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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문둥병의 정결예식
이 부분은 11장에서 15장까지 연속되는 정결법에 관한 연속으로 13장의 문둥병의 정결법을 다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문둥병자의 정결법(1 -32)과 가옥의 문둥병 (33-53)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도 성결을 강조하는 실물 교훈이며 공동체를 보호하는 위생적 목적도 있다. 여기서 제사장의 역할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부정과 정결 여부를 판단하고 선언하며, 정결 예식을 거행하여 부정한 자가 병이 회복되고 공동체로 회복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변에서 고대 이스라엘은 주변의 고대근동의 이웃 나라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주술과 마법 등을 통해서 질병을 치료하고자 했지만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의심스러운 질병 치료에 매달리지 않았다.
불치의 나병으로 불리어지는 문둥병뿐만 아니라 각종 악성 피부병이나 피부 질환 등도 모두 문둥병으로 간주되었고, 종교적으로 다루어져 정결의식을 거치고 공동체 일원으로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앞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둥병으로 말한 전염병은 반드시 오늘날의 나병이라는 한센씨병(Hansen’s disease)뿐만 아니라 무서운 피부병을 포함해서 그렇게 불렀다. 왜냐하면 옷이나 가죽 또는 건물의 벽에 곰팡이까지도 문둥병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문둥병으로 선고된 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에서 죽은 자로 간주되고 격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소 봉사에서도 제외되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가족과 공동체로 회복되는 것과, 일 주일 후 회막에서 언약 관계의 모든 특권으로 회복되는 정결 제사들 드렸다.
문둥병자의 정결법
1- 9: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문둥 환자의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3 제사장은 진에서 나가서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문둥병 환처가 나았으면 4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명하여 정한 산 새 두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5 제사장은 또 명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6 다른 새는 산대로 취하여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 피를 찍어 7 문둥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산 새는 들에 놓을지며 8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에 들어올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칠일을 거할 것이요 9 칠일만에 그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여기서는 문둥병자가 나았을 때 제사장이 정결하다고 선포하는 의식을 다루고 있다. 환자가 언약 공동체 안으로 회복되는 과정은 공적이고 의식적 선포가 필요했다. 제사장이 진찰하고 나았음을 확인한 뒤 정한 산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창 38;28,30; 수 2:18,21) 그리고 우슬초(hyssop)를 준비 한다.
그런 뒤 생명을 상징하는 흐르는 물에 질그릇을 놓고 산 새 한마리를 질그릇 속에서 잡아 피를 취하고 산 다른 새는 우슬초와 함께 백향목에 홍색실로 묶어 흐르는 물에서 잡은 새의 피에 적셔, 정결함을 받은 자에게 일곱 번 뿌리고, 산 새는 들에 놓아 주었다. 정결함을 받은 자는 그 날로부터 칠일만에 옷을 빨고 몸의 모든 털을 밀었다.
이것들은 상징적인 의미가 풍성한 교훈을 던져 준다. 사용된 두 마리 새는 야생의 새였다. 이것은 속죄의 목적이 아니었다. 피도 물과 희석된 것으로 탈무드에 의하면 1규빗(약 45cm) 가량의 백향목을 담을 정도의 작은 그릇에 담았다. 백향목은 레바논 산으로 소나무의 일종으로 썩지 않고 향기가 나기 때문에 성전이나(왕상 5:6- 10) 가구에 대단히 좋았다(오늘날에는 벌목되어 없음). 이 나무는 죄와 죽음 그리고 부패의 상징인 문둥병의 정결예식에 생명력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우슬초는 담벽이나 바위틈에서 자라는 박하의 일종으로 꽃과 잎에서 향이 나서 백향목과 함께 방부제적 특성이 있어 문둥병자의 정결예식에 사용되었다(민 19:6,18; 시 51:7). 홍색실은 백향목과 우슬초를 묶는 염색된 양털 다발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 사건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창 38:28; 수 2:18).
제사장은 두 마리 새 중 한 마리를 잡았는데 흐르는 물 위의 질그릇 안에서 잡았다. 흐르는 물은 고여 있지 않은 것으로 샘이나 개천의 것을 말하고 생명을 주는 힘을 나타낸다. 죽음과 절망에 대해 생명과 희망을 상징한다.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 흐르는· 물 그리고 새 등을 담고 있는 질그릇은 연약한 그릇으로 신약에는 인간이 진리의 보배를 질그릇에 담고 있다고 한다(고후 4:7). 홍색실과 백향목 가지와 우슬초에 한 마리의 새를 묶어 질그릇 안의 새의 피에 찍어 정결함을 받은 자에게 일곱 번 뿌렸다. 일곱 번이란 완전수로 그 효험이 완전하고 철저함을 상징한다. 산 새는 풀어 해방이 되어 들어 놓았다. 여기서 죽음을 당한 새와 놓임을 받은 산 새는 속죄와 해방을 상징
한다. 죽음을 당한 새는 부분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을 의미하고 살아 해방된 새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그분의 은혜로 죄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을 뜻한다. 정하다는 제사장의 선언이 있어야 부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죽음에 운명된 문둥병자가 치유되고 이것은 상징적으로 피와 물과 관련되어 있다. 한 힌의 피로, 약간의 피만이 문동병자에게 뿌려짐으로서 참된 희생이 드려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정결함을 받은자는 정하다고 선언받은 후 8일 만에 털을 밀고 옷을 빨며, 몸을 씻고 제사를 드리고 공동체 일원으로 회복되었다.
정결제사
10- 20: 10 제 팔일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수양 둘과 일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또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삼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취할 것이요 11 정결케 하는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와 그 물건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12 어린 수양 하나를 취하여 기름 한 록과 아울러 속건제로 드리되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13 그 어린 수양은 거룩한 장소 곧 속죄제와 번제 희생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며 속건 제물은 속죄 제물과 일례로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이는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14 제사장은 그 속건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에 바를 것이요 15 제사장은 또 그 한 록의 기름을 취하여 자기 좌편 손바닥에 따르고 16 우편 손가락으로 좌편 손의 기름을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것을 여호와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요 17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는 자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 곧 속건제 희생의 피 위에바를 것이며 18 오히려 그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바르고 여호와 앞에서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하고 19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그 부정함을 인하여 정결함을 받으려는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 희생을 잡을 것이요 20 제사장은 그 번제와 소제를 단에 드려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정결하리라
문둥병은 치명성과 전염성 그리고 공동체로부터의 단절되어 살아있는 죽은 자로 여겨졌다. 그래서 부정에서부터 정결함을 얻고, 언약 공동체로 회복되는 바 삶의 정상성을 회복하는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로 간주되었다. 그 래 서 희생제사와 피뿌리는 의식과 기름바르는 예식을 거행했다.
정결함을 얻은 자는 어린 숫양을 취해 기름 한 록(0.3리터)과 함께 속건죄로 드리고 수양 하나와 암양 하나 그리고 에바(22리터) 십분의 삼에 기름 섞은 소제물로 속죄제와 번제와 소제를 드렸다. 화목제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하나님께 드려야 할 봉사와 헌신을 드리지 못한 것으로 인해 속건죄가 드려진 것 같다. 완쾌된 문둥병자는 속건죄 희생 제물의 피를 오른쪽 윗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 그리고 발의 엄지가락에 발랐다. 제사장의 위임식 때와 같은 의식인데 (8:24),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손과 발로써 행함을 상징한다. 극적인 변화가 하나님앞에서 이 사람에게 일어나서 이제는 공동체로 회복되고 하나님께 헌신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피를 제단에 드렸듯이 문둥병에서 회복된 자를 제단에 나아갈 수 있게 했다. 또한 비슷하게 희생제물의 기름바름 의식을 거행했는데 이는 제사장 위임식 때의 구별된 관유와는 다른 것으로 먼저 일곱 번 하나님앞에 뿌려 성결하게 했다. 이것으로 피바름 받은 부위에 발랐다. 이것은 위로부터 내리는 성령의 은혜를 힘입는 것을 나타낸다. 나머지 기름은 정결함을 받은 자의 머리에 발라서 하나님과 그 사이에 관계를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풍성히 축복해 주실 것을 의미했다. 회복된 자의 매일 생애의 기쁨을 표현했다(전 9:8; 시 23:5; 104: 15). 그 뒤 제사장은 속죄제와 번제 그리고 번제를 드려 속죄했다. 19-20절에서 속죄한다는 말이 중복되어 나오는 것은 과거의 신체적 부정으로 야기된 모든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되고 모든 죄에서 정결함을 입고 사함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임재의 충만한 축복을 받을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기해야 할 점은 정결규례에서 피부병으로 고통받던 자가 정규 속죄제나 속건제에서처럼 (4-5장) 죄에 대한 자복에 대한 강조점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의 제사는 일반적 인간 죄악성에 대한 속죄였다. 그래서 이러한 자복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는 사실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율법은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어떤 죄를 지은 자로 자동적으로 일치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구약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문둥병에 걸린 몇 경우가 있지만 어떤 심각한 질병을 앓는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특정 잘못에 대한 천벌이라는 속단은 금기이다.
가난한 자를 위한 정결규례
21- 32: 21 그가 가난하여 이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는 흔들어 자기를 속할 속건제를 위하여 어린 수양 하나와 소제를 위하여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일에 기름 섞은 것과 기름 한 록을 취하고 22 그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취하되 하나는 속죄 제물로,하나는 번제물로 삼아 23 제 팔일에 그 결례를 위하여 그것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24 제사장은 속건제 어린 양과 기름 한 록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25 속건제의 어린 양을 잡아서 제사장은 그 속건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우편 손 엄지 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에 바를 것이요 26 제사장은 그 기름을 자기 좌편 손바닥에 따르고 27 우편 손가락으로 좌편 손의 기름을 조금 찍어 여호와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요 28 그 손의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 곧 속건제 희생의 피를 바른곳에 바를 것이며 29 또 그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발라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며 30 그는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하나나 집비둘기 새끼 하나를 드리되 31 곧 그 힘이 미치는 것의 하나는 속죄제로,하나는 소제와 함께 번제로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할지니 32 문둥병 환자로서 그 결례에 힘이 부족한 자의 규례가 이러하니라
여기서는 가난한 자의 정결 예식을 위한 조항이다. 완쾌된 자 중 형편이 여의치 못한 자들을 위한 자비의 조항이다. 하나님의 법에는 모든 인간이 대속의 은총을 누릴 수 있고, 빈부 귀천의 차이가 없이 하나님 앞에 내아가서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을 가르친다. 특히 가장이 문둥병으로 고난을 당했을 경우 나머지 가족들은 격리되어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사는 가족을 공양하는 것만도 엄청난 희생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가장이 그렇게 했을 경우, 설령 그가 정상인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대단히 곤궁한 처지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율법에는 자비의 규정을 언급한다. 너무도 가난하여 정규 정결예물인 어린 수양 하나의 속건제물과 어린 수양 하나의 번제물 그리고 어린 암양 하나의 속죄제물을 바치는 것이 난감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수양 한마리와 고운 가루 1/10 에바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두마리로 앞서 규정된 제물을 대치하여 드릴 수 있었다. 절차는 위의 것과 같다.
가난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막을 수 없다는 것과 속죄의 공로는 드리는 자가 힘에 미치는 대로 드리는 제물의 피 공로에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가난한 자라도 하나님 앞에 어떤 구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비의 은총을 구하는데 있어 어떠한 변명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의 자격은 제물 값의 여하나 제물의 과다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에 의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가옥의 문둥병
33- 53: 3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34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에 너희가 이른 때에 내가 너희 기업의 땅에서 어느 집에 문둥병 색점을 발하게 하거든 35 그 집 주인은 제사장에게 와서 고하기를 무슨 색점이 집에 생겼다 할 것이요 36 제사장은 그 색점을 보러 가기 전에 그 가장 집물에 부정을 면케하기 위하여 명하여 그 집을 비게 한 후에 들어가서 그 집을 볼 지니 37 그 색점을 볼 때에 그 집 벽에 푸르거나 붉은 무늬의 색점이 있어 벽보다 우묵하면 38 제사장은 그 집 문으로 나와 그 집을 칠일 동안 폐쇄하였다가 39 칠일만에 또 와서 살펴볼 것이요 그 색점이 벽에 퍼졌으면 40 그는 명하여 색점 있는 돌을 빼어 성 밖 부정한 곳에 버리게 하고 41 또 집안 사면을 긁게 하고 그 긁은 흙을 성 밖 부정한 곳에 쏟아버리게 할 것이요 42 그들은 다른 돌로 그 돌을 대신하며 다른 흙으로 집에 바를지니라 43 돌을 빼며 집을 긁고 고쳐 바른 후에 색점이 집에 복발하거든 44 제사장은 또 와서 살펴볼 것이요 그 색점이 만일 집에 펴졌으면 악성 문둥병인즉 이는 부정하니 45 그는 그 집을 헐고 돌과 그 재목과 그 집의 모든 흙을 성 밖 부정한 곳으로 내어갈 것이며 46 그 집을 폐쇄한 날 동안에 들어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47 그 집에서 자는 자는 그 옷을 빨 것이요 그 집에서 먹는 자도 그 옷을 빨 것이니라
가옥을 위한 정결식
48 그 집을 고쳐 바른 후에 제사장이 들어가 살펴 보아서 색점이 집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이는 색점이 나은 것이니 제사장은 그 집을 정하다 하고 49 그는 그 집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새 두마리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취하고 50 그 새 하나를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고 51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과 산새를 가져다가 잡은 새의 피와 흐르는 물을 찍어 그 집에 일곱번 뿌릴 것이요 52 그는 새의 피와 흐르는 물과 산새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로 집을 정결케 하고 53 그 산새는 성 밖 들에 놓아 그 집을 위하여 속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결하리라 54 이는 각종 문둥병 환처에 대한 규례니 곧 55 옴과 의복과 가옥의 문둥병과 붓는 것과 피부병과 색점의 57 언제는 부정하고 언제는 정함을 가르치는 것이니 문둥병의 규례가 이러하니라
가옥에 생긴 문둥병 정결규례인데 부분적으로 색점이 생겼을 경우(33-42), 색점이 복발한 경우(43-47) 그리고 집을 고쳐 문둥병 색점이 고쳐졌을 때 (48-53)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가옥은 두 줄 또는 세 줄의 돌 기초 위에 세워진 진흙 벽으로 되어 있었다. 내벽은 종종 모래와 혼합된 석회암으로 철해 있었다. 그래서 방수작용을 하게 했다. 가옥의 경우에는 대부분 곰팡이류와 같다.
일단 색점이 집에 나타나면, 제사장에게 알리고 그는 그 집에 와서 집안을 비게하고 집을 칠일동안 폐쇄한 뒤 다시 검사하여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집안의 가재 도구를 비운 것은 만일의 피해에 대해서 손해를 극소화할 목적이었다. 만약 감염의 부위가 푸르거나 붉고 표면보다 우묵하면 심각한 증상으로 여겼다. 색점 돌을 빼내거나 집안 사면을 긁고 흙과 돌을 성밖 부정한 곳에 쏟아 버렸다. 그리고 다른 돌이나 흙으로 집에 발랐다. 만약 다시 색점이 돋아나면 그 집을 허물어 버렸다.
만약 회복되면 집에 대해서 새 두 마리의 정결 예식을 거행하고 다시 거주할 수 있었다. 가옥은 단지 정결하게 되었기 때문에 어떤 희생 제사(10-31)도 요구되지 않았다. 폐쇄된 기간 동안 집에 거하는 자는 부정하게 되어 옷을 빨았다. 이렇게 해서공동체로부터 정결을 유지하게 했다.
우리는 위의 규정들에서 의복이나 가옥 등 개인의 소유물등을 잘 관리해야함을 보여준다. 만약 그것이 오염되어 있다면, 소유주는 그것을 그 오염을 제거해야 하고, 만약 실패한다면, 그것을 없애버리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오늘날 대량 소비사회에서 어떤 것이라도 그 사용자나 타인 혹은 생태계에 피해를 줄 경우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어떤 윤리적 책임의식을 시사하고 있다.
구속사관
본 장에서 심각한 피부 질환을 가진 자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었다. 문둥병의 치명성 및 죽음 때문에 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일반적 인식은 그러한 사람은 죄인이라고 인식되었다.
율법은 어디에든지 이러한 논리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문둥병으로 격리된 자가 반드시 죄를 지었다는 언급이 없고, 4 5장의 특정 죄를 자복하는 예식이 없는 것을 볼 때 문둥병으로 고난당하는 자와 어떤 특정 죄를 범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금물이다. 정결 예식에서 볼 때 어떤 개인도 회복의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열려진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문둥병이라는 고난의 멍에를 지닌 개인이나 가족에게는 정상적 삶에로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문둥병이라는 특수한 질병으로 개입하신 사례가 있다: 미리암(민 12:1-15), 게하시(왕하5:26-27), 그리고 웃시야(대하 26:16- 21) 등이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심각한 피부질환(문둥병)은 천벌이라는 언식이 생기게 되었다. 여기서 문둥병 등의 질병을 앓은 자는 어떤 무서운 죄를 인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벌을 받고 있다는 편견이 일반화된다.
어떤 고범죄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종종 개인을 벌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욥의 경우에서 처럼 어떤 질병을 앓는 자가 반드시 어떤 죄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벌을 받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간의 안목으로는 진실을 잘 알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우리는 용기에서 확연히 볼 수 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이 이러한 논증을 입증하고 있다. 다양한 질병, 특히 문둥병자들을 치유하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볼 수 있다. 언약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 살게 했던 장벽을 허시고 레위기의 정결법전의 규정들을 극복하시면서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주시는 모습을 보고서 우리는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고 거기서 마리아가 그분을 기름부은 사례에서 고난받는 자들을 영접하시고 그들에게 하늘 왕국의 시민으로 그들을 취급하시는 자애로우신 주님을 보게 된다(마 11:6; 26:6; 막 14:3; 눅 7:22).
문둥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모본에서 레위기 법에 의하면 부정에 접하는 자는 부정하게 되어서 반드시 그러한 자들을 피해야 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의 부정을-자신이 친히 젊어지시고(마 8:17; 벧전 2:24) 그들에게 건강과 치유, 구원을 베푸셨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임했고 믿음으로 그분에게 나오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레위기 법의 그 법정신을 폐하시지는 않으셨다(마 8:4; 눅 17:14).
그래서 신약의 신앙 공동체는 위협적인 질병에 시달리는 이웃을 볼 때에는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당위를 보게 된다. 고난당하는 자를 동정과 관심으로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자들도 통일한 주님의 대속적 은총과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적용
1. 사람, 의복, 또는 가옥의 정결 의식에서 건전성은 거룩성을 상징하며 이것을 훼손하는 것은 부정과 공동체로부터의 격리를 가져왔다.
2. 레위기 정결법에서 고난당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도움을 기다리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인류의 구세주 예수님께서 인간이 절망 가운데서 고대했던 도움을 주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3. 정결법전에서 의복과 가옥 등에서도 엄격한 개인의 소유가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부단한 주의를 기울인 면올 볼 수 있다.
4. 개인의 정결 의식에서 죽음과 절망에서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의식들을 통해 오늘날의 성도들은 속해있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직장에서 희망의 상징이 되어 그리스도의 구원과 은총을 나누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5. 속죄의 은총에서는 개인의 형편과 처지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사랑을 볼 수 있다.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속죄 희생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고 하늘 축복의 시여자들이 될 수 있다.
6. 오늘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병에 걸려 고생하는 자들에게 그 병이 천벌이라는 인식을 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은총과 사죄의 가능성을 깊이 신뢰하는 믿음을 갖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것이 주님이 이룩해 놓으신 십자가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마 8:17).
7. 교회는 고난당하는 이웃을 위한 적극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도와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