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140]白洲백주 李明漢-白馬江
白馬江
- 白洲 李明漢 1595-1645
何處高臺何處樓(하처고대하처루)
고대는 어디 있고 누각은 어디 있는고?
暮山疊疊水西流(모산첩첩수서류)
저문 산 첩첩하고 물은 서쪽으로 흐르도다.
龍亡花落他時事(용망화락타시사)
용이 가고 꽃 떨어진 것은 옛날 일
漫有浮生不盡愁(만유부생부진수)
부질없는 뜬 인생 시름도 그지없다.
何處高臺하처고대= 높은대는 어느곳에
何處樓하처루=누각은 어느곳에?
暮山千疊모산천첩= 저녁산 천겹인데
水西流수서류=강물 서쪽으로 흐른다.
龍亡花落용망화락= 용이 없어지고 꽃 떨어진것
他時事타시사=옛날 일인데
謾有浮生만유부생=부질없이 뜬 인생
不盡愁부진수=시름이 끝이 없네.
원문=白洲集卷之二 / 七言絶句
白馬江。示李仲深 穆。
日出前江曉色分。宿雲沙際有餘痕。
荻花叢裏孤檣立。不是漁村是酒村。
何處高臺何處樓。暮山千疊水西流。
龍亡花落他時事。謾有浮生不盡愁。
九秋爲客滯江潭。弊盡征南幕裏衫。
千里歸來佳節過。晩楓飄盡落花巖
이명한李明漢
천장(天章), 백주(白洲), 문정(文靖)
조선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자는 천장(天章), 호는 백주(白洲)이다.
증 영의정 이순장(李順長)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삼등현령(三登縣令) 이계(李𡹘)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이정구(李廷龜)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권극지(權克智)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0년(광해군 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16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 ·
전적 · 공조좌랑에 이르렀다. 앞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이 일어났을 때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병조좌랑 · 교리 등을 지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에 제수되었다.
이어 이조좌랑이 되어 어사로 관동(關東)에 나가 서리들의 정치와 백성들의 폐해를 살폈다.
다시 옥당(玉堂)에서 근무하다가 이조로 옮겨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이곳에서 승문원제술관(承文院製述官) ·
한학교수(漢學敎授) · 교리 · 사국수찬(史局修撰) 등을 겸대하다가 이조정랑이 되었다.
이괄(李适)의 난 때 왕을 공주로 모시고 가서 이식(李植)과 함께 팔도에 보내는 교서를 지었다.
이어 응교 · 사간에 승진된 뒤 검상(檢詳) · 사인(舍人) · 집의 · 이조참의로 승진했다.
다시 사가독서를 허락받고 호당에 들어갔고 승문원부제조가 되었다.
그 뒤 병조참의 · 우승지 · 형조참의 · 좌승지 · 남양부사 · 대사간 · 대사성 ·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639년(인조 17) 도승지 등을 거쳐 1641년 한성부우윤 · 대사헌이 되었다.
이 해 도승지로서 홍문관 · 예문관의 양관 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643년 이경여(李敬輿) · 신익성(申翊聖) 등과 함께 척화파로 지목되어
심양(瀋陽)에 잡혀가 억류되었다.
이듬 해 세자이사(世子貳師)가 되어 심양에 가서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모시고 왔다.
1645년에 명나라와 밀통한 자문(咨文)을 썼다 하여 다시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풀려나와
예조판서가 되었다.
아버지 이정구, 아들 이일상(李一相)과 더불어 3대가 대제학을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병자호란 때 심양까지 잡혀갔던 의분을 노래한 시조 6수가 전한다.
저서로 『백주집』 20권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