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윤정(강릉원주대 국문과) 교수의 『세계의 주름과 생성의 시학』(푸른사상 평론선 43). 2024년 11월 29일 간행.
인공지능 시대의 시 쓰기의 고유성, 과잉된 감각적 정보 너머에서 만나는 시적 진리, 도구적 이성의 폭력성에 관한 윤리적 성찰 등을 담고 있다. 김선오, 원성은, 김유태, 조온유, 신달자, 정채원, 정혜영, 안경원, 안태현, 최규환, 고경자, 강릉 지역의 여성시 등을 통해 소통의 담론도 제시하고 있다.
■ 저자 소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UC Berkeley(버클리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머물면서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김기림과 그의 세계』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지형도』 『언어의 진화를 향한 꿈』 『한국 현대시와 구원의 담론』 『문학비평과 시대정신』 『불확정성의 시학』 『기억을 위한 기록의 비평』 『한국 현대시 사상 연구』 『위상시학』 『21세기 한국시의 표정』이 있다.
■ 책머리에 중에서
비평을 할수록 작품과의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작품과의 만남은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작품을 대하면서는 두 실존의 충돌이 빚어진다. 시에 새겨진 작가 의식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비평의 임무라는 생각에 시 속의 마디들을 헤집기에 분주하다. 모든 개체는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 자체로 무한하고 다면적인 차원을 이룬다. 그러한 만큼 그들은 삶의 관계에서 헤아릴 수 없는 복잡성과 다차원을 내포한다. 단독자로서의 개체는 독립적인 자아를 말하는 대신 촘촘한 삶의 그물망 한가운데의 얽힘을 지시할 뿐이다. 그 얽힘은 의식의 엉김과 삶의 혼돈을 예기한다.
■ 책 속으로
시의 갈래를 언급하면서 AI를 들먹이는 까닭은 AI까지 이어져오는 인식의 원리 때문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언어 철학과도 닿아 있다. 직접적인 경험과 무관한 채 오직 정보의 집적 속에서 탄생하는 AI는 랑그에 의한 랑그 내의 존재인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의도한 주체의 해체 이후에 AI가 탄생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한 인간이 감행한 주체 해체의 빈 공간은 인공의 주체가 자리할 여지를 안고 있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주체 해체로, 나아가 AI시대의 주체의 소멸로 이어지는 것이다. (26쪽)
인간의 외부에서 인간을 부정하게 하는 초점자로서의 신이 동일성 철학을 대변하는 것이었다면, 들뢰즈는 이를 거부하고 세계 내의 내재적 사건에 주목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의 실상은 동일자 대신 무수한 차이들과 그들의 반복으로 구성되며 그러한 차이의 반복들이야말로 그 지대를 사건의 지점이자 특이성의 장소로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 속에서 완전무결하게 일치하는 사태가 발생할 리 없는 대신 모든 사건들은 반복될 수 있으되 차별화되어 반복한다는 사실은 세계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자 다양성에 대한 옹호라 할 수 있다. 이를 세계의 주름(pli)이라 일컬었던 들뢰즈는 무한한 반복, 더 정확하게는 무한한 차별적 반복이 발생하는 주름의 지대야말로 사건이 잉태되는 생명의 장소이자 초월적 신의 자리와 구별되는 세계의 내재성의 지점이라 말하였다. (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