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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월. 경주지진 이후-동래울산-마고할머니
경주지진 이후
지진 이후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남쪽에는 태풍이 지나고 있어 강풍이 불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진도 5.8의 강진이었다. 계속 되는 여진 속에 추석을 맞은 경주시민의 불안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진앙지로부터 불과 3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나도 지진이 일어난 순간 건물이 무너질까봐 잔뜩 긴장을 했다. 5.1과 5.8의 충격이 하도 커서 이후 진도 2, 3의 여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경주와 울산 인근에 밀집한 원전 시설과 핵 폐기장에 대한 불안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한수원이나 정부의 발표 등 책임 있는 곳에 대한 믿음이 이미 양치기 소년 수준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진처럼 불안도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이번 5.8의 강진은 천만다행 예고편으로 느껴졌다. 강도 7이나 8의 강진이 예고 없이 닥쳤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고리 월성 원전이 무탈할 리 없다. 울산과 부산, 김해, 양산 등 인구 400만이 밀집한 도시의 수많은 공단이며 고층 아파트와 옛 주택들이 무탈할 리 없다. 상식적으로 봐도 이번 지진은 동일본 대지진 전후 발생하기 시작한 강진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이 서서히 부딪히며 압력이 쌓이고 쌓인 압력을 털어내며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경향이 어떻게 전개될지 확언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당연히 지진만이 아니라 해안과 가까운 나라들은 화산폭발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예고 같은 이번 강진을 맞이하고도 지금같이 안이하게 대비한다면 경남 400만은 그야말로 재난영화 이상의 고통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최대한 합리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 내 목적이지만 위험에 대해서는 최악을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하지 않는가? 더구나 나는 요즈음의 동북아 정세와 나라 사정을 떠올리면 도무지 합리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의 한계를 느낀다. 북한의 핵실험과 남한의 사드배치를 둘러싼 동북아 긴장 고조와 제왕적인 박 대통령의 무능으로 인해 정치, 경제, 노동, 교육, 보건 등 온갖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터지고 있다. 세월호 이후 메르스, 콜레라 등 각종 괴질이 나돌며 요즘 흥행한 『곡성』 『부산행』 『터널』 등처럼 재난이 일상화되는 상태로 나라가 흘러가는 것 같다. 제동이 걸리지 않는 『설국열차』를 탄 기분이다.
더구나 일본의 극우 파시즘의 적통을 계승한 아베의 장기 집권과 정통 친일파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은 자신감에 충만하며 동북아 파시즘의 역사를 미화하고 동북아를 더할 수 없는 긴장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미신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지진이 이런 인간사와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내가 지진이 일어난 단층대 위에 살기 때문에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파국의 서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옛날 왕들은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자신이 정치를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하늘에 제사하고 근신하였다. 심지어 살해되기도 하였다. 성경을 봐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처럼 천재지변을 정치와 도덕의 타락에 대한 심판으로 이해했던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사회의 공통적 현상이었다. 요즘 드는 생각은 그것이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생각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과 정치가 자연의 경고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성찰하고 그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응해나간다면 자연의 경고와 심판은 오히려 좋은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천재지변은 언제나 최악을 상정하도록 우리를 독려하기 때문이다. 물론 역으로 그것을 이용한 선동과 공포정치가 판을 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지변의 경고가 산적한 문제들을 보다 전향적으로 또 과감하게 해결할 기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에게 이사야는 없지만 이사야가 도래했다.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멸망과 붕괴를 자초하는 일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지금 정치 경제 언론 등을 장악한 지도계급의 부패와 그들을 보필하는 전문가 집단의 관료화로 무책임이 보편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독일 파시즘의 몰락처럼 일본 파시즘도 또 거기 기생한 한국 파시즘도 책임지지 않은 채 몰락할 것이다. 그가 정치 경제 언론 등 어느 곳의 장이어도 또 전문가여도 사익만을 추구할 뿐 공공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회사는 망해도 재벌은 망하지 않고, 국민은 망해도 대통령은 말짱하다. 모든 권력을 지배자와 전문가들에게 이양하고 무능과 무지가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이야 말로 미신적 사고를 두려워하지 말고, 근본적이고도 총체적인 사유을 해야 할 때다.
동래울산
양산에 오면서 나는 내내 불안했다. 이미 일본에서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가공할 위력을 언론을 통해 알아온 터에, 이곳은 한반도에서 제일 대지진 위험이 높고, 고리, 신고리, 월성 등 세계에서 제일 원전과 핵 폐기장이 밀집해 있고, 각종 화학 공장과 인구 400만이 밀집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곳도 이토록 위험도가 높은 지역이 없다. 그런데 지역사람들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는 것 같다. 양산은 지난겨울 열 곳이 넘은 곳에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천성산 자락에 신고리원전의 초고압선의 전력을 이용할 산업단지를 짓고 있다. 천성산은 좋지만, 천성산 주변을 보면 마음이 온통 어수선해진다.
이번 지진을 겪고 인터넷을 통해 양산단층과 지진 등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그런데 마침 남사고, 강증산, 탄허스님의 동래울산 예언이 나돌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은 벌써 10년도 더 된 것들이었다. 일찍이 강증산과 탄허스님은 지축이 변화하며 동래와 울산이 큰 시련을 겪는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남사고의 영향이 강한 듯하다.
다음은 강증산의 말이다.
제자가 여쭈기를, "항상 가르침을 내리시기를 '동래 울산이 흔들거리니 천하의 군대가 다 쓰러진다' 하시고, '동래 울산이 진동하니 사국 강산이 콩볶듯 한다'고 하시니,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말씀하시기를, "동래 울산 그 사이에 천년 묵은 고목에 잎이 피고, 동래 울산 그 사이에 만년 된 고목에 꽃이 피느니라."
제자가 여쭈기를, "시속에 경상도 대야 노래가 있으니 무슨 뜻입니까?"
말씀하시기를, "경상도에 세상을 고칠 큰 그릇(용광로, 대장장이?)이 나오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형렬아. 뒤에 오는 사람이 상등 손님이 되노라."
말씀하시기를, "남원 무당이 큰 굿을 하면 천하의 군대가 모두 쓰러지리라."
제자가 여쭈기를, "세상에 영판 좋다는 말이 있어 자주 흥을 돋우사 가르치시니 어째서입니까?"
말씀하시기를, "영남판이니라."
탄허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동남해안쪽 100리의 땅이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토는 서부 해안쪽으로 약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해서 늘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파멸의 시기에 우리나라는 가장 적은 피해를 입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한반도가 지구의 주축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역시 동래와 울산이 지진으로 엄청 시련을 겪는 것은 공통적이다. 일본이 가라앉는다는 예언은 동일본 대지진의 스나미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아마도 탄허스님이 일본이 가라앉는 장면을 보았다면 그것이 아닐까 싶다. 또 서해에 땅이 두 배나 떠오른다는 것은 영종도 공항이나 각종 간척지의 모습을 내다본 것은 아닐까? 아니라면 정말 지각의 대요동칠 것이다. 장구한 세월이 아니라 짧은 시일에 일어난다면 우리가 입을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은 지역민들에 내려오는 전설이다. 원효봉의 작은 봉우리는 애기봉이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물난리가 나서 봉우리 바위 끝이 애기만큼만 남아서 애기봉이라고 한다. 그런데 바로 이웃 정족산 봉우리의 원래 이름은 솔밭산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정족산 바위들이 소나무들처럼 서서 그렇다고 하기도 하지만, 역시 물난리로 다 가라앉고 정상의 솔밭만 찰랑찰랑 남아서 솔밭산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이상하리 만큼 두 봉우리의 유래담이 비슷하다.
아무튼 나는 이들의 예언을 모든 예언이 그렇듯 100%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각자의 시각에서 본 진실성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동일본 대지진의 스나미를 보고 일본이 가라앉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또한 영종도 등의 벌판이 서해에 생기는 모습을 보고 서해가 떠오른다고 보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도 약간이나마 명상을 할 때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다보면 업과 인연에 따라 이런저런 현상을 겪게 되는데, 황당한 것일 수도 있고 무척 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언이 빗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의미를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경우가 많고, 또 예언 자체에도 원망이 투영되거나, 주관의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성경에 요한묵시록이 있는 것처럼 남사고와 강증산, 탄허스님의 예언은 한국 선교계통의 묵시문학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아무튼 남사고, 강증산, 탄허스님의 예언이 공통되는 점이 있다면 설사 그것이 맞지 않더라도 소홀히 듣지 말고, 그것을 통해 연상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는 것은 미연에 방지하면 된다. 예를 들어 당장 영남의 모든 지역에서 강도 8의 지진을 대비할 수 있도록 모든 시설을 점검하고 특히 원전에 대해서는 당장 폐쇄하지는 못해도 신고리 5,6호기 따위는 짓지 말고, 기존의 것들을 엄격히 점검해 위험도가 높은 것은 차차 폐쇄해 나가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원자력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정부와 한수원이 결코 국민의 뜻대로 가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불안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방법은 없다. 우리가 지겹게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아니면 동래울산 100리 지경을 떠날 수밖에 없다.
마고할머니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이제 내 옆에는 사람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다.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과학을 떠나 미신의 담론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상상과 직관의 모험을 하는 시인 정도로 치부해도 상관없다. 지금 내 관심은 이 땅 특히 천성산에 살았던 사람들의 사유구조고 담론체계다. 내가 생각하는 생태적 사유는 서양의 생태학이 성취한 업적도 긍정하지만 각 민족과 지역별로 고유한 소위 토착적 사유와 담론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은 선도(仙道)에 관해서다. 증산의 동래울산 사이 천년고목에 잎이 돋고, 만년고목에 꽃이 핀다는 말을 들을 때 나는 천성산을 생각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이 지역에서는 거의 천성산 밖에 모른다. 금정산이나 간절곶 등은 내가 잘 모른다. 그런데 천성산의 전설은 남다른 점이 있다. 왜 하필 이곳에서 천명의 성인이 나올까? 전설을 그냥 전설로 흘려듣지 않고 나 같이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엄한 데로 가는 법이다.
천성산엔 동굴이 많다. 사람들은 모두 원효가 수행하던 동굴이라고 한다.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수행자들이 거쳐간 동굴들이 많다. 그런데 천성산은 할머니산신이 있는 곳이다. 산막동은 특히나 요석공주와 원효가 만났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인데, 여근 바위가 있다. 『삼국유사』에 선덕여왕이 여근곡에 백제군이 숨은 것을 알고 무찌르게 했다는 이야기기 있는 것처럼. 남녀의 성기 모양을 닮은 골짜기와 바위 등은 고래로부터 다산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이쯤 되면 천성산의 동굴에서 자궁을 연상하는 것은 전혀 허황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천성산과 붙은 정족산이 있다. 원래는 정족산 골짜기에 있는 대둔사가 천성산의 중심사찰이고, 원효스님이 천성산에 들어와 최초로 세운 절이 바로 대둔사라고 한다. 하지만 조선 후기 전소되어 노전만이 노전암으로 불리며 남아 있다. 그런데 정족산에는 두 곳의 적석총이 있다. 하나는 동쪽 웅상에 면한 곳이고, 다른 하나는 대둔사 안쪽 골짜기다. 처음 대둔사 안쪽 골짜기의 계단논을 보며 나는 조선후기에 개간된 것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중간부분의 적석총을 만나는 순간 이 곳의 터를 2000년 넘게 소급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1700~1800년은 되었을 것이다. 노전 스님에게 전해들은 전설에는 마고할미가 치마로 돌을 싸들고 가다가 떨어뜨려서 그런 돌무지들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적석총은 이 지역에 흔한 적석총이다. 경남에 와 내가 경이롭게 느낀 것은 너무나 협소해 사람이 제대로 살까 싶은 골짜기에 고인돌의 부족장급을 능가하는 부여계의 적석총이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같이 강성해진 곳은 어마어마한 피라미드로 축조되었지만 신라에 병합된 이 지역은 남하한 적석총 문화의 잔류세력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원효가 들어와 대둔사를 세운 곳은 이미 적석총을 세운 이들에 의해 터가 닦였지만 비어진 곳이고, 그곳을 천성산 마고신령이 원효에게 알려줬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금의 오봉산 쪽에 마고산성이 있는 것 등을 떠올리면 마고할머니의 이야기가 천성산을 중심으로 풍부하게 전해지는 셈이다.
마고 혹은 노고는 할미를 한자로 적으면서 옮겨진 이름일 것이다. 할머니는 ‘한+어미’이다. 재미난 것은 어미가 자기 배로 난 자식들을 돌본다면 할머니는 자기 배로 낳지 않은 자손들을 모두 돌본다는 점이 다르다. 그렇다 할머니는 한어머니이다. 각기 다른 모두가 같은 하나의 어머니. 우리의 마고 신앙은 한어미 신앙이다.
이쯤 『부도지』의 마고성과 복본(復本) 이야기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선도의 맥을 단군할아버지에게서 잡느냐 아니면 마고할머니에게서 잡느냐의 차이가 있다. 물론 저 중앙아시아로부터 시작하는 마고할머니가 요하문명의 단군할아버지보다 근원적이고 오래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술의 맛을 알고 오미(욕망)를 추구하게 된 인류가 전쟁을 하고 벌로 할머니의 성인 마고성을 떠나게 되었을 때, 동서남북 흩어지는 인류는 마고로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 각기 다른 모두가 한어미에게서 났다는 한어미 신앙이다.
열흘 전 내원사 교무스님으로부터 지율스님이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정상에 천제단을 쌓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나는 그것이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천성산의 산신이 남신으로 둔갑한 상황에서 전설과 유적 등의 증거로도 마고의 복위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자들의 신으로서 지금은 쫓겨났지만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할머니를 되찾고, 할머니에게로 돌아가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천성산을 둘러싼 원전과 공단 등 불의 문명에게 물을 베푸는 어머니 산이 아닌가?
설사 이것이 합리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문화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그리고 생태적으로 의미 있고 이유 있는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귀할멈을 이제 할머니라 부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