 때 샘을 만나게 됩니다. 대개 플라스틱 바가지가 놓여 있고 사람들은 그것들을 사용해 물을 마시지요. 그러면 저는 그들을 위해 망개잎을 동글게 말아 물을 떠 마시는 방법을 일러 줍니다. 좀 감질은 나지만 물맛이 금방 달라지니까요. 그러나 이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란 걸 압니다.
가장 맛나게 샘물을 먹는 방법은 샘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샘 속에 얼굴을 처박고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입니다. 샘이란 저에게 절을 올리는 자에게만 비로소 감로수를 허락하는 비밀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선생님, 두서없이 말씀드린 샘에 관한 제 체험이 자꾸만 시의 원형 시의 본류를 잃어가는 우리 시의 위기와 결부시켜 이해될 수 있을는지요. 샘물 같은 시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아무도 애타게 기다리지조차 않는 현실! 더 이상 시인(?)은 태어나지 않으리라는 예감에 저는 절망합니다. 오늘도 갈증을 느낍니다. 또다시 시의 자궁인 샘을 찾아 낯선 곳을 헤매게 됩니다. 이 사막 같은 현실, 오아시스 같은 시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요? 현대시는 말합니다. 자, 웃어요 빌어먹을 이 현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시에는 천의 길이 있다
2003-08-23 [00:00:00] | 수정시간: 2009-02-17 [02:53:02] | 17면
● 유홍준 형에게
유 형, 천(千)의 시인이 있으면 천의 길(체험)이 있지요. 하나의 시인은 자기만의 고유한 문체에 의해서 다른 시인과 구별되는 것 아니겠소.나는 예술은 궁극적으로 표현의 재주라고 생각하오. 나는 우리 시의 다양성이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 생각하오. 나에게 없는 생소한 방법을 쓰는 시를 만나면 때로 당황하기도 하지만 반가움을 느끼기도 하지요. 내 편식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 보다도 젊은 시인들이 선택할 길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지요. 남이 닦아 놓은 안일한 길을 버리고, 새로움과 씨름하는 그 외로운 몸부림에서 참된 시정신을 엿보고 반성의 계기로 삼기도 하지요. 외국 시와의 만남에서 여태 보지 못한 생소한 시의 얼굴을 만날 때는 때로 흥분하지요. 투우장에 들어선 투우사의 전율 같은 것일까요. 시인은 낯선 타인과의 사귐으로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시가 지나치게 언어를 의사 전달의 도구로 삼아 왔던 것을 반성하게도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인에게 지나치게 사회적인 짐을 지게 하는(또 지려고 하는) 풍조가 있는 것 같소. 언어가 가지는 독자적인 생명력에 무관심했지요. 시인은 누구나 하나의 길을 잡기까지는 많은 고뇌와 자기회의 속에서 방황하는 것 아니겠소. 사람은 운명적으로 갈림길에 서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기 마련이지요. 그때 결단이라는 순간을 만나지요. 암울한 시절의 보들레르가 에드거 앨런 포의 시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자기에게 없는 자질을 바깥에서 찾아 헤매었기 때문이 아니겠소. 시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낯익은 풍경이 아닌, 낯설고도 새로운 지평에 눈을 돌리기 마련 아니겠소. 그것이 자기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필연적인 과정 아니겠소.
자연과학 분야에서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과학 잡지 '네이처'의 제호가 창간호의 첫머리에 재수록한 괴테의 산문 '자연'에서 딴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들 의식의 광활함이 부러웠소. 자연이라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이란 뜻의 시작이었소. 자연이 시의 영원한 모태라는 것은 만고의 진리요. 시인은 그러나 이 자연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어떻게'에 평생을 거는 사람이 아니겠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시인은 태어난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황무한 바람뿐이었던 지구의 어디선가에서 최초의 시인이 태어났듯 그렇게, 앞으로도 시인은 태어난다고 나는 믿소. 언어의 아름다움을 필봉에 걸린 노을처럼 사랑하는 별종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 믿고 있소. 돌팔매질을 잘하는 누군가가 태어나고 노래를 잘 부르는 원시인이 태어나듯 그렇게 말이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우리 시대 공터에 버려진 시
2003-08-30 [00:00:00] | 수정시간: 2009-02-17 [02:29:19] | 19면
▲ . 허만하 선생님에게
답장 잘 받았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아직도 투우장에 들어선 투우사의 전율을 느끼신다는 말씀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느꼈음을 전합니다. 아마도 그런 팽팽한 긴장감으로 쓴 선생님의 작품이 다수의 독자들에게 감동(전율)을 안겨주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술은 궁극적으로 표현의 재주'라는 대목에서 저는 멈칫했습니다. 시가 문학장르 중 매개과정이 가장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정말 역사를 외면해도 좋을까요 선생님. 저는 시인의 자질로서의 덕목에 있어 표현의 재주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시대를 바로잡고 세우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정신의 발현'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유럽 속담에 '귀의 언어는 뜨겁고 눈의 언어는 차갑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시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회화적이라는 지적을 생각할 때 어쨌거나 지금의 우리 시가 부족한 점은 뜨거운 주술언어로부터 멀어졌다는 점이지요. 무엇보다도 늘 실험(?)을 감행하는 요즘의 젊은 시인들에게서 저는 뜨거운 귀의 언어를 거치지 않은 눈의 언어만의 조합을 종종 목도하곤 합니다. 그래서 실망합니다. 흥분과 전율보다 강한 우려를 느끼게 됩니다. 단지 형식의 유린을 동원한 시라고 해서 그것이 곧 파격과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새로움일까요?
혹자는 절대적인 시의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가 늘 삶의 새로운 조건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변천해 왔음을 말합니다. 과연 문학이 역사적 경험,즉 일반사와 무관하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요. 선생님께선 '우리의 시가 지나치게 의사전달의 도구로 삼아왔다는 것을 반성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글쎄요 고백을 하자면 저도 갓 등단할 무렵에는 그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시를 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땐가부터 저에게 그것에 대한 심한 회의가 찾아왔습니다. 과연 시보다도 더 실험적이고 환상적이고 정신없는 속도로 돌아가는 현실과 대응할 시의 방법론은 무엇일까, 라는 반성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슈뢰더는 시를 '새로운 합리적 지식과 문명발전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모든 것이 자리잡고 있는 공터'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지금 그 공터에 무엇이 버려지고 무엇이 남겨져 있는지. 요즘 저도 답답합니다. 러시아 시인 아흐마둘리나의 '시는 기이한 극장/물어볼 이 하나 없다, 대답 대신' 나는 '시를 위해서 입술의 구멍을 찢어 놓는다'는 말로 이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버려진 시가 역사의 상위에 있다
2003-09-06 [00:00:00] | 수정시간: 2009-02-21 [04:13:01] | 17면
·유홍준 형에게
역사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지요. 일단 자기 자장 안에 들어온 대상의 고유한 개성을 빼앗아 일반화시키는 힘 말이오.
형의 편지는 시의 대상이 역사냐 언어냐 하는 근원적인 논의를 일깨워 주었소. 시인이 언어를,대상을 지시하는 도구로 삼느냐, 아니면 언어 자체를 시의 대상으로 삼느냐 하는 문제에 이어지지요. 이런 문제를 먼저 다루었던 사르트르는 앙가주망(참여)이란 말을 들고 나왔었고, 이 개념은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난 변모를 보이면서 우리 문학에 뿌리를 내렸던 것 같소. 유 형이 시대를 바로잡고 세우는 일을 시인의 으뜸가는 덕목으로 삼는 윤리성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그런 실천이 과연 시인의 사명에 속하는 것인가 하는 소박하고도 질긴 의문을 가지오. 시인은 언어를 통해서만 세계와 교류하기 때문이오. 사회를 변혁하는 과학적 이론과 프로그램을 창시했던 마르크스에게는 언어는 없는 것이었지요.
언어를 현실의 반영으로 보았던 그에게 있는 것은 현실이지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이오. 시인에게는 섭섭한 일이지요. 역사적 필연성이란 논리 아래,궁핍과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려던 마르크스와 그 후예가 (또 다른 권력들이) 한때 독선적인 목적을 위하여 언어를 동원하고 언어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을 볼 때도 섭섭했소. 시가 시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시의 자존에 어긋난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시는 역사보다 상위에 있소.
시인은 일차적으로 언어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란 것이 내 신념이오.
문학이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다고는 전혀 생각한 적이 없소. 오늘의 이야기도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소.
아직도 나는 예술을 궁극적으로는 표현의 능력이라 믿고 있소. 그 능력의 차이에 의해서 예술가는 평가되어 왔고요. 주제와 방법의 관계는 변증법적이지만, 창조정신에 비춰볼 때 주제는 상대적으로 선구적이지 못했던 것 같소.
젊은 시인들의 언어문화에 대한 유 형의 우려에 대해서 그들은 그들 언어 활동의 당위성을 주장할지 모르지오. 시인은 누구나 자기에게 고유한 문체를 이룩할 의무가 있고, 그것을 위하여 헤매는 치열한 기간이 있게 마련 아니오.
나는 시인을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시인은 다만 일반 사람들보다 언어를 다듬는 재주가 뛰어나고,유난히 언어를 사랑하여,세계(언어도 세계에 속하지요)에 숨어 있는 의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아닐까요.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시, 헛된 위대함의 문학
/유홍준/
2003-09-19 [00:00:00] | 수정시간: 2009-02-19 [18:24:58] | 22면
·허만하 선생님께
문학이 표현의 재주라는, 시가 역사의 상위에 있다는 두 번에 걸친 선생님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더구나 시가 시 외의 다른 목적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시의 자존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말씀에 진정으로 공감을 보냅니다.
불쑥 김수영의 시론이 생각났습니다.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어떠세요, 선생님. 이 시론이 선생님의 지난번 편지에서 저에게 일깨워 주신 내용과 일맥상통하는지요?
시는 순수하면서 순수하지 않고, 신성하면서도 저주받았고, 다수의 목소리이면서 소수의 목소리이고, 집단적이면서 개인적이고, 벌거벗고 치장하고,말하여지고,색칠되고,씌어져서,천의 얼굴로 나타나지만 결국 시편은 빔(vacio)―인간의 모든 작위의 헛된 위대함에 대한 아름다운 증거!―을 숨기고 있는 가면일 뿐, 이라고 정의한 옥타비오 파스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시인은 '말은 영원히 되풀이되는 허무의 잿가루'라고 했습니다.
시는 이 세계와의 싸움이고 인터넷과의 싸움이며, 식구들과의 싸움이고 자연과의 싸움, 최종적으로 죽음과의 싸움이라고요.
선생님, 고트프리트 벤이 떠오릅니다. 벤이 강조한 것은 기예(artistik)였습니다. 기예에 의한 시작이란 '새로운 양식을 형성하려는 예술상의 시도'이고 '보편적 니힐리즘에 대항해서 새로운 초월을 감행해 보려는 시도'라고요. 공감합니다.
그러나 지난번 편지에 썼지만, 저의 우려는 지나친 기예, 형식은 상대적으로 보편적 체험의 세계를 거부하거나 깔보게 된다는 것. 그것이 문학의 근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론가 황현산의 글 일부를 옮겨봅니다.
'우주에 대해 시적 상상력을 갖는다는 것은 이 우주 속에 프롤레타리아로 산다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는 간접적으로만 세상과 만나는 사람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제 육체로 직접 세상과 교섭한다.
맨손이 장갑을 낀 손보다 물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것을 상상한다.
못을 박으라고 명령하는 사람보다 못을 박는 사람이 벽과 못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안다. 명령을 받고 못 박는 사람보다 제가 박고 싶어 못 박는 사람이 우주로부터 더 많은 영감을 받는다. 명령이 세계와 우리를 이간하였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제가 젊은 시인들에게서 느낀다는 우려는 삶에 근거한 자발적 체험의 부족이었습니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낯선 언어는 친숙하다
/허만하/
2003-09-27 [00:00:00] | 수정시간: 2009-02-19 [18:11:49] | 17면
양극을 창의적으로 분리시키고 그 갈등의 틈새에 진리의 주소를 묻을 수밖에 없는 논리의 생리. 이때 종국적인 단정은 보류되지요. 이런 현상이 이분법을 굴대로 삼는 인간 인식이 몰고 오는 필연적인 결과인지, 또는 김수영, 또는 옥타비오 파스 개인의 취향 내지는 레토릭 때문인지는 알 길 없었소. 상반되는 두 가지 가치 틈새에서 지식인이 취하는 포즈의 한 예를 김수영 자신의 시 구절에서 만날 수 있지요.
'아무래도 나는 絶頂에 서 있지/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몸으로 쓰는 이런 문체를 충동적 삶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시대를 배경에 깔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지요. 대상을 명석하게 파악하는 의식 이전의 원시성에 호소하는 몸짓이기 때문에 전달력이 강하지요. 시는 본질적으로 역설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두 사람의 문법은 시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당연한 것이 되지만. 형이 지적해 준 고트프리트 벤에 대해서는 나도 관심을 가지고 있소. 젊어서는 표현주의 시인이면서 병리전문의,늙어서는 까다로운 형식지상주의자로 시사에 남아 있는 그는 끝내 양극의 통합에 이르지 못한 현상주의자로 남았지요. '현실이란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다'고 하며 시로써 실존을 확보하려 했지요.
형이 제기한 보편적 체험이란 과제는 시인에게는 여전히 심연이고 수수께끼란 것을 깨닫게 해주었소, 창조자로서의 시인은 보편성에서 고유성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독자의 경험이 절실할수록 보편성을 띠는 것이라 믿었던 것 같소. 이곳에서 다시 이항대립을 만나네요.
유 형 집 뒤에 있는 대숲이 지하에 깔고 있는 구근(리좀,rhizome)의 얽힘을 사고의 틀로 내세웠던 들뢰즈가 이따금 떠오르오. 아흔까지 정과 망치를 잡았던 미켈란젤로의 팔과 손을 생각하오. 그의 팔이 이념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는지 자기 내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는지는 알 길 없으나,그 자신은 돌 안에 미리 숨어 있는 형태를 찾아낼 따름이란 시를 남기고 있소. 독일어의 Kunst(문화)는 Koennen(솜씨,기교)에서 태어난 말이지요. 모든 시작품은 여행이라 말했던 들뢰즈는 -작가는 언어를 그 관습의 밭고랑 밖으로 끌고 가 언어를 정신 없게 만든다-고 했지요. 그 착란이 언어의 것이라기보다 새로움 앞에 서는 시인의 눈부심이라 생각하면 어떨까요.
[허만하-유홍준시인의 문학편지] 시인, 쉼표처럼 웅크리고 기다리는
/유홍준/
2003-10-04 [00:00:00] | 수정시간: 2009-02-19 [19:10:22] | 17면
·허만하 선생님께
돌 안에 숨어 있는 형태를 찾아 정과 망치를 잡았다던 미켈란젤로와 언어를 관습의 밭고랑 밖으로 끌고 갔다는 들뢰즈를 통하여 일러주신 가르침, 고맙게 받았습니다.
선생님, 시에 있어 주지적 언어와 감성적 언어 중에 과연 어느 것이 더 우선일까요? 이상한 질문인가요? 그러나 어떤 논리도 시인의 직관을 앞서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문득 시에 있어 지식이란 얼마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작품들에서 묻어 나오는 긴장감도 결국은 이론적 무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풍부한 여행 경험, 사유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통사구조의 해체나 시니피앙만을 전면에 내세운 시들에서 느끼는 허망함! 문학이란 결코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고, 시가 고도의 현학적이고 지능적인 언어의 유희로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시인의 자존심이 이 시대의 문학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보다 다변화되어가고 가속화되어갈수록 저의 이 확신은 명확해지리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계가 설사 우리의 출생과 사망까지 간섭한다 하여도 이것만은 결코 어찌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시에게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슌타로는 '나는 결코 궁색한 자기표현을 위하여 말을 찾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의 유일한 연결 고리로서 말을 찾는 것이다'라고 하였다지요. 그렇다면 선생님, 지금 우리 시인들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요. 시는 어떻게 독자와 공생하여야 할까요. 시인은 꿈꾸는 자니까 다리미처럼 뾰족한 구둣발로 이 지구를 그냥 뻥 차버리고 저기 별나라로 가버리면 그만일까요. 예컨대 박남철 식으로 '차렷, 열중 쉬엇, 차렷'하고 '독자놈들 길들이기'를 해야 할까요. 자, 이제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나의 시는 독자 너희들 몫, 이라고 짐짓 회피하고 딴청을 부려야 할까요.
선생님,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는 '러시아에서 예술은 언제나 사회적이고 시민적'이라고 말하였다지요. 동의합니다. 선생님, 저도 미국의 여성 시인 에이드리엔 리치처럼 세상의 빗물과 시인의 눈물이 범벅이 된 전단을 부산역 광장에 서서 돌리고 싶습니다. '시민이여, 우리(시)와 함께하자'고 호소하며.
그러나 저는 남 앞에 나서기 꺼리고 부끄러움 많은 말더듬이 자폐 시인. 기껏 할 수 있는 거라곤 오늘도 쉼표처럼 웅크리고 앉아 저에게 다가오는 언어를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 저는 이렇게 유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아아, 그렇다면 저 대신 누가 부산역 광장에 서서 등 돌리고 가는 시민들에게 호소를 해 주지요? 걱정마라, 걱정 마. 너의 시가 가장 무능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누가 저를 위로해 주지요, 선생님…….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사자는 점프 전에 웅크린다
/허만하/
2003-10-11 [00:00:00] | 수정시간: 2009-02-19 [19:01:40] | 17면
·유홍준 형에게
맑은 가을 햇살에 홀려 먼 나들이를 다녀왔소. 나들이의 행선지는 지명이 아니라 세상을 새로 바라보는 방법이라 나는 생각하오. 새로움이란 기존의 분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가치이지요.
시에 있어 주지적 언어와 감성적 언어 어느 것이 우위일까 하는 형의 물음에 대한 내 의견은 형의 질의를 받기 앞서,'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쓴 다음 구절로 미리 대답한 것으로 하지요. '(나는) 이성과 감성이 서로 갈라서기 이전의 목숨의 총체를 생각해본다.'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려 목숨의 총체라는 표현을 끌어들인 배경 이해 해주시겠지요. 형이 말한 몸으로서의 언어도 이성과 감성이란 분류를 넘어선 원초적 통일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소. 왜 우리의 관념은 세계를 통째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쪼가리를 내는 것일까요. 들뢰즈는 이러한 이항적인 논리를 서구적인 지(知)의 권력 구조의 발현이라고 맹렬히 비판하고 언어의 비계열적, 반서열적 움직임을 주창했지요.
나는 그의 철학과는 다른 바탕에서 언어의 원형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한 것이나 성공한 표현이 못되어 자괴하고 있소. 동양의 언어에는 느낌·분석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감응을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지요. 어릴 적 앞산이라 불렀던 대구의 비슬산에 살았던 관기, 도성의 두 스님과 나무들 사이의 대화('삼국유사')도 좋은 예이지요. 전달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지 않는 시적 언어는 숙명적으로 쓸쓸하지요. 그 외로움이 시의 당위가 아니겠소. 유 형,시를 창작하는 주체와 시를 읽는 주체 사이의 관계는 좌우대칭과 같은 아름다운 도식이 성립되지 않는 특수한 관계지요.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언어가 세계와 삶에 이르는 가장 근원적인 회로라는 사실 하나를 믿고,묵묵히 자기의 밭을 일구는 일이지요. 수확은 농부의 소관 밖의 일이지요. 독자의 비위(또는 수준)를 뒤쫓는 일만은 결코 시인의 길이 아니라 생각하오. 그리고 나는 시를 메시아라고 생각한 적이 없소. 스스로 지나친 사명(주제)에 발목을 묶는 일이 생리적으로 싫기 때문이오. 시인은 숨은 자리에서 조용히 언어에 봉사할 따름이지요. 나는 유 형이 확보하고 있는 시의 터전에서 그런 자세를 감지하오. 시에 관한 이론적 무장이 시인의 직관을 앞서지 못한다는 형의 생각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오. 언어를 기다리며 쉼표처럼 웅크리고 있는 형의 모습 아름답소. 사자는 점프 전에 엎드리고 독수리는 발톱을 숨기지요. 광장에서 시를 외치는 일 잊어버리고 다시 잠복합시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시인의 필연적 이중생활
/유홍준/
2003-10-18 [00:00:00] | 수정시간: 2009-02-19 [18:56:39] | 17면
허만하 선생님께
저의 어리석은 질문마다 정성껏 답해 주시고 깨우쳐 주신 편지, 두 손을 내밀어 받았습니다. 한달음에 대여섯 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피력하신 '이성과 감성이 서로 갈라서기 이전의 목숨의 총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딴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시의 길을 걸어온 제 발끝을 내려다보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은 선생님과 제가,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시인들이 끝내 추구하고 찾는 것이 그 '원초적 통일성' 아닐는지요.
일순 부끄러움이 찾아왔습니다. 그 동안 저는 터무니없이 문학에 있어 실천적 자세만을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현실과 대항할 대안으로 저는 아마도 체 게바라가 나타나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시는 혁명이 아니고 혁명가를 원치도 않는데 말입니다.
선생님,저는 그저 고달프고 평범한 직장인이며 가장인 소시민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저의 외양이나 말투에서 시인임을 읽지 못합니다. 그러니 쉼표처럼 웅크리고 시를 기다리는 저의 모습에서 점프 전의 사자나 먹잇감 낚아채기 전의 독수리를 끌어낸 표현은 좀 지나친 과장이셨다 싶습니다. 자칫 그것은 욕망의 표현으로 읽히니까요.
다시 고트프리트 벤이 떠오릅니다. 벤은 언제나 단정한 복장에 시민적 생활방식을 고수했다 하지요. 끔찍한 이미지들로 채워진 '시체공시장(屍體公示場)'의 표현주의 시들을 얻기 위해 시와 삶의 통합은 벤에게 있어서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피하지 않으면 안 될 위험한 함정이었다지요. 시의 창조성을 유지하기 위해 삶의 혼란은 적극적인 배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요.
이제 저도 벤의 그 '이중생활'이 이해가 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엄청난 삶의 부조리 속에서 시적 진실을 지탱하기 위한 최후이자 최고의 선택이며 몸부림이었을 것입니다. 현실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연적으로 저는 체 게바라나 보헤미안일 수가 없고 벤의 이중생활을 답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느껴집니다. 그러기에 이른바 현실에 몸 담고 있는 우리의 대다수 젊은 시인들의 시가 사회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고 극도의 언어유희나 자기부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해가 됩니다.
선생님,이만 편지를 접고 '프리다 칼로'를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녀에게서 보이지 않는 불구인 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칼날이 되기 이전의 광석처럼
/허만하/
2003-10-25 [00:00:00] | 수정시간: 2009-02-19 [18:41:39] | 17면
유홍준 형.
유 형이 말한 시의 실천적 자세 그동안의 편지에서 줄곧 느껴 왔었소. 그러나 시는 폭발이 아니라 한번의 폭발을 위하여 화약이 머금고 있는 적막한 기다림이 아닐까-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소. 하나의 얼굴을 위한 체 게바라의 목숨을 건 선택은 문자 그대로 거룩한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형이 말하는 고트프리트 벤,우리 같은 장삼이사 역시) 복수(複數)의 얼굴을 가졌지요. 두 얼굴의 틈새에서 위선이랑 시가 태어나는 것을 살펴보면 생활방식의 두 얼굴은 오히려 친숙한 것이 되지요. 시는 실천과 인식의 틈새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닐까요. 이 틈새를 자기증식을 되풀이하는 자본과 노동자 급료 사이의 틈새라 번역하는 사람도 있지요.
해방 후 공간에서 중·고 시절을 보내고 6·25 전쟁의 첫 해 겨울을 서부전선(이북)에서 군번 없는 고3 학생으로 보낸 젊은 나의 감수성은 유 형이 말하는 행동의 문제에 대해서 남 다른 관심을 가졌었지요. 그 무렵의 짙은 회의는 시를 쓰고부터 역사와 언어(세계에 대한 창조적 인식),두 가치 가운데 어느 쪽이 절대적 가치일까 하는 궁극적 선택을 강요하는 집요한 목소리로 변신한 채 나를 따라 왔었소.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 출신인 체 게바라가 새로운 정치 질서를 위하여 행동에 몸을 던졌던 것처럼 나는 새로운 언어를 위하여 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었지요. 칼날(형이 섬진강 기슭 운조루 앞에서 샀던 식칼이 떠오르오)이 되기 이전의 광석처럼 숨을 죽이고 나에게 고유한 언어를 끊임없이 다지는 길 위에 서기로 마음을 다졌지요. 행동하는 사람에게 역사적 현실이 있듯 시인에게는 시적 현실이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택일이었소.
한번은, 전남 순창 회문산 능선에서 투구봉을 바라보며 반도국가인 우리가 겪는 역사적 현실과 언어의 본질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독창적 사유체계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지 않고 있는 사실이 부끄러웠소, 부끄러움에도 뜨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소. 시인에게도 참여할 혁명은 있지요. 강철의 족쇄 같은 관용적인 언어의 구속을 뒤집고 새로운 언어의 현실을 만들어 내는 고독한 작업이 아닐까요. 유 형,유럽 문화가 낳은 초현실주의 운동도 하나의 혁명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상투성 속에 묻혀버린 언어의 원시적 생명력을 살려내려는 실험의 성공 여부를 떠나 나는 그들 동기의 순수와 성과를 믿고 있소. 형이 읽고 있는 프리다 칼로에서 그 필연성을 발견하리라 믿소. 문득, 가혹한 겨울은 나를 위하여 남겨두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현대시 쓰려면 돈 있어야 한다
/유홍준/
책장 깊숙이 박혀있는 박용래 시집을 꺼내 읽고 싶은 가을. 저녁이 내리는 마을 공터에 서서 하늘 가로질러 오는 기러기떼 보이나, 안서(雁書) 기다리며 올려다보면 별떨기만 몇 파랗게 떨고 있을 뿐.
선생님께서 '나를 위해 남겨두라'고 말씀하신 '가혹한 겨울'을 저도 이렇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생님, 한 시인의 문학적 행로가 결정지어지는 계기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군번 없는 학도병으로 참전을 하고 전쟁을 경험하신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살아있는 체험일 테지요.
하지만 저는 어떤 한 사건이나 일회적인 특별한 경험만으로 한 시인의 세계가 구축되어지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한 시인의 삶 전체를 통하여 구체화되는 것이겠지요.
선생님, 갈수록 이 나라의 상황은 왜 혼탁하고 혼미해지는 걸까요. 사회구조는 왜 손 써 볼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 걸까요. 이 볕 좋은 가을날, 기다리는 '안서'는 오지 않고 낙엽의 비보들만 날아드는 걸까요.
오늘도 요때기처럼 개켜져 오는 신문을 펼치면 간밤에 치러진 야합과 혼음의 자취들이 더러운 정액의 흔적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견디다 못해 누군가는 대형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맸고 누군가는 분신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이 시대가 지긋지긋합니다. 마음의 바닥에서 일어나는 울분을 삭일 길이 없습니다.
안부를 주고받으며 사는 시인 몇이 있습니다. 그들은 제가 공장에 다닌다는 걸 잘 믿지 않으려 합니다. 저의 시가 공장에 다니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요.
또 제 직장 동료들은 제가 시를 쓰는 것조차 모르거나 알아도 아주 이상한 말장난이나 하는 작자쯤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노동자라면 당당하게 기름때 묻은 시를 써야 한다고요.
그러니 너의 시는 가짜라고요. 선생님. 저의 시의 이 이중성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요. 그냥 이유 없이 체질일까요. 계급(?)이나 학벌 다 떼어놓고 오로지 작품으로만 노는 이 글판이 좋아서 주눅 들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이 시대가 심문하는 문학과의 괴리가 오늘도 저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선생님, 현대시를 쓰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지요. 저의 이 가난도 세습되고 울분도 세습된다는데 말입니다. 갈수록 문학에 대한 회의가 일곤 합니다. 면식 있는 시인들이나 직장 동료들의 비웃음 때문이 아닙니다.
정말이지 난세가 이쯤일 땐 산간에다 토방이나 짓고 철새 오가듯 고전의 화첩에 창호지나 바르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선생님, 부디 저에게 위로와 당부를 좀 주십시오.
허만하-유홍준시인의 문학편지
고뇌를 사랑하는 정신의 깊이
2003-11-08 [00:00:00] | 수정시간: 2009-02-19 [19:21:30] | 17면
▲ 허/만/하.
유홍준 형에게
유홍준 형, 괴로움이 삶의 본질적 구조라 한들 욥의 고뇌에 비길 만한 괴로움이 또 어디 있겠소. 형의 편지는 간질병 발작의 틈새를 빌려 생계의 수단으로 끊임없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고뇌를 사랑한다'는 말을 오랜만에 떠올려 주었소.
유 형,형이 말하는 괴로움이 어지러운 세태 때문만이 아니라, 이 시대가 요청하는 시와 형이 쓰는 시의 괴리 때문이란 사실을 읽고 형의 가열한 시정신에 새삼 감명을 느꼈소. 유 형,형이 말하는 삶의 이중성에 대한 짙은 회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괴로움-소박한 러시아 민중의 생명력을 따로 두고, 서구적으로 근대화해 가는 러시아 지식인들이 느꼈던 자기 모순(초기의 작품 '이중인격')과 근원에서 닮은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소.
유 형, 형이 일하는 공장의 기름냄새와 시 쓰기의 틈새에서 느끼는 가책 같은 고통은 시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라 믿소. 그동안 우리나라 시는 지나치게 엷지 않았나 하는 것이 내 생각이오. 심연의 깊이를 들여다본 경험이 없는 시. 깊이를 모르는 수면에 불과한 시. 고뇌(시대의 또 개인의)의 밑바닥까지 파고드는 철저한 구심성을 모르는 시에서 어찌 참된 정신의 깊이를 구할 수 있겠소. 백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시도 이제 괴로움을 굴대로 한 작품을 선보일(또, 읽어낼) 시점에 이른 것이라는 예감을 이번에 느꼈소. 유 형은 그런 책무를 다할 수 있는 현장에 서 있는 선택된 시인 같소. 형이 바라보는 필봉 뒤에 번지는 장엄한 노을을 인주 삼아 상징의 낙관을 찍을 수 있는 희귀한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부럽소. 형이 이번 편지에서 시를 시인의 삶 전체를 통한 구체화라고 말한 것은 고무적이었소. 나도 시는 삶의 지층에서 우러나는 목소리라 생각하오. 겹겹이 쌓인 삶의 총체로서 말하는 궁극이 시 아니겠소.
산간에 토방을 찾아 물러나는 퇴영적인 생각을 깨끗이 버리고 난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히려 의젓한 대은(大隱)의 길에 서기를 바라오. 노력하는 정신을 은혜처럼 찾아드는 고통에 대해서 릴케는 '나는 매일 이 일을 배우고 있소. 고통 속에서 이 일을 배우고, 고통에 감사하고 있소. 인내가 모든 것이오!'라고 말했지요. 릴케가 인내라고 말했지만, 기러기마저 보이지 않는 하늘과, 숲과, 시린 물과, 뼈에 스며드는 추위와 배고픔밖에 없었던,19년에 걸친 소무(蘇武)의 기다림 같은 인내가 또 어디 있겠소. 유 형,형은 해낼 수 있소. 고향의 흙처럼 정직한 형의 정신은 반드시 해낼 수 있소. 형이 기다리는 기러기 발목에 매어둔 소식 반드시 형을 찾아들 것이오. 나는 벌써 그 퍼덕임 소리 듣고 있소.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진짜 같은 가짜 뱀이 두렵습니다
2003-11-15 [00:00:00] | 수정시간: 2009-02-19 [19:25:59] | 17면
▲ 유/홍/준
선생님, 오늘 낮에 저는 모처럼 이발을 하러 갔습니다. 이발소 의자 위에 누워 얼굴을 내맡기고 생각했습니다. 면도사는 사람의 얼굴에 칼을 대기 전에 풍선 위에 거품을 발라놓고 수도 없이 연습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풍선을 터뜨리지 않고 거품을 깨끗이 밀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람의 얼굴에 칼을 댈 수 있다고 말이에요.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불현듯 우리 시인들은 혹시 면도사만도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나는 언어를 다루면서 언제 면도사 만한 직업정신, 기술을 연마한 적이 있었던가 하는 반성이 찾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끄럽게도 저의 칼날 끝에서 모국어는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출혈을 당했고 분명 흉터를 입었으리라는 자책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선생님, 얼마 전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저의 작은놈이 문방구에서 파는 가짜 뱀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녀석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그것을 끄집어내더니 제 엄마에게 휘익 집어던졌고 아내는 새파래져서 기겁을 하고 빨리 안 치우냐고 애원 반 야단 반을 쳤습니다. 재밌어서 저는 깔깔깔 웃었지만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다, 시에도 저런 것이 있다. 진짜 같은 가짜! 가짜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가짜에 놀랄 때가 있다고요. 따지고 보니 저 역시 그동안 한 두 번은 그런 가짜 뱀(시)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도 같고요. 맞아요, 선생님. 지금 우리 시단엔 이런 가짜 뱀, 가짜 시가 너무 수두룩한 거 같아요. 선생님, 한심하고 치사하지요. 가짜 뱀들의 속임수가 말이에요. 가짜 뱀 만들어 유통시키는 업자(시인)도 문제고 가짜 뱀 받아 파는 문방구(문예지)도 문제고 가짜 뱀 사지 말라고 엄하게 꾸짖는 선생(원로, 중진, 선배, 평론가) 없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가짜 뱀을 사 온 저희 아이는 이 나라의 제도권 교육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시를 문학을 배우고 익혀 나갈까요, 선생님. 저도 뱀이 무섭고 두렵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기 위하여 수도 없이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는 연습을 통해서 겨우 인생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운명을 타고 났지만 저것은 태어나자마자 이내 꿈틀거리고 흉물로서의 제 존재를 나타내 보이고 통째로 삼킬 먹잇감을 찾기 때문입니다. 붉고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우글거리는 뱀밭을 지나가야 하는 시의 길,소름이 돋습니다. 하긴 아름다운 꽃과 과실이 많은 동산일수록 발목을 노리는 뱀 또한 많은 법일 테지요. 선생님,제발 저는 선생님 같은 꽃 아래 숨어사는 독사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요. 뱀처럼 동면에 들어야 하는 오늘, 그것이 또 걱정입니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이름 없는 '진짜 시인'을 만났소
2003-11-22 [00:00:00] | 수정시간: 2009-02-19 [19:13:49] | 17면
유 형.
형의 편지는 사람다운 사람을 찾아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아테네 거리를 헤매었다는 희랍의 한 철학자를 떠올리게 했소. 그만치 '진국'이 없었던 시대였던 모양이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즈음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우화라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이 서늘해졌소. 나도 형이 지적한 가짜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가 하는 반성이 뒤따르기도 했소.
가짜 시와 진짜 시를 구별하는 객관적 기준이 없는 현실이 사태를 더 어지럽게 하고 있는 것 같소. 형이 은유적으로 제시한 기준의 하나는 피나는 수련 과정이었소. 직립보행을 위한 인간의 사투였소. 그 필연적인 수련 과정이 없는 것이 가짜가 가지는 특징의 하나라는 지적은 날카로웠소. 참된 시인은 시대를 뛰어넘는 최고의 목표를 겨냥하는 데 반해서 가짜는 언제나 자기 둘레와 자기를 비교하여 까불기 때문에 진짜 시인이 가지는 겸손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괴테는 했소. 괴테는 참된 시인은 자기 자신에게 법칙을 내리고 시대를 지령하는 데 반해서 가짜는 언제나 시대의 경향에 추종하고 이름을 드러내려 한다는 취지의 기준을 추가하고 있소. 외국 상표가 붙어 있는 진짜 같은 의류,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서양사람 같은 운동 선수, 흑산도 광어를 사칭하는 아르헨티나산 광어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진짜 시인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지요.
유 형,이 자리를 빌려 한 가지 사실을 밝히고 싶소. 그것은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형을 한번도 유홍준 시인이라고 부르지 안 했던 이유에 대한 것이오. 나는 너무나 많은 '시인'들과 형을 그렇게라도 구별하고 싶었소. 시인이란 칭호가 옷에 붙이는 브로치가 되었다는 한탄과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문예지'의 운영구조를 떠받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항간의 소문 속에서 도저히 '유홍준 시인'이란 유행어 속에 형의 고결한 정신의 위상을 묻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오.
유 형,지난 주,울산 정자 바닷가에서 시인 한 사람을 만났소. 등단이라는 절차를 외면한 채 바다를 사랑하며, 시를 접하는 희열만으로 시를 쓰며 살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소. 음악을 사랑하며 줄곧 바다 시를 쓰고 있는, 유 형이 알 만한 시인이 소개해 준 젊은 약사였소. 내가 그날 보았던 것은 동해의 코발트 블루 수평선에 발을 담그고 있던 거대한 무지개의 유별난 선명함이 아니라, 온몸으로 시를 살고 있는 참된 시인이 자각적으로 거느리고 있던 무명(無名)의 아름다움이었소. 그 호젓한 겸손이 내내 잊혀지지 않소.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황혼의 의자를 권해 드립니다
파고들 아랫목 있기에시 골 겨울 맛이 일
사나흘 꽤 쌀쌀하더니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부산 광안리에서 뵙고 온 선생님의 건강이 문득 걱정됩니다. 선생님, 저는 요즘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을 읽으며 빈 하늘을 가로질러 오는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간서치(看書痴,책만 읽는 멍청이)라 놀려도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던 이덕무의 글들을 묶은 책입니다. 딴에 글쟁이들의 겨울나기 목록 중 하나라고 꼽는 꽤 진득한 책이니 선생님께서도 한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겨울밤에 숟가락으로 긁어먹는 무처럼 책맛이 제법 시원합니다.
선생님, 겨울은 뭐니뭐니해도 시골의 겨울 맛이 일품이지요. 이 도시의 겨울은 그저 휑뎅그렁 황량하기만 할 뿐이지만 시골의 겨울은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황소바람에 등짝이 시려도 파고들 아랫목이 있어 가슴은 늘 밑불 든 화로처럼 훈훈하니까요. 건방지지만 저도 어느새 그런 고향이 그립고 좋아지는 나이인가 봅니다. 마음에 맞는 시인 몇과 뜨끈뜨끈 군불 넣은 첩첩산중 시골집 사랑방에서 밤새 잔을 나누고 정담을 나누고 싶어지니까요. 아직도 부엉새가 우는 겨울 산중의 밤,대숲 핥고 지나가는 바람의 서늘한 비명도 들려주고 아침 대나무 살갗의 냉기가 어느만큼 찬지 그대의 뺨을 대어보라고 권하고도 싶으니까요.
선생님, 순천에서 여수로 가는 길에 '와온해변'이라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일몰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곳으로 언젠가 반드시 선생님을 그 해변에 세워 드리고 싶은 곳이기도 하지요. 아,감정이 너무 앞서는 풍경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벌써 벅차서 묘사가 잘 안 되네요. 말로는 어떻게 전달할 수 없는 장엄함이 그 해변의 저녁 무렵에 펼쳐진다고밖에 달리 더 표현할 방도가 없군요.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순천만 갈대밭이 저만치 건너다 보이고 장엄한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와온해변, 갯벌도 붉어지고 갈대밭도 붉어지고 뻘 속을 들락거리는 작은 게들의 등딱지며 발톱들도 붉어지는 일몰의 광경, 그렇습니다,광경입니다. 그저 삶이 막막해지고 더럭 돌아갈 곳마저 아득하게 느껴지는 그런 일몰의 광경 말입니다.
그 와온해변에 허름한 의자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이라면 앉기를 꺼려할 낡고 볼품없는 의자입니다. 석양을 향해 놓여있는 의자, 그저 넋을 놓고 앉아 황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긴 사유가 되는 의자, 그 의자를 선생님께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곁에 서서 기억에 남을 사진 한 컷을 찍고 싶습니다. 어떠세요, 선생님. 백 권의 시집보다 더 나은 그 풍경으로의 겨울여행이요.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시의 씨앗을 지키겠습니다
아무리 조탁해도 어머니 언어 못 따라가
2003-12-13 [00:00:00]
▲ 유/홍/준
지난 토요일 아침 진주에 오신 선생님과 평소 제가 다니는 대밭 속 산책길을 잠시나마 함께 걸었던 건 행운이고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날 구례로 향하신 선생님의 여정 내내 흡족하셨는지요? 말씀드렸지만 남매 계모임 때문에 저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곧장 울산의 누나네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까지 20여명이 모이고 보니 유독 어머니만 새카맣고 작고 초라해 이질적 존재 같이 보이더군요. 늘 햇빛 아래 농사일로 온몸이 타고 골병이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그건 섣부른 자의 소견일 터, 저 작고 볼폼(?)없는 어머니에게서 우리 육남매가 태어났고 평범하지만 다들 큰 흠 없는 가정 이루고 사는 걸 생각해보면, 분명합니다. 흰콩 속의 검정콩처럼 어머니가 돌올한 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겨우 언문을 깨치셨지만 저희 어머니는 훌륭한 시인(?)입니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는 점층법 어투며 누룽지 같은 입담. 그것은 바로 선생님이 사천 비토섬에서 '캔다'와 '뜯는다'라는 동사를 분명하게 분리해 구사하던 할머니들에게서 느끼셨던 감동과 동질의 것입니다. 완벽하고 적확한 어머니의 입말(口語),그것은 감히 책상물림들이 흉내낼 수 없는 한 편의 서사시이고 완창입니다. 고농도로 압축된 시 세계가 무식(?)한 어머니의 무심결에 던지는 말 한 마디에 이미 다 함의되어 있음을 목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입말은 평생을 일관되게 살아낸 노동을 통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며,온갖 삶의 질곡을 거쳐 체득한 심연에서 저절로 터져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화(肉化)라는 말,아무리 애를 써서 조탁하여도 저는 결코 어머니의 가슴과 입술이 통어해내는 언어를 따라갈 수가 없음을 절감합니다.
계모임이 끝나고 통증 느끼는 허리를 찍은 한장의 병원사진을 남기고 어머니는 늦은 오후 버스를 타고 돌아가셨습니다. 길고 긴 겨울밤, 어머니는 또 이런저런 걱정으로 무거워진 머리를 베개 돋우어 고이시며 뒤척일 테지요.
눈에 밟히는 자식들 생각에 늙은 누에처럼 오그라졌고 바람벽에 매달아놓은 시래기 다발처럼 버석거렸겠지요. 청솔 숲 위를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 적막한 겨울밤,어느 시인도 듣지 못하는 심연의 소리를 어머니는 그렇게 듣고 삭이고 계실 테지요. 내년 봄이면 또 고향의 밭뙈기와 언덕 여기저기 뿌릴 윗목의 씨앗들과 함께요.
선생님, 새봄이 오면 파종할 씨앗 얼어 죽을까 당신의 방 윗목까지 끌어안고 들어와 애지중지 지키는 고향의 어머니처럼 저도 오늘밤 시의 씨앗 품안 깊숙이 넣고 간직해야겠다 다짐해 봅니다. 선생님도 이 겨울 씨앗처럼 건강하게 나십시오.
허만하-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
시인은 늘 언어의 무력함에 절망
2003-12-20 [00:00:00] |
유형이 사랑하는 대숲 길을 함께 걸으면서 유형의 내면세계를 밟는 듯한 흐뭇함을 느꼈었소. 이 편지 내왕이 열리던 여름철, 검은 양산을 쓰고 나와 동행하겠다던 그 산책길에서 언어의 주술적인 힘을 실감했었소. 조용히 흔들리던 우듬지 끝에 부서지던 겨울 햇빛을 쳐다보았던 일, 유난히 굵은 대줄기에 귀를 갖다 대던 유형의 표정, 이런 것들이 섬진강 겨울 물빛 위에 얼비치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쌀쌀했던 구례 길을 지났소. 갑작스러운 방문, 예의에 어긋나는 줄 망설이면서도 진주IC에서 내렸던 일이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유형과 함께 지냈던 짧은 시간의 알뜰한 농도 때문이었소.
유형만이 아니라 참된 시인은 언제나 언어의 무력함 앞에서 절망하오. 시인은 언어로 잡을 수 없는 것을 언어로 잡아야 하는 역설적 사명을 가진 사람이지요. 유형 자당의 한 생애에서 우러나는 언어의 깊이를 시인의 말 재주가 어찌 따를 수 있겠소. 문장 최치원도 언어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화개 골짝 쌍계사 진감선사비 비문에서 읽은 적이 있소. 화엄사 들머리에 이르기 전,냉천리 일원이 간직하고 있는 차분하고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숨쉬기 위하여 얼마간 그 길을 걸었소. 돌담이 있는 그 골목과 정을 나누었오. 조용한 그 골목에서 유형 시가 가지는 순정한 분위기를 그날 느꼈소.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처럼 신비한 것은 없지요. 실존은 고립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실존과의 만남을 통해서 서로 실존이 된다는 생각을 말했던 마르셀의 생각이 그날따라 실감을 거느리고 떠올랐소. 마르셀은 물론 인격적인 만남을 말했지만, 자연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살아 있는 세계가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황소 뿔을 닮은 죽순을 보고 대밭 땅 밑에 수천마리 소가 꿈틀거리고 있다고 유형이 말했던 그 순간 대밭은 사람과 목숨을 나누는 살아 있는 대밭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생각이 떠올랐던 것은 엄천강을 따라 생초를 향하고 있던 저물 녘 길 위에서였소.
어둠에 잠겨 있는 진주를 지날 때, 함께 걸었던 대숲이 있는 언덕을 어림으로나마 살펴보려 했지만 방위조차 짐작할 수 없었소. 그러나 그 대숲 길 비탈은 내 발바닥이 아니라 마음이 외우고 있었소. 또 나중에 말하겠다던 것은 파스테르나크의 다음 말이었소. '내가 절대고독 속에 있을 때 내 목소리가 우러나고 순수하고 명석해집니다.' 유형이 나에게 준 언어의 씨앗을 내내 소중히 간직하겠소.
[허만하-유홍준시인의 문학편지]마무리 정담
'이거다 저거다 '가름' 넘어서야 좋은 시'
최학림 기자
2003-12-27 [00:00:00] | 수정시간: 2009-02-19 [19:57:30] | 17면
▲ 문학편지를 주고 받은 후 오랜 인연처럼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다시 만난 허만하(오른쪽) 유홍준 시인. 사진=강선배기자 ksun@'
허만하 유홍준 시인의 문학편지'는 지난 6월 이후 모두 20차례 실렸다. 두 시인은 편지를 통해 이미 마음 깊이 대로 내왕한 터수였다. 벌써 두 번 만났고, 최근 다시 '편지'의 마무리 정담을 나누려 부산의 광안리 바닷가에서 손을 잡았다. 둘은 '편지는 단연코 위험한 장르'(?)라는 걸 털어놨다. 허만하 시인이 먼저 '편지를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으면 안 되겠더라'고 농담했다. 유홍준 시인 역시 '편지는 둘을 너무 가깝게 만든다. 이제 선생님이 스승 같고 아버지 같다'고 했다.
△유홍준=선생님! 지난 번 진주에 오셨을 때 대숲에서 비둘기 똥을 휴지에 싸가셨잖아요?
△허만하=멧비둘기들이 어디서 자는 지 궁금했어요. 만약 유형이 말한 대로 대숲에서 잔다면 그 증거로 똥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똥을 싸간 것은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색깔이 어떤지, 멧비둘기들은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에요. 병리학을 하면서 시 쓰는 시늉을 한 버릇이 남아있는 거죠. 난 유형이 말한 '대숲이 팡팡 운다'는 표현이 오래 생생해요.
△유=대나무 위에 눈이 묵직하게 쌓이면 대나무가 곧잘 꺾입니다. '팡팡'하며 꺾이는 소리가 눈 오는 시골의 적막한 밤을 가르는데요, 그걸 '팡팡 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나무를 흔들어 눈을 터는데, 그 때 대나무 위에서 잠자던 비둘기가 떨어지곤 합니다. 비둘기 똥까지 싸가는 선생님은 엄청 분석적이지만, 저는 단지 촌놈이라 그런 걸 경험했을 따름입니다.
△허=시의 원천이 거기에 있어요. '하이마트(Heimat), 고향'에 있는 거죠. 하지만 좀 다른 얘기로 넘어가자면, 자기 시를 말할 수 있는 시론(詩論)의 바탕을 갖춘 시인이 많지 않아요. 시인은 문학사뿐 아니라 지질학에서 역사와 철학까지 그 모든 걸 섭렵해야 하는 거죠. 한국에서는 시를 서정과 모던으로 양분해서 다른 쪽을 배제하는데 그게 문제입니다. 쉬르(초현실주의)는 입문 과정에서 다 거쳐야 합니다. 쉬르의 앙리 브르통의 시를 보면 굉장히 좋아요. 결국 좋은 시는 이거다, 저거다 하는 가름을 다 넘어서 있는 겁니다.
△유=제가 실험시를 선생님보다 더 옹호해야 하는데…. 저도 출발은 실험적이었는데 결국 맞지 않는 옷이란 걸 느꼈더랬습니다. 시인도 이론을 겸비하면 좋은데…,그래도 10%정도는요, 이론 없이 기가 막힌 시를 쓰는 시인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박용래처럼요. 그리고 한국시는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인데 저는 외려 스케일이 큰 시인, 이를테면 러시아의 마야코프스키처럼 튼튼한 서사구조를 지닌 대단한 시인을 갈망합니다.
△허=얼마 전 김춘수 시인이 한국에 큰 시인이 없다고 했어요. 과연 이론적 바탕의 문제를 말한 게 아닐까요. 튼튼한 이론에 숱한 요소를 시에 아름답게 품었던 엘리어트나, 시이되 철학에 이르렀고 철학이되 지극히 시적인 '두이노 비가'의 릴케, 지극히 철학적이자 시적인 차라투스트라의 니체…. '전통'은 이론적 바탕의 샘물로,곧 새로운 창조입니다.
△유=저는 과연 시가 뭘까, 생각합니다. 저는 제지공장에 12년째 다니고 있습니다(그는 공장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팬텀기 날아가는 소리에 비유했으며, 그런 연유로 그는 주위가 시끌시끌해야 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공장 동료 300여 명 중 20여명 정도가 제가 시 쓰는 줄 안답니다. 그들이 그래요. '니 시는 와 작업복 냄새가 안 나노?' 저는 직접적인 노동시는 못 쓰겠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초등학교 딸 아이와 호떡 사먹고 손잡고 돌아가는 노동자의 뒷모습 정도가 떠오릅니다.
△허=그것은 자기 정직의 표현입니다. 시가 그런 것입니다.
여행을 곧잘 하는 두 사람은 여행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허 시인은 '새로운 것과의 지속적인 만남으로 나에게는 숨쉬는 것과 똑 같다. 여행에서 만나는 풍경은 한 권의 책과 같다'고 했다.
유 시인은 '뭘요, 그냥 싸돌아다니는 거죠. 생활을 더 많이 담고 있는 소설을 더 많이 읽는데, 그런 소설과 여행은 닮은 것 같습니다'고 했다.
그들은 '숱한 길이 있지만 결국 그 길은 '고향'(시)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했고 '연재는 끝났지만 우리의 문학편지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학림기자 theos@
첫댓글 문학편지 잘 읽었습니다. 염두에 둘 게 많습니다. 두 손 모으고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