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산 연미사(領南山燕尾寺) /전통사찰
- 경북 안동시 이천동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제자 중 한 명인 명덕이 바위에 불상을 새겨 모시고 연구사(燕口寺)라고 한 것이 시초이다.
불상을 덮은 지붕이 제비와 비슷하여 연자루(燕子樓)라 하였고,
승려가 거주하는 요사가 제비꼬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미사(燕尾寺), 법당이 제비부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연구사라 불렀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발췌)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마애석불을 조각할 때 이름난 석공에게 의뢰하였는데, 그보다는 제자가 더욱 조각의 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샘이 난 스승은 제자가 절벽에 사닥다리를 딛고 올라가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사닥다리를 치워버렸다.
제자인 명공(名工)은 한 마리 제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이곳 이름이 연미원, 즉 제비원이 되었다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李如松)과 조선 재상인 유성룡(柳成龍)이 말을 타고 이 앞을 지나가다가
말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마애불에게 예불을 올린 뒤에 지나갔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취, 조금 고침)
634년 처음 세워졌다고 전하며, 오랫동안 폐사로 있다가 1918년부터 다시 세우기 시작, 1950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중건.
(연미사 마애여래입상 안내문에서 가져옴)
이 불상은 오랜 전부터 보아왔다. 지나치면서 보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지날 때마다 봤다.
안동과 영주 간 4차선 국도가 새로 생기기 전에는 늘 이 길로 다녔다. 제비원은 나에게 친국한 곳이다.
대한민국구석구석이 설명한 연미사에 대한 출처가 무엇인지 말 수 없다.
연미사는 정확한 기록이나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절 모습을 보면 근래 지은 것으로 보여진다.
솔씨공원 야경, 솔씨공원이라고 이렇게 만든 것도 몇 해 전이다.
이천동 마애 여래입상 /보물
암벽에 몸통은 선각(線刻), 머리는 따로 만들어 올렸다. 이런 형식은 고려전기에 유행하였다고 한다. 11세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
전체 높이 12.4m, 머리 높이 2.4m로 머리는 많이 파손되었지만 앞 모습은 다행히 잘 보존되었다.
산령각
산령각과 대웅전 사이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삼층석탑, 여럿이 함께 가면 위험하다.
뒷모습은 삼층석탑에서 봤다.
이천동 삼층석탑 /경북 유형문화재
높이 3.5m, 고려 때 만든 것으로 여긴다. 마애불 뒤에 흩어져 있던 재료를 모아 복원한 것이다.
몸돌과 지붕돌이 한 돌로 만들어졌고, 전체 비례가 맞지 않는다. 본래 모습에 완벽한 형태가 아니다.
태화산 서악사(太華山西岳寺) /전통사찰
- 경북 안동시 태화동
석양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 ‘서악사루전일락(西岳寺樓前日落)’이라 하여 안동팔경 중의 하나로도 속해 있다.
옛날 안동강에 물이 많을 땐 태화산 아래까지 찼다고 하며, 안동강 갈대밭에 짙게 깔리는 운무(雲霧), 그 운치가 대단했다고 한다. 서악사는 안동 본부(本府)의 사악(四嶽) 중의 하나로 지덕(地德)을 돕기 위한 비보사찰(裨補寺刹)이다.
본부(本府)의 사악(四嶽)은 동(東)은 동악이라 하며 절이 있고, 남(南)은 남산인데 순천사가 있으며, 서(西)는 서악이며 절이 있다. 북(北)은 금학산인데 수정사라는 절이 있다. 본부(本府)의 호장(戶長)이 매년 계절마다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이 있다.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따라 세운 절을 흔히 비보사찰(裨補寺刹)이라 한다.
이는 신라말, 고려초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주장한 것이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발췌, 아주 조금 고침)
찾아보기 하였더니 대한민국구석구석에 위 내용이 나와 발췌하여 옮겼다.
예천에도 부여에도 동서남북에 비보사찰이 있고, 풍수지리을 들먹인다.
풍수지리와 절, 나는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야기다. 절이 가진 정체성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풍수지리, 정말 신라말 도선국사가 배워서 가지고 왔을까? 고려 때 비보사찰이 많이 생겼을까?
고을 가운데 행정관서가 있으면 당연히 동서남북에 망초를 세워고 방어벽을 쳐야 한다. 이건 풍수지리와 별개다.
본부라고 표현한 것은 지금 안동 시내 웅부공원(동부동)이 있다. 옛날 관청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역사서에서 배운 안동도호부, 안동대도호부 등은 지금 안동과는 관계가 없는 이름이다.
'절 입구 바위에는 ‘연파독역산(蓮坡讀易山)’이라는 글귀가 있다.
조선후기 한성판윤을 지낸 장화식(張華植:1853-1938)이 이곳서 《역경(易經)》을 읽었다는 뜻, 절 뒤편에 장화식의 묘가 있다.'
이런 내용도 있지만 나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마을 입구에서 본 관응묘와 서악사 안내판을 보고 '이건 뭐지?' 하였다.
태화산 서악사는 왼편, 관왕묘는 오른편이다.
극락전
천불전
종무소 겸 공양간
삼성각
관왕묘 /경북 민속문화재
중국 촉나라 관우를 신으로 모신 사당.
임진왜란 때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군사가 전국 여러 곳에 이런 사당을 세웠다.
안동 관왕묘는 선조 31년(1598) 명나라 장수 설호신이 건립. 지금 건물은 1904년 해체, 복원한 것이다.
관우 출생일인 음력 5월 13일과 기일인 10월 21일 제사를 지낸다.
광감루
동재
서재
사당 무안왕묘 입구인 삼문
사당
사당 안, 위패만 있는줄 알았다.
관우와 이를 호위하는 네 장군 모두 석상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관왕묘 가운데 석상으로 모셔진 곳은 안동 관왕묘뿐이다.
무안왕비, 비석엔 임진왜란 때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장수 이름이 적혀 있다.
석수암(石水庵) /전통사찰
- 경북 안동시 안기동
찾아보기를 하였다.
의상대사가 창건하면서 심은 나무가 아직도 대웅전 앞뜰에서 자라고 있다.
도선국사가 창건하면서 심은 나무가 지금 향나무이다.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나왔기에 절 이름을 석수암이라 하였다.
지금과 절이 지어졌을 때는 분위가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이 절은 안동 시내에서 여주 가는 길 옆에 있다. 이 절을 지나면 제비원이고 연미사가 있다.
이 절에 대한 사적은 결국 알 수 없다. 향나무 나이가 400년 정도로 본다면 고려말이나 조선 초에 세운 절이 아닐까 싶다
종무소, 주차 공간이 협소하다. 승용차 4~5대 가량.
대웅전
무량수전
산령각
범종각
석수암 향나무 /경북 기념물
수령 400년, 높이 12m, 밑둥 둘레 4m.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향나무의 한 졸류로 가지가 옆으로 뻗는다.
의상대사 또는 도선대사, 이들이 심은 나무라며 수령이 1,000년이 넘어야 한다. 전설은 전설일뿐이다.
대웅전 안
2023년 5월 19일
연미사..안기동 삼층석탑..평화동 삼층석탑..서악사/관왕묘..운흥동 오층전탑..법흥사지 칠층전탑..석수암..봉림사지 삼층석탑..
서후면 봉정사..개목사..북후면 옥산사..봉서사..석탑사..영봉사.....강원도 영월군 북면 마차리(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