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종교(宗敎)의 기원(起源)
3. 세계 3대 종교
로마 교황청 / 이슬람 모스크 / 미얀마 불교사원
오랜 옛날부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던 다양(多樣)한 인종(人種)의 인간들은 각각 다양한 신(神)들을 신봉(信奉)하였는데 신봉한 신(神)들 또한 수도 없이 많고 복잡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能力)에 한계(限界)를 느낀 우리 인간(人間)들의 본성(本性)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종교(宗敎)의 기원이라고 하겠는데 언제부터인가 세계 3대종교로 그리스도교(Christ敎), 불교(佛敎), 이슬람교(Islam敎)를 꼽았는데 각 종교들에 관하여 간략히 설명해 본다.
예수(그리스도교) / 마호메트(이슬람교) / 부처(불교) / 시바(힌두교) / 종교 분포
<1> 그리스도교(Christ敎:基督敎)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과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Jesus Christ)를 신봉하는 종교인데 매우 복잡하여 상당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간략히 그 내용을 요약(要約)해 본다.
우선, 예수가 탄생하기 전, 하느님을 신봉하던 종교가 중동지역 이스라엘의 유대교(猶太敎:Judaism)이다.
유대교(Judaism)는 구약성경(舊約聖經)의 첫 다섯 편인 ①창세기(創世記) ②출애굽기(Exodus) ③레위기(Leviticus) ④민수기(Numbers), ⑤신명기(Deuteronomy)를 묶어 토라(Tora)라 하고, 모세(Moses)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묶은 탈무드(Talmud)를 신봉하는 종교인데 기독교에서 신봉하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는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앞장선 이들이 바로 유대인이다.
예수가 태어나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유대교(Judaism)에 맞서 일어난 종교가 그리스도교인데 그리스도의 교리는 예수가 태어나기 전의 기록인 구약성서(舊約聖書)와 예수가 태어난 이후의 행적, 그리고 예수의 사망 후 제자들(12사도)의 신앙과 행적(行蹟)들을 기록한 것이 신약성서(新約聖書)인데 함께 신봉한다.
구약성서는 총 21편, 신약성서는 총 27편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그리스도교(基督敎)에서는 신구약(新舊約)을 모두 성경(聖經)으로 신봉하는 종교이다. 서기(西紀)는 예수가 태어난 해가 기준(西紀 1년)이다.
◆ 그리스도교(基督敎:Christ)의 수난
그리스도교는 초기(4세기)부터 성경(聖經)은 동일하지만 그리스(Greece)를 경계로 서쪽(유럽)과 동쪽(중동지방)이 떨어져 있고 언어도 다르다보니 교리 해석 등에 약간의 차이를 보리며 갈라지게 된다.
유럽 쪽을 가톨릭(Catholic), 동쪽지방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Eastern Orthodoxy), 또 훨씬 후 갈라져 나오는 개신교(改新敎:Protestant)로 크게 나누어진다.
현재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를 신봉하는 지역은 터키(Türkiye)를 비롯하여 중동지방 및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등지인데 생각보다 지역이 굉장히 광범위하며 신도수도 2억 5천만 정도나 된다고 한다.
로마교황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언제부터인가 교황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고 내부의 부패(腐敗)는 물론, 전 세계를 휘두르며 온갖 횡포를 부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일부 신자들은 참지를 못하고 반기를 들며 개혁을 부르짖은 것이 종교개혁(宗敎改革), 즉 개신교의 탄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사건으로, 11세기 들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Heinrich IV)는 로마교황청의 권위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자 교황 그레고리오 7세(Gregorio VII)는 교황의 명에 순종하라는 서한을 보내지만 정면으로 항의하고 오히려 교황을 폐위시키는 결의안을 국회(國會)에 제출하여 통과시키자 교황 또한 즉각 하인리히 4세를 파문(破門)한다.
교황과 황제의 충돌을 지켜보던 신성로마제국의 모든 제후들은 교황(敎皇)을 지지하고 황제(皇帝)에 등을 돌리자 당황한 하인리히 4세는 교황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그러나 교황(Gregorio VII)이 받아들이지 않자 ‘카노사의 굴욕(屈辱)<Humiliation at Canossa>’이라는....
◆ 카노사(Canossa)의 굴욕
1077년, 교황이 주최한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회의에서 결국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Heinrich IV)를 추방하기로 결의하자 하인리히는 교황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발표하지만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왕비와 왕자,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몇몇 신하들을 데리고 추운 겨울, 라인강을 건너고 알프스 산을 넘어서 교황에 용서를 빌러 직접 간다. 마침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Canossa)성에 머무르고 있던 교황은 절대로 만나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황제는 카노사의 성문 앞에서 모자도 없이 맨발에 얇은 겉옷만 걸친 채 3일 동안을 꼬박 눈 속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이를 불쌍히 여긴 교황은 마침내 접견을 허락하고 모든 것은 교황의 허락을 받는다는 조건을 수락 받은 후 파문(破門)을 취소했다는..... 웃지 못 할 희극이다.
◆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충돌 - 십자군 전쟁(Crusades)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예수의 탄생지와 성묘(聖廟)가 있는 예루살렘을 두고 분쟁이 벌어지는데 예루살렘의 위치가 중동지방, 즉 이슬람의 중심지인 메디나와 메카에서 멀지않다보니 이 지역의 소유권을 이슬람 세력이 주장하면서 벌어진 분쟁이다.
이것을 참지 못한 유럽의 그리스도교(중심지 로마교황청)는 예루살렘 탈환 등의 목표를 내세우며 군사를 조직하여 10여 차례의 원정을 하는 것이 십자군(十字軍) 전쟁(Crusades)인데 수많은 인명피해는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약탈행위에 고대 유물유적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 전쟁이 근 300여 년 간에 걸쳐 되풀이 되었고(1095년~1456년) 어찌 보면 이 시기를 암흑의 시대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 중 제4차 십자군 전쟁(1202년~1204년)은 중동지방 이슬람을 치러 간다고 조직된 십자군이 갑자기 가톨릭(舊敎)의 중심인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을 저질렀는데 전쟁을 주도한(십자군을 조직한) 베네치아 공화국 국왕의 비열한 욕구로 빚어진 사건으로, 결국 계획대로 되어 베네치아 공화국이 엄청난 부를 쌓게 되었다고 한다.
◆ 개신교(改新敎)의 등장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인 로마교황청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 듯 오르고 권력과 부(富)의 쟁취, 가톨릭 성직자들의 타락(墮落) 등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보다 못한 개혁파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서는데 바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칼뱅(Calvin)이었다.
이 시기, 영국에서 로마교황청에 반기를 들고 헨리 8세가 세운 것이 성공회(聖公會)이고 곧이어 청교도(淸敎徒:Puritan) 혁명이 큰 전환점이 되었는데 가톨릭을 앞세워 정권을 휘두르던 영국국왕 찰스1세(Charles I)는 개혁파(改革派)들에 의해 사형에 처해지며 종교개혁의 중심은 영국이 된다.
17세기 초 신구교(新舊敎:가톨릭과 성공회)의 갈등에 염증을 느낀 기독교인들은 오월의 꽃(May Flower)이라는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대륙에 그리스도교(기독교)를 전파하게 된다.
이후 개신교도 또다시 교리해석을 놓고 다양한 교파로 갈려 독립하는데 장로교(長老敎), 감리교(監理敎), 침례교(浸禮敎), 제7일 안식일교(安息日敎) 등 30여 교파(敎派)가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