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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재농원(구들꽃소품분재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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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화분재 스크랩 명자나무 수형의 탐구 III-3. 모양목 수형 명자분재
들꽃 1 추천 1 조회 246 15.11.11 04:35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3. 모양목(模樣木)  명자분재

 

명자나무는 줄기를 굵히기가 쉽지 않은 수종이어서 한 줄기의 모양목으로 배양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송백분재나 상엽분재처럼 규범적 모양목은 찾기 어렵고화사한 꽃의 감상을 위해 가지의 수를 늘리고 또 배치에도 어느 정도 자유로움을 허용하는 화과목형 모양목 수형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는 모양목수형을 찾아 보기 어려우나 일본에서는 아주 드물지는 않다. 먼저 모양목 수형에 가까운 한국의 명자분재를 살펴본다.

 

  

 

동양금 소장자 이상욱                      

 

 

 

명자 울산전

 

원줄기에 의한 것이든 뿌리의 배양에 의한 것이든 모양목형 명자는 한국에서 매우 희귀한 것이다. 시간을 두고 시도할 필요가 있는 영역이고, 또 정통적 모양목은 아니라 하더라도 가는줄기에 의한 모양목 수형을 시도하여 세월에 의한 배양을 기다리는 자세도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첫째 분재는 가늚새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원줄기에 의한 것이든 뿌리를 활용한 것이든 명자나무에서 가늚새를 갖춘 것은 찾기 쉽지 않다) 줄기 하부의 구멍 뚫린 부분에 이음매가 있어(이 부분까지는 뿌리를 끌어올린 것일 것이다) 모양목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고 1차가지들은 화목의 모양목 수형으로 배열되어 있다. 줄기 왼쪽의 가늚새와1차가지의 가늚새를 보완하고 줄기의 흐름과 근장부의 뿌리형상에 호응하도록 1차가지의 곡과 흐름을 살린다면 아래 일본 명자분재가 보여주는 예미(藝美)를 가진 명자분재가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둘째 명자는 소품에서 살폈던 분재인데 가늚새가 부족하지만 명자 수종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보다는 보다 규범적인 가지 배열에 가깝다.

첫째는 수형의 모양과 개화 때의 모습을 부각하기 위해 유색분을 쓰고 있고 둘째는 점잖은 풍모와 규범적 가지에 걸맞게 붉은 각진 분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 명자분재와 비교해 보면 한국명자분재는 가지의 수와 배열 방식이 다르다. 원경의 노수거목을 표현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일본의 방법을 준용 혹은 모방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본처럼 많은 가지를 달지 않는다. 노수거목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꼭 많은 가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많은 가지를 갖는 것은 (방법론의 견지에서 보면) 노수거목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주장의 타당성은 문인목의 창작 방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적은 수의 가지로 노수거목감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문인목의 창작 경험을 가지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역으로 적은 수의 가지로 노수거목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문인목 창작의 본질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선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일본의 모양목 명자분재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규범적 모양목에 가까운 분재들부터 들어본다.

 

동양금 국풍전 71(97)                 

 

동양금 국풍전 77(2003)

 

둘 다 줄기부에 틈새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뿌리를 활용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 뿌리를 활용한다 해도 모양목형 명자 분재는 드물다. 원줄기에 의한 명자분재는 더더욱 쉽지 않은 것이다. 두 분재 모두 일본의 심사기준인 태간의 박력과 가지풀림이 좋은 나무들에 해당한다. 명자답다기보다는 멀리서 바라본 고목의 형상을 표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노수거목형 고목감, 이것이 명자나무로 표출하고자 하는 일본적 미의식의 하나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늚새를 가진 굵은 줄기가 필요하며 좋은 그루솟음새가 필요하다. 또 줄기를 돌아가며 펼쳐지는 역지(役枝)들도 필요하다.

아마도 한국의 나무라면 상엽분재에서도 가지의 수와 배치는 첫째 정도를 넘어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분재는 둘째 작품의 가지배치를 정제된 가지 배치라 생각한다. 그냥 기다려서 아무렇게나 받은 가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기본 역지에 곁가지들을 겹치거나 2,3차지를 겹치고 걸침에 의해서 역지에서 부풀어나간 형상을 취하여 고목감을 더하고자 한 것이다. 첫째보다 고목감은 더하지만 전체로서의 미감은 한국인의 미의식으로는 감소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이 화목분재를 문인목 창작의식을 원용하여 노수거목을 빚어낸다면 어떤 결과가 될 까 궁금해진다.

 

규범적 모양목을 만들기 어려우니만큼 앞으로 다간형 명자분재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일본은 모양목형을 만들기 위해 줄기를 집약하는 방법을 취한다. 즉 주간의 줄기에 가까운 땅줄기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동양금 국풍전 75(2001)          

 

동양금 국풍전 75(2001)

 

위 경우도 주간 부위의 땅줄기를 살려 1,2차 가지의 역할을 하면서 나무에 거목감을 부여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모양목 수형을 시도하는 경우, 줄기를 집약하여 취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알 수 있다. 규범적 모양목에서는 땅줄기는 제거해야 하고 다간에서는 줄기간의 적절한 간격이 필요하다는 일반적 수형 원리와 역방향에 선다. 화과목수형으로(때로 상엽분재에서도) 모양목 수형을 시도할 때는 가지의 겹침이나 병렬, 맞가지 등도 기피하지 않는다.

참고로 둘째 작품에 대한 심사평을 살펴본다. “주간의 굵음에 동반한 고만고만한 줄기들이 굵고 가늘고 길고 짧음에 밸런스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가지풀림도 순박함이 있다.” 인위적인 기교를 부리지 않은 나무라는 뜻이겠다.

 

  일본의 화과목 분재는 많은 가지와 잦고 짧은 곡으로 고목감과 더불어 <유현(幽玄)의 미()>를 표출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다음 장()부터의 자료 사진 참조 바람-다음의 경우는 그 방식과 느낌이 현격히 다르다. 

 

 

겨울명자 국풍79(2005)

 

 

동양금 국풍79(2005)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수형이다. 일본에서도 쉬 볼 수 없는 수형이다.

짧은 곡을 잦게 많이 넣는 일본의 일반적 화목 수형과는 달리 직선적 흐름으로 가지를 받아내었기 때문에 다른 일반 화목 수형과는 달리 줄기와 가지가 예각적 날카로움과 당당한 풍모를 가지고 있다.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렇다 송백수형을 원용(援用)한 것이다. 가지의 수와 배치는 화과목임을 염두한 것이나, 직선적 가지펼침은 명자 수종의 생리를 반영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송백수형의 기상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철쭉에 송백수형을 적용하여 감상하듯이 명자분재에 송백수형의 적용을 시도해 본 것이다.

주간의 굵기와 곡이 명자 모양목으로는 드물 만큼 굵고, 명자 특유의 가지뻗침과 분방성을 적절히 통제하면서 송백 유형으로 가지를 받고 있어, 철쭉과는 또다른 맛으로 송백류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둘째 작품은 보다 규범적 방식으로 가지를 받아 첫째 작품보다 더욱 송백류의 느낌을 준다. 취향에 따라서는 철쭉의 경우만큼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둘 다 줄기 하부의 1/3~1/4부터가 실제 줄기를 굵힌 것이니 원줄기만으로 명자나무를 단간의 노수거목형 모양목으로 굵히기가 어려움을 잘 알 수 있다.

 

다음의 명자분재는 위 두 명자분재와 달리 일본의 일반적 화목수형에 가깝다.

 

 

   일본 명자 국풍전 74회 출품작

 

이 명자분재는 자간(子幹)을 가지고 있는 모양목 수형이다.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굵기를 가진 분재수이다. 분토 표면으로부터 약 1/3까지가 역시 뿌리였던 부분이나 그 위는 실제 줄기를 굵힌 것이다. 일본에서도 줄기를 굵힌 모양목은 드물다고 한다.

이 명자분재는 바로 위에서 본 일본 명자분재의 정서와는 상당히 다르다, 다소 절제되긴 했어도 가지의 수와 곡에 있어서 일본 화목분재의 일반적 방식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명자나무로서의 느낌은 줄기부에서만 느껴진다. 줄기의 선은 단순하고 강한데 반해 가지에는 섬세한 수공이 많이 가해지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을 준다.

일본 명자 분재 역시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역시 2,3차지는 별로 없고 명자의 가는 가지를 밀생시켜 굵은 가지와 교차시키거나 겹쳐서 2,3차지인 듯한 착시효과를 노리고 있다. 잔가지가 잘 되지 않는 명자의 배양에서 취해 볼만한 보완책이다.

 

다음은 귀한 모양목 수형으인데도 가장 일반적인 수형인 포기자람 수형을 취한 사례를 살피기로 한다.

 

    동양금 국풍 74(2000)

 

작가로 하여금 모양목 소재를 가지고 진귀할 뿐만 아니라 작가적 역량을 드러내기에 훨씬유리한 모양목수형을 포기하고 포기자람수형을 취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높이는 45cm로 높이만으로 따지면 중품 모양목 수형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줄기의 가늘어짐이  너무 급격해서 모양목 수형으로는 그 약점을 극복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줄기의 왼쪽 측면이 굽음도 없이 거의 직선적 경사면이라는 점도 약점이다. 심사평은 가늚새가 좋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것은 현재의 수형으로 볼 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필자라면 단순히 포기자람수형으로 포기하고 돌아서기보다는, 굵은 1차가지들을 기본으로 거기에 가는 가지들을 겹치고 모으고, 또 수형 사이에 여백을 두어가면서 줄기도 살리고 그에 부응하게가지 굵기도 살려가면서 시각적으로 뚜렷한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시도해 보고 싶다.

 

다음에 제시하는 일본의 명자분재는 한국분재가 수형에 대한 관습적 사고를 벗어나기 위해 마음에 유념해 두어야 할 사례이다. 넓은 의미에서 모양목 수형이라 할 것이나, 모양목 수형이라기보다는 작자의 미감을 자유로이 발휘하는 창작수형이라 함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일본 동양금 모양목형                   

 

일본 동양금 모양목형

 

둘 다 통념을 벗어난 수형으로 화목의 조형미와 아울러 꽃을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관습이나 전범을 벗어나 소재의 형태와 수종의 생리에 바탕한 자유로운 상상력과 더불어 창조성과 독자적 미의식, 그리고 작가로서의 완숙한 기량이 바탕이 된 수형이다. 영역이다. 일본에서는 매화나 벚꽃에서 자유로운 여러 다양한 화목 수형을 볼 수 있어 생소하지 않은 양식이나 한국에서는 이를 구사한 사례를 볼 수 없다.

두 분재 창작를 창작한 작가의 사고과정을 추정해 본다.

첫번째 경우는 명자로는 보기 드문 상당한 굵기를 가진 소재이나 하부와 중간의 줄기의 가늚새에 문제가 있어 규범적 모양목 수형으로 가기에는 문제가 있다. 쉽게 생각한다면 줄기를 왼쪽으로 눕혀 우산형으로 가지를 펼치고 오른쪽 하부에서 가는 줄기 몇을 짧게 붙여두는 방법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많은 명자 수형 중의 하나가 된다. 화목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개성적으로 살리는 방법은 없을 것인가. 줄기의 굵기와 무게감을 살리면서 약점을 강점으로 만드는 방식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굵은 하부를 살려야 할 것이고 줄기의 가늚새가 가진 문제점이 문제가 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굵은 하부는 가는 가지를 흩어 펼치면 꽃나무다운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주간 또한  이에 호응하여 여백을 펼치되 꽃나무다운 흐름과 굽음새를 가진 가지들로 공간을 채우고 비우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

둘째 작품에서는 첫째 작품부터 깃들기 시작했던 한가로운 풍취가 완연히 살아나고 있다. 사진을 확대해 보면 포기자람수형의 명자에서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한가로운 풍취가 가능함을 실증하고 있다. 한국적 선미(線美)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생동하는 꽃빛깔을 줄기의 고목감과 더불어 여백의 운치가 잘 받아내고 있다. 일본분재의 폭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 창작의 사고 과정은 어떤 것일까?

줄기 자체의 내곡도 훌륭하고 가늚새도 좋으며 고목감이 완연한 소재인데, 줄기라기보다는 그루터기의 형상이니 소위 고목생화(枯木生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알맞다. 그루터기의 길이가 짧으니 어차피 많은 가지를 달 수는 없고 볼만한 그루터기를 부각하기 위해서, 또 고목생화의 이미지이니만큼 성글게 가지를 받는 것이 좋겠다. 당연히 그루터기의 하부도 가지를 많이 받으면 안 되다. 명자다운 가지의 흐름과 펼침은 노목인 화목의 가지를 받는 방식이면 될 것이다. 명자 가지의 팽팽함이 고목의 그루터기와 잘 대비되는군.

소재를 보는 눈을 배울 수 있다. 사람을 훈육(訓育)할 때도 이와 같이 한다면 그것이 곧 강희안 선생이 말하는 양생(養生)의 도()가 아닐까.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시도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전범(典範)이 없는 영역이기에 한국과 일본의 미의식의 차이가 생생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둘째의 경우는 특히 매화 수형에서 참조할 만하다.

 

이와 유사한 모습을 가진 한국 분재 하나를 살펴본다..

 부산 향록회 2007

 

소재는 위 경우보다 못하지만 분재란 한편으로 소재를 가다듬어 가는 마음이기에 1차적으로 소재란 마음의 벗이 될 수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수형은 창작 의도가 위 둘째의 경우와 유사한데, 저마다의 취향이 다름을 받아들이면서 이런 두 가지 방식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째는 줄기 상부의 흐름이 왼쪽으로 향하고 있으므로 줄기를 왼쪽으로 좀더 기울이면서 오른쪽을 단축하여 좌우 대칭을 피한다. 줄기의 흐름을 반영하는 굵은 가지를 몇 두어서 상부에서도 개성을 모색해 보는 방식이다.

  둘째는 다음의 중국 분재수를 참조하는 방식이다. 이를 참조하되 여기에 자신의 개성이나 특이성을 노력을 더하여 이 명자 분재에 독자적 존재감을 부여하고 싶다.

 

중국 영남파 피라칸사 기운줄기.

 

필자는 명자분재에서도 다른 수종의 문재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세간 분재에 대한 관찰과  학습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이미 그 필요를 <2. 문인목(文人木)  명자분재? 한 점의 수묵화와 같은 아름다움>에서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이상에서 살핀 바, 좋은 나무란 작가의 고민의 내용이 보이고 그 고민이 해소되는 과정이 보이는 나무임을 깨닫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소재라 할지라도 고민이나 고심이 없이 기술만 보이는 나무는 무난한 나무, 혹은 취미나 도락(道樂)의 대상에 머무는 나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예술에서나 좋은 작품은 작가의 해석적 능력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기량(技倆)을 머금고 있다. 분재에서라면 그것은 소재의 가능성, 소재가 살아온 환경과 그 소재가 표출할 환경, 그 분재가 인간에게 전달할 정서적, 심미적, 인격적 의미,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분재가 가질 역사적 의미와 맥락, 기존 분재수형과의 연속성이나 불연속성(독자성) 등에 대한 작가의 해석적 능력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해석적 능력을 거치지 않은 분재작품은 기술의 단순한 산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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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11.11 10:54

    첫댓글 아주 좋아요.

  • 작성자 15.11.12 10:15

    저렇게 만들어보려고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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