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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그늘(1992, 2005) - 황석영
미군과 한국군 합동수사대의 안영규 병장, 민족해방전선의 공작원 팜 민, 베트남정부군의 팜 꾸엔 소령, 달러를 모으는 오혜정, 미군 탈영병 스태플리. 제국주의전쟁이 빚어놓은 '전쟁의 자식'들은 적과 동지가 뒤얽힌 물자 암거래의 촘촘한 그물 속에서 베트남전의 본질을 구현한다.
일반적인 전쟁소설의 몰역사적인 실존주의, 감상적인 혐전(嫌戰) 정서, 맹목적인 휴머니즘과 승자편에 선 화해 등과 거리를 두는 이 작품은, 일본어판(이와나미, 1994), 영어판(코넬대학출판부, 1994)에 이어 프랑스어판(쥘마, 2003)으로도 출간되었다. 이번 한국어 개정판은 1996년판을 다듬어 펴낸 것이다.
작가의 말
대충 살펴본 이곳(미국)에서의 베트남에 대한 인식은 역시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휴머니즘, 그러고 나서 반전주의, 아니면 좋은 군인 나쁜 군인 식의 반성적 기록물, 그리고 좀더 심화한다는 게 고작 상처받은 개인의 내면 따위들이다.
전쟁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 전쟁에서 미국은 무엇인가, 미국의 사회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가, 아시아와 제3 세계 민중은 어떤 사람들이고 무엇을 생각하나 등등 수많은 근본적인 접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들은 쏘니, 토요따 같은 상품을 통해서 아시아를 바라볼 뿐 아시아 사람을 너무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여튼 위의 경향들 가운데 가장 좋지 않은 것이 소위 내면적 상처를 그린다는 부류인데, 우리의 입장에서는 악덕업자의 일주일 동안의 행악과 일요일날 교회에서의 몇 분 동안의 울음 섞인 간증을 떠올리게 된다. 제국주의적 전쟁을 겪은 우리의 처지에서는 그것만이 돋보여서는 고통당한 아시아 민중의 보편적 삶과 투쟁의 정당성이 보이지 않게 된 다는 점 때문에 나는 반대하는 것이다. (1992년 개정판 서문 중에서)
황석영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 중 1962년에 소설 『입석부근』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일회담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공사판과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등에서 일하며 떠돌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입산,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이때의 체험을 담은 단편소설 '탑'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다시 문학으로 돌아온다. 이후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1974년부터 1984년까지 한국일보에 연재한 '장길산'은 지금까지도 한국 민중의 정신사를 탁월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9년 방북 후 독일 미국 등지에서 체류했으며 1993년 귀국하여 방북사건으로 5년여를 복역하고 1998년 석방되었다. 이후 장편 '오래된 정원', '손님',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를 발표하며 불꽃 같은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중국, 일본, 대만,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장길산', '오래된 정원', '객지', '무기의 그늘',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이 번역 출간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객지', '가객', '삼포 가는 길', '한씨연대기', '무기의 그늘', '장길산', '오래된 정원', '손님', '모랫말 아이들',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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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작가의 말
내가 한국을 떠난 지 벌써 만 삼년이 지나갔고 세계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남북관계나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 대미관계는 겉모양은 조금 변화한 듯 보이지만 아직 본질적으로는 변한 것이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아니, 변화의 가능성은 우리의 자주적 능력에 맡겨진 채 현상고착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지금 스스로의 힘으로 민족사를 창조해내지 못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외세는 자기네 이해관계에 따라 동아시아의 판도를 재편성하려 들 것이다.
세계가 들끓는 변화를 시작하기 직전에 나는 또다른 자아를 찾아서 북을 방문하였으며 베를린에서 장벽이 무너지고 뒤이어 동유럽과 소련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역사의 먼 과거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한편을 주도해왔으며 지금도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를 유일하고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미국에 와서 나는 다시금 ‘자주’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문제는 좌우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자주와 외세의 문제이며, 통일된 조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현재의 남북의 제도를 화석화한 채로 그려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며, 평등과 자유는 앞뒤없이 동시에 획득되고 동시에 서로가 완성되는 귀중한 가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러한 길로 들어서는 지름길은 ‘자주’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제 다시 창비에서 『무기의 그늘』을 새로이 출간하게 되었는데, 남한과 통일베트남 사이에는 외교관계가 시작되고 작자인 나는 어쩔 수 없이 바로 그 미국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
지난해 겨울에 나는 여권이 만료되어 독일에서 국적 없는 망명객이 되는 것을 피하여 어느 대학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으며 일단 뉴욕에서 짐을 풀었다. 몇년 전에 잠깐 스쳐지나간 적은 있지만 여기서 당분간 살아갈 생각을 하고 둘러보니 미국의 내장이 스멀스멀 보이기 시작하는 중이다. 나는 뉴욕의 어느 모퉁이가 서울에 그대로 옮겨져 판박이로 재생산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대도시의 블록마다 형성된 먹이사슬은 마치 본토와 식민지의 꼴처럼 적대적으로 분할되어 있는 것을 본다.
베트남전쟁은 그 해결방식에 있어서 우리에게 교훈이 되기도 하지만 최근의 미국의 얼굴을 가장 분명히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는 분단을 더욱 극대화시킨 6·25의 올바른 규명도 아직 해내지 못하고 있지만.
여기 와서 보니 그들은 여전히 아시아를 너무도 모르고 언제나 그렇듯이 자기중심적으로 문제를 왜곡한다. 진보적 시각이라는 것도 어찌나 제약이 많고 한계가 많은지 ‘표현의 자유’를 구가한다는 미국식 언론자유가 완전히 허구임을 알게 된다. 더구나 꾸바나 북한에 대한 보도는 흑색선전이라고 부르기도 곤란할 정도로 무지막지하다. ‘노스’라고 코리아 앞에 한 단어가 붙기는 하지만, 어느 쪽에서 유도를 했든 미국 기자가 되는대로 갈겨썼든 일단 미국 독자 일반에게는 ‘코리아’만이 선명하게 남을 터이다. 이러한 점은 내가 방북 후에 일본 정부로부터 내쫓기면서 그들 국민들의 여권에 선명히 찍혀 있는 “노스코리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를 여행할 수 있다”는 문구에 대하여, 우리의 분단과 한쪽 코리아에 대한 악의를 세계적으로 선전하는 일본 정부의 과오를 지적한 것처럼(최근에 일본은 문제의 문구를 여권에서 삭제하였다) 민족의 자주권은 언제나 분단을 뛰어넘은 곳에 영원히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미국에서의 표현 자유의 제약은 특히 반제(反帝)에 관해서 남한의 확대판이다. 그 대신에 노골적이지 않다. 길 터주기와 길 막기로 일단 교통정리되고 여러 매체 특히 영화와 텔레비전이 대중을 삼키는 가운데 진짜 목소리는 모깃소리만하게 소음 속에 묻혀버린다. 이러할진대 코리아 문제는 두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수년에 걸쳐서 미국 사회의 고민거리였던 베트남전쟁에 대해서도 일방적이거나 지엽적인 시각을 면치 못한다.
내가 이 소설의 초판본에서 예를 든 할리우드 영화에 관해서는 재론하지 않겠지만, 대충 살펴본 이곳에서의 베트남에 대한 인식은 역시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휴머니즘, 그러고 나서 반전주의, 아니면 좋은 군인 나쁜 군인 식의 반성적 기록물, 그리고 좀더 심화한다는 게 고작 상처받은 개인의 내면 따위들이다. 전쟁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 전쟁에서 미국은 무엇인가, 미국의 사회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가, 아시아와 제3세계 민중은 어떤 사람들이고 무엇을 생각하나 등등 수많은 근본적인 접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들은 쏘니, 토요따 같은 상품을 통해서 아시아를 바라볼 뿐 아시아 사람을 너무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여튼 위의 경향들 가운데 가장 좋지 않은 것이 소위 내면적 상처를 그린다는 부류인데, 우리의 입장에서는 악덕업자의 일주일 동안의 행악과 일요일날 교회에서의 몇분 동안의 울음 섞인 간증을 떠올리게 된다. 전장에서의 개인의 상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다만 똑같은 제국주의적 전쟁을 겪은 우리의 처지에서는 그것만이 돋보여서는 고통당한 아시아 민중의 보편적 삶과 투쟁의 정당성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점 때문에 나는 반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작자 스스로 아프게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이제 와서 되돌이켜보면 이 소설은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고 미완의 것이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내가 이제부터 써야 할 여러 작품들이 나아갈 출발점으로서 『무기의 그늘』 재발간의 의의를 다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1992년 5월 뉴욕에서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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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베트남전쟁과 제국의 정치 / 임홍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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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이 가장 야만적인 폭력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 전쟁이다. 알다시피 북베트남의 잠수함이 미군 함정을 공격했다는 ‘통킹만 사건’을 자작극으로 날조하여 침공의 구실로 삼은 미국이 북베트남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시작한 것은 1964년이지만, 이미 그전부터 미국은 냉전체제의 구축과정에서 베트남 문제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일본이 베트남에서 물러난 공백을 틈타 다시 베트남의 식민지배를 노린 프랑스가 베트남을 침략하는 과정(1946~54)에서 미국은 후에 그들 자신이 직접 10년 동안 벌인 전쟁에 쏟아부은 군사비의 절반이 넘는 막대한 군비를 프랑스에 지원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54년 항불투쟁에서 승리한 베트남은 제네바 정전협정에 따라 남북총선거를 실시하게 되어 있었지만, 구식민지 지배권력을 충실히 계승한 남쪽 정권에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1956년 제네바협정의 합의사항인 총선거를 무산시키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군대의 장교집단으로 구성된 남베트남의 부패한 독재권력을 무조건 지원하는 모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거대제국의 의지를 작동시키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지배고리를 보철하기 위해 미국은 냉전체제의 종주국답게 ‘남베트남을 잃으면 자유세계가 무너진다’(1959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발언)는 이른바 ‘도미노이론’을 앞세워서 베트남에 대한 무력개입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정지작업을 병행하였다. 이로써 미국은 표면상 2차대전 이전의 제국주의 열강과는 달리 식민지배가 목적이 아니라 ‘자유세계’를 수호한다는 대의명분을 얻는 듯했지만, 정작 서방세계 안에서도 호응을 얻지 못한 그러한 명분과 무관하게 중요한 것은 2차대전에 투입된 연합군의 군비총량을 능가하는 엄청난 무력으로 미국이 베트남을 유린했다는 엄연한 객관적 사실이다.2 제국주의적 침략의 딱지를 떼어내려는 온갖 호도지책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런 책략이 침략의 명분으로 동원될수록, 종전의 제국주의를 능가하는 폭력이 아무런 금기 없이 그만큼 더 무자비하게 행사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베트남전쟁이 미국의 제국적 독선과 제국주의적 폭력의 완벽한 결합물이라는 사실은 베트남 민중의 입장에서 본 베트남전쟁의 성격과, 미국의 ‘우방국’으로 참전한 한국의 역할, 그리고 베트남전쟁의 이 모든 국면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파헤친 황석영의 역작 『무기의 그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먼저 베트남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1964년 미국의 북폭(北暴)으로 시작된 전쟁은 엄밀히 말해 새로운 전쟁이라기보다는 무엇보다 베트남 현대사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민족해방투쟁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1941년 일본의 베트남 침략에 맞선 항일독립투쟁은 2차대전 후에 다시 항불투쟁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외세의 편에 섰던 세력이 결국 남베트남 정부의 지배층으로 자리잡은 만큼, 미국의 군사개입 전부터 베트남의 내전은 민족해방투쟁과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제네바협정 이후 미국의 비호 아래 남쪽 정권의 부패와 독재가 극심해지면서, 그후 미국의 물리적 개입이 강화될수록 남쪽에서의 반정부투쟁이 반미투쟁으로 결속된 것도 자연스런 귀결이다. 남북총선거가 무산된 지 불과 몇해 사이에 남베트남에서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한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결성된(1960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공기지론을 앞세운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물리적 폭력을 가중할수록 남베트남 민중에게 침략전쟁의 실상은 더욱 분명해졌으며, 남쪽 정권으로부터의 이반이 가속화되고 미국에 대한 항전은 한층 가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기의 그늘』에서도 여실히 확인되지만, 그런 이유에서 계층고하를 막론하고 베트남인들에게 일차적 관건은 삶 자체의 문제이지 이데올로기의 편가름은 아니었으며, 베트남 민족해방투쟁이 막강한 제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조건과 동인도 그 점에 연유한다.
미국 편으로 참전한 한국의 처지는 당시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과 결부되어 또다른 의미에서 실로 착잡하다. 단적인 징후적 사례로, 1965년 베트남 파병안은 국회에서 단 한명의 반대로 통과되었거니와, 한일 국교정상화에는 반대하던 야당조차 전원 찬성표를 던졌던 것이다. 더구나 과거에 독립운동을 했던 당시 야당 지도자는 한국의 참전 이후 베트남을 방문하여 공항에 내리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며 “우리 민족이 고구려 이후 처음으로 남의 나라에 군대를 보내 민족의 위력을 발휘했다. 이 비옥하고 광활한 땅이 우리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취지의 기막힌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3 그처럼 일본에 의한 식민예속의 경험을 완벽하게 전도시켜, 한국이 다시 하위주체로 종속된 제국의 환상으로 베트남의 자주독립 문제를 덧씌우게 만들었던 이데올로기적 동인은 무엇보다 한국전쟁의 기억을 고스란히 대체한 반공의 국시가 역사적 기억과 망각을 무차별하게 조절하는 막강한 위세를 떨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 참전의 댓가로 약속된 경제적 이득이 그러한 반공논리에 힘을 더했다는 것은 종전 이후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되었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그런 상황에 짓눌려서 미국의 도미노이론에 한국의 역할을 절묘하게 짜맞춘 파병논리4는 어떠한 반대에도 부딪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미국의 ‘우방국’ 중에 유독 한국만이 내부의 아무런 저항 없이 대규모의 전투병력을 파병할 수 있었던 이러한 내적 제약은 그후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록 베트남전쟁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한국민의 양심을 마비시킨 질곡으로 작용했다.
이제는 백일하에 드러난 당시의 국내외 상황을 새삼스레 반추하는 것은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초고 일부가 처음 발표되던5무렵만 해도 베트남전쟁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기억은 파병의 정당성을 강변한 정권의 통제로부터 한치도 자유롭지 못했으며, 사태의 진상에 접근하기 위한 최소한의 문제제기도 공론화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대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무기의 그늘』은 당시까지 베트남전쟁에 관해 공유된 국내외의 지배적 편견을 일소하고 전쟁의 실상을 최대한의 객관적 시각으로 조명한 값진 성과로서, 탈(脫)식민에 관한 서구의 담론들이 이른바 ‘차이의 정치’를 강조하면서도 종국에는 서구적 보편의 그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마지막 한계까지도 거뜬히 넘어서는 어떤 경지를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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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그늘』이 베트남전쟁에 관한 총체적 인식을 담보하는 근거는 작품의 기본구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침략주체인 미국과, 미국의 역할에 종속된 한국, 그들의 조력자로 동족을 수탈·억압하는 남베트남의 권력층, 그리고 이 모든 세력에 맞서 싸우는 민족해방전선의 움직임이 적확한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우선 미국이 ‘사업주체’로 나서서 벌이는 전쟁의 제국주의적 실상은 일찍이 브레히트(B. Brecht)의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전쟁을 ‘치즈 대신 탄약을 사용하는 장사’라고 갈파한 것보다 훨씬 더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그에 대항해 싸우는 해방전사들의 움직임이나 미군에 의해 양민에게 가해지는 야만적 잔혹행위 또한 한국인의 눈으로는 최대치의 극적 단면들로 포착되어 있다. 팜 꾸엔과 팜 민 형제처럼 한 집안의 형은 부패한 권력의 먹이사슬에 가담하여 일신의 영달만 노리는 남베트남군 장교로, 그런가 하면 동생은 장사꾼으로 위장한 해방전선 투사로 갈라서 있는 기구한 사정도 그저 읽는 재미를 더하기 위한 한낱 허구가 아니라 프랑스의 식민지배 이래 베트남의 해방투쟁은 언제나 외세를 등에 업은 반민족세력과 그에 맞서온 민족세력 사이의 집안싸움이기도 했다는 처절한 민족사적 비극의 축도라 할 수 있다.
빈틈없이 구축된 이러한 입체적 원근법은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작가가 작중의 모든 인물에게 전쟁이 강요한 몫의 운명만 허용한 결과이다. 그런데 저마다 입장을 달리하는 이 모든 인물의 동선을 하나의 거대한 갈등의 장으로 불러들여 여러 겹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서사의 기본축이 바로 암시장이다. 암시장이라는 생소한 소재보다 더 친숙한 상황으로 베트남전쟁을 비교적 양심적으로 다루었다는 서구영화들을 떠올려보면, 거의 예외없이 무장헬기 편대가 굉음을 울리며 하늘을 뒤덮는 위압적 장면에 이어서 정글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장면을 전면에 배치한다. 그렇게 해서 전쟁의 가공할 폭력성을 부각하는 데는 성공할지 몰라도, 상상을 불허하는 즉물적 폭력성이 전면에 부각될수록 오히려 양심에 관한 물음은 그만큼 더 공허한 추상적 사변의 몫으로 밀려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 전쟁의 폭력성이라는 것도 인간조건을 넘어서는 모종의 한계상황으로만 어림될 뿐이지 진정으로 양심적 반성을 촉발하는 구체적 계기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간극을 메우기 위한 방편으로 곧잘 도입되는 삽화가 폭력의 가해자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트라우마를 곱씹는 것이지만, 그런 식의 자기위안으로 양심의 변명을 삼는다면 여전히 제국의 망령에 사로잡혀 ‘성전’을 일삼는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것이다.
『무기의 그늘』에서 암시장이라는 독특한 상황설정은 그런 함정을 피해서 베트남전쟁을 안팎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조망할 수 있게 해주고 구체적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핵심적 요소다. 이 소설에서 암시장은 무엇보다 전쟁이라는 ‘사업’의 전모를 소설 초고의 제목처럼 ‘난장(亂場)’으로 펼쳐 보이는 역할을 한다.
전쟁사업의 주체인 미국이 통제하고 관리하는 암시장은 전면전의 유기적 일부로서 복합적 기능을 갖는다. 미국의 경제공작팀은 암거래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베트남 경제의 흐름을 주무른다. 미국의 공식입장에 따라 좋게 말하면 전란의 와중에 생산활동의 불구화로 고갈된 자원을 지원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미국의 잉여생산물을 불법으로 대량 유통시키는 방식으로 베트남의 시장질서를 교란하면서 미국경제를 베트남에 이식하려는 침략행위의 일환인 것이다. 예컨대 생필품인 과일류를 동남아 현지에서 조달하면 싼값에 공급할 수 있지만, 미국은 그러한 정상적 무역경로를 봉쇄하고 열 배나 비싼 캘리포니아산을 강매하는 식이다. 물론 그런 물품의 구매자는 소수의 부유층에 국한될 뿐이고 구매력이 없는 대다수 계층의 박탈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그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PX를 통해 값싼 가공품들을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또다른 전략이 구사된다. 그런 경제전략의 직접적 의도는 베트남의 시장을 장악하려는 것이겠지만, 더 깊이 감춰진 의도는 미국식으로 포장된 대규모 물량공세를 통해 “바나나와 한 줌의 쌀만 있으면 오순도순 살아가는 아시아의 더러운 슬로프헤드들에게 문명을 가르친다”는 문명적 우월감을 유포하여 베트남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복속시키려는 것이다. PX가 ‘아메리카의 가장 강력한 신형무기’ 혹은 ‘트로이의 목마’에 비유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다. 하지만 자본은 자신의 이미지에 따라 세계를 창조한다는 고전적 정의가 이 경우엔 들어맞지 않는다. 미국의 이 막강한 무기도 베트남의 현실에서는 예외없이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는 약한 고리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이 베트남 군부에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군수물자의 상당 부분은 부패한 정치권력과 일치하는 군부에 의해 민족해방전선에 팔려 넘어가며, 온갖 군수품과 PX의 유통화폐인 달러 군표까지 트럭째로 해방전선 측에 접수되는 일도 벌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의도가 먹혀들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을 갈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리는 사태의 전모는 미국과 베트남 군부의 공식 합작품인 이른바 ‘신생활촌’ 사업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이 사업은 해방전선에 노출된 취약지구에 집단주거지를 건설하여 자립적인 생활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으로, 자위대를 조직하여 무기까지 공급하도록 되어 있다. 말하자면 전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방촌’을 건설하겠다는 것인데, AID 파견관은 현지주민을 모아놓고 사업취지를 이렇게 역설한다.
미국은 결코 전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여러분의 나라와 같이 일찍이 식민지 상태에서 자유와 인권을 쟁취하여 오늘과 같은 번영을 이루었고, 이러한 번영을 주변의 약한 나라들에게도 나누어줄 책임을 걸머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외원조는 베트남이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평화를 되찾아준다는 약속을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베트남은 지금 중병에 걸린 미국의 환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트남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치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색섬멸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인 거주지역까지 불바다로 만드는 침략의 당사자가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니! 실상은 전장의 선무방송을 다른 어조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한 이런 궤변이 베트남 양민들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뻔하다. 미군 측에 의해 ‘가장 미국적인 사고를 갖춘 장교’로 발탁되어 연설을 통역하는 팜 꾸엔이 보기에도 이러한 궤변으로 은폐하려는 베트남의 구체적 현실은 “포연 속에서 날마다 수많은 베트남인의 사지가 찢겨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베트남의 자주독립 열망을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호도하고 ‘중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정의로운 의사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의 독선임은 물론이다. 정작 베트남의 권력층은 이 사업에 지원되는 대부분의 물자와 무기까지 빼돌려 치부를 일삼거니와, 미국 측의 진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그들은 베트남의 병세를 치유불능으로 악화시키는 독을 투입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신생활촌사업을 포함하여 미국의 물량공세가 강화될수록 그것은 고스란히 베트남 군부와 권력층의 부패에 자양분이 되는 만큼 미국이 투여한 독은 그들 자신을 잠식하는 파괴력으로 전화되며, 미국은 스스로 쳐놓은 덫에 걸려드는 꼴이 된다. 결국 물리적 폭력의 보완물로 병행되는 경제공작은 그 어떤 무력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무정부상태의 악순환을 자초하는 것이다. 해방전선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무정부상태가 승기를 잡는 데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일 것이다. 해방전선의 전사들이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권력핵심의 집행관이자 암거래의 베트남 측 실무책임자인 팜 꾸엔이 한몫 챙겨서 국외로 탈출할 궁리만 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을 등에 업은 권력이 이미 붕괴 직전에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패퇴와 베트남 민중의 승리를 이처럼 암시장으로 약호화된 정치경제의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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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미군수사대의 조서를 간간이 삽입하는 형태로 미군이 민간인들에게 가한 폭력과 살인의 단면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런 수사기록을 남겨서 공개하는 미국의 의도는 “전투원의 작전 중 실수를 살인죄와 같이 다루며 인명을 존중한다는 것을 공지시켜야” 한다는 대민 선전효과를 노리기 위한 것이지만, 그들이 벌이는 전쟁 자체가 인간의 척도를 넘어서는 거대한 범죄인 터에 그런 미봉책으로 전범의 죄과가 씻겨질 리 없다. 미군 병사들이 집단으로 고문을 가하는 베트남 소년에게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죽이고 마는 것이 결국 그들이 ‘인명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소설에서 그런 대목이 여과 없이 삽입된 장면들은, 가령 「한씨연대기」(1972; 『황석영 중단편전집 2』 창작과비평사 2000)에 나오는 기록문서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참담한 무방비상태와 가해자의 일방적 폭력을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극사실적으로 대비시켜준다. 그처럼 미군이 무고한 아녀자들에게까지 일상적으로 가한 잔혹행위들은, 베트남의 보통 사람들이 굳이 민족해방의 신념으로 무장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결코 베트남을 치료하러 온 의사가 아니라 자신들의 주적임을 온몸으로 깨우치고 평화로운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미국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의 생생한 반증인 것이다.
평범한 한국군 참전병사 안영규와 대칭되는 위치에 있는 팜 민 같은 섬세하고 유약한 인물이 형의 권세로 약속된 유복한 장래를 마다하고 해방전선에 자원하는 상황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작품에서 구엔 타트처럼 오랜 기간 해방전선의 투쟁으로 단련된 전사들보다는 팜 민의 행적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 많은 지면이 할애되지 않은 팜 민의 짧은 삶에서 독자는 베트남의 평범한 소시민도 해방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역사적 당위와 필연을 숙연한 마음으로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해방투쟁의 숭고한 당위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수록, 가해자의 편에 섰던 한국 독자의 가슴을 돌덩이처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베트남 민중이 해방투쟁에 바친 가혹한 희생이다. 팜 민에 국한해서 말하면, 그는 혁명을 위해 가족과 사랑을 잃는 고통을 감수한다. 조직의 결정에 따라 전선의 탈주자로 위장하여 암시장의 전선 측 보급공작원으로 배치된 그는 겉으로는 형의 뜻에 순응하여 장사로 돈을 벌어서 프랑스에 유학 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가족들에게도 신분을 위장한 채 살아야 한다. 해방전선에 투신한 남편을 잃고 친정에 얹혀사는 그의 누이는 그런 동생을 “정글로 가기 전보다 훨씬 저열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다고, 꾸엔과 한통속의 타락한 인간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선으로 떠나기 전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밤을 보낸 첫사랑의 여인 소안에게도 끝까지 속을 터놓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한다. “베트남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는 곁에 없거나 세상에 살아 있지 않은 거야”라는 누이의 말은, 혁명과 사랑을 모두 저버린 듯이 살아야 하는 팜 민에겐 차라리 목숨을 내놓고 정글에서 싸우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어떻게든 전란의 와중에서 딸을 살아남게 하려는 집안의 강요에 못 이겨 중년의 유복한 장사꾼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소안은 마지막 순간까지 팜 민에게서 진실을 듣고 싶어하지만, 소안까지도 죽음의 전선에 끌어들이지 않는 한 팜 민은 끝내 침묵할 수밖에 없다. 팜 민을 옥죄는 이러한 고통은 그가 일상에서 수행하는 보급활동 역시 정글에서의 전투와 다를 바 없는 해방투쟁의 일부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거니와, 자신이 해방전선에서 이탈한 비겁자라는 소문과 함께 소안의 약혼 소식을 듣게 되는 그에게 구엔 타트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속 깊이 축복해주시오. 그러면 됩니다. 그뒤에는 그들에게서 태어날 아기들에게 자랑스런 조국을 물려주겠다고 다짐하고 작전에 나가는 거요. 이것이 바로 내가 전에 말했던 사랑과 혁명이 같은 길이라는 뜻입니다.
이 비장한 다짐이 시사하듯 팜 민에게도 사랑과 혁명이 같은 길로 이어지는 것은 결국 죽음을 통해서이다. 그의 죽음이 해방투쟁에 목숨을 바친 무수한 베트남 민중의 비극적 초상임은 물론이지만, 그가 다름아닌 안영규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에 이르러 우리는 베트남전쟁에서 한국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를 냉철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안영규가 팜 민을 살해하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는 암시장 조사의 보조원으로 데리고 있는 베트남인 토이의 죽음이다. 한국군의 부역자 노릇을 하는 토이가 암시장에서 해방전선 측의 거래선을 캐내어 비밀에 부치는 댓가로 거액을 요구하며 협박까지 하다가 결국 해방전선 요원들에게 처형된 만큼 화를 자초한 셈이지만, 토이의 욕된 죽음은 영규에게 미군의 총알받이로 전장에 끌려온 자신의 욕된 처지를 재확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영규가 토이의 위치에 자신을 포개놓고 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토이의 죽음은, 무수히 죽고 다쳐서 한 줌의 재로 아니면 팔다리를 잘리고 병신이 되어서 실려간 다른 한국군 병사들의 것처럼 욕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영규가 딱히 분노라고 할 수도 없는 조건반사적 광기에 사로잡혀 팜 민을 사살하는 행위는 토이에 대한 복수라기보다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치욕에 몸부림치는 발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이에 대한 안영규의 자기동일시는 “이 전쟁에서 한국인이 처한 곤혹스럽고 모순된 처지를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6고 할 수 있다. 이미 정글에서의 전투를 겪었고 제대를 불과 몇달 앞둔 영규는 토이가 죽기 전까지만 해도 암시장 주변에서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귀국할 작정이었고, 실제로 암시장 조사요원으로 그에게 주어진 역할도 그런 테두리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미군이 베트남 군부에 지원하는 막대한 물자들이 암시장을 통해 해방전선 측에 넘겨지지만, 그 부패한 군부가 미국의 유일한 지배고리인 만큼 미군수사대도 베트남 군부와 권력층이 개입된 암시장 거래에는 손을 대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영규는 전쟁에 염증을 느낀 미군 병사의 탈영을 적극 도와주고 또 미군을 향해 ‘너희는 베트남인의 적이다’라고 말할 줄 아는 정도의 양식은 갖춘 인물이다. 따라서 영규의 입장에서 보면 이 소설은 암시장 조사원이라는 그의 역할에 걸맞게 암시장의 질서 내지 혼돈을 익혀가는 학습과정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수록 뱀이 자기 꼬리를 무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는 그의 모순된 처지에서 그러한 학습과정을 통해 현실인식과 자아성숙이 운 좋게 결합될 성장소설의 가능성은 애초부터 차단되어 있으며, 현실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을수록 그는 착잡한 환멸의 미로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결국 영규를 주체할 수 없는 폭력적 광기로 몰아가는 것은 베트남전쟁에서 한국의 역할이 결코 개인적 양심으로 상쇄될 수 없는 집단적 폭력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냉엄하게 일깨워준다. 독자로서는 영규와 팜 민의 유일한 만남이 조금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애타게 소망하지만, 베트남전쟁에서 한국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를 냉철하게 묻는 작가의 양심적 자기검열은 객관적 리얼리티에서 벗어나는 어떠한 일탈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 엄정한 객관정신이 리얼리스트 황석영의 장인적 면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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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 그늘』에서 전쟁의 폭력에서 자유로운 인물은 하나도 없다. 부역자 토이의 욕된 죽음이나 무엇보다 해방투쟁의 승리에 제물로 바쳐진 팜 민의 죽음이 그러하지만, 권세를 등에 업고 바닥 없는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국적 없는 허무주의자’ 꾸엔 역시 좌초한다. 아래에서 꼭대기까지 다 썩은 권력의 줄에 매달린 명운이 온전할 리 없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메리카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탈주하기를 꿈꾸던 탈영병 스태플리 역시 개죽음을 당한다. 재수없는 우연에 희생된 것처럼 보이는 스태플리의 죽음은 전장에 동원된 미군 병사들 역시 그들이 가한 폭력의 기억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꾸엔과 위장결혼을 해서라도 제3국으로 탈출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오혜정 역시 꾸엔의 좌천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지만, 달러 장사를 통해 돈을 모으는 절반의 성공 역시 결코 ‘자유’의 보증과는 거리가 멀다. 오혜정이 돈을 버는 방식은 미군의 통제를 벗어나 유통되는 군표 달러를 미군 당국이 휴짓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화폐가치 조작에 편승하여 일종의 환차익을 노리는 수법이거니와, 그녀가 얻는 이득은 미국의 경제논리에 예속된 형태로만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나비부인’이라는 것은 미군의 총알받이를 동원해주는 댓가로 반대급부의 경제적 이득을 챙기려는 국가적 상징성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그나마의 양심에 스스로 못을 박고 귀국하는 안영규 역시 폭력적 광기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한국군 참전병사의 후일담 이야기인 「돌아온 사람」(1970; 『황석영 중단편전집 1』 창작과비평사 2000) 같은 데서 여실히 확인된다.
베트남전쟁은 일단 민족해방투쟁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막강한 제국에 맞선 싸움에서 베트남 민중은 너무나 가혹한 희생을 치러야 했고 베트남의 대지는 회복불능으로 철저히 파괴되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미국은 군사적 패퇴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을 초토화시킴으로써 민족해방투쟁에 승리한 베트남을 다시 미국 주도하의 세계시장에 편입시키기 위한 또다른 정지작업을 수행한 셈이다.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이 새로운 국면의 열전이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격화되고 있다는 것은 최근 들어 더더욱 실감하는 바지만, 거대자본의 운동에 충직한 그러한 제국적 지배의 기제는 미국이 희대의 ‘전쟁사업’으로 벌인 베트남전쟁에서 이미 분명한 윤곽을 드러냈던 것이다. 베트남전쟁을 “미국이 구제국주의의 외피를 모호하게 상속하여 생긴 마지막 에피소드”7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은 미국이 과거의 제국주의를 더욱 폭력적이고 전면적인 방식으로 계승하는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 베트남전쟁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함께 집단적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우리로서는 전쟁에 짓밟힌 베트남인들이 과연 승리한 투쟁의 기억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되묻게 된다. 해방전선의 투사로 참여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소설 『전쟁의 슬픔』(예담 1999)에서도 통절하게 확인되지만,8 해방투쟁에 승리한 베트남인 자신들에게 정작 전쟁의 승패보다 오래 지속되는 것은 다름아닌 그 승리를 위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동족에 대한 사랑을 죽음으로 지켜낸 무수한 베트남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이 살아남은 자에게 고통스런 중압만은 아니라는 것도 거듭 강조되어야 한다. 바오 닌과 마찬가지로 해방전선 투사였던 또다른 베트남 작가는 전선에서 죽은 친구의 이름으로 작품활동을 하면서, 해방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뜨거운 인간애야말로 전쟁도 파괴하지 못한 베트남인들의 영혼임을 역설하고 있거니와,9 전쟁의 상처와 폐허를 딛고 베트남인들이 그들이 갈망하던 평화로운 삶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일구어갈 수 있는 희망의 조건도 그런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무기의 그늘』을 30년 전 베트남전쟁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소설로 읽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1991년 걸프전을 끝낸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제 베트남전쟁의 악몽을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호언함으로써 걸프전이 베트남전쟁의 연장선에 있음을 본의 아니게 실토한 적이 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라크를 강점한 채 한국군 전투부대의 파병을 강요하고 있다. 『무기의 그늘』을 통해 베트남전쟁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를 냉정하게 되새기는 독자에게는 지금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자명할 것이다.
林洪培│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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