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화려한 수상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_ Venezia, Italy
‘운하 도시’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 이미지는 모두 베네치아에서 비롯한 것이다. 로맨틱 외에도 베네치아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이 그것. 13세기 십자군원정 당시 독특한 도시 구조 덕에 수송과 병참을 맡아 막대한 이익을 챙기며 상업 도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볼 수 있는 고전 건축물의 대다수를 이때 축조했다. 베네치아는 육지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밀집한 작은 섬들을 연결한 도시다. 섬은 대운하Canal Grande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물길이 이어져 있다. 그러니 베네치아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구태의연하더라도 곤돌라를 타고 누빌 필요가 있다.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게 골목길을 지나 도시 중앙을 가로지르는 대운하로 나오는 순간, 과거 상업 도시로 빛나던 시절의 화려한 풍광을 만날 수 있다.
현재를 사는 암스테르담의 운하 사용법
네덜란드 암스테르담_ Amsterdam, Netherlands
암스테르담은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진행한 항구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70여 개의 인공섬을 500여 개의 다리로 연결한 운하 도시다. 조직적으로 생겨나 하늘 위에서 보면 마치 잘 구획된 유기체같이 보인다. 이 유기체의 이동 방식이 조금 색다르다. 운하 도시니 당연히 배를 떠올리겠지만 의외로 암스테르담 주민의 운하 이용률은 낮다. 쓸모도 없는데 유지 비용만 드니 없애자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다. 운하 위를 떠다니는 것도 대부분 관광객을 실은 대형 보트다. 환경 사랑이 끔찍한 암스테르담 주민들은 자전거나 전기 자동차를 애용한다. 운하를 따라 들어선 카페 거리는 관광객과 현지인으로 북적이고, 물 위에는 실제 사람이 가옥처럼 거주하는 수상 보트가 조용히 정박해 있다. 운하는 이들에게 그저 삶의 공간이다. 물론 네덜란드 특유의 좁고 길쭉한 가옥이 이어진 아름다운 야경은 물 위에서 한번 바라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만 말이다.
알프스, 호수, 운하가 어우러진 낭만의 도시
프랑스 안시_ Annecy, France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3국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도시 안시. 인접한 나라의 이름만 들어도 대략 연상되는 풍경 그대로의 도시다.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프랑스의 베네치아’로 불리기도 한다. 알프스 산맥 가까이 위치한 구시가지는 대부분 15세기에 지은 건축물로 이뤄져 있다. 그 옛 도심을 따라 작은 운하 하나가 흐른다. 안시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여 흐르는 티우 운하Canal du Thiou를 따라 걷는 것으로 구시가지 관광을 마칠 수 있을 정도로 도심도, 운하도 작다.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운하 한가운데서 눈길을 끄는 작은 건물을 하나 볼 수 있는데, 구시가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힌다. 12세기에는 성주의 집이었고, 그 후 행정관청, 감옥 등으로 쓰이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팔레 드릴Palais de l’Isle이다. 밤의 운하에 비친 팔레 드릴의 모습은 안시의 대표 이미지일 정도로 유명하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안온한 도시
벨기에 브루게_ Brugge, Belgium
브루게를 ‘북쪽의 베네치아’라 부르는 것은 단순히 운하 때문은 아니다. 브루게는 12세기부터 수백 년 동안 베네치아와 더불어 유럽 상업망의 주축을 이룬 도시다. 중세 시대에 잘나가는 상업 도시였지만 애석하게도 비슷한 풍경의 암스테르담이 과거와 트렌디한 현재가 뒤섞인 문화도시로 발전할 동안 브루게는 지독하게 변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유럽에서 손꼽히는 예쁜 마을인 동시에 과거 속에 머무는 지루한 도시가 됐다. 이러한 매력에 빠져 만든 영화가 있으니 바로 2008년 개봉한 <킬러들의 도시>(원제는 ‘In Bruges’)다. 감독은 “3명의 주인공에 이어 브루게는 네 번째 주연”이라며 제목에 도시 이름을 넣었을 정도다. 잠시 브루게에 머문 적이 있는 감독은 “왜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영화를 찍지 않는지”의아해했으나 체류 기간이 길어지자 “지루함에 몸둘 바를 몰랐다”고 회상했다. 아름답고 숨 막히게 안온한 이 도시는 스릴러도, 블랙코미디도 아닌 희한한 영화 <킬러들의 도시>에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하며 제 매력을 증명했다.
생명력 넘치는 운하의 도시
태국 방콕_ Bangkok, Thailand
방콕 또한 명실공히 운하 도시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도시답게 고층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섰고, 과거 주요 이동 통로이던 운하는 도로에 자리를 내주었다. 물론 운하 도시로서 면모가 남아 있는 곳도 있다. 방콕 시내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담는사두악 수상 시장이다. 100년 전부터 운하 주변의 수상 가옥 거주자들이 물물교환을 위해 연 장의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진다. 오전 5~6시경부터 11시까지 열리는 수상 시장의 풍경엔 낭만보다 현실이,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나룻배 하나가 상점이다. 열대 과일이나 모자, 쌀국수 등 품목도 다양하다. 동트기 전부터 모이기 시작한 배들로 시장은 금세 북새통을 이룬다. 시내의 교통 체증 못지않은 혼잡이다. 이 번잡함을 잊게 해주는 것은 이곳을 생활 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 그들은 묘기를 부리듯 배끼리 부딪치지 않게 운하를 맴돌며 미소를 건넨다. 운하 위로 질긴 삶의 생명력이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