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기행 Ⅴ
김영희 (시인)
|
11월 19일. 금
서울의 소식이며 일체의 매스컴으로부터 떠난 지도 오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고, 마음에서 멀어지면 그의 존재 또한 점점 잊히고 마는 것. ‘궁금하다’는 생각도 처음 며칠이지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 마저도 점점 흐려지고 나날이 그냥 흘러갈 뿐이다.
사람의 일도 그렇던가.
‘안 보면 멀어진다’, ‘안 본 정은 안 생긴다’는 말도 이런 것을 두고 한 것이리라.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어느 누군가로부터의 기억에서 멀어졌듯이, 지금의 나도 한 때의 누군가를 아득히 잊고 지내 왔을 것이다. 그러면서,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곰곰 생각을 가다듬어 보니 오늘로써 열 이레 째 되는 날이다. 예정된 여행일의 절반이라는 시간으로 다가서고 있다. 애써 날짜나 요일을 챙겨야 할 일도 없으니 시간에 대한 개념은 잘 와 닿지 않는다. 막연한 뭔가에 붙잡혀있던 것만 같던 지난날의 내 생활들, 이제 시간 저 멀리서 아른거린다.
나는 가끔 누군가에게 말한다.
‘혼자서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있는가?’라고.
둘이 있어 편하고 듬직할 때도 있지만, 혼자가 되어 온 몸으로 끌어안는 쓸쓸함도 때로는 큰 의미가 되어준다. 물론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살면서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다 장점만을 갖춘 것도 없거니와 다 단점만을 갖춘 것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떤 물건을 살 때도 그렇다. 그 제품에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정작 나에게는 그 많은 기능들이 필요치 않을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필요한 그 한 부분을 위하여 우리는 기꺼이 그 제품을 선택할 때도 있다. 하물며 CD 하나를 사도 그렇다. 좋아하는 곡, 오직 그 하나를 위해 기꺼이 전체를 선택하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필요한 부분은 취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취하지 않으면 된다. 어찌 보면 참으로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그렇지가 못하다.
좋은 인연은 두고두고 서로에게 행복감을 안겨다 주지만, 잘못된 인연은 평생을 두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렇듯이, 긴 여행에서 서로에게 좋은 동행이 되어준다는 것은 그지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서로에게 무거운 짐이 되기 십상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내 맘대로, 필요한 부분만큼 취사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기꺼이 ‘혼자’라는 방식을 택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난 여행(3개월)에서도 나는 그것을 절실히 느껴 본 적이 있었다.
경전에 나오는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미워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자주 만나지 못해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자주 만나서 괴롭다’
그냥 묵묵히 가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의 한 생도 그 속에 흘러가고 말 것이다.
11월 20일. 토
스리랑카 사원에서 부처님 사리친견법회가 있다하여 다시 사르나트로 가다. 이 법회를 두고 몇 번의 생각을 거듭한 결과, 결국은 캘커타 행을 포기하기로 하다. 물론 갈 수는 있겠지만 내가 생각한 만큼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것 같아 내린 결정이다. 이곳에서 그곳까지는 열차로 15시간 30분, 그야말로 대장정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시간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서 며칠만이라도 봉사활동을 하며, 인도에서도 가장 인도답다는 그 도시를 온 몸으로 느끼고 싶었는데….
캘커타는 인구 천2백만 명이 넘는 인도 최대의 도시, 동인도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에서도 가장 많은 빈민들이 사는 도시, 테레사 수녀가 죽어 가는 사람들을 돌보며 평생을 바친 곳이다. 이곳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며, 여행객들도 누구나 자원봉사를 할 수가 있다.
가고 오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리는 그곳 캘커타. 이번에도 결국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는 땅으로 남게 되었다. 언젠가 그 인연 무르익을 날을 기다리면서 나는 또 아쉬움을 접을 수 밖에.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사리친견 법회. 스리랑카 대통령도 직접 동참하는 국가적인 행사다. 이 법회를 끝으로 나의 다음 행로는 아그라(Agra)다.
가장 낮은 자세로, 갖가지의 염원을 담아 합장하는 저 순박한 사람들. 적어도 저들에겐 가장 순백의 시간일 것이다. 거기에는 경쟁과 대립, 미움과 시기도 없다. 지상에서 가장 천진무구한 나라 스리랑카. 선량한 눈매로 합장을 하고 있는 저들의 기도, 그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오늘의 내 기도도 저들처럼 내내 푸른 향기로 남기를 바래본다.
태국 사원에서 마련한 공양(점심)이 있다 하여 초대된 인사들 틈에 끼기로 하다. 식탁 가득 올려놓은 음식들의 갖가지 모양이 시선을 끈다. 현란한 빛깔이며 독특한 장식들의 음식들이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았으나, 먹어보니 그들만의 독특한 맛과 향들이 느껴진다. 뜻하지 않은 기회를 만났음에 감사한다.
여행에서는 뭐든 잘 먹는 것이야말로 끝까지 살아남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특히 긴 날의 해외여행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가끔씩은 몸에게도 최대한 호사(?)를 베풀어야 긴 날을 견딜 수가 있다. 너무 거친 음식이나 불편한 잠자리로 계속 이어지다 보면 빨리 지치게 된다.
체중이 늘어났음을 느낌으로 알겠다. 몸이 찌푸둥 하니 괜히 짜증스럽다. 불규칙한 생활이다 보니 평소의 리듬이 깨졌다. 거기다 어딜 가든 그 지방 특유의 음식을 잘 챙겨(?) 먹은 탓 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음식 또한 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회이지 않던가!
저녁은 탄두리 치킨으로 해결을 하다. 평상시는 거의 먹지 않는 닭튀김이지만 독특한 양념 탓인지 맛있게 먹었다.
내일 아침이면 나는 이곳을 떠나 바라나시로, 그리고는 아그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것이다.
11월 21일. 일
아그라(Agra)는 그 유명한 타지마할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델리에서 야무나강을 따라 2백 킬로 정도 내려온 곳에 위치,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지방 도시다. 16세기 중엽 이곳으로 수도를 정해 1세기가 채 안 되는 동안이지만 융성한 제국의 중심으로 번영을 누리기도 했었다.
1638년 샤 자한이 수도를 델리로 옮겨갔지만, 현재 아그라에 남아있는 것은 타지마할을 비롯해 장대한 모든 것들이 이 무굴 시대에 세워진 것들이다. 이곳은 인도에서도 이슬람 문화의 향기가 가장 짙게 배어있는 고도古都다.
지난 번 여행 때 남겨두고 간 곳이라 이번에는 꼭 가리라 계획을 했었다. 마침 현지의 비구니스님이 동행을 해주겠다고 한다. 물론 나에 대한 배려도 있지만, 다시 한 번 타지마할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계획의 일부가 변경되는 바람에 열차의 예약을 놓쳤다. 생각지도 않던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하다. 바라나시에서 12시간 걸려 가야할 거리를 비행기로는 두 시간 남짓이다.
태국 사원에서의 화려(?)한 공양 탓인지 내내 속이 그득함을 느낀다.
그랬지. ‘넘침은 모자라는 것 보다 못하다’고. 그러나 하고 나서 꼭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 과식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먹는 그 순간만큼은 잊고 마는 이 미련, 이 우둔함!
카주라호에서는 타고 내리는 승객들로 인하여 40여 분을 머문다. 국내선이지만 전부 외국인들뿐이다. 어찌 보면 외국 관광객들을 위해 개설된 항로 같다.
공항에 내려 외국인 안내소를 찾아 들었다. 여기서 연결해주는 택시를 이용해 숙소를 물색하기로 하다. 보기 드물게도 운전사가 매우 친절하다. 일요일에다 예약을 하지 않은 탓이라 숙소 구하기가 만만찮다. 두어 시간을 헤맸지만 빈방이 없단다.
그 유명한 타지마할 하나가 인도라는 한 나라를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러나 가장 매연이 많은 도시, 가장 치안이 불안한 도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도시 또한 이곳이다.
교육·비지니스의 중심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하루에도 수십 건씩의 갖가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도시, 모든 관광객들은 스스로 알아서 행동해야 한다. 팽팽한 긴장감을 잃지 않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늘 뿌연 매연으로 뒤덮인 도시처럼, 그야말로 모든 게 오리무중이다.
겨우 한 호텔을 얻어 짐을 내려놓으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흔히 말하는 별 세 개인 호텔이다. 더운물이 잘 나온다고 하더니 수도꼭지에서는 계속 찬물만 줄줄 흐른다. 더 이상 말을 해봤자 들어주지도 않을 것 같아 일찌감치 생각을 접기로 하다.
여기서는 가급적 모든 걸 빨리 체념하는 방식을 택하면 마음이 오히려 편하다. 자주 이런 일에 시달리다 보면, 일찌감치 기대치를 거두는 게 훨씬 에너지 소모가 적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단순 명료한 판단은 이곳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곳곳에서 이런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모든 건 아날로그 방식이다. 은행을 가거나 열차표를 예매하러 가도 그렇다. 고객 입장이 아니라 모든 건 자기 방식대로 움직인다. 사람 앞에 세워놓고 자기 할 일 다 한다. ‘잠깐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우거나 옆 사람과 잡담을 한다. 그러면서도 미안하다거나 미안해하는 기색도 전혀 없다.
어찌 보면 우리는 그간 너무 빠른 속도감 속에서만 살아왔다. 더러는 느림의 미학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행정을 하는 관서나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일하는 곳에서의 한없는 느림은 더 이상의 미학이 아니라 업무태만이다. 불편과 짜증만을 가중시킨다.
11월 22일. 월
아직도 지난밤을 생각하면 오싹 소름이 돋는다.
자다가 도마뱀의 습격(?)을 받았다. 얼굴에 뭔가 스믈거리는 느낌이 있다 싶더니 물컹한 게 손에 잡혔다. 온 방안을 종횡무진 하던 녀석이 결국 내 얼굴까지 침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불을 켜고 보니 녀석은 벽에 납짝 들러붙어 있다.
이곳에서는 너무나 자주 만날 수 있는 도마뱀. 특별히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파리나 모기, 곤충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집집마다 사람과 같이 생활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여간 당혹스런 것이 아닐 수 없다.
언제 또 기습적으로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뒤척이다만 밤이다 .
아그라의 3대 관광지는 타지마할, 아그라성, 페테부르 시크리성이다. 마침 세 군데를 묶어 놓은 상품이 있어 이것을 이용하기로 하다. 그런데 버스투어를 하면 또 하루를 이곳에 묵어야 하므로, 아그라 1일 관광의 택시(650루피) 대절을 하기로 하다. 물론 타지마할 표 하나로 세 군데의 입장이 가능하다고 표기되어 있다.
이 성들은 당시 왕들이 머물던 곳으로, 우리로 치자면 궁宮에 해당된다. 그런데 정작 예기치 않던 문제에 부닥쳤다. 또 마음이 상한다. 아뿔싸! 그걸 믿었던 우리가 잘못이었단 말인가!
입장료 20달러, 타지마할에 대한 외국인의 입장료다. 그런데 내국인은 10루피.
2만4천원과 3백원이라는 계산이다. 어안이 벙벙하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10달러였는데 순식간에 외국인에게만 100%를 인상한 저의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외국인은 훌륭한 먹이감을 물고 오는 충직한 사냥개 같은 존재로만 보이는 것일까? 은근히 화가 나고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중국과 마찬가지로 외국인과 내국인과는 모든 게 차등적으로 적용되는 나라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일은 정작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다시 10달러의 입장료를 요구한다. 표를 보이며 따져봐도 딴청만 피운다. 무조건 10달러를 달란다. 더 가관인 것은 ‘10달러가 없으면 입장 불가’라는 그들 특유의 능청에 또 굴복을 하고 만 것이다. 사기를 당하고 뺨까지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렇다면 오직 타지마할, 그 하나를 위하여 어마어마한 비행기 삯(편도에 우리 돈 25만원(2인)가량)을 지불했단 말인가? 거기에다 두 사람의 입장료까지 계산한다면―심한 자책감이 들었다.
가난이 마치 유세인양 행세(?)하는 저 무책임한 관리들의 발언―선진국이 되기에는 너무 까마득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든 공무원이 부정하고 부패한 나라는 결코 일등 국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입장료를 지불하는 수밖에.
아그라는 인도에서도 가장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다. 물가는 부르는 게 값이고 치안은 무법천지나 다름없다. 그래서 스님과의 동행도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모든 현상은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찾아드는 관광객들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스님과의 의견일치.
힌디어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스님은 어딜 가나 거리낌이 없다. 조금도 그들에게 빈 틈을 보이지 않는다. 저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당당함이 나오는 걸까? 내심 부럽기만 하다.
‘저들에게 고분고분 인간적으로 대하면 오히려 당하게 된다. 그러니 때로는 심한 말도 해야만 한다’는 스님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처음에는 그런 스님의 모습이 익숙치 않았다.
무굴 황제 샤 자한의 사랑하는 아내 아르주만드 바스베가무 왕비가 죽은 것은 1631년, 죽음을 슬퍼한 왕은 생전에 그녀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자 이 건축물을 지어 바쳤다고 한다. 타지마할, ‘마할’은 인도말로 ‘무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곳은 왕비의 무덤인 것이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돔 형식의 거대한 돌무덤, 기단부의 크기는 사방 95m, 본체는 사방 57m, 높이 67m다. 그러나 이 무덤이 오늘날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인간이 지상에 남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화려한 문양이며 섬세한 조각 하나 하나는 인간의 손길이 아니라, 필시 신의 손길로 다듬었으리라 싶다. 세계 곳곳의 조각 장인들을 모집하고, 세계 각지의 귀한 돌들을 수집하여 1653년 완성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22년 세월에 걸쳐 지었다니,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국가의 재정에 대해서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의 집착(?)으로 국민들의 목숨을 저당잡고, 국고를 탕진하면서 행한 왕권의 폐해. 그러나 지금은 세계적 관광명소가 되어 11억이 넘는 인도를 먹여 살리는 경제의 축이 되고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우리네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왕권으로 행해진 일이지만 말이다.
그들의 피땀으로 얼룩진 이곳에 수많은 발길들만이 이제는 그 세월의 뒤안길을 더듬고 있을 뿐…. 뒤를 감돌아 흐르는 야무나강, 그 강만이 오직 역사를 굽어보고 있으리라.
유난히 키 큰 갈대들이 강변을 수놓고 있다. 마치 거대한 나무숲 같다. 멀리서 보면 유유히 흐르는 것 같은 저 강물도 실은 구정물천지다. 그 강변을 따라 허연 머리를 풀고 나부끼는 갈대들이 오늘 유난히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한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든다.
‘전생의 나는 누구였을까?’
‘그러면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지금 이 강을 굽어보고 있는 나는 무슨 인연 있어 이곳까지 흘러왔을까?’
‘저 강물이 흘러 흘러 멈추는 곳은 그 어디쯤일까?’
‘그럼 또 나의 흐름은 어디까지인가?’….
끝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강을 굽어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옆의 아기가 아까부터 자꾸 내 카메라 줄을 잡아당긴다. 겨우 걸음마를 떼는 아기는 그 아버지의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서로의 눈매나 생김새가 ‘닮았다’는 것, 나에게는 늘 풀리지 않는 신비함 그 자체다. 흔히 말하는 유전자니 어쩌니, 아무리 과학을 들이대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저 우주의 신비로만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자꾸 보채는 아기를 덥석 안았다. 그리고는 아기 아빠에게 내 사진을 부탁해 본다. 빨려들 것만 같은 새까만 눈동자가 가슴에 담긴다.
다시 40여 키로 떨어진 페테푸르 시크리성으로 향하다. 1574년 수도를 이곳으로 옮긴 악바르 대제는 이 성에서 불과 14년을 머물다 결국은 물이 부족해 떠나갔다고 한다. 수십만 평의 규모에 온통 붉은 화강암만으로 지어진 거대한 성. 겨우 14년을 살았으니 사용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역시 여기서도 그들만의 섬세한 조각들은 사람의 발길과 눈길을 멈추게 한다. 갖가지 문양들로 새겨진 화강암의 붉은 침묵, 파란 하늘빛과 어우러져 나그네의 마음을 숙연케 한다.
넓은 땅덩이라서 그런가. 성이나 건축물의 규모는 어딜 가나 어마어마하다. 그러면서도 거기에 새겨진 문양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섬세하다. 기둥이나 문, 하물며 작은 문고리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다. 전부 문양을 새겨 넣었다. 그 당시 장인들은 돌을 마치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다루었나 보다.
수백 년 세월의 흐름도 마치 찰나인 것처럼, 거의 훼손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