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장사정포 1000여문 얼마나 위협적일까
170mm 자주포 등 두 종류 수원부근까지 사정권
여야가 북한 장사정(長射程)포의 위협 정도를 두고 연이틀 설전을 벌이고 있다. 국정감사에서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에 의한 전쟁 발발시 서울은 16일 만에 함락당한다고 주장했다. 미군의 완전철수를 전제했을 때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장사정포는 사거리가 짧아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북한 장사정포의 위협은 어느 정도일까.
◇서울 사정권=장사정포는 휴전선 인근 북한군 진지에 배치돼 있다. 두 종류다. 170㎜ 자주포와 240㎜ 방사포(다연장포)다. 총 1000문 정도로 추산된다. 170㎜포의 최대 사거리는 54㎞. 240㎜포는 60㎞. 서울은 물론 수원 부근까지 사정권이다. 보통 야포의 사거리는 24㎞ 이하다.
이 가운데 서부전선의 자주포 6개 대대 100문과 방사포 11개 대대 200문 등 총 300문이 수도권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포탄이 대도시에 떨어지면 도시가스 폭발 등 2차 피해가 우려된다. 김종환 합참의장이 5일 "북한 장사정포의 수도권에 대한 위협은 심대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미 연합 대응=그러나 장사정포가 판세를 완전히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게 한.미 군사당국의 일반적 판단이다. 북한이 선제공격을 하면 장사정포는 서울보다 군사표적인 우리 포병진지를 향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대응 공격을 막기 위해서다. 물론 심리적 타격을 위해 서울에 일시적 포격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장사정포는 짧은 시간에 많이 쏘기가 어렵다. 진지가 지하 동굴에 있기 때문이다. 동굴에서 나와 사격하고 재장전이나 대응 공격을 피하기 위해 동굴에 다시 들어가는 데 30여분이 걸린다. 이 때문에 300문의 장사정포가 한 시간 동안 쏠 수 있는 포탄은 최대 1000~2000발 수준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장사정포의 위치를 파악하고 대응공격을 하느냐다. 장사정포가 첫 발사되면 한.미 연합 전력은 즉시 장사정포 위치 파악에 들어간다. 대포병 레이더(AN/TPQ-36, 37)와 프레데터 등 무인정찰기가 동원된다. 포착되면 즉각 연합사의 다연장포가 장사정포를 공격한다. 발사 이전에도 감지가 가능하다.
나아가 남북 간의 전쟁 가능성을 점검하는 징후 리스트에 따라 전쟁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면 감지 정보에 근거, 장사정포를 사전 공격할 수도 있다. 장사정포 파괴에는 F-15 및 B-2 등 전폭기가 동원돼 합동직격탄(JDAM)과 같은 정밀폭탄을 투하한다. 우선 진지 주변 전기 동력을 마비시키는 흑연폭탄이 투하된다. 동굴의 주동력인 전력을 마비시키기 위해서다. 이어 동굴파괴탄(벙커버스터)을 투하, 입구를 파괴함으로써 전체를 무력화시킨다. 이런 대응은 한국군 단독전력으론 불가능하고 미군 전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박진 의원의 주장처럼 북한이 시간당 2만5000발의 장사정포를 단번에 쏘아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리처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도 지난달 23일 미 상원 청문에서 북한의 장사정포를 무력화할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채병건 기자
[사설] 북'장사정포' 평가 축소도 과대도 말아야
북한 장사정포에 대한 방어력을 놓고 국회 국방위에서 벌어진 여야 논쟁은 매우 개탄스럽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한국군 단독방어의 경우 장사정포를 못 막아 16일 만에 서울 방어선이 무너진다'는 국방연구원의 분석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의 임종인 의원이 "을지훈련에서 이틀 내에 장사정포를 제압하는 훈련이 실시됐다"고 반박했다. 이제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는 안보문제가 국회에서 정쟁의 차원으로 비화하는 기막힌 상황까지 온 것이다.
박 의원이 인용한 국방연구원의 분석은 여러 분석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것 말고도 다른 분석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핵무기를 쓰겠다고 위협하면 16일 아니라 그 이전에 손을 들 수도 있다. 물론 안보에는 한 치의 허점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뜻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의원이 간과한 것이 있다. 한.미가 1994년 이후 작전계획까지 고쳐가며 장사정포에 대한 대비책을 상당히 보강해 왔다는 점이다. 특히 개전 후 미군 증원부대가 오지 못할 경우까지 감안했다. 국방관계에 약간의 전문지식만 있어도 다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연구소의 한 분석을 갖고 마치 우리가 '속수무책'인 것처럼 몰고간 것은 경솔했다.
임 의원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을지훈련에서 그런 결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실전이 훈련대로 이뤄지지는 않는 법이다. 당장 첫날 피해가 얼마나 클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별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주장을 펼 수 있는가.
장사정포는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이다. 국민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위협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국회의원으로서 올바른 자세다. 안보문제는 정쟁거리가 될 수 없다. 정파에 따라 안전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것이 아니다. 특히 혼란스러운 안보평가는 국민의 불안감만 가중시킨다. 그런 점에서 안보는 초당적이어야 한다. 국방부도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은 밝혀 혼선을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