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인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부부가 아픔을 딛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거액의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헌금봉투에 적힌 감사의 내용은 "좋은 아들을 20년간 우리 곁에 두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영혼을 받아 주심을 감사합니다"라는 글귀였습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도 저들처럼 감사헌금을 드립시다."라고 하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아니, 우리 애는 아직 살아 있잖아요." 이때 아내가 "바로 그것 때문에 감사하자는 것이요. 우리 아들의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는 거예요" 남편은 이같은 부인의 말에 동의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아버지시여,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거기에 더욱 귀한 것 한 가지를 더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감사의 깨달음 그것은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할 수 있음으로 삶의 새로운 차원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왜 불행하게 삽니까? 그것은 감사하는 삶을 잊고 있거나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많은 것을 가졌어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행복이 없다." 고 했습니다.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십시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감사의 생활로 살아가십시오. 삶이 즐거울 것입니다. 감사의 생활로 수고해 보십시오. 피곤함과 고달픔이 사라지고 보람과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감사로 역경과 고난을 받아드려 보십시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사랑을 발견할 것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삶에도 절대적입니다. 그러므로 '스트라잇'이란 분은 "음식에 소금이 맛을 주는 것처럼 감사는 영적 생활에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신앙의 삶에 감사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면서 아울러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고 했고, 찬양하되 감사함으로 하라(골 3:16)고 했습니다. 또한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고 일하되 하나님께 감사하라(골 3:17)고 했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되 감사함으로 깨어 기도하라(골 4:2)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고 까지 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신앙의 삶은 감사와 함께 하는 것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벌써 11월 중반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 해의 고개턱을 지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나고 보면 참 다사다난하고 힘든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리 문제가 많은지 산넘어 산인지 계속적으로 안팎으로 문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이처럼 문제를 풀어 가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화를 냅니다. 도대체 이게 뭐냐고 현실을 비판하며 짜증을 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인생을 큰 바다를 떠다니는 배와 같아서 잘 가다가도 생각지 않을 때 풍랑이 몰아치고 배가 흔들립니다. 그런데 옛날 배를 돛배가 많아서 풍랑이 불어줘야 배가 목적지를 향해 잘 갈 수 있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이 풍랑이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문제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그 문제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 바울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생활은 감사하되 넘치는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넘치는 감사의 생활을 한다는 것은 신앙 안에서 풍요의 삶을 살고 있음을 말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영적 생활을 풍성하게 해 주는 요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감사하되 무엇을 감사하겠습니까?
1.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6,7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감사해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가 주였습니다. 내 멋대로 살았고 내 고집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나의 왕국을 만들어 가려고 힘썼습니다. 그러나 나의 왕국은 실패작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무슨 일을 계획해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내가 길을 계획할지라도 내 걸음을 인도하실 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내가 그분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입니다. 곧 이 말은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인데, 이 말씀 속에는 몇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메시야이십니다. 나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주로 받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넘치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생명을 받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뿐 만 아니라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인이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주권 앞에서 절대 복종하고 충성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이제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내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 뜻대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이렇게 찬송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감사합니다.
또 예수님은 생명으로 이 땅에는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우리 안에 생명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요일 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예수님이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죽으면 육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도 교만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질을 알면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주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예수만이 나의 소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 분을 믿게 되고, 그 분은 나의 주님으로 받았음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음을 감사하십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생명의 사람이 되었음을 감사하십시오. 그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감사하시되 넘치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감격하며 더욱 크게 감사하는 삶을 이루십시오.
2. 믿음에 굳게 서게 해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설 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의 믿음은 오랜 신앙생활속에서 자라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면서 그 말씀이 내 생각을 사로잡고 그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할 때 믿음이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생각위에 우리의 믿음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한센병 권위자인 '폴 브랜드' 박사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의 한센병환자 재활원의 원장입니다. 인도에서 20년, 미국에서 30년, 50년을 한센병치료를 위해 헌신한 분입니다. 그가 출장차 미국을 떠나 영국에 도착하여 여러 지방에서 업무를 본 뒤에 기차를 타고 여러 시간을 여행해서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그 날 밤, 그가 호텔에서 옷을 갈아 입고 양말 한 짝을 벗는 중에 갑자기 발 뒤꿈치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센병의 권위자인 그이기에 이 일은 그냥 넘길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도에서 수 많은 한센병 환자들을 시술하고, 피 고름을 만지면서 치료해 본 경험이 많은 그는 순간적으로 의심이 스쳐갔습니다. 기계적으로 일어나서 날카로운 핀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복숭아 뼈 아래 부분을 찔러 보았습니다. 아무런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핀을 한 번 더 깊이 찔러 봤습니다. 찔린 부분에서 피가 나오는데도 감각이 없었습니다. 한센병에 감염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날 밤 '브랜드' 박사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도 한센병 환자로구나. 한센병 환자로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두려운 마음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격리되어서 살아가야 할 버림받고 외로운 자신의 인생의 말로를 그려 보았습니다. 가족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고통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습니다.
밤은 지나고 아침은 오지만, '브랜드' 박사의 마음 속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다시 한 번 더 자기의 발을 찔러 보았습니다. 그순간 너무나 아파서 “악!”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파서 감사합니다. 아파도 감사합니다. 아프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픔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고 보니 어제 장시간 기차 여행을 하면서 좁은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다 보니, 신경의 한 부분이 눌려서 호텔의 방에 올 때까지 그 마비가 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브랜드' 박사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몸 아픔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렇게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실수로 손가락을 베일 때에도 감사, 찔려도 감사, 수술하다 손을 베어도 감사, 넘어져도 감사, 발을 잘 못 디뎌서 발목이 삐끗하여 정말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와도 감사, 모든 고통에 감사하고 신경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지금 많이 아프신가요? 여기 저기 아프고 쑤시고 여러 고통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으셨나요?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음에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자체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요, 어떤 면에서는 건강하다는 표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샘가에서 욥기를 묵상하면서 은혜를 받는 것처럼 그 고통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고통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아픔이라는 포장지를 벗겨 내면 그 속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의 선물이 담겨 있으므로 '아픔은 축복'입니다.
오늘 아침 눈을 떠서 공기를 마시고, 누군가의 수고로 받은 고마움, 작은 일 하나하나에 감사합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 있는 성도의 특징인 것입니다. 말씀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변함이 없는 순금과 같이 우리의 믿음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게 하심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넘치는 감사를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넘치는 감사의 삶을 주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넘치게 할수록 주안에 사는 복된 삶과 굳건한 믿음의 삶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넘치는 감사는 더욱 많은 풍요의 삶을 성취하게 합니다. 넘치는 감사의 삶은 보다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가게 합니다. 넘치는 감사는 믿음을 더욱 큰 믿음이 되게 하고 더욱 깊고 넓은 사랑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소망을 더욱 크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게 해주셨음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텔런트 김혜자권사님이 서울 남부교도소에 찾아가 400여명 수형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면서 그들에게 감사 노트를 써보라고 권했습니다. 김권사님은 간증하면서 "1년 반 동안 감사노트에 1000가지 감사한 일을 적었습니다. 다 쓰고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달라져 있더라."고 말했습니다. 강연한 후 김권사님은 남부교도소의 수형자들에게 감사 노트 1000권이 선물했습니다.
2007년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장모(41)씨는 툭하면 건의사항을 올려 교도관들 사이에서 골칫덩입니다. 장기수이다 보니 그동안 가 본 교도소도 많아 이래저래 비교하며 투정이었습니다. "국이 좀 싱겁다, 빨래하기가 불편하다, 너무 덥다고 하다가 또 춥다"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감사 노트를 받은 장씨는 "내가 감사할 게 어디 있느냐. 지금 날 놀리는 거냐!"며 따졌습니다.
"그러지 말고 한 개만 써보라"는 동료의 말에 장씨는 노트를 받기는 했습니다. 처음엔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몇 개 적지 못했다던 장씨는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쓴 게 '오늘 주임이 날 수형번호가 아니라 '○○아'라고 내 이름을 불러줘서 감사'였습니다. 써놓고 자꾸 읽어 보니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장씨의 눈엔 감사할 거리가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20개 넘게 적은 날도 있습니다.
장씨는 "밤에 누웠는데 창 밖에 둥근 달이 떠 있었습니다. 작은 창인데 달이 딱 거기로 온 겁니다. 얼른 일어나서 '창문 한 귀퉁이로 달을 볼 수 있어 감사하다.'고 쓰고 잤다"고 말했습니다. 바람피우고, 매일 속상하게 하기만 했던 제게 편지를 보내주는 아내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제 삶을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갈망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서울 남부교도소에 수감된 이모(56)씨가 '감사 노트'에 적은 글들입니다. 잘 나가는 증권회사 사장이었던 이씨는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5년째 복역 중입니다. 이씨는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는 생각, 내 삶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괴로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그에게 감사 노트는 '작은 변화'를 가져다 줬습니다.
이씨는 "가끔씩 '그래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모든 것이 사실은 다 감사한 것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흙냄새를 맡고 흙을 밟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매일 밥과 국이 뜨거워서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감사 노트엔 수형자들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검정고시 준비를 하는 박모(33)씨는 지난 4일 '드디어 인수분해 문제를 풀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썼습니다. 3일 뒤엔 '선생님이 역시 ○○씨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풀 수 있는 문제지만 조금 더 빨리 풀어서 칭찬을 받아서 감사합니다.'고 썼습니다.
강모(28)씨는 밥 얘기를 많이 썼습니다. '오늘 점심에 순대가 맛있어서 땡큐!', '오늘 저녁에 고기가 나와서 땡큐!', '영치금 들어와서 사 먹은 크림빵이 맛있어서 땡큐!' 등입니다. 상습폭행으로 3년형을 선고받은 박모(31)씨는 하루 한 개씩 빠짐없이 감사 노트를 씁니다. 하루 한 개지만 쓰기 전에 30분 가까이 고민을 합니다. "감사한 것들을 쓰면서 지난 생활을 돌아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후회와 반성을 합니다. 남 탓만 했는데 내 인생을 처음 진지하게 돌아보게 됐습니다. 남은 형기 동안 꾸준히 쓰면 출소 때는 감사 노트 1000개가 꽉 찰 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어떠하든지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오고 기쁨이 오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엔 환경을 바꾸고 인생을 바꿉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감사할 조건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면, 우리 마음도 상하게 되고 결국에 있는 것도 뺏기게 됩니다. 감사하는 길이 곧 사는 길입니다. 회복하는 길입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길이 됩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감사할 수 없는 무딘 마음으로는 기적을 볼 수 없습니다. 늘 언제 어디서나 우리 주님 품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의 복된 삶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께 감사의 절기를 드릴 때, 향내나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향내란 것은 인간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넘치는 감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자가 될 때, 더욱 풍요로운 삶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내적인 믿음의 외적인 표현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감사가 넘치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더욱 큰 풍요의 삶을 성취하도록 하십니다.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 새 며느리를 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새 며느리가 시집와서 첫 번째 밥을 한 것이 어쩌다가 죽도 밥도 아닌 위는 설익고 중간은 익고 밑은 탄 삼층밥이 되었습니다. 다시 할 수도 없고 탄 냄새가 물씬 코를 찌르는 그 밥을 그대로 담아서 상을 차렸습니다. 밥상 앞에 앉은 장로님이 어이없어 감사기도가 나오지 않아서 부인에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부인도 시어머니로서 가뜩이나 못마땅한 터에 기도가 나올리 없었습니다.
서로 기도를 미루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새 며느리가 당돌하게도 제가 기도 올리겠습니다. 라고 하더니 하나님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가정에 시집와서 부모님들께 음식을 해드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오늘날까지 학교 공부하느라고 밥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아 오늘 처음으로 한 밥이 어쩌다가 죽도 밥도 아닌 삼층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마 제 손으로 밥을 지어 시부모님과 남편을 대접할 수 있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에게 지혜를 주셔서 음식을 맛있게 만들게 하시고, 시부모님께 효부도 되게 하시고, 남편에게 양부가 되며, 태어날 자식에게는 현모가 되게 하시며, 살림도 아름답게 꾸려나가게 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에게는 빛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넘치는 감사의 이 기도를 들은 시부모의 불만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장로님은 내 일생에 이렇게 맛있는 아침밥은 처음 먹어 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이 넘치는 감사로 볼 수 있는 풍성한 삶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함으로 나를 어두운 환경 안에 가두어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서로를 대하지 못할 때, 미워하고 증오하고 저주하면서 관계성을 병들게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함으로 관계성 안에서 간직할 수 있는 무한한 행복의 가능성을 잃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신앙의 사람이 감사할 수 없다면 그 신앙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습니다. 이제 그 안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믿음 위에 굳게 서게 해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 넘치는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눈으로 체험하고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헤아리고 감사하는 것은 또 다른 축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뜻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감사를 넘치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