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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쩌?”
샬롬! 어젯밤 좋은 꿈 꾸셨는지요? 6월 14일 수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갑자기 체중이 늘어났다면 점검해볼 11가지’ 그 다섯 번째는 ‘과도한 스트레스’가 그 원인입니다. 전문가에 의하면, ‘스트레스는 비만 원인의 일등 공신’이라고 합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식욕이 솟는 ‘가짜 배고픔’을 느끼는 경우, 그 스트레스를 술이나 간식으로 해소하려는 충동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워쩌?” 할머니가 늘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던 말입니다. 사춘기 딸에게 쩔쩔 매는 저를 보셨다면 ‘워쩌!’라고 했을 겁니다. 제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속상하고 난감해하고 있을 때, 하시던 말씀입니다. 할머니가 ‘워쩌?’라고 말씀하던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에 온기가 퍼집니다.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근본적으로 뼛속까지 무력하셨습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뒷방에서 TV보면서 조촐하게 늙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분은 한 번도 어떤 능력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곤경에 처했다고 해서, 두 팔 걷고 나서서 도와주는 일도 없으셨습니다. 그저 속상한 얼굴로 ‘워쩌?’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그 말씀이 상처 난 마음에 반창고가 되어주었습니다. 마음을 가득 채웠던 속상함이 제가 감당할만하게 작아지면서, 그저 뒷주머니에 쓱 집어넣고 다시 무언가를 해볼 만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워쩌!’가 ‘어떡하니?’라는 공감과 이해의 언어였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이해하고 깨달았습니다.
손녀가 “제발 무슨 말 좀 해보시라”고 아무리 닦달을 해도, 할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포기하고 책의 세계로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그 간단한 말씀 한 마디에는 ‘한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데 필요한 모든 자양분’을 부족함 없이 모두 담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풍성하고 화려한 저의 언어는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데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켰습니다. 저는 ‘언어의 과용(過用)이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할머니처럼만 하자!’ 저는 마음속으로 결심했습니다. ‘언어를 아끼자! 할머니처럼 말하자!’ 제가 할머니의 다섯 단어를 새로이 명심하고 꿀짱아(글쓴이의 딸)에게 할머니처럼 말하기를 실천한 뒤로, 우리의 관계는 천천히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출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작가)
‘워쩌’는 ‘어떻게 하니?’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 충청도사투리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워쩌다가’가 있는데, 이는 ‘어쩌다가’의 사투리입니다.
글쓴이는 ‘할머니가 말씀하신 간단한 이 한 마디’가 ‘그의 상처 난 마음에 반창고가 되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한 마디가 ‘한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데 필요한 모든 자양분을 부족함 없이 모두 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그녀가 ‘사춘기의 딸에게 들려준 풍성하고 화려한 언어는 그의 딸을 키우는데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의 할머니가 ‘워쩌?’하고 간단히 말씀하신 그 말이 그의 상처 난 마음에 반창고가 되어주었으나, 그의 풍성하고 화려한 언어는 그의 딸에게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효용성이라는 측면에 볼 때, 글쓴이는 풍성하고 화려하나 실속이 없는 말을 한 것이고, 할머니의 수식어가 없는 ‘워쩌’ 한 마디는 그야말로 ‘가성비가 좋은 말’이었던 겁니다.(물맷돌)
[말이 많으면 죄를 짓기 쉬우니, 말을 삼가는(조절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이다.(잠10:19,쉬운성경) 내가 주님에 관한 것을 담대하게 말할 때나, 주님의 구원이 이방 사람들에게도 임한다는 것을 설명할 때, 하나님께서 적절한 말씀을 주시도록,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엡6:19,현대어)]
이 세상에 ‘나쁜 감정’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6월 13일 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갑자기 체중이 늘어났다면 점검해볼 11가지’ 그 네 번째는 ‘약물 복용’입니다. 항우울제로 인하여 체중이 늘어나서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전문가에 의하면, ‘항우울제의 간접적인 효과로 식욕이 증가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럴 경우 ‘담당의사와 상의해서 항우울제를 교체하거나 생활습관 교정에 신경 써야 한다.’고 합니다.
언제나 친절하고 착하고, 그리고 그 누구와도 갈등 없이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 성격 정말 좋아! 얼굴 한번 찌푸리는 것을 본 적이 없어!” “천사 같은 사람이야! 남편이랑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대!” 사람들 사이에서 놀라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미움, 분노, 원망, 질투, 시기 등, ‘나쁜 감정이 올라오면, 곧바로 저지하고 억압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나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마음을 가지는 순간, 자기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나쁜 감정’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모든 감정은 정상적입니다. 단지, 그 정도가 지나친 감정이 문제가 될 뿐입니다. 자신에게 ‘친구를 시기하는 마음이 있다’고 느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하는 자괴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시기심이 있다고 해서, 못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기심을 조절하지 못해서 친구에게 피해를 입히는 등의 행동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자신이 친구를 시기하거나 질투하고 있다면, ‘나 역시 유혹에 빠지기 쉬운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기심을 선의의 경쟁으로 승화시켜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뿐더러, 다른 사람의 나쁜 감정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분노가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분노가 생기면,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 누군가를 해치게 될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분노를 계속 억압하면 화병(火病)으로 번져서, 스스로를 갉아먹거나, 엉뚱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분노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내가 화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하게 되고, 그 분노를 적절히 풀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는 것입니다.(출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해남 / 정신분석 전문의)
그렇습니다. 평생 화를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화를 내곤 합니다. 그래서 글쓴이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억제를 계속할 경우, 화병(火病)으로 발전하거나 갑작스러운 분노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좋은 성격을 지니고 사는 것도 결코 나쁘진 않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겁니다. 아무튼, 기분이 나쁠 때, 기분이 나쁘다는 감정표현을 강제로 억누를 필요는 없을 겁니다. 솔직하게 기분 나쁜 이유를 말하고, 서로가 오해를 풀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을 듯싶습니다. 그럴 때, 오히려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물맷돌)
[미련한 자는 자기 분노 때문에 죽고, 어리석은 자는 자기 질투 때문에 죽는 법이다.(욥5:2,표준) 미련한 사람은 쉽게 화를 내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모욕을 참는다.(잠12:16,표준) 여러분이 이 세상에 속해 있을 때(지난날)는 여러분도 그런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분노와 증오와 저주와 더러운 말과 같은 ‘때 묻은 옷’을 벗어버릴 때입니다.(골3:7-8,현대어)]
혹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면?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어저께 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습니까? 6월 12일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갑자기 체중이 늘어났다면 점검해볼 11가지’ 그 세 번째는 ‘수분 부족’입니다. ‘평소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은 수분이 부족해서 갈증이 나는 것도 허기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리고 ‘만성적으로 탈수현상이 일어나면, 먹지 않아도 될 음식을 섭취해서 비만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을 하는 데는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2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에 공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충족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돈 이상으로 소중한 것’들을 얻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직업이 존재하는가 싶겠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바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경하는 직업입니다. 가수, 운동선수, 바둑기사, 화가, 만화가, 작가, 배우 …….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좋아서’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로 돈을 벌기까지 오랜 세월 수련해야 하는 고로, 좋아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듭니다. 돈을 벌 목적이라면 더 쉬운 일도 많을 텐데, 그런 유혹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이란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에 하루의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인생의 ‘본업’이고, 그 일을 하고 난 이후의 나머지 시간을 ‘남는 시간’이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남는 시간’을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데 쓸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저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정도의 쉬운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면, 기술도 늘지 않을뿐더러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일’을 영원히 할 수 없습니다. 바꿔서 말하면,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을 경우, ‘남는 시간’에 기술을 열심히 갈고닦아야 합니다.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은 사람에게는 ‘남는 시간’이야말로 본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남는 시간’을 ‘꿈을 실현하기 위한 시간’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출처; 시간 연금술사, 미야자키 신지 / 집필가)
그렇습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생활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그야말로 그 일에 열정을 바쳤을 때, 그 부수적인 결과로 돈을 취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바람직한 목적의식을 갖고 일하는 경우란 그다지 많지 않나 싶습니다. 그야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별로 원치 않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일에 매달려 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글쓴이는 주장하기를, “지금은 불가피하게 원치 않은 일을 하고 있더라도, 그 일을 하고 난 이후의 나머지 시간에 ‘꿈을 실현하기 위한 시간’으로 바꿔보라!”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게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100세 시대라고 하니, 지금이 바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한번,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물맷돌)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시며, 여러분과 여러분의 조상들이 전에 먹어보지 못한 만나를 주어서 먹게 하신 것은, ‘사람이 밥(빵)만 먹고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신8:3,현대인) 우리는 이 육체를 가지고 여기서 살든지, 육체를 떠나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살든지, 항상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을 우리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고후5:9,현대어+현대인)]
저의 삶은 그런 ‘보너스 행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샬롬! 어젯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6월 10일 토요일 아침입니다. 유월의 두 번째 주말인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갑자기 체중이 늘어났다면 점검해볼 11가지’ 그 두 번째는 ‘건강에 좋다는 식품 과다섭취’입니다. 예컨대, 다이어트 식품으로 알려진 ‘아보카도’도, 열량이 높아서 반 개 이상 꾸준히 먹을 경우, 오히려 체중이 증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뭐든지 과다섭취는 그야말로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언제 행복을 느끼느냐?’고 물으면, 저는 ‘화장실에 갈 때, 음식을 먹을 때, 걸어 다닐 때’라고 답합니다. ‘유치하기 짝이 없고, 동물적인 답변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에게 ‘잊지 못할 그날’은 3년 전 11월 4일, 고교 3학년 때입니다. 수능시험 보기 바로 이틀 전이었습니다.
방과 후에 교실에서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있는데, 수위아저씨가 뛰어오면서 “너희 반 친구 둘이 학교 앞에서 트럭에 치여 병원에 실려 갔다!”고 외치셨습니다. 우리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명수와 병호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응급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머리를 크게 다친 병호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워했습니다. 생명이 위태롭다고 했습니다. 병호는 곧 수술실로 옮겨졌고, 친구들과 저는 거의 기절상태이신 병호 어머님과 함께 수술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정성껏 빌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병호를 꼭 살려주세요. 제가 수능시험을 못 봐서 대학에 떨어져도 좋으니, 제 친구 병호를 살려주세요.” 당시 그것은 제가 친구를 위하여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희생이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의사선생님이 나오셨습니다. 아무 말도 안 하셨지만, 표정이 병호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바로 그때,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던 명수가 깨어나서 큰소리로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요! 오줌 마렵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친구들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멈추었고, 또 한 사람은 살아서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명수야, 축하한다. 깨어나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축복이고 행복이다.’
그렇게 저는 두 친구가 맞이하는 생사의 갈림을 함께 목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행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세상에서 숨쉬고, 배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 갈 수 있고, 제 발로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고, 작지만 예쁜 교정을 바라보고, 그냥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끔씩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애인과 데이트도 하고, 친구들과 운동하고, 조카들과 놀고, 이런 행복들은 순전히 보너스라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삶은 그런 보너스 행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출처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 서강대교수로 재직 중인 2009년 5월에 암으로 작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누리고 있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행복조차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행복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겁니다. 그러나 우선, 그런 행복을 충분히 의식할 수 있어야, 보다 높은 차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아무튼, 마음엔 원이로되 그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행복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는 일도 잊지 않아야 할 겁니다.(물맷돌)
[내가 여호와께 말합니다. “당신은 나의 주님이시니, 주님을 떠나서는 어디에도 나의 행복이 없습니다.(시16:2,쉬운성경) 만군을 거느리시는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시84:12,현대어)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살전5:18,현대어)]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6월 9일 금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부터는 ‘갑자기 체중이 늘어났다면 점검해볼 11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로 ‘갑상선 기능 저하증’입니다. ‘갑상선 호르몬이 저하되면, 체내 기초대사율도 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몸의 산소 소모량, 열 발생량, 칼로리 소모량이 모두 떨어지면서 살이 찐다.’고 합니다.(출처; 마음 건강 길)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저는 금요일 저녁에 기차를 타고 부모가 계신 부산으로 내려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금요일에도, 부산으로 내려가서 역으로 마중 나오신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조금은 말이 안 되고 조금은 대답하기 번거로운 질문’을 늘어놨습니다. 자꾸만 마음이 요동쳐서 일상에 적응하기가 힘들고 작은 일도 벅차게 느껴지는 것이 꼭 사춘기에 다시 휘말려버린 것 같다고, 현실에 부딪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두렵다고, 엄마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짧게 고민한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정말 복잡한 인격체인 고로,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진리’라고 했습니다. 성장통은 너의 나이 때쯤에는 자연스럽게 겪는 아픔이지만, 너는 남들보다 생각이 많은 아이니, 좀 더 요란한 성장통이 찾아온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답을 알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너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살아온 엄마인 나도 아직 답을 알아내지 못했는데, 네가 불안해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오래 살았다고 해서 꼭 남들보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너는 아직 어리고 꿈이 많으니, 그것을 위하여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엄마의 말씀을 듣고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때까지 저 자신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밑그림보다는, 손가는 대로 모양을 그려나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한껏 진심을 다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서,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봤습니다.(출처; 샘터, 김유리/10대 청소년 작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능력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인간사(人間事)’에 대한 고민과 걱정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요컨대, 숨이 붙어있는 한, 갖가지 고민과 걱정을 하면서 살게 마련인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쓸데없는 걱정들은 덜어내고 생산적인 고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 기도하기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제목들은 그 자신에 꼭 필요한 과제들입니다. 때문에, 제목을 정해놓고 기도하다 보면, 그 기도내용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말하자면, 기도의 제목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생각들의 씨(種子;종자)’가 되는 셈입니다. 옛날 시골농촌에서는, 겨울이 되면 ‘콩 고르기’를 했습니다. 콩이 부실하거나 벌레 먹은 것들은 골라서 내버리고, 튼실한 콩만 골라서 씨종자로 삼았던 것입니다.(물맷돌)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여기서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그러고 나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가셔서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제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길 원합니다.”(마26:38-39,쉬운성경)]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갖고 낙관하는 이유?’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6월 8일 목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치매 잘 걸리는 사람들의 특징 다섯 가지’ 중, 그 마지막은 ‘충분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수면장애가 계속되면,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뇌의 크기가 해마다 줄어들어 치매위험이 커진다.’고 합니다. 특히, 수면장애와 뇌 크기의 상관관계는 ‘60세 이상 노인들에게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하네요.
세계적 석학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샘 리처드’교수가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갖고 낙관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한 언론에 기고했습니다. 그리고 부제로 ‘한국인은 큰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긍정적 메시지가 힘과 내구력을 길러줄 것’이라고 달았습니다. 다음은 그 기고문 내용입니다.
나는 가끔 한국인들로부터 ‘왜, 강의 등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문젯거리들을 다루지 않느냐?’는 이메일을 받곤 합니다. 사회의 파괴적이고 역기능적인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온 사회학자에게는 좋은 질문입니다. 실제로, 40여 년 교수 경력 중에서 전반 20년 동안, 저는 ‘젊은이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동기부여를 받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수로서의 역할’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요즘 저의 강의내용은 ‘주변 세상에서 목격하는 경이로움과 놀라움’에서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과 부정직함, 그리고 폭력과 같은 언론보도 사건들은, 그런 것들이 드물고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뉴스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학생들은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 등에 넘쳐나는 부정적 편향성과 두려움에 찌들어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하여 저열한 염세주의를 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수마저 그들의 암울한 미래를 혹평하는 사회학적 해석을 늘어놓으면, 동기부여는커녕, 훨씬 더 고립되고 무력화한 세상으로 유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곤란한 입장에 있습니다. 분열되어 서로 불신하는 인간들은 ‘주변에 있는 것들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함께 대응해가면서 공동의 이익을 이루어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최근 서울을 방문했을 때, 두 차례 강연에서 그런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강의하듯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후, 저에게는 ‘한국의 문제점들을 왜 더 언급하지 않느냐?’는 이메일이 하루에 한 통 정도 옵니다. 그에 비해서, ‘더 나은 자신과 나라를 만들어가도록 응원해주셔서 고맙다’는 이메일은 하루에 15통 남짓 옵니다. 제가 한국어로 만든 비디오에 달린 수천 개의 댓글 내용도, 이처럼 1대15 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강의시간에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의 이야기를 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합니다. 어디에 가든지, 저는 그 나라와 문화에 희망을 주는 낙관론을 펼칩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처럼 ‘자부심과 희망을 갖고 반응하는 국민’은 어느 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는 한국에 대단한 희소식입니다. 왜냐하면, ‘국민 개개인이 갖고 있는 국가와의 연대감이 그만큼 깊고 끈끈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21세기로 소환하려는 의욕이 여전히 강렬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출처; 윤희영의 News English, 윤희영 / 편집인)
저도 리처드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와 사회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현상이 함께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매스컴이 극도로 발달한 현세에 와서는 부정적인 현상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리처드 교수가 우리나라에 와서 강의를 마친 후에 도착한 이메일을 보면, 1대15의 비율로 긍정적인 의견이 더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갖고 낙관하는 이유’라고 했습니다. 리처드 교수는 여러 나라에서 강의를 해본 경험이 있는데, ‘한국인들처럼 자부심과 희망을 갖고 반응하는 국민은 어느 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고무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튜브를 보면, 리처드 교수의 강의 자료가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한국의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물맷돌)
[오, 내 영혼아!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슬퍼하는가? 왜 그렇게 속상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라. 내가 나의 구원자시며 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찬양할 것이다.(시43:5,쉬운성경) 그러나 하나님 없이 살았던 지난날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자손도 아니며, 그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의 기업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모르는 자들이지 않았습니까?(엡2:12,쉬운성경)]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샬롬! 어젯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6월 7일 수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치매 잘 걸리는 사람들의 특징 다섯 가지’ 중에서 네 번째는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으려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뇌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여부를 잘 관찰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반사적으로 꿀꺽 삼킨다.’고 합니다.
아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물셋, 대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모든 일상이 멈추었고, 저는 혼자가 되신 엄마 곁을 지켰습니다. 엄마와 함께 있는 동안, 울지 않고 끼니도 꼬박꼬박 잘 챙겼습니다. 슬픔이 온몸을 짓눌러도 엄마를 보면서 버텨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마지막 학기를 다니기 위해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혼자가 되고나서야 눈물을 쏟아낼 수 있었습니다. 노래를 듣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와 함께 지낸 두 달간 매일 이렇게 울고 싶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깊은 바다에 잠긴 것 같았습니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만한 힘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넓은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슬픔을 견디기 어려워서 인터넷게시판에 짤막한 글을 올렸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눈물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열어보니, 친한 언니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게시물을 본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너의 아픔이 얼마나 깊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어! 하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되고, 모레는 내일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할게. 우리 하루만 더, 이틀만 더 열심히 잘 살아보자! 사랑해!”
메시지를 읽고 나서 또다시 한참 울고 말았습니다. 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제 곁엔 ‘저를 걱정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언제나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처음으로 저를 지켜주는 사람들을 향하여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랜만에 홀가분한 아침이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신남녕/광주서구)
제가 사는 아파트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몸을 간신히 움직이시는 것 같은 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사실, 사실만큼 사시고 돌아가시면 그닥 슬프지는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글쓴이의 아버지는 아직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듯합니다. 그래서 글쓴이는 그토록 슬퍼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의 지인이 전해준 메시지 한 마디가 큰 위로가 되어서 그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척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그 주변에 있는 친구나 지인이 들려주는 격려와 위로 한 마디가 엄청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 위로와 격려의 말이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더더욱 큰 힘이 되고 용기백배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물맷돌)
[주의 말씀이 나에게 생명을 주었으므로, 내가 고통가운데서도 위로를 받습니다.(시119:50,현대인)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도 슬픔도 울음도 아픔도 없으며, 그 모든 것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계21:4,현대어 + 쉬운성경)]
저는 ‘그들이 가졌던 위대한 믿음’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6월 6일 현충일 아침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분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치매 잘 걸리는 사람들의 특징 다섯 가지’ 중에서 세 번째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뇌 기능이 약해지면, ‘주변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욱하고 화를 내기 쉽다.’고 합니다. 물론, ‘분노조절장애’와는 구분해야 하겠지요.
작가(이지성)님, 저는 북한내부에 반체제 조직을 만들고자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중국으로 도망쳐 나온 탈북인들에게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가르쳐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가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서 반체제 활동을 하겠다.’고 하는 거였습니다. 저는 극구 반대했습니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고 한들, 언젠가는 붙잡혀서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다시 들어가겠다는 것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들의 영적, 정신적 지도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내부의 협력자들을 총동원하고, 활동자금을 지속적으로 보내서, 조직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물론, 지금 같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고난의 행군’이 있었던 90년대 말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제가 당시에 그들을 지도하고 지원했던 것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들의 신념과 용기에 전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들은 자기 목숨을 버려서 북한을 구하고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들이 북한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말이 지도자였지, 사실 그들의 믿음에 전염되어 정신없이 이끌려갔을 뿐입니다. 저는 ‘그들이 가졌던 위대한 믿음’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요, 작가님! 저는 그들을 막지 못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그들을 지도하고 지원했던 것도요. 그들 중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붙잡혀 잔혹한 고문을 받고 참혹하게 죽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뿌린 씨앗들이 남아있어서, 반체제 조직들은 지금까지 비밀리에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사명으로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북한선교사 파송과 북한 반체제 조직 관리는 생명을 버리는 일입니다. 때문에, 제가 자랑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이 두 사역에 관해서는 ‘죄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출처; 이지성의 1만 킬로미터, 이지성 / 소설가)
아시다시피, 우리말의 ‘괜찮다’는 ‘좋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괜찮다’는 ‘관계가 없다,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의 ‘관계하지 않다’의 준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피해볼 일이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무관심(無關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일에 너무 관심이 많아서 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의 일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서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작가 이지성 씨나 수퍼맨 목사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입니다. 그 두 사람은 지금 살해위협을 엄청나게 받고 있답니다. 물론, 그들이 북한동포에 대하여 관심을 끊으면, 다시 말해서 북한에 대하여 무관심하면, 죽임당할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겁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북한동포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 땅에서 태어났다는 것뿐입니다. 물론, 자신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북한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남한 땅에 태어나서, 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뛰어난 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무관심도 죄(罪)에 속합니다. 북한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 물론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관심을 가질 수는 있을 겁니다. 북녘동포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해방을 위하여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물맷돌)
[사람이 뭐 대단하다고 그렇게 소중히 여기십니까? 아침마다 살피시고, 순간마다 시험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욥7:17-18,쉬운성경) 하물며,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전해준 이 ‘위대한 구원’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히2:3,현대어)]
어쨌든, 죄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하늘의 이치입니다.
샬롬! 어저께 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는지요? 이번 한 주간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치매 잘 걸리는 사람들의 특징 다섯 가지’ 중 두 번째는 ‘법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소한 규칙이나 법을 잘 안 지키는 것은, 뇌의 아주 중요한 기능인 ‘외부자극에 대하여 적응하고 절제하는 기능이 손상되었다’는 신호일수도 있다는 겁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 엄청난 죄를 짓고 있습니다. 구치소에 들어오기 전에 저 혼자서 다 뒤집어쓰기로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모든 것을 검찰에 털어놓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조사 받느라 계속 불려 다니고 있습니다.” 검사들만 땡잡은 겁니다. 검사들은 밖으로 다니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얽히고설킨 어리석은 약속을 깨는 과정에서 단서를 주워내고 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으면서, 처음에 저는 ‘약속했으면 지키고 당신 혼자 몽땅 죗값 치르지 왜 그랬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막 들어왔을 때는 번갈아 찾아와서 위로해주고 다독거려주어서, 제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리고 ‘금방 나가겠구나!’했는데, 두 달이 지나면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들어오기 전 통장에 있던 40억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이젠 밤마다 배신감에 잠을 못자고 있습니다. ‘나만 죽는구나! 내 식구들만 죽는구나!’ 그래서 다 불어버렸습니다. 그 조사 받느라고, 매일 검찰청에 갑니다.” 그날 저는 구치소를 나오면서 ‘강남 어느 한 구석이 지금 불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줄줄이 엮여서 구치소로 들어갈 겁니다.
죄는 영원히 숨을 곳이 없습니다. 단지, 시기(時期)의 문제일 뿐입니다. 이 경우처럼, 손가락 걸고 약속한 ‘동지들’이 서로 배신해서 죄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우연한 계기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죄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하늘의 이치입니다. 우리 속담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살면서 몸으로 체득한 진리입니다.(출처; 어른공부, 양순자 / 30년간 사형수 상담가로 봉사, 저서로는 ‘인생 9단’과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가 있음)
어쩌면, ‘하늘그물’이라는 말을 한두 번 이상은 들어봤을 겁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입니다.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 하늘의 그물(天網;천망)은 끝없이 넓어서 성긴 듯 보이지만(촘촘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새어나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도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9:6)”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죄를 말한 것이 아니라, 헌금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라면, 우리가 지은 ‘그 죄의 크기에 따라 그 죗값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법에 어긋난 죄를 지었으면 세상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고, 하늘의 법을 어겼으면 하늘의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하늘의 그물’은 ‘그 어떤 잘못이나 죄를 지어도 다 걸려들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우리의 그 모든 죄를 벗겨주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모든 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사실을 믿고 아니 믿고는 각 사람의 자유입니다. 선택여부는 우리의 몫입니다.(물맷돌)
[구름이나 아침 안개가 사라지듯, 내가 네 죄를 없애버렸다. 너는 나에게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사44:22,현대인)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악에서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요일1:9,현대어)]
만족을 모르는 제 욕심이 행복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유월 초사흘 토요일 아침입니다. 유월 첫 주말인 오늘 하루도 내내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오늘부터 ‘치매 잘 걸리는 사람들의 특징 다섯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잘 넘어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유 없이 자주 넘어진다면, ‘전두엽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랍니다. 전두엽 이상은 치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치매예방을 위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합니다.(출처; 마음 건강 길)
예전에는 ‘나이 들어간다.’는 게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남들은 다 나이 들어도, 저는 늙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저의 몸과 마음에 그 흐름의 흔적을 남기고, 어김없이 저를 여기까지 실어왔습니다. 65세, 이제 제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살아온 시간’보다 많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린애 같은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사춘기 소녀처럼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며 감상적입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아직도 많은데,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세월보다 많지 않은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지나간 세월과 그 꿈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모두 제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당장 눈앞의 것만 보는 근시안적(近視眼的)인 제 눈이 미처 그걸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느라, 저에게 다가오는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만족을 모르는 제 욕심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자신에 대한 욕심이, 그 어떤 일을 해도 늘 저를 불만족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똑똑하고 빈틈없어야 하며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저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저의 행복을 가로막아 온 겁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난 것은 우리 뜻과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행복하게 되길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어릴 적에 저에게 무한한 행복감을 안겨준 부모님의 보살핌과 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때문일까요? 저는 아직도 그런 사랑과 행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제가 더 성공하고 완벽한 사람이 되면, 그 시절의 무한한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해봅니다. 이런 기대 때문에, 저는 항상 짓눌리면서 행복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인데도, ‘완벽해야만 사랑을 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어릴 적의 저의 불안이, 항상 저를 따라다니며 행복을 놓치게 만들었습니다.
뭔가를 더 원하고, 그것을 손에 넣는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는 순간, 바로 우리는 더 큰 것을 원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의 욕심은 그 끝이 없는데, 그에 비해서 우리가 가진 것이 늘 부족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오히려 덜어냄으로써 찾아옵니다.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을 덜어내는 것, ‘나는 이래야 된다.’는 규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와 세상을 똑바로 보고,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출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 정신분석 전문의)
요컨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 맛보고 있는 행복감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만, ‘만족을 모르는 우리의 욕심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글쓴이는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동안 원하던 것을 드디어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다시금 더 큰 것을 원하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 속담에 ‘줄수록 양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면 줄수록 부족하게 여기고 더 많은 걸 요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글쓴이는 그 해결책으로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에덴동산의 아담하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더 큰 것에 대한 욕심’을 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부지런히 감사할 일을 찾아내어 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물맷돌)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살전5:18,현대어)]
불완전한 이유
영국의 한 유명한 상담사에게 학부모가 딸을 데리고 왔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ADHD’가 의심된다는 말에 증상을 확인하고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상담사는 딸과 함께 오랜 대화를 나눈 뒤 부모님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을 틀은 뒤 딸의 모습을 보라고 권했습니다.
자리에 가만히 있질 못하고 안절부절하던 소녀는 음악이 나오자 눈을 감고 느끼기 시작했고, 잠시 뒤 멋지게 춤을 췄습니다. 춤을 배운 적도 없던 딸이 아름다운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놀란 부모님에게 상담사가 말했습니다.
“따님은 주의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춤에 재능이 넘쳤던 것뿐입니다. 머릿속에서 들리는 음악들에 몸을 움직이고자 하는 본능이 커서 그러니 마음껏 춤을 출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부모님의 적극적인 배려에 어려서부터 춤을 춘 ‘질리언 린’이라는 소녀는 재능을 멋지게 꽃피웠고, 훗날 세계적인 안무가가 되어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작품을 담당했습니다.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삶이 불안해 보입니다. 우리 마음속의 빈자리가 주님으로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어떤 것으로도 충족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필수조건인 예수님의 사랑을 은혜로 채우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의 사랑으로 제 삶을 완전히 채워주소서.
인생의 공허함을 주님의 사랑으로 채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한 마디가 만든 변화
세계적인 심리치료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레이먼드 코르시니의 사무실에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험한 인상에 덩치가 큰 남자는 레이먼드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이 제 삶을 바꿨습니다. 사회에 나오자마자 바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레이먼드는 그 남자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양해를 구한 뒤 설명을 부탁하자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 교도소에 오셨을 때 제 아이큐를 검사해주시고는 평균보다 아주 높다고 말씀하셨어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공부를 시작했고 교회도 다시 나갔습니다.
이제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선생님이 제 인생을 바꿔주셨습니다.”
레이먼드 검사 결과를 담담히 전달했을 뿐이지만 그 한 마디가 사람을 변화 시켰습니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당연한 칭찬도 인색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랑이 담긴 친절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말의 중요성을 기억하며 한 마디 한 마디에 사랑을 담아 칭찬으로 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영혼을 어루만지는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게 하소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진심 어린 칭찬만을 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미래는 알 수 없다
샘 팰치라는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외쳤습니다.
“제가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 분들은 돈을 내십시오.”
몇몇 사람들이 돈을 내자 샘은 정말로 폭포로 뛰어내렸고 기적처럼 멀쩡히 돌아왔습니다. 폭포에서 뛰어내린 샘도 깜짝 놀랄 만큼 몸에는 아무런 부상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 다이빙에서 짭짤하게 재미를 본 샘은 돈을 더 벌려고 며칠 뒤 한 번 더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샘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뛰어내려 두 번이나 살아난 사람으로 명성을 얻었고 큰돈을 벌었습니다.
‘폭포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긴 샘은 몇 달 뒤 뉴욕의 ‘하이 폭포’에서도 뛰어내려 무사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2차 시도에서는 더 큰 명성과 돈을 얻기 위해 10미터짜리 스탠드를 추가해서 뛰어내렸지만 이 다이빙이 샘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무모한 용기로 큰돈을 벌던 샘의 도전은 30세 때 사고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절대’란 없습니다. 오늘 무사히 보낸 하루가 내일도 동일하게 나타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불확실한 삶을 통해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구원만을 붙잡고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소망하게 하소서.
하늘나라를 향한 소망을 품고 오늘을 살아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판단의 두려움
장래가 촉망되는 화가가 유명한 평론가를 찾아가 그림을 평가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제 습작입니다.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그림에 펜으로 표시를 해주십시오.”
평론가는 그림에 가차 없이 체크 표시를 하며 왜 그림이 좋지 않은지를 설명했습니다.
체크 표시가 잔뜩 되어 있는 그림을 들고 집으로 온 화가는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단점을 고치는 것보다는 장점을 개발하는 게 낫겠어.’
화가는 다음날 같은 그림을 그려 다른 평론가에게 이번엔 좋은 점에 펜으로 표시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설명을 듣던 화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전날 평론가가 단점으로 지적한 부분을 모두 장점으로 표시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화가는 모두를 만족시킬 그림은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그리고 싶은 본질에 집중하며 훗날 개성있는 화풍으로 크게 인정받는 화가가 됐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닌 주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일에 신경을 쓰십시오. 아멘!!
주님! 다른 사람들의 평이나 험담에서 마음을 지켜주소서.
삶의 기준을 사람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맞춥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반드시 찾아온다
미국의 한 자동차 판매원은 자신의 고객에게 1년에 12번씩 안부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가 여느 때와 같이 사무실에서 고객들에게 편지를 쓰는 모습을 본 동료가 물었습니다.
“차를 한 번 산 사람은 최소 10년은 탈 텐데… 그렇게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나라면 그 시간에 새로운 고객을 찾겠네.”
편지를 쓰던 판매원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놀이동산에서 재밌는 놀이기구는 다시 한 번 타듯이 나에게 차를 구입해 만족한 고객은 언제든 다시 나를 찾아준다네. 나를 한 번 찾은 고객이 다음번에도 반드시 나를 찾게 만드는 것이 나의 영업비결이네.”
조 지라드라는 이름의 이 판매원은 훗날 12년 연속 자동차 판매왕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세일즈맨의 전설이 됐습니다.
한 번 찾아온 사람을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은 끝없는 배려와 노력입니다.
오늘 전한 한 장의 주보, 한 구절의 말씀이 한 영혼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져낼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조금 힘들고 어려워도,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아도 복음 전파의 중대한 사명은 주님의 사랑을 이미 알고 있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귀한 일입니다.
나의 초청으로, 다른 교인의 초청으로 교회를 찾은 성도들이 주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받을 수 있게 노력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한 영혼을 위한 절박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교회 생활에 적응 중인 사람들을 위해 잘 안내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필요한 존재
유럽의 부자들이 동방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동방에 대해서 잘 알고 일도 잘하는 ‘레오’라는 하인을 데리고 떠난 여행에서 부자들은 서로 리더가 되려고 자존심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런 싸움 중에서도 레오는 지혜롭게 대처하며 갈등을 해결했고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다하며 궂은일을 처리해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레오가 사라졌습니다.
리더를 자처하던 부자들은 레오가 사라지자 아무 일도 하지 못했고, 여행도 그만두고 레오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레오를 찾지 못하자 여행은 무산되고 부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모두가 리더를 자처하던 모임에서 진정한 리더였던 것은 낮은 자리에서 섬기던 레오였던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동방 순례’라는 소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도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작은 자가 되어야 하며, 먼저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교회에서는 세상처럼 서로 높아지려 하지 말고 다만 겸손함으로 먼저 섬겨야 합니다.
낮은 곳에서 섬김으로 예수님께 큰 사람으로 인정받는 진정한 리더가 되십시오. 아멘!!
자리를 탐내지 않고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맡은 일을 충실히 하는 존경받는 리더가 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성경을 믿지 않으면
외국에서 공부하다 자유주의 신학에 빠진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한국의 교회에 부임했는데 첫 주일 설교시간에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모세오경을 진짜로 믿으시는 분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근동의 전설과 신화를 적어놓은 부분이니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교인들은 모세오경을 성경에서 잘라냈습니다. 목사님은 다음 주에 예언서를 비판했고 그다음 주에는 신약을 비판했습니다.
“신약의 서신들은 출처도 불분명하고 서로 다른 내용도 많습니다. 바울 서신 역시 바울이라는 개인적인 사람의 생각이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성경의 불확실한 부분을 잘라냈는데 한 달이 지나자 성경에는 표지만 남았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대로 믿지 않을 때 예수님을 향한 믿음은 생길 수도 없고 신앙생활로 이어질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과학적으로 증명해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 알게 됩니다.
주님을 믿기로 작정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온전히 믿기로 작정하십시오. 아멘!!
주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는 은혜를 허락하소서.
성경을 향한 나의 믿음이 절대적인지 점검해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세 손가락의 기적
모데카이라는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농장 일을 돕다가 손가락을 잃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야구선수가 꿈이었던 소년은 던지는데 가장 중요한 검지와 중지를 잃었습니다. 나머지 손가락도 후유증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모데카이의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재활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학업을 대충 마친 뒤에는 탄광에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은 야구선수가 될 수 있다고 모데카이는 굳게 믿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하든 묵묵히 자신에게 맞는 연습법을 찾아서 불철주야 노력했던 모데카이는 마침내 실력을 인정받아 메이저리그에서 뛰게 됐습니다.
세 손가락을 이용해 던지는 모데카이만의 변화구는 어떤 투수도 던질 수 없는 공이어서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6년 연속 20승을 올리며 ‘세 손가락의 기적’이라고 불린 모데카이는 수많은 우승과 기록을 남기며 ‘명예의 전당’에 올라 야구 역사에 전설이 됐습니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아내고 기적을 경험합니다.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고 주신 비전을 향해 담대히 도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불평과 불만을 가질 시간에 땀을 흘리게 하소서.
눈앞의 장애물에도 불가능보다는 가능성을 떠올립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목숨을 걸고 지켰던 것
윌리엄 틴데일 목사님은 종교개혁 당시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번역했습니다.
다음은 틴데일 목사님이 성경에 관해 생전에 했던 말씀들인데, 이 말들을 통해서 성경 번역에 목숨까지 걸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모국어로 된 성경 없이는 제대로 된 성도를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율법은 모든 사람들을 죄 아래 두게 해서 입을 막게 하는 자물쇠이고, 복음은 이 자물쇠를 열고 나오게 만드는 열쇠이다. 이것이 율법과 복음의 핵심이다.”
“훗날 내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내 양심을 거슬러 하나님의 말씀을 한 글자도 바꾼 적이 없고 의심한 적이 없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감옥에 갇히면서도, 죽마고우에게 배신을 당하면서도, 틴데일 목사님은 번역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화형을 당하면서까지 “영국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라는 말을 남기고 소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류를 구원할 길을 보이는 유일한 안내서입니다. 이 진리에 목숨을 건 성도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받은 복음도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씀을 깨닫고 진리를 전하기 위해 희생한 선인들의 노고를 잊지 말고 목숨을 다해 말씀을 믿으십시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믿음의 선배들의 희생을 기억하게 하소서.
말씀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며 귀하게 여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쳐내기로 결단하라
중국 전국 시대 때 진나라 무왕의 머리에 큰 종양이 생겼습니다.
무왕은 당대의 명의 편작을 불러 진찰을 받았는데 종양을 살펴본 편작이 말했습니다.
“종양이 더 커지기 전에 잘라내면 깨끗이 치료될 것입니다.”
머리에 칼을 대야 한다는 말을 듣자 무왕은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대답을 망설였습니다. 순간 무왕의 마음을 읽은 신하가 진언을 올렸습니다.
“시국이 어지러운 이때 폐하의 건강이 걱정되옵니다. 종양이 더 커지지 않을 수도 있고 당장 아무 이상이 없으니 경과를 지켜보심이 어떤지요?”
편작은 이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하의 말을 들으면 마음은 편하실지 모르지만 몸을 잃게 되실 것입니다. 당장 치료를 받지 않으면 훗날엔 저도 방도를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편작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무왕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수술을 받았고 종양은 말끔히 제거됐습니다.
작은 죄들로 인해 거리낌이 있을 때 바로 쳐내지 않으면 언젠가 더 큰 죄가 되어 돌아옵니다.
경건한 삶을 방해하는 작은 죄들을 조금도 용납하지 말고 주님께 자백하여 쳐내십시오. 아멘!!
주님! 양심에 거리끼는 죄들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소서.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나폴레옹의 전략
나폴레옹은 왕위에 올랐을 때 자신의 정적 중 한명인 앙기엔 공작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앙기엔 공작은 인품이 좋고 백성들을 잘 살펴 파리 백성들의 전폭 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나폴레옹은 그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치솟는 공작의 인기에 위기를 느낀 나폴레옹은 결국 말도 안 되는 모함을 하여 공작을 사형시켜 버렸습니다. 당시 이같은 행태를 목격한 파리 시민들은 큰 분노를 느꼈고, 자칫하면 폭동이 일어날 기미까지 보였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시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서정시인이라는 뜻의 '오시앙' 이란 발레공연을 열도록 지시했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화려한 발레공연에 정신이 팔려 공작의 죽음에 대해서는 모두 잊은 채 발레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 처형당하게 하므로 대중의 관심을 잠재우려 했으나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오히려 더 큰 세상의 관심이 되셨습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루터의 순종
루터가 독일의 바델베르그에 체류하고 있을 때 그곳에는 페스트가 급속히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르푸르트에 있던 그의 친구는 루터에게 그 지역에서 피신하는 썼습니다.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충고해 왔습니다. 그러자 루터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답장을 썼습니다.
"여기서는 이미 페스트가 굉장한 속도로 퍼지고 있네. 그래서 한 형제가 죽기까지 했네. 하지만 나는 세상이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걸세. 나는 나를 이곳으로 불러주신 하나님께서 나를 또 다른 곳으로 부르실 때까지 여기서 다른 곳으로 피신하지 않을 것이네."
그 후 루터는 페스트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곳에 머무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양 떼를 보살폈습니다. 루터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던 것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목사와 신부
미국의 설교자 한 분이 사경회에서 로마 카톨릭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둘이 만나 처음에는 날씨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가 점차 영적인 문제로 화제가 옮겨 갔습니다.
그때 목사가 신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카톨릭에 대해서 내가 한 가지 늘 마음에 부담스러운 것이 있는데 왜 당신들은 마리아에게 그토록 높은 지위를 줍니까?" 그러자 그 신부가 잠깐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만약 내가 이 나라의 왕을 만나러 간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지요. 나를 왕에게 소개할 사람을 사귀는 일이지요."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목사가 잠시 생각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왕이 당신의 아버지라면 당신을 소개할 사람이 따로 필요하진 않지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안식일의 멍에를 씌우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황금의 뇌를 가진 사람
볼테르는 프랑스의 철학자요 문필가로 '황금의 뇌를 가진 사람'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머리와 높은 지식 때문에 교만하여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았습 니다. 심지어 그는 길거리에서 하나님을 저주하며, "하나님이 있다면 나를 죽여 보라" 고 공개적으로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병들어 임종이 다가오자 그는 "의사 선생, 6개월만 내 생명을 연장시켜 주면 나의 전 재산을 다 드리겠소"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6개월이 아니라 6시간 도 남지 않았다"고 하자 볼테르는 "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지는구나"라고 탄식하며 죽었습니다.
볼테르는 뛰어난 철학과 지식을 가졌지만 그의 황금 뇌와 지식은 자기 자신조차 구원할 수 없었고, 오히려 사람들을 미혹하여 지옥에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자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단순히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시계의 바늘
평생 시계를 만들며 살아온 사람이 아들의 성인식 날 자신이 만든 시계를 선물했습 니다. 그 시계는 특이하게도 시침은 동으로, 분침은 은으로, 초침은 금으로 되어 있었 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시침이 가장 크니까 금으로 장식하고, 가장 작은 초침은 동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니다. 초침이야말로 금으로 만들어야 한단다. 초를 잃는 것이야말로 금을 잃는 것 과 마찬가지란다." 그리고 아들에게 시계를 채워주면서 말했습니다.
"초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찌 분과 시를 아낄 수 있겠느냐? 인생은 초에 의해 결정 되는 것임을 명심하고 이제 너의 초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쇼펜하우어는 "속된 사람은 시간을 어떻게 소비할까 생각하나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을 선용하는 방법을 생각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최고의 투자
미국의 실업가로서 체신부장관을 지번 큰 워너메이커는 백화점 왕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타일한 판단력과 투자로 그가 투자해 구입한 상품들은 엄청난 이윤을 남겼고, 항상 최고의 가치를 창출해 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한 신문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워너메이커는 분명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열두 살때 최고의 투자를한 적이 있지요. 그때 나는 2달러 50센트를 주고 성경 한 권을 샀습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투자였어요. 왜나하면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스탠리는 "그리스도 말씀은 잠언을 뛰어넘고 법률을 초월하며, 교리를 초월하고 위로를 능가하며, 또 고갈되지 않음이 그특징이다"라고 했습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생명과 피
사람의 피는 혈소판과 적힐구, 그리고 백혈구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체중이 70kg가 되는 사람의 피는 약 52리터이고 심장은 심장박동에 의해 呈 23초마다 피를 신체의 각 기관들로 순환시켜 세포에 영양을 공급하고 몸에 있는 노폐물들을 걸리내게 합니다.
한 인간이 평균 수명을 사는 동안에 심장은 자그마치 약 280,000,000 ± 박동을 하고 약 2,370,000리티의 피를 퍼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가 공급되지 않는 세포는 곧 괴사하게 됩니다.
결국 심장이 멈추고 피가 순환하지 않게 되면 인간의 몸은 죽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하신 말씀은 진리인 것입니다(레17:10)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히 공급되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게 됩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씨의 생명력
오래 전 프랑스에서 2,000년 묵은 꽃씨가 한 무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오래 묵은 씨앗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땅에 심었더니 씨앗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84년에 이집트에서는 3,000년 묵은 완두콩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1884 년 6월 4일에 이 완두콩을 땅에 심었더니 며칠 후에 흙을 뚫고 완두콩 싹이 올라왔다 고 합니다.
수천 년 된 씨앗 안에 생명이 살아있었고, 살아있는 생명은 놀라운 힘을 보여 준것 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그의 책 「부활」 첫머리에서 "땅속에서 솟아나는 풀을 아무리 수천만이 나오지 못하도록 돌을 깔고 나오는 풀을 뽑아 버린다 해도 생명은 다시 살아나고야 마나니 생명의 힘을 막을 자 누구인가?"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시고,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어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메이요 병원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 메이요 병원의 의료진은 평균 20년 이상씩 의료계 경험을 갖고 있는 의학계의 권위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메이요 병원의 의료진은 각양각색의 환자들을 치료하여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었습니다.
이 병원에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병에 걸리지 않고 기분 좋게 오래 살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해에만 해도 2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각국의 왕이나 대통령을 비롯해서 유명한 예술가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농부들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종의 사람들이 으 병원을 다녀갔는데 그 수가 무려 수백만명이 별는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병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익스피어는 "의술로 생명이 연장될 수 있을지 모르나 죽음은 의사에게도 예외없이 엄습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이기려면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요11:25,26).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영생을 위한 준비
미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아이젠하워가 월터리드 미 육군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빌리 그래함 목사가 방문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30분의 면회 시간을 마치고 나가려 할 때 아이젠하워는 그를 멈춰 세우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제겐 확신이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그러자 빌리 그래함 목사는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무슨 업적이나 선행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죄를 해결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지난날 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 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아이젠하워가 말했습니다.
"빌리, 감사하오. 나는 이제 준비되었소!"
누구든지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