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선
9월 5일 시골집 뜨락 자갈 바닥에 엎어져 다치고 보니 오른팔을 들 수 없었다. 당장 옷을 갈아입으려고 해도 왼쪽 팔은 끼웠는데 오른쪽 팔은 들 수 없어 ‘눈을 찔끔 감고’ 팔을 들어 억지로 끼우려면 눈물이 찔끔 났다. 게다가 워드 작업 할 일이 태산같이 밀려 있는데, 왼손으로 오른손을 들어 컴퓨터 자판기 마우스 위에 올려놓아야 겨우 뜨덤뜨덤 자판을 두드릴 형편이 되고 보니 ‘아이구, 이 일을 어찌할꼬?’ 하는 말이 몸에서 저절로 나왔다. 그때 알았다. ‘눈을 질끈 감고.’ ‘이 일을 어찌할꼬?’ 하는 말은 몸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사실을.
9월 16일이 추석이라 서울 갔더니 모인 친척들이 모두 병원에 가보라며 한마디씩 했다. 대구 내려와 병원에 갔더니 50만 원 드는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초음파도 아니고, X-ray도 아니고 다짜고짜 고비용의 MRI를 찍어보라니. 부산 사는 조카 의사 동한이에게 문자를 넣어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차차 나아지고 있다니 좀 더 기다려보시다가 차도가 없으면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겠어요.’했다. 그럭저럭 지내다 보니 김장철이 와도 팔이 낫지 않았다. 12월 1일에 조카에게 다시 문자를 넣었더니 대구 굳센병원 정형외과 원장이 친구라면서 소개해 주어 그 병원을 찾아갔다. 초음파를 먼저 찍고, X-ray를 찍었다. 검사 결과, 어깨 부분의 뼈 한 조각이 깨어졌다가 저절로 붙었고, 조금 떨어진 조각도 한 개 따로 놀고 있단다. 2mm 정도의 석회도 보이고 오십견 증세도 보이고 회전 근개도 한줄 끊어져 있다며 운동치료를 겸해보자고 했다. 수납에 가서 진료비를 내었는데, 197,600원, 일주일 분 약값은 6,100원이었다. 약을 먹으며 운동을 해보니 오른팔도 차차 위로 올려지며 낫고 있어 김장 준비를 했다.
그런데 대구 사는 시누이가 김장 김치를 담아왔다. 우리도 20kg 39,800원짜리 절임 배추를 주문해 두었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김치 두 통을 담아왔다. 막내 시동생은 농사지은 햅쌀 한 가마니를 보내왔고. 바로 밑의 시동생 부부는 김장 김치가 넘친다고 해도 복어국 얼린 것, 사과 한 상자, 파김치, 무김치, 갓김치를 고루 담아 와 냉장고에 넣어주고 갔다. 이렇게 나는 극성스런 시집 식구들에게 평생 당하며 살았다. 언젠가, 허리를 다쳤을 때도, 세 시누이가 모여 김장 김치 담고, 그것을 시동생이 가져와서 우리 집 냉장고에까지 넣어주고 간 기억이 새록새록 한데 또 이렇게 퍼다 주다니….
문득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고꾸라진 허리로 드나드는 자식들에게 한 움큼이라도 더 주고 싶어 하던 시어머니의 심성을 형제들이보고 자라서일까? 시어머님이 그리워진다. 자식들이나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존경하게 하는 것은, 생전에 어느 한 자식이나 며느리를 흉본 일이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존중해주며 말 한마디 헛되게 하신 적이 없으니 친정어머님처럼 흉허물없이 따르고 존경해 왔다.
시어머니를 떠올리다 보니 12월 12일 시어머니 기일이 찬스로 다가왔다. 그날은 형제들이 서울 형님 댁에 다 모이니, 그날, 자연스럽게 축하 잔치를 벌여야지.
마침, 당일은 막내 시동생 부부의 결혼기념일이고, 며칠 뒤에는 서울 아주버님 부부의 금혼식 날, 그 뒷날은 남편의 생일, 바로 밑의 시동생 부부의 결혼기념일도 그날 챙기면 되겠다.
“좋지, 좋아!”
남편도 맞장구를 치며 현수막으로 쓸 종이를 펼쳐 글씨를 즐겁게 쓰는데 ‘아참!’ 내가 중단을 시켰다. 그날이 평일인데 동서들이 못 오면 결혼기념일 행사는 의미가 없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있지. 점심때는 모두 모일 수 있잖아. 우리가 영주로 가서 점심때 모이면 되지.”
“앗싸! 그게 좋겠어요.”
우리가 누군가? 이벤트 부부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급하게 계획을 수정했다. 기일 전에 두 시동생 부부가 사는 영주로 출장을 가면 깔끔한 잔치가 되는 것을. 영주에 점심 식사할 식당을 잡아두라 부탁하고, 우리 부부는 출장 이벤트를 하려고 달려갔다. 리마인드 웨딩 촬영할 테이블보와 미사포, 왕관, 현수막, 조화, 축하 선물 들을 챙겨 분위기 그윽한 식당에 모였다. 절기로야 찬바람 소슬한 초겨울이지만, 형제가 함께 모여 얼굴만 맞대어 앉아도 마음에 스멀스멀 따스한 온기가 퍼져 올랐다. 결혼기념일이랑 생일 기념 현수막을 번갈아들고 세 부부가 각자 주인공이 되어 사진을 찍었으니 이 추억 영원하리라. 따스한 국물과 갖가지 음식으로 배를 채웠으니 이 기분 좋은 기운도 오래가리라.
배부르게 먹고 헤어져 오는데 파란 하늘에서 어머님이 늘 곱게 흘리던 그 온화한 웃음을 뭉게뭉게 구름 꽃으로 흘리며 말씀하셨다.
‘그래, 너희들이 만나서 밥 먹으니, 나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야!’
우리가 이벤트 부부로 살아온 게 아니라. 배부르게 나눠준 어머님 사랑이 우리 형제를 배부르게 살게 하셨나 보다. 탈 없이 살아온 세월에 감사하며 푸르른 하늘을 향해,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는 오른팔을 들어 크게 흔들어 보였다.
“어머님, 거기서 저희에게 힘을 주고 계시군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14쪽. 2024.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