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었다. 눈이 굉장히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전자 부품이 가득쌓인 창고에서, 한 손에는 드라이버를 든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창문 밖. 내리는 눈을 바라봤다.
당시 내가 계획했던 미래는, 그나마 괜찮은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남들처럼. 그렇게 일하는 것. 잘하면 나이 들었을때 공장장 정도는 하겠지. 그리고 옆 공장의 참한 경리 아가씨와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그렇게 살겠지. 그게 다였다.
나름 좋아했던, 여자가 있었다. 연락이 안됐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다시는 연락 안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저녁, 단골 꼬지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다 뭔가 다른 인생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 나이 19, 만 17살때의 일이다.
남들보다 늦게 대학을 가고, 늦게 군대를 가고, 늦게 졸업을 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기자가 됐다.
사람마다 경험한 것이 다르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가끔, 기자가 3D업종이라는 말을 듣는다. 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PD는 5D라던데, 내가 PD는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이제 기자가 된 지, 4년째다. 물론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이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 중 가장 편한 일이라는 이유도 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내가 했던 일 중에 가장 편했던 일도, 적어도 기자보다는 힘들었으니까.
공장에 첫 출근을 한 다음날 아침이었다. 전날 16시간 정도 망치와 드릴을 들고 열심히 제품을 만들었다. 일어나 출근을 하려는데 무릎이 안펴졌다. 냉장고의 물을 꺼내기 위해 방바닥을 기어갔다. 오전과 오후 15분씩 휴식시간이 주어질뿐이었다. 하루종일 콘크리트에 구멍을 뚫은 날이면, 젓가락이 쥐어지지 않아 숟가락만으로 밥을 먹었다.(지금도 그때 버릇이 조금 남아있다)
기자가 되니 수습도 겪어야 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기사작성과 취재. 그리고 까칠한 취재원. 자정이 넘어 퇴근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건 단지 잠이 모자랐을 뿐이다. 데스크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다. 초칠과 갈굼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기자는 양반이었다.
기자들은 보통 4년제 대학을 나온, 어느정도 상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다. 기자가 성격이 더럽다고 하던데, 나는 기자가 되고 난 후 예전보다 성격이 차분해지고 온순해졌다. 공장에서 일할 때, 화가 난다고 사람한테 뺀치를 집어던지는 걸 봤다. 욕은 기본이었고. 목수들이 싸울때는, 망치를 들고 덤빈다.(물론 일부의 이야기다)
아무튼 수습 때 잠이 부족한 것을 빼면 기자 일이 힘들지는 않았다.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는데, 글쎄.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을 대등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아는한, 손발의 피로는 대부분 지성마저 갉아먹는다.
기자가 3D업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솔직히 기자 밖에 못봤다.
보통 진짜 3D업종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3D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왜 그렇게 사냐" 소리 들을까봐.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몰골에서 이미 나타난다. 지저분하고, 피로해 보이고, 피부는 거칠고, 몸에선 퀴퀴한 냄새가 난다. 항상 몸 한 두 군데 정도는 아프다. 3개월은 손목이 아팠다가, 좀 괜찮아 졌다 싶으면 무릎이 6개월 아프고...이런 식이다.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주위에서 알아주지 않는다. 무시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기껏 해봤자 "힘들게 일하니까 돈은 많이 벌겠네" 정도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자는 어딜 가면 무시당하지는 않는 직업에 속한다.
1년 전쯤, 소위 조중동에 다닌다는 한 기자와 밥을 먹었다. 그가 말했다. 요즘 신입들은 학벌뿐만 아니라 집안도 좋다고. 요번에 들어온 신입들도 집은 목동이나 강남쪽이 대부분이라고. 그들도 아마 취재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이렇게 말할까? "기자는 3D야"라고. 구두에 넥타이, 노트북을 들고 출근하는게 3D라.
물론 우리나라 언론사가 선진국에 비해 취재 환경이 열악하고, 구조적으로 기자에게 극한의 노동강도를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모두 나름대로 힘들고, 피곤할 것이다. 비슷한 스펙으로 일할 수 있는 사무직 직종보다 노동강도가 높고, 박봉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기자=3D'라는 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처음엔 입체적이라는 뜻인줄 알았다)
과거 힘들었던 선배 기자들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들려온다. 수습기간에 어쨌네, 뭐 하다가 죽을뻔 했네...미안하지만, 나는 직장생활의 흔해빠진 넋두리 정도로 듣고 흘려버린다. 기자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기에.
3D는 군대보다 힘들다. 제대한 직후. 당시 나는 주민등록등본을 여러장 뽑아서 주머니에 넣고, 여기저기 직업소개소를 전전했다. 가끔은, "프래스 말고 다른 일은 없나요?"라고 말했다. 아무리 일당이 높아도 프래스 기계에 손가락이 잘리는 것만은 겁이 났으니까. 몇 번은 프래스 작업을 하기는 했다. 공장의 카세트 볼륨을 최대한 키워놓고 음악을 들으며 일했다. 졸면 손가락 잘린다는 생각에.
그때는 먹고 살기위해 일을 했다. 학원 강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도 선생님 소리는 들으니까.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히터가 나오는 직장.
기자가 되고 나니 자기 책상과 컴퓨터라는 것이 생겼다. 신기했다. 퀴퀴한 용접 냄새, 시끄러운 콤프레셔 소리도 없었다. 홍보 담당자들은 내가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친절하게 대한다. 나라는 인간에 대한 친절함은 아닐테지만, 아직도 낯선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나의 학창시절 친구들은 그 3D업종에서 일한다. 부두에서 화물차를 몰거나, 전신주를 탄다. 도로 공사장에서 일하거나, 10년째 공장에서 3교대로 다람쥐처럼 일하는 놈들도 있다. 한 녀석은 얼마전 대리운전 그만두고 공장에 들어갔다. 그 놈들은 과거 내가 했던 일보다 훨씬 더 힘든 곳에서 일한다.
수습이 끝난 직후 그 친구들을 만났다. 기자질 할만하냐고 묻길래, "그나마 몸은 편하니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새해 들어 어느날 보니, 내가 일하는 신문사가 이 업계에서는 빡세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그렇다고 지금의 기자들이 일을 더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일부 기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기자라는 '3D업종'에 지원하면서 네임벨류를 따진다. 연봉도 따진다. 정치부가 좋을까, 문화부나 체육부가 적성에 맞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스펙에 고민하고, 스터디도 한다. 하지만 진짜 3D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일당만 따지면 된다.
우습게도, 지금 나는 그때보다는 돈을 많이 번다. 대한민국 도시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넘어섰다. 가끔, 내가 이 만큼의 월급을 받을 만한 일을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 기자라는 집단이 그렇게 힘들고, 의미있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내가 대충 취재해서 쓴 기사와, 이른 아침 빌딩을 청소하는 용역 아주머니의 얼굴이 교차될 때가 있다. 그럴땐 마음이 울적하다. 아주머니의 엄숙한 얼굴을 떠올리면, 지금의 나는 정말 보잘 것 없는 텍스트만 쏟아내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기에.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네요. 진솔하고 멋진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언제 한 번 뵙고 싶네요. 좋은 분이실 듯.. ^^
글을 보며 가슴 속에 울림이 전해졌습니다.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쳐드리고 기분을 ...댓글로 나마 남깁니다.
멋있습니다
감사합니다..이 글에서 저를 비쳐볼수있었습니다..어릴적부터 기자를 꿈꿔왔고 어느새 대한민국 고3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커갈수록 내꿈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단지 사회적 약자들에게 보탬이 되고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그 생각자체가 나 스스로 건방진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고.. '기자'라는 직함만 갖고 '기자'가 아닌 분들의 많은 기사를 보고.. 하지만 조금은 알거 같네요..역시 전건방졌습니다. 꿈이 쉬우면 재미없겠죠? 아직 아무것도 아니지만 한번 되볼랍니다..'아무거'..
드래그해서 백만번 읽고 또 읽으려 했으나 무단복제라는 벽에 걸려 두번만 읽고 나갑니다..
몰입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역시 기자는 글을 잘 쓰는군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훌륭한 기자가 될듯.
멋있어요 ^^ 정말 몰입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노력은 별로 하지 않고 이래 따지고 저래 따지고, 불만 불평만을 늘어 놓는 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됩니다. 자만해질 때마다 GQ KOREA 이충걸 편집장의 인터뷰 내용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편집장이면 일정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보다 더 한 직업도 훨씬 많은데 내가 하는 일 정도로 힘들다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라고 한 인터뷰를 듣고 머리를 한 대 '쾅' 얻어 맞은 듯 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그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인생에 대한 훌륭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 ^
인생에 대한 예의, 삶에 대한 도리를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급여나 규모면에서 작은 언론사에 근무하다 이직해도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 힘으로 버티는 것 같기도 하고요. 헌데 사람은 상황에 맞게 금방 적응해버리는 이기적인 동물이라 여전히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남에 떡이 커보는 것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