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거슈윈은 1898년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살 무렵 친구가 바이올린을 켜는 것을 보고 음악의 매력을 알게 된 그는 12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2년 동안 여러 선생을 전전하다 마침내 베토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피아니스트 찰스 함비처를 만나 그 밑에서 본격적으로 서양 클래식 레퍼토리를 익혔다. 그렇게 함비처 밑에서 서양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지만, 집에 있을 때 거슈윈이 즐겨 연주하던 음악은 평소에 즐겨 듣던 미국 대중음악이었다.
15살 때 거슈윈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음악 출판사에 취직해 손님들에게 악보에 실려 있는 곡을 피아노로 들려주는 일을 했다. 그 후 극장 소속 피아니스트로 일하다가 21살 때 〈스와니(Swanee)〉라는 유행가를 작곡했는데, 이것이 크게 히트를 치면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되었다. 당시 이 노래의 악보는 100만 부 이상 팔렸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거슈윈은 그저 '돈 잘 버는' 대중음악 작곡가에 불과했다. 이런 그가 클래식 음악계를 포함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24년에 발표한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재즈 음악의 거장 화이트맨의 위촉으로 작곡되었다. 그는 거슈윈에게 자신의 악단을 위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심포닉 재즈를 작곡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작곡한 곡이 바로 〈랩소디 인 블루〉이다. 하지만 거슈윈은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오케스트레이션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이 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은 〈그랜드 캐년 모음곡〉의 작곡가인 그로페가 했다.
1924년,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한 음악계의 거장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초연된 〈랩소디 인 블루〉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연주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재즈와 클래식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이 곡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관중들은 이제야 미국인도 미국적인 음악을 갖게 되었다고 열광했다. 재즈를 귀부인으로 격상시켰다는 평을 들은 〈랩소디 인 블루〉는 그때까지 일개 유행가 작곡가에 불과했던 거슈윈을 미국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부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