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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9일째
ㅡ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비잔틴 최고의 건축물인 성소피아 성당
ㅡ19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거주했던 톱카프궁전
ㅡ4천개 이상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터키최대 시장 그랜드 바자르 관광
아침에 일어나니 약간 날씨가 흐렸다. 비도 살짝 내리긴 했는데, 우산을 쓸 정도까진 아니고 조금 뿌리는 정도... 이런 날씨가 사진 찍기에는 더 좋은 날씨이다. 어제 쇼핑몰 코트를 구입하니 셋트로 같이 준 히잡이 있어 바로 써 보기로 했다. 쓰는 방법을 모르니 그냥 대충 스카프처럼 둘러 버리고 나가긴 했는데, 우리 팀 터키 현지 가이드인 에즈메한이 잘 둘러주었다. 히잡을 쓰니 왠지 조금 차분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느낌이 묘했다. 히잡을 쓰고 오늘 이곳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슬람을 제대로 알아보고자 한다.
오늘 투어 처음으로 향한 곳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이다. 비온 뒤 성벽 길을 히잡쓰고 걷는 느낌은 내가 이슬람교를 믿는 터키인이 된 느낌이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어하는 삼중의 성벽이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난공불락의 도시로 불리게 된 데에는 이 성벽의 도움이 컸다.
아르카디우스 황제의 사후 그의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가 겨우 7살의 나이로 즉위하자, 당시 민정총독인 안테미우스가 섭정으로 일하게 되었다. 섭정이란 군주국가에서 국왕이 어려서 즉위하거나 병 또는 그 밖의 사정이 생겼을 때 국왕을 대리해서 국가의 통치권을 맡아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는 그 사람을 말하는데 우리나라 사극에서 많이 본 수렴청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이미 고대부터 이어져 온 성벽과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직접 세운 성벽이 있었으나, 도시가 발전함에 따라 이 성벽들로는 시가지를 충분히 방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안테미우스는 시가지를 보호하고 방위하기 위해 이 성벽을 건설하게 되었다는데, 이후 테오도시우스 법전과 더불어 테오도시우스 2세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성벽을 따라 시가지로 걸어 내려오며 필수쇼핑으로 한국분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렀다. 이곳은 터키의 대표과일인 석류로 만든 석류즙과 프로폴리스등의 건강 약품과 식품을 파는 곳이다. 여기서 파는 제품들의 질이 아주 좋다고 한다. 이외 올리브 비누등 한국 분들께 선물하기 좋은 선물 셋트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 곳에서 히잡 쓴 한국인 서현이와 히잡 안쓴 터키인 에즈메한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히잡 쓴 내 모습을 히잡 안쓴 터키인이 본인보다 더 터키인 같다고 신기해했으니 말이다. 이쯤에서 히잡에 대해 좀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히잡과 챠도르가 어떻게 다를까?
히잡은 얼굴만 가리는 정도이다. 내가 사진에서 쓰고 다닌 것이 히잡이다. 그런데 챠도르는 눈만 내 놓고 다 쓴 것을 말한다. 또, 가끔은 히잡을 쓰지 않는 터키여자들도 있다. 며칠전 사진에 나왔던 우리팀의 터키현지가이드 애즈메한은 히잡을 쓰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달리 쓸까? 쉽게 얘기하자면 목사님이나 장로님 딸은 챠도르를, 평신도의 딸은 히잡을, 크리스마스때 교회 한번 가는 집의 딸은 안 쓰는 거란다. (종교적 갈등을 만들어내거나 특정 종교를 비하하자는 것이 아닌 그냥 재미있고 알기 쉽게 설명한 가이드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온 것이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전통적인 이슬람은 얼굴전체를 가리는 챠도르를 쓰고 조금 더 개방적인 터키 같은 곳은 머리만을 가리고 얼굴은 드러내는 히잡을 쓴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면 더운데, 답답하게 왜 쓰냐는 의구심을 품게 될 것이다. 예전 우학시절에 예멘에서 이민 온 여자에게 여기 미국인데 답답하지 않느냐, 안 써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짧은 영어로 단호하게 안 불편하며, 절대 벗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알아 봤더니 원래 히잡은 정숙한 여인은 자기 몸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데서 쓰기 시작했지만, 그들에게는 성인이 되면 예쁜 보석을 치장한다는 의미로 쓰고,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엄마가 히잡이나 챠도르를 쓴 것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어떠한 거부감도 없고 일상적이란다. 그런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히잡을 답답하냐는 둥 왜쓰냐고 물었으니, 단호하게 말할 만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들이 히잡을 쓰는 것은 내가 마치 스커트를 입는 것과 비슷한 것이니까. 그래서 그런 히잡을 경험해 보고 싶어 히잡을 써 봤는데, 조금 답답한 느낌은 있지만 조금 지나니 포근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이 강해 계속 쓰고 싶어졌다. 한국에서 쓰면 정말 이상하려나.....여기서 쓰고 다니는 동안 터키인들이 히잡 쓴 나를 현지인 으로 대접했다. 우리 터키 현지가이드 애즈메한도 자기보다 내가 더 현지인 같다며 흐트러진 히잡을 다시 매만져주곤 했다. 음, 여행하면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경험이다.
점심은 늘 먹던 케밥을 먹고 오후에는 성 소피아 성당으로 갔다. 일단, 터키의 성 소피아 성당은 '아야 소피아' 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 봤는데 우크라이나에도 성 소피아성당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우크라이나의 성 소피아 성당은 '성 소피아 대성당' 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터키의 성 소피아 성당이 더 유명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참, 얼마전 인기 있던 꽃보다 누나에서 김희애, 윤여정, 이미연, 김자옥, 이승기 씨가 터키 이스탄불을 여행하며 들른 곳 중 한 곳이 여기였다고 한다. 우연히 그렇게 되었지만 우리도 꽃보다 누나 ‘터키편’을 나름 찍고 있다. 신성한 예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아야 소피아 성당은 국민의 인구99%가 이슬람 신자인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에 세워져 있다. 이런 곳에 성당이라고 하니 정말 신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 1%의 국민 때문에 지어졌을까? 그건 아니다. 아야 소피아 성당은 비잔티움 제국의 양식으로 지은 건물로써 비잔틴문명의 상징이라고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지어지고, 유스티아누스 황제시절에 완성 되었는데, 이 건물을 보고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솔로몬왕의 신전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며,"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 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펜테온과 함께 세계 3대 건축물에 꼽히는 터키의 대표 관광지가 여기 아야 소피아 성당인데, 그 아름다움이라고 볼 수 있는 특유의 모자이크로 벽화를 장식해서 세계인들이 감탄했다고 한다.
약 9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성당으로 영광을 누려오던 아야소피아는 오스만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또 한번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술탄 메흐메트 2세가 건물의 아름다움에 반해 건물자체는 겨우 유지 되었지만 용도가 바뀌어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 되었다. 한 건축물 안에서 보이는 두 가지 종교의 다름이 묘하게 섞여 잘 어우러진다. 퓨전요리 같기도 하고 크로스오버 음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얼마 전에 본 오케스트라와 태평소의 잘 믹스된 세련된 음악 같기도 한......
티비에서도 많이 소개되어 잘 알려진 소원 비는 기둥이 있다. 이 기둥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한 바퀴를 돌리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서 모두 줄을 서서 소원 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엄지손가락을 넣고 내 몸을 틀어 한 바퀴를 돈다는 게 쉽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도는 것에만 집중하고 소원 빌기를 잊어버리는 수도 있다고 해서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아야 소피아 성당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여러 점의 모자이크화이다. 그 중에서 ‘간청’이라는 제목의 성화는 최후 심판에 대한 모자이크로 세례 요한과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가운데 두고 서서 인간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그림인데, 이 그림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관광객을 울릴 수 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성화의 가장 큰 특징은 어느 위치에서 서서 예수님을 바라봐도 아이컨텍이 된다는 점인데, 이 점을 신기한 상황으로 설명하면 진기한 현상이 되고, 미술 기법으로 설명하면 그 옛날에 저런 기법을 알았을까 하는 놀라움이 나타나고, 외롭고 힘들고 지친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에 서 있던 나를 늘 지켜보고 계시며 걱정하신다고 설명하며 성화를 바라보면 정말 예수님의 눈과 마주치게 되는데 내가 왼쪽으로 가던 오른쪽으로 가던 뒤든 앞이든 보면 예수님이 날 지켜보신다는 느낌에 감동 받아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가이드 선생님은 내가 예수님을 져버리지 않는 한 예수님은 늘 나를 지켜주신다고 설명해 주셨다. 종교를 갖지 않아도 누구나 저런 설명을 들으며 감동으로 울컥하게 되는데, 누군가 어떤 큰 힘이 나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안도감에 감사의 눈물이 흐를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친구도 있었고, 나도 울컥해서 잠시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돌로 된 길을 걷는데, 계단이 아니고 경사진 길로 만든 이유는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2층에 다다르자 로비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 모자이크가 있었다. 오른쪽에는 왕관을 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새 도시 콘스탄티노플을 왼쪽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성 소피아 성당을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에게 봉헌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 성화도 회칠이 되어 있는데 오토만 시대에는 이 모자이크를 파내어 없앨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2층에서 내려다 본 아래층의 모습에서 기독교의 특징인 모자이크화와 코란의 금문자, 그리고 첨탑이 아야소피아 한 곳에 동시에 있는 모양 보면서 우리식으로 교회에 불상이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아무리 상상을 해도 매치가 안 되었는데, 여기서 보니 묘한 조화가 있었다.
꼭 봐야 한다는 성화가 하나 더 있는데, 난간에 매달려 천장을 올려다봐야 볼 수 있는데 바로 돔 위쪽에 그려진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자이크화이다. 훼손 된 것을 다시 복구하였다고 하는데 옥좌에 앉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서 받침대 위에 발을 올려놓았는데 모두 보석으로 장식 되어 있다고 한다. 많은 성화중 그래도 훼손정도가 거의 없는 그림이 하나 있는데 조이 여제와 남편 콘스탄틴 9세가 파란 옷을 입고 있는 그리스도의 양쪽에 있는 성하이다. 멀리서 보면 금을 이용한 성화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정교한 타일을 부텨
을 붙여 완성된 비잔틴 문화의 모자이크 장식이었다.
1층 내부 바닥에는 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는 옴팔리온이 있다. 그리스어로 배꼽이라는 뜻인데 이 곳에서 바닥에 카메라를 두고 셀카 버전으로 찍으면 돔 위쪽이 정확히 찍힌다. 물론 설명을 듣고 우리도 그렇게 찍었다.
그리고, 오직 황제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던 황제의 문이 있는데 바로 그 위에는 레온 6세가 그리스도에게 엎드려 경배하는 모자이크가 자리 잡고 있다.
성당을 둘러보다 자꾸 돔으로 시선이 가게 되는 건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어떻게 저 위에 올라가서 타일을 붙여 모자이크를 완성했는지 너무 신기해서일까? 이런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고대의 건축물들을 보면 전문 건설기계가 없었기 모두 다 사람의 힘으로 직접 했는데, 그로 인한 사고 등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사람들일 수 도 있다. 모자이크를 감탄하다 그렇게 이름 없이 희생된 사람들의 노고가 너무 헛되지 않도록 잠깐 생각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성당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성당 전체를 보니 느낌이 달랐다. 돔의 높이가 50m에 이르며사방의 아치층들이 무게를 분산시켰다고 하는데, 짧은 건축 기간 때문에 여러 번 보수해 지금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에페소지역의 아테미 신전에 있었던 원기둥들을 가져와 지었다는 설명을 에페소에서 들었던 기억이 났다.
오늘은 모두 걷기에 알맞은 거리에 있고 점심때가 되니 이른 아침에 잠깐 내일 비는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터키의 날씨는 여자의 마음과 같다고 한 걸까?(가이드 선생님의 말!) 걸어서 그랜드 바자르로 향했다. 그랜드(Grand)이고 바자르는 시장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아는 ‘바자회’ 의 어원이 바자르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그랜드 바자르가 이름처럼 얼마나 큰지 나처럼 길치에게는 매우 위험한 곳이다. 이렇게 거대한 시장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이 시장이 위치한 이스탄불은 육상 실크로드의 종착지이자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제노바로 가는 해상 실크로드의 연결지점이자, 아시아와 유럽이 맞닿은 곳에 위치한, 두 개의 대륙이 걸쳐있는 세계 유일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하나 더, 우리가 알고 있는 앙고라가 원래 터키의 수도 앙카라를 말했다고 한다. 예전에 앙카라가 앙골라였기 때문이다.
길 잃기 좋은 이 그랜드 바자르에서 얼마나 이쁘고 가격이 싼 소품들이 많았는지 시간이 별로 없어 많이 돌아보지 못하고 많이 구입하지 못한 점이 내내 아쉬웠다. 그 중 내가 득템했다고 여기는 제품 하나는 터키의 민속 악기이다. 내가 그 악기를 불고 있는 사진이 있는데, 물론 그랜드 바자르 광장에서 공연을 해서 일행들을 웃겨 주고 히잡쓰고 자기네 민속 악기를 부는 현지인 같은 외국여인인 나를 지나가던 현지인들이 신기하게 바라봤음은 물론이다. 그 오보에 닮은 전통 악기를 무엇인지 잘 몰라서 찾아보니 ‘주르나’ 이다. 우리나라 피리 비슷하게 생겼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검색해 보길 바란다. 생각보다 소리 나게 부는데 많은 힘이 들어간다. 여러 가지 다른 악기들을 구입 못한 게 아쉬웠지만, 아쉬워야 터키를 또 올 수 있다는 우리 일행의 터키 여행 전문가들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
오늘의 시는 그랜드 바자르 광장에서 피리 불다가 내가 내 모습을 상상하다가 쓴 시이다.
*그랜드 바자르
ㅡ배서현ㅡ
구슬픈 피리소리가 들린다
속눈썹이 길어 더 슬픈 눈의 사내는
움푹 파인 눈을 지그시 감는다
파르르 떨리는 아랫입술은
이야기 할 사연이 많은 듯
날숨 길게 한 번
들숨 짧게 두 번
한 품어 연주하고
먼 곳 향해
고개 들어 바라 본
사내 눈에 비친 눈물 한 방울
시끄러운 시장 통에 섞여 감춰지고
그 뒤로 바쁜 걸음의 사람들 발자국 사이로
작은 희망이 피어오른다
희미하게 안개처럼
*그랜드바자르: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 걸쳐 있는 세계유일의 시장으로 터키 이스탄불에 있다
다음 행한 곳은 톱카프 궁전이다. 아름다운 보스포루스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아름다운 톱카프 궁전은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거주한 궁전이라고 한다. 이스탄불 구시가지가 있는 반도,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 금각만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 곳에서 찍는 사진은 가장 터키다운 아름다운 해안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현재는 박물관이며 톱카프 궁전은 유럽의 다른 궁전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보석 박물관은 공사 중이어서 아쉽게 볼 수 없었고, 무기 박물관은 많은 남성들 때문에 유리관 앞에 잘 가지 못해서 자세히 볼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톱카프 궁전은 해안을 바라보며 마셨던 터키 커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커피는 원두가 가라앉을 때 까지 잠깐 기다렸다가 마셔야 하는데, 커피 맛보다는 그 커피숍에서 내려다본 바다가 주는 황홀함, 바다만큼 파란 하늘이 주는 평온함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 될 듯하다.
저녁은 한국식당에서 닭계장을 먹었는데, 얼마나 한국음식이 그리웠는지 닭을 싫어하는 내가 한그릇 후딱 비웠다. 든든히 밥을 먹으니 야간 투어 할 기운이 솟아났다.
야간 투어를 나간 탁심은 우리나라 명동 같은 곳이다. 탁심 광장 한가운데 아타튀르크 동상이 있고, 그 앞에서 인증샷을 찍은 뒤 각자 일행들끼리 개별 투어를 했다. 우리 친구들은 우리 엄마아빠와 함께 마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고, 점성 좋은 마도 아이스크림을 터키 있는 동안 3번을 갔다. 그리고, 쉑쉑버거를 먹으러 터키에 왔다는 우리 일행의 마션을 함께 수행하기로 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포장을 했고, 탁심의 스타벅스에 들러 터키에서만 파는 기념컵을 구입하고, 터키 디저트로 유명한 로쿰까지 날아다니듯 구입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물론 오늘 밤은 쉑쉑버거와 에페소 맥주로 마무리 지었다.
참, 사진에 화관을 쓰고 단체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일명 ‘미친 고객’ 들이라며 가이드 선생님이 사서 터키현지 가이드 에즈메한이 모두 머리에 씌워주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미친 컨셉으로 단체 사진 찍고 바쁜 하루 일정이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