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울리지 마라! 농촌이 곧 우리의 탯줄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쌀 수급 안정과 농가소득 안정, 유통구조 선진화 등을 골자로 한 ‘쌀산업 발전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논 면적과 쌀 소비 감소 추이를 감안하여 밥쌀용 재배면적을 2015년까지 70만㏊로 줄여 쌀 산업을 안정시킨다고 했다. 쌀 수급과 가격안정 유지 등을 위해 매년 수확기에 농민이 생산한 양곡의 일부를 사들기고, 농가로부터 매입한 양곡(양식으로 쓰는 곡식)은 군량미나 생활이 어려운 영세민에 대한 구호양곡으로 쓰인다. 시중거래량 부족 등으로 쌀 가격이 갑자기 오를 때에는 정부에서 보관 중인 양곡을 소비자에게 방출해 가격을 조절한다. 이를 양곡관리제도라 하는데 이 제도가 바로 환곡제도다. 환곡(還穀)이란 빈민구제를 목적으로 평년에 양곡을 저장했다가 흉년이나 춘궁기에 빌려주고 추수 후에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가난한 농민을 구제하고 농업의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16세기 중엽 환곡을 회수할 때 모곡(耗穀)이라 하여 10%의 이자를 국가 회계에 편입시키는 제도가 제정되면서 환모(還耗)가 국가 재정을 위한 주요한 기반이 됐다.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르면서 재정이 극도로 어렵게 된 17, 18세기에 이르러 크게 확산됐다. 19세기에는 고리대 제도로 변질될 만큼 폐해도 커서 개혁의 소리가 높아갔지만, 국가 재정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이유 때문에 쉽사리 단행되지 못했다. 그것이 조선 후기의 탐관오리들이 허위장부를 작성하는 번질(反作), 저축해야 할 양곡을 사사로이 대여한 가분(加分), 겨나 돌을 섞어서 한 섬을 두 섬으로 불리는 분석(分石), 창고에 없는데 실물이 있는 듯이 보고하는 허류(虛留) 등의 행동을 일삼아 민란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농민을 구제하고자 시작했던 제도가 농민들의 분노를 일으킨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2017년에 와서는 남아도는 쌀 때문에 문제가 야기된 것이니 이 또한 환곡의 운영에 허실로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쌀값 폭락으로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 환수 거부 사태가 현실화하면서 정부와 농민단체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예전으로 치면 작은 민란의 기미라 할 것이다.
우선지급금은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공공비축미나 시장 격리 곡을 쌀 농가에서 매입할 때 현장에서 미리 지급하는 돈인데, 나중에 정산 절차를 통해 추가 지급하거나 환수해야 한다. 올해는 2005년의 제도 도입 후, 처음으로 농가가 미리 받은 우선지급금의 일부를 반납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환수 거부 운동이 벌어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고지서 발송 이후 보름여가 지난 13일까지 정상적으로 환급된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의 환원 액은 총 197억 원 중 28억7천만 원으로 약 14.6%였다. 대상 농민 수 기준으로는 총 22만 명 중 3만6천923명으로 16.7%만이 절차에 따라 과다 지급된 우선지급금을 반납했다.
이와 같이 반납실적이 저조한 것은 알고 보면 농식품부가 우선지급금 환수에 대한 농민단체의 반발이 거센 점을 감안하여 애초 환급 시한을 못 박지 않은 채 고지서를 발송한 결과 일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만약 환급 시한을 못 박았을 경우 시한 초과에 따른 가산금이 붙을 수 있어 농민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져서 크게 사태가 악화 될 것을 두려워하여 그리 하였을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우선지급금 환수 사태가 처음 있는 일인 만큼 농민들의 정서를 고려해 일부러 환급 시한을 못 박지 않았다"며 "각 지자체와 농협의 협조를 얻어 지속적인 독려를 통한 우선지급금 환급을 유도하겠다"고 부연 설명했다.
우선지급금 환금 사태는 정부가 2005년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 제도를 도입한 뒤 처음으로 지난해 쌀값이 2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폭락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비축미를 쌀 농가에서 매입할 때 적용하는 가격은 수확기인 10~12월 평균 가격인데, 정확한 매입가격은 12월 말이 돼야 확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농민들의 편의를 위해 쌀 매입금을 미리 지급한 뒤 나중에 최종 매입가가 확정되면 정산 절차를 거쳐 돈을 추가로 지급하거나 과지급금을 환급받게 되는 것이다.
과거처럼 매입가가 우선지급금보다 높으면 정부가 농민에게 차액을 추가로 지급하고 우선지급금이 더 높으면 농민으로부터 차액을 돌려받는 제도이다.
지난해의 경우 우선지급금은 8월에 1등급 40㎏ 포대 기준으로 산지 쌀값의 93% 수준인 4만5천원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쌀값이 폭락하면서 실제 매입가격은 나중에 4만4천140원으로 확정됐다. 포대당 860원의 차액이 발생해 농민들 이 이미 받은 돈 가운데 이 차액을 돌려받아야 할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전국적으로 돌려받아야 할 환급금 규모가 197억 원이며, 농가당 8만5천 원가량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당연히 쌀 농가가 과다 지급받은 우선지급금을 환급해야 하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우선지급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서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농민단체인 전농 등은 쌀값이 폭락해 농민 소득이 줄어든 것도 타격인데 이미 지급한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은 정부 정책 실패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고지서 소각투쟁까지 벌이는 등 과격 양상도 보이고 있다.
전농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 실패로 야기된 쌀값 폭락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우선지급금 환급 거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우선지급금은 정산을 전제로 한 가지급금이며, 농가는 매입계약서 서명을 통해 반납금이 생길 경우 환급하기로 이미 서명한 상태"라며 "환급을 거부한다면 우선지급 시스템의 지속적 운용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농식품부가 이리 설명하지만 실로 난감한 처지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나 지자체는 이미 조건 없는 복지 자금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풀고 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바와 같이 서울시나 성남시는 기백만 원의 청년수당을 주고 있으며, 공공근로 현장을 가면빗자루 들고 배회하는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금액을 쏟아 붓고 있다. 그 뿐이랴. 사업이 불확실한 협회니 단체니 연대에도 억만금을 정부와 지자체가 쏟아 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확한 조사나 감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영세민구호사업, 김장김치, 연탄, 노령연금 등등 눈먼 돈이 아무렇게나 흘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우선지급금을 받은 농민이 그 차액을 반납할 의욕을 상실했다면 어찌할 것인가?
미곡을 판매하는 제도가 생긴 이래로 이 나라는 해마다 쌀값이 올랐는데 하필 탄핵 대통령이 나오자 쌀값이 내려서 미리 준 돈을 반납하라니 이것은 정치의 과실에서 생긴 일이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여서 정부는 많지도 않는 일금 197억을 농식품부나 농협의 예비비에서 갹출하여 상쇄시키고 농민의 마음을 위로해 주어야 할 것이다.
제아무리 농민이 줄어들고 농업이 불황이고 식품이 지천으로 널려있어 쌀이 천대 받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정치는 곧 먹을거리, 입을 거리, 누울 곳을 안정시키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대 원칙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본으로 해야 정당이든 정부든 바로 서는 것이니 정부나 정치권은 농정문제의 해결에 국운이 달려 있음을 명심하기 바라는 것이다. 이 사태는 예전으로 치면 곧 환곡의 문제라 할 것이니 특히 대권주자들은 깊은 견해를 가지고 농촌을 돌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농촌은 곧 우리의 탯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