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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쓰에서 하우스텐보스로 가다가 이마리와 아리타에서 조선 도공들을 생각하다!
2023년 2월 22일 후쿠오카 공항에서 Budget 렌트카를 타고 가라쓰에 도착해 가라쓰성 (唐津城)에 오르는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인 1591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 데라자와 히로타카 가 임진왜란 조선침략
의 전초기지인 히젠 나고야성 건설에 봉행으로 공을 세워 1595년에 가라쓰를 영지로 받아 지었다고 합니다.
우리 가족 7명은 다시 렌터카를 타고는 가라쓰를 출발하여 나가사키의 명물인 하우스텐보스 를 보기
위해 남쪽으로 달리는데..... 시간만 있다면 가는 도중에 있는 예전에 보았던 조선 도공들이
개척한 도자기 마을인 "이마리" 와 "아리타" 를 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니 옛날 여행을 돌아봅니다.
17세기에 아리타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 하던 항구 이마리 (伊万里)는 시내에 오이바시(相生橋) 다리
를 건너면 에도시대에 유명한 도기상 이누즈가케의 저택 을 보존한 건물인 도기상가
자료관 (陶器商家資料館) 에서는 진열된 도자기를 구경하고 녹로를 돌려보는 체험 을 할수 있습니다.
또 아미리시에서 버스를 타고 17분이면 종점 이마리 비요의 마을 秘窯の里(비요노리) 이니
오카와치야마 나베시마 한요코엔 大川內山 鍋島藩窯公園 이라 불리는데, 사가현의
영주인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임진왜란 때 잡아온 조선 도공 들이 아리타에서 백자 생산에
성공하자..... 1675년에 번요를 이마리 오카와치 야마 로 옮겨 기술의 유출을 막았다고 합니다.
나베시마 나오시게 는 사가성에 치소를 둔 히젠(肥前)의 번주 로.... 임진왜란에는 가토 기요마사 휘하 제2군
으로 출전해 함경도에서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을 잡았는데, 젊은 가토가 1만인데 비해 센고쿠 시대에
숱한 전투에서 명성을 떨쳤던 노장 나베시마는 1만 2천 이지만 가토가 히데요시의 직계라 대장을 맡았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은 임진왜란 때의 충성을 히데요시에게서 확인받았기 때문에 독립해 제4군 1만 2천의
대장 으로 함양의 황석산성을 함락하고 전주로 진격했던 왜장인데.... 나베시마는 김해에서
이삼평 등 조선 도공 들을 붙잡아 왜국으로 데려왔으니 임진왜란때 끌려간 조선인들은 10만명에 달합니다.
히젠(사가)번주 이름을 딴 나베시마 가마 에서 생산된 백자 는 팔지 않고 일왕(천황)
과 쇼군가에 진상 했다고 하는데, 마을 언덕에는 도공무연탑 (陶工無緣塔) 과
고려인의 비 (高麗碑) 가 서 있으며..... 전망대에 오르면 풍경이 볼만하다고 합니다.
우리 렌터카는 이마리 를 지나 아리타(有田) 를 지나가는데.... 나베시마 나오시게 鍋島 는 조선 도공을
잡아와 가라쓰(당진) 일대에 거주하게 했는데, 남원에서 사쓰마번 시마즈씨에게 잡혀서
백토와 유약 까지 챙겨서 배에 싣고 온 가고시마현 미야마(美山) 의 심수관 이나 박평의
와는 달리..... 이삼평등 사가현의 도공들은 초기에는 백토를 찾지 못해 일반 그릇만 구웠다고 합니다.
시마즈씨 는 남원성 밖 만복사(萬福寺)터 뒤쪽에 살던 조선도공을 사로잡아 배에 태워 가고시마로 보냈는데
풍랑으로 구시키노(串木野) 시마바라(島平) 에 상륙했다가 훗날 미야마 美山(미산) 로 이주했는데 흙과
유약을 갖고와 조선인이 만들었으니 불만 일본 것을 빌렸다고 해서 "히바키리 火ばかり" 라 했는데,
시로몬(白物)을 생산한후 백자에 금수(錦手)와 금란수(金襴手) 색채가 입혀져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던 중에 잡혀온지 18년만인 1616년에 이르러 도공 이삼평 이 아리타의 이즈미산 泉山(천산)
에서 백토광 白土鑛 을 발견하니.... 사가 번주 나베시마씨는 흡족한 나머지 도공 7명 에게
사무라이 만 가질수 있는 "性(성)" 을 하사했는데, 특히 이삼평 에게는 “가네가에” 라는
성씨와 자손 대대로 삼석 녹봉을 지급한다는 “ 三石永代(삼석영대) ” 의 크나큰 특전을 내렸습니다.
추노나 징비록 에서 보듯 도공들은 조선에서는 천민 취급을 받으며 양반들의 하대와 관리들의 수탈과 착취에
시달리다가 일본에서 비로소 사람 대접 을 받게된 것인데, 세키가하라 전투 가 벌어져 서군이 패했고
이후 오사카성 전투 에서 도요토미 측이 패하니.... 소속 무사들이 낭인이 되어 떠돌다가 아리타로 몰려듭니다.
이 무리들로 인해 도자기 질 이 떨어지자 번주 나베시마씨는 흘러 들어온 852명의 일본인들을 추방 하고 조선
도공들을 이즈미야마 광산 으로 이주 시킵니다. 도자기 제조법의 유출 을 막기위해 조선 도공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으며 이후 백자 위주로 검소한 조선 과는 전혀 다른 "화려한 일본식 기법" 이 발전하게 됩니다.
아리타에서는 먼저 사가현립 규슈 도자기 문화관 九州陶磁 文化館을 찾는데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지라 육교
를 건너 언덕길 을 올라가야 하는데.... 10분정도 걸려 좀 외진 곳 이기는 하나 조용하고 넓어서 좋습니다?
연대별 로 생산된 도자기들을 차례차례 5군데 전시실 에 배치했는데 도기에서 자기로 변천 해 간
"도자기의 발전사와" 흐름 을 쉽게 알수가 있으며, 17~18세기에 유럽에 수출 되었던
고이마리인 캄바라 콜렉션 과 그 다음에 5 전시실에 1603~1867년 제작된 아리타 도자기
모음인 시바타 콜렉션 이 인상 깊으며 복도에는 도자기에 채색하는 과정 을 순서 대로 보여 줍니다.
아리타 시내에 "이마에몬 고 도자기 미술관 (今右衛門古陶磁美術館)“ 은 유출을 엄격히
금지했던 품격 높은 이로나베시마 가마 로 호화로은 옛 이마리 도자기 를 전시하는
곳이니 예사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을 넘는 엄청 비싼 도자기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정장을 갖춘 지배인 이 나와 안내를 하는데 우리 행색을 보자면 백만엔은 커녕 1만엔 짜리
도자기도 겁이나 사지 않을줄 짐작했을 터인데도....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
에는 정중하고도 빈틈이 없는데..... 흔히 일본인은 겉으로 나타나는 다테마에
( 建前 건전, 표현형 ) 와 속 마음인 혼네 ( 本音 본음, 감춤형 )" 가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일본인을 “겉다르고 속다른 일본인” 이라 표현하며
간사한 원숭이 같은 왜놈들 이라고 흉을 보는데.... 몇가지 사례를 들어 봅니다.
직원 채용 면접후 "검토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라는 말은 실은 불합격 을 뜻합니다?
상품 구매상담 시 훌륭하다고 극찬 하며 "다음에 꼭 연락하겠다는 말은 사지않겠다" 는 뜻
입니다. 출장간 직원이 한국 본사에 전화로 일본에서 곧 주문이 올거라고 보고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라, 기다리다 못한 직원이 일본 회사에 전화하면 저 사람들은 난처해 합니다!
습관적인 인삿말 인 "꼭 좀 잘 부탁합니다. 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와 빈말 "꼭 한번
놀러와 주세요. 今度、是非うちへ寄ってください。" 도 별 뜻이 없는 인사치례 말
이니..... 일본인들은 좀체 남을 자기 집에 초대하지 않기 때문에 저 소리를 믿고
사전 약속 없이 집을 방문하면 상대방은 엄청 난감해 하며..... 황당 하다는 표정 을 짓습니다.
거리에서 혹은 버스 안 에서 발을 밟힌 사람 이 먼저 죄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すみません。(스미마셍, 미안하다), ごめんなさい (고멘나사이, 죄송하다) 를
연발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발을 밟힌 사람 이 눈을 흘기거나 험악한 소리 가
나올법도 한데 오히려 먼저 죄송 하다니..... 이래서야 시비나 싸움 이 일어날리 없습니다!
저 미안하다는 말의 혼네 (本音) 는 “ 야 이 개ㅈㅅ 아! 눈은 폼으로 달고 다니냐?
좀 똑바로 다니란 말이야! 씨~ ....” 이라는 뜻인 것이지요! 새겨 들어야?
우리나라 조선은 붓의 문화 이지만 "일본은 칼의 문화" 라, 말 한마디 입을 잘못
놀리면 상대방의 칼에 목이 달아나니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이 습관화 된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는 “개ㅅㄲ, 씨ㅍㄴ, 씨ㅂㅅㄲ, 니ㅇㅁ” 등 온갖 욕설 이 난무하지만.... 일본에서는 욕
이라고 해 보아야 바가야로(바보) 나 칙쇼(짐승) 가 가장 심할 정도로 욕설이 없는 나라 인
것은 이 때문인데..... “다테마에와 혼네” 를 겉다르고 속 다르다 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사실은 앞뒤가 달라도 동전처럼 표현형인 다테마에와 숨김형인 혼네도 실은 하나 입니다.
불필요한 분쟁과 싸움을 피하고 어색해지거나 얼굴 붉히는 일 없이 헤어질때 상대방 기분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 인 것인데..... 일본인 사이에서는 다 알아 듣지만 한국인은 그 이면을 못보니
알아듣지 못하며, 때문에 일본인들은 폭행이나 사기죄로 이웃이나 상대방을 법정에 고소하는 일은 드뭅니다.
다시 가미 아리타 로 걸어가면 고란사 옛도자기진열관 (香蘭社 古陶磁 陳列館)
은..... 19세기 말에 8대 후손인 후쿠가와 에이자에몬 이 시작했다고 합니다.
고란사 옛도자기진열관 아리타 야키 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던 가마 라고 하며 손님이
방문하면 점원이 자리를 비켜주는지라.... 마음 편하게 둘러볼수 있어 좋습니다.
가미 아리타의 아리타관 (有田陶磁 美術館) 은 갤러리 아리타 라고도 하는데, 쯔바키설 과 구로가미산의 구렁이
퇴치 등 전설을 소재로 도자기로 만든 10개의 꼭두각시 인형 이 죠루리극 을 펼치며 1층에는 가키에몬
柿右衛門(최고), 이로 나베시마 (영주전용) 에 고이마리 (유럽수출) 등 3종류 고급 도자기 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은 도자기 왕국 으로 통하니 저 3가지 외에도 “닛코나 노리다케" 상표의 엔티크는
세계 유명 미술품 경매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 으로 거래되며 매년 5월 이 되면
아리타에는 20여만명의 관광객 이 운집하는... 400년 역사의 "도자기 축제" 가 열린다고 합니다.
일본 도자기가 유럽에 수출 된 과정을 보자면.... 1644년 만주족 이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에 침입
하여 명나라가 망하면서, 중국 도자기 산지인 징더전(경덕진) 등이 대 혼란 에 빠지게 됩니다.
그 대타로 네델란드 상인 들에 의해 18세기초 부터 "900만개의 도자기가 유럽으로 수출"
되었으니 이후 유럽은 일본 도자기와 도자기를 포장한 종이 우키요에 그림 에 칠기
그릇 등 일본붐이 크게 일어나는데...... 우키요에 (浮世畵 부세화) 란 14세기 무로마치
시대부터 19세기 에도시대까지 후지산 등과 서민의 애환 을 그려서 찍어낸 목판화 입니다.
1865년 프랑스 화가 브라크몽 은 일본에서 수입된 도자기의 포장지로 사용된 우키요에(浮世繪
부세회) 라 불리던 호쿠사이의 민화 한 조각 을 발견하고는 마네, 드가 등 친구에게
돌린게 유럽 인상파 탄생의 발단 이 되었으니.... 요즘 한류 처럼 자포니즘 (Japonism:
일본 미술붐) 이 유럽에 빠르게 퍼졌으며 1867년 파리 박람회 에 출품된 이래 높이 평가됩니다.
모네 는 부인 카미유를 모델로 “일본옷을 입은 여인” 을 그렸으며 또 우키요에 그림 “오하시 아타케
의 소나기” 를 모방해서 “ Bridge in the Rain" 을 그리는 등 그 수가 무려 수십편에 이르고,
고흐 는 자기 방을 우키요에 그림으로 장식했으며 귀를 자른 후에 그린 “자화상” 에도 배경은
우키요에 그림 이 덮고 있는등 수가 수백편에 이르며.... 그외 마네, 고갱, 드가 등에게 영향을 줍니다.
여기 아리타의 언덕 위에 자리한 도잔진자 陶山神社(도산신사) 는 17세기에 陶祖(도조) 李參平 리산페이
(이삼평) 을 모신 신사이니..... 입구 에는 "청자로 만들어진 도리이" 가 세워져 있으며
사자상 고마이누와 등롱, 수반이며 심지어 "복도 난간 까지 모든 것이 다 도자기" 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도잔진자 陶山神社(도산신사) 는 언덕 위에 위치해서 전망 이 좋은데 봄에는 벚꽃과 진달래, 가을
에는 단풍이 좋으며.... 신녀에게 이삼평비로 가는 길 을 물으니 비가온 탓에 길이 젖었으니
신사에서 바로 올라가기는 힘들고 다시 신사 밖으로 나가서는 포장된 도로 를 따라 올라 가랍니다!
밖으로 나와 경사가 심한 도로 를 따라 올라가는데.... 나뭇가지들이 얼마나 무성한지
마치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교회 반쪽 정문 처럼 고개를 숙이고 올라가야 합니다.
陶祖 李參平碑(도조 이삼평비) 는 맑은 날에는 도잔진자에서 고마이누 옆 샛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아리타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시내를 굽어보고 있으니 이 비(碑) 는 20세기 초에 아리타 야키
300 주년을 기념해 세운 것인데 현재 이삼평의 14세손 인 카나가에 쇼헤이 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고 합니다.
산을 내려와 가미 아리타 거리 를 구경하는데.... 아리타역에서 가미 아리타(上有田)역까지 이어지는
아리타 메인 스트리트에는 600개의 도자기 숍 이 늘어서 있는데.... 1만 3천명의 작은 마을
아리타에 연간 무려 200만명의 관광객 이 다녀간다고 하며, 매년 4월 29일 부터 5월 5일
까지 아리타 메인스트리트 6km 에 점포가 들어서고 일본 최대 "아리타 도자기 시장" 이 열립니다.
시간이 있다면 19세기말 서양상인들의 숙소로 문화재 로 지정되었다는 아리타 이진칸
(有田 異人館)을 찼는 것도 좋고 또는 커뮤니티 버스 를 타고 남대문 그릇 시장
을 연상케 한다는 아리타 도자기 도매단지 有田燒御團地 直賣會館 를 볼수도 있습니다.
또는 아리타역에서 커뮤니티 버스 コミュニティバス 로 아리타 포세린 파크 를 구경할
수도 있는데.... 아리타 포세린파크 有田 ポ-セリン パ-ク 는 네델란드 마을을 본뜬
하우스텐보스 처럼 독일의 즈빙가 궁전 을 모방하여 만든 도자기의 테마 파크 라고 합니다.
일본인들은 남의나라 것 이라도 좋으면 가져와서 재현하는데 일가견 이 있는가 봅니다? 저 아리타
포세린파크 有田 ポ-セリン パ-ク 에는 전성기의 아리타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으며, 도자기 제작
체험 에 참여할 수도 있고 또 지방의 전통주 와 이 지방의 맥주 제조공정을 견학할수도 있다고 하네요?
또 차이나 온 더 파크 チャイナ オン ザ パ-ク 와 350년의 역사를 가진 도자기 공방 으로 후카가와
가문의 비장의 콜렉션 이 전시되어 있다는 “갤러리 츄지관” 도 한번은 볼만하다고
하는데.... 이런저런 옛날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 렌터카는 하루스텐보스 인근 숙소 에 도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