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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이행(李荇)의 오언절구(五言絶句) 5편(15首)의 문학적 특징>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앞서 거제도 유배객 용재(容齋) 이행(李荇)의 유배문학 중에, 오언율시와 칠언율시를 고찰한 바가 있다. 이에 이번 편에는 그 뒤를 이어 이행(李荇)의 오언절구(五言絶句) 5편(15首)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그는 1506년 경남 함안에서 거제도로 이배되어 그해 음력 2월부터 9월 9일까지 만 7개월간 귀양살이를 하며 약170여 편의 거제유배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한시(漢詩) 작품 1852수(首) 중에서 오언절구가 45수(首) 정도로 시체 중에서 가장 적게 창작되었다. 이 중에 유배문학에 속하는 오언절구(함안, 충주, 거제)는 총 5편(15首) 정도다. 이에 이번 지면을 빌려 이행(李荇)의 유배문학 오언절구(五言絶句) 5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 용재(容齋) 이행(李荇) 선생은 자신의 환경이 바뀔 때마다 시집 외에 삶의 기록을 한권의 시고로 엮었다. 남달리 현실사회의 비리와 비행 때문에 고심하였던 시인이다. 유배자의 노비신분에서 좌의정에 이르기까지 각양의 인생을 체험하였다는 사실은 그의 인생자체가 한편의 드라마였다. 그의 인생 역정은 '죽음의식'과 '현실인식' '애민의식'이 선생의 근간을 이루는 화두이며 철학이었다.
또한 선생은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문학인(文學人)의 한 사람으로, 그의 시문집은 관각 문학의 전형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특히 그는 강서시파(江西詩派)를 배웠지만 그 형식만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깊은 의격(意格)을 체현(體現), 혼연히 일가(一家)를 이루어 조선조 굴지(屈指)의 시인으로 평가된다. 한편 그는 정치적으로는 훈구 관료(勳舊官僚)에 속했으면서도 친구 남곤(南袞)과는 달리 사림파에 대해 온건한 자세를 가졌으며, 그의 사상적 성향 역시 오히려 사림(士林)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정희량(鄭希良)은 젊은 시절의 용재를 두고, “학문은 모두 정주(程朱)의 그것이었다.”고 칭찬하였다.
⇨ 한편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이행(李荇)의 유배작품 오언절구(五言絶句) 5편(함안, 충주, 거제 유배작품)은 사화와 정쟁 속에서 짓밟힌 문인의 상처와 고독, 그리고 현실에 대한 비판이 고스란히 담긴 한시의 명작들이다. 이에 이 5편의 유배 작품을 통해 오언절구의 구조적 특징과 정서 그리고 문학적 특징과 각 시편별 정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에 이번 지면에는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오언절구(五言絶句) ①「문슬(捫蝨)」, ②「독노자(讀老子)」, ③「영물오절(詠物五絶)」 5수(首), ④「람물유감(覽物有感)」, ⑤「중양일 울울독폐 국화종차불수개 부칠절기의(重陽日 鬱鬱獨閉 菊花從此不須開 賦七絶寄意)」 7수(首) 등 총 5편(15首)을 순서대로 소개한다.
○ [이행(李荇)의 유배작품 오언절구(五言絶句)의 구조적‧문학적 특징과 정서]
이행(李荇)은 연산군 및 중종 대의 격동기를 거치며 여러 차례 유배 생활을 겪었다. 유배작품 5편(총 15수)의 오언절구들은 대개 사물에 탁의(託意)하거나 고전을 빌려 와 자신의 결백함, 유배지의 고독감, 그리고 왜곡된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첫 번째로 (1) 일상적·미시적 소재의 시상 확장을 통해 다른 일에 비겨 자신의 뜻을 나타내었다(託意). 이행의 오언절구는 거창한 자연풍경이나 추상적인 관념에서 시작하지 않고, 유배지의 아주 작고 일상적인 소재를 시의 전면에 배치했다. 먼저① 미시적 관찰과 상징이다. 내 몸의 이를 잡는 행위(「문슬」), 뜰 앞의 작은 곤충들(「영물오절」), 마당의 익어가는 살구와 앵두(「람물유감」) 같은 미시적인 대상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관찰했다. 이어② 탁의(뜻을 기탁함)를 드러냈다. 일상적 소재는 묘사에 그치지 않고, 조정의 간신과 소인배를 비판하거나 자신의 결백함·지조를 투영하는 고도의 정치적·도덕적 상징물로 치환되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두 번째로 (2) 선경후정(先景後情)과 선경후론(先景後論)의 변주다. 단 20글자 속에 시상을 압축해야 하는 오언절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통적인 시상 전개 방식인 선경후정(앞에 경치를 묘사하고 뒤에 감정을 드러냄)을 탁월하게 변주했다. 먼저① 정서적 촉발(선경후정)이다. 「람물유감」에서는 뜰에 살구가 익어가고 복숭아(앵두)가 붉게 물든 풍경(1~2구)을 보고, 문득 나를 걱정할 부모님의 마음과 내 자식을 보고 싶은 감정(3~4구)으로 자연스럽게 침잠했다. 이어② 우화적 비판(선경후론)이다.「영물오절」이나 「문슬」에서는 사물의 생태적 특징이나 행동을 먼저 제시한 뒤(1~2구), 세상과 인간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논평이나 철학적 추론(3~4구)으로 시상을 급전환하여 강한 반전의 묘미를 준다.
세 번째로 (3) 고전 및 전고(典故)의 지적인 변용과 주체적 수용을 했다. 이행은 대제학을 지낸 문형(文衡)답게, 깊은 학문적 깊이를 바탕으로 한 전고의 활용이 돋보인다. 먼저① 역설적 수용이다. 「독노자」를 통해 유학자로서 도가 사상을 단순히 도피처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영욕의 덧없음을 관조하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철학적 방어기제로 삼았다. 이어② 고사를 통한 상황을 극적으로 부각했다. 명절(중양절)에 문을 닫아걸고 국화에게 피지 말라고 다그치는 연작(「중양일」)은 과거 도연명 등이 국화를 보며 달랬던 전형적인 은일의 고사를 비틀어, 자신의 고립감과 억울함을 오히려 역설적이고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지적인 문학 장치로 사용했다.
네 번째로 (4) 감정의 절제와 '비이불상(悲而不傷)'의 격조다. 가문이 화를 입고 목숨을 위협받는 유배객의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오언절구는 감정을 과도하게 날것으로 분출하지는 않았다. 오언절구의 엄격한 압운과 행간의 규칙 속에 슬픔을 가두어 두었다. 자신의 서글픈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매미의 '홀로 맑음(獨淸)'을 칭찬하거나(「영물오절」), 국화에게 화를 내는 방식(「중양일」) 등으로 감정의 거리를 둠으로써 슬프되 처량함에 무너지지 않는 사대부 시인 특유의 꼿꼿한 격조와 품격을 유지했다.
○ [이행(李荇)의 유배문학 중, 오언절구 5편(15수)의 각 시편별 정서]
첫째 작품① 「문슬(捫蝨)」 ‘이를 잡으며’에선, 육체적 궁핍에 따른 비애와 소인배(간신)들을 향한 씁쓸한 냉소의 정서가 담겨 있다. 유배지라는 낯설고 불결한 환경에서 몸을 무는 '이(蝨)'를 잡는 비참한 일상에서 출발한다. 사대부로서의 자존심이 꺾이고 지저분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신세 한탄과 슬픔(비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또한, 내 몸의 피를 빨아먹으며 암암리에 번식하는 이를 보며, 당시 조정에서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고 나라의 피를 빨아먹던 소인배와 간신들을 떠올리며 던지는 날카로운 냉소와 씁쓸한 정치적 환멸이 집약되어 있다.
둘째② 「독노자(讀老子)」 ‘노자를 읽으며’에선, 정치적 환멸과 무상감, 그리고 자아 구제를 위한 탈속(脫俗)·은일의 마음이 깔려 있다. 성리학을 정통으로 배운 유학자이지만, 정쟁의 가혹함에 밀려 유배된 처지에서 도가(道家) 서적인 『노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정서적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세속의 권력 투쟁과 관직 생활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정치적 무상감이 중심을 이룬다. ‘강함보다 부드러움이 이긴다’는 노자의 가르침에 침잠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현실의 고통을 초월하려는 정서적 자구책과 자연으로 돌아가 자족하려는 탈속의 정서가 깊이 묻어난다.
셋째③ 「영물오절(詠物五絶)」 5수 ‘사물을 노래함’에선, 불의한 조정에 대한 분노와 비판, 그리고 꺾이지 않는 고고한 지조(志操)를 묘사했다. 다섯 가지 사물(주로 곤충)을 빌려 유배객의 내면과 조정의 현실을 정면으로 대비시켰다. 거미(蜘蛛)·쉬파리(蒼蠅)를 통해, 밤낮으로 덫을 치고 사는 거미의 꾀(口腹計)나 흑백을 어지럽히는 쉬파리를 통해 모함이 판치던 사화기 조정과 간신들을 향한 강한 분노와 격렬한 현실 비판 의식을 분출했다. 매미(高蟬)를 통해선, 이슬만 마시며 빈 배로 굶주릴지언정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매미를 통해, 유배 중에도 선비의 맑은 지조를 지키겠다는 결백함과 강인한 자부심("홀로 깨끗한 자는 오직 나뿐")을 의지적으로 드러냈다.
넷째④ 「람물유감(覽物有感)」 ‘사물을 보며 느낌이 있어’에선, 유배객의 극심한 고독감, 무력감,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향수)을 그렸다. 유배지의 쓸쓸한 풍경과 마주하며(覽物) 촉발되는 주관적 감정(有感)을 담았다. 철을 잊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나 무심히 흐르는 자연과 달리, 정치적으로 유배당해 묶여 있는 자신의 처지를 대비시키며 느끼는 처연한 외로움과 무력감이 중심이다. 유배지가 주는 고립감 속에서 멀리 떨어진 가족과 고향을 향해 가지는 애틋하고 처절한 그리움(鄕愁)이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섯째⑤ 「중양일 울울독폐 국화종차불수개 부칠절기의」 7수 ‘중양절에 답답하게 홀로 문을 닫고 있으니 국화야 이제부터 피지 않아도 되겠다, 7절(7首)의 뜻을 부쳐 짓다’에선, 명절에 느끼는 극심한 우울감(鬱鬱)과 소외감, 알아주는 이 없는 절망 속의 뒤틀린 오기를 드러냈다. 가을의 큰 명절인 중양절(9월 9일)을 맞이했으나, 유배지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홀로 지내야 하는 시인의 절망적인 우울감과 철저한 소외감이 폭발하는 연작이다. 예로부터 중양절(9월9일)에는 국화를 감상하며 시를 짓는 것이 풍류였으나, 시인은 자신을 알아 줄 이도 없고 처량한 신세인데 국화가 아름답게 피어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이제부터 피지 말라"고 역설적으로 밀어낸다. 이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대한 뒤틀린 저항감(오기)과 지독한 슬픔이 극대화된 표현이다.
1) 다음 ‘覃’ 운목의 오언절구(五言絶句) 「문슬(捫蝨)」 ‘이를 잡으며’는 조선전기 문신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작품으로, 『용재집(容齋集) 권5(卷之五) 남천록(南遷錄)』에 수록되어 있다. 남천록은 을축년(1505년) 봄 정월, 경남 함안(咸安)으로 배소(配所)를 옮긴 뒤에 지은 시들이다(乙丑春正月 遷咸安以後作). 이 측기식 한시는 바쁜 세상일(세속의 명예나 권력)을 멀리하고,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하며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려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문슬(捫蝨)」** 이를 잡으며 / 이행(李荇 1478~1534)
捫蝨負朝日 아침 햇살 등에 쬐며 이를 잡노니
晴簷鳥語酣 맑은 처마에 새소리도 정겨워라.
吾生異王猛 이내 인생은 왕맹과는 다르니
世務莫須談 세상일일랑 말할 필요 없어라.
[주1] 왕맹(王猛 325~384) : 중국 5호 16국 시대 전진(前秦) 명재상으로, 은거하던 시절, 관중(關中)에 병사를 이끌고 와 있던 동진(東晉)의 대장 환온(桓溫)을 만나 한편으론 천하의 일을 이야기하고 한편으론 이를 잡으며 방약무인(傍若無人)했다 한다. 이를 잡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천하의 정세를 거침없이 논하는 이 오만하면서도 당당한 태도에서 '천하의 경륜을 품은 채 때를 기다림'을 뜻하게 되었다.
○ 내용인즉, 이 시는 겉으로는 '이를 잡는' 아주 비루하고 일상적인 행위를 보여주지만, 속으로는 중국 고사를 뒤집어 활용하여 자신의 굳은 지조와 은거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인 이행은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 사화(士禍)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연산군~중종 시기를 거친 인물이다. 세상의 풍파를 겪어본 지식인으로서, 왕맹처럼 세상에 나아가 큰일을 도모하기보다는 맑은 처마 밑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유유자적하는 현재의 삶에 진정한 평안을 느끼고 있음을 노래한 명시다.
2) 다음 ‘歌’ 운목의 오언절구(五言絶句) 「독노자(讀老子)」 ‘노자(老子)를 읽고’는 조선전기 문신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작품으로, 『용재집(容齋集) 권5(卷之五) 남천록(南遷錄)』에 수록되어 있다. 남천록은 을축년(1505년) 봄 정월, 경남 함안(咸安)으로 배소(配所)를 옮긴 뒤에 지은 시들이다(乙丑春正月 遷咸安以後作). 이 평기식 한시는 도가(道家)의 시조인 노자(老子)와 그의 저서 『도덕경(道德経)』에 대해 시인 특유의 기발한 역설과 위트를 담아 평가한 작품이다.
**「독노자(讀老子)」** 노자(老子)를 읽고 / 이행(李荇 1478~1534)
老氏尙玄學 노씨는 현학을 좋아했으니
立言誠匪佗 그 입언이 진실로 다른 게 없지.
旣知玄可尙 현학이 좋은 줄 진작 알았거니
何用五千多 무엇하러 오천 자나 많이 썼는가.
[주1] 현학(玄學) : 이론이 깊고 어려워 깨닫기 힘든 학문. 노자와 장자 일파(一派)의 학설(學說).
[주2] 입언(立言) : 후세에 길이 남을 가치 있는 말을 책 등으로 남기는 것을 말함.
[주3] 오천 자 :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이 오천 자로 이루어져 있다.
○ 내용인즉, 이 시는 겉보기에는 노자를 비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노자 사상의 핵심인 '언어의 한계'와 '무언(無言)의 가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명작이다. 시인은 날카롭고 유쾌한 질문을 던진다. "말과 글을 떠난 오묘한 진리가 최고인 줄 진작 알았다면서, 왜 정작 본인은 5,000자씩이나 구구절절 글을 남겨 놓았는가?" 하고 노자를 가볍게 농담한다. 말을 아끼고 인위를 배격하라는 성인이 정작 오천 자의 책을 썼다는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독자에게 오히려 노자의 사상을 한 번 더 깊이 되새기게 만드는 유머가 돋보인다. 유학을 정통으로 공부한 조선의 사대부이면서도, 도가 사상에 깊은 이해와 여유로운 안목을 지니고 있었던 이행의 문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3) 다음 ‘微’ ‘哿’ ‘職’ ‘支’ ‘庚’ 운목의 오언절구(五言絶句) 「영물오절(詠物五絶)」 ‘사물을 읊은 다섯 절구’ 5수(首)는 조선전기 문신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작품으로, 『용재집(容齋集) 권5(卷之五) 남천록(南遷錄)』에 수록되어 있다. 5수(首)의 압운법(작법)은 순서대로 측기식, 평기식, 평기식, 측기식, 측기식이다. 여기 남천록은 을축년(1505년) 봄 정월, 경남 함안(咸安)으로 배소(配所)를 옮긴 뒤에 지은 시들이다(乙丑春正月 遷咸安以後作). 이 「영물오절(詠物五絶)」은 거미, 매미, 파리, 귀뚜라미, 반딧불이 등 다섯 가지 곤충의 생태를 빌려 인간 사회의 모순, 정치적 혼란, 백성들의 고통을 날카롭게 풍자한 우의시(寓意詩)다.
**「영물오절(詠物五絶)」** 사물을 읊은 다섯 절구 / 이행(李荇 1478~1534)
蜘蛛吐纖纊 거미가 가는 솜을 토해 내어
日夜伺群飛 밤낮으로 날벌레들을 노리누나.
紛紛口腹計 먹고 살려는 저 분분한 노력들
世上自多機 세상에는 본시 함정이 많은 법.
高蟬吸風露 매미는 바람과 이슬 마시지만
枵腹何曾果 그 큰 배야 부른 적이 있으랴.
所以天地間 이런 까닭에 하늘과 땅 사이
獨淸者唯我 홀로 맑은 자는 오직 저뿐이지.
蒼蠅何營營 파리란 놈 얼마나 설쳐 대는지
變亂白與黑 흰색 검은색이 온통 뒤바뀌누나.
我吟止棘詩 내가 지극의 시를 읊조리노니
誰使彼蕃殖 그 누가 저 놈들을 번식시켰느뇨.
促織在長夜 촉직이 긴긴 밤 울어 대누나
女功須及時 베짜기를 모쪼록 서두르라고
今年公稅重 올해에는 세금이 무겁건만
機上更無絲 베틀 위에는 실이 전혀 없구나.
螢火不自煖 개똥벌레 불은 뜨겁지 않아
空庭風露淸 빈 뜰에 바람과 이슬이 맑아라.
腐草豈能化 썩은 풀에서 어찌 화하였으랴
列星應委精 별들이 응당 정기를 주었으리라.
[주1] 지극(止棘)의 시 : 《시경》 소아(小雅) 청승(靑蠅)에, 파리 소리를 소인(小人)의 참소에 비기어, “앵앵거리는 파리여, 가시나무에 앉도다. 참소하는 사람 끝이 없어 사방 나라를 교란시키도다.[營營靑蠅 止于棘 讒人罔極 交亂四國]” 하였다.
[주2] 촉직(促織) : 귀뚜라미의 이칭(異稱)으로, 풀이하면 베짜기를 재촉한다는 뜻.
[주3] 썩은 …… 화하였으랴 : 옛날에는 개똥벌레가 썩은 풀에서 화하여 생겨난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내용인즉, [제1수]에선, 거미(蜘蛛)의 음모와 함정이 가득한 세상이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덫을 놓아 다른 벌레를 잡아먹으려는 모습을 묘사했다. 거미의 행동은 겉으로는 단순한 '구복계(생계 수단)'처럼 보이지만, 시인은 이를 통해 타인을 모함하고 함정에 빠뜨려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인간 사회의 간사한 음모와 모략을 고발하고 있다. [제2수]에선, 매미(高蟬)의 고결한 척하는 위선자를 풍자했다. 예로부터 매미는 이슬과 바람만 마시는 '청렴과 고결'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매미의 배가 늘 비어있음(枵腹)을 지적하며 꼬집는다. 세상에서 "나 홀로 맑고 깨끗하다"라며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우는 인물들이, 실제로는 아무런 실속이 없거나 속으로는 다른 욕망을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만 청렴한 척하는 위선적 태도를 풍자했다. [제3수]에선, 파리(蒼蠅)가 흑백을 뒤흔드는 간신배의 횡포를 비유했다. 흑백을 변란시킨다는 구절은 시경(詩經) 청묘편의 '지극(止棘)' 시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간신배들이 참소와 아첨으로 조정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상황을 뜻한다. 파리가 사방에 똥을 누어 흰색을 검게 만들듯, 간사한 무리가 조정을 장악해 옳고 그름(거짓과 진실)을 뒤바꾸어 놓는 현실을 개탄하며, "누가 이들을 이렇게 번성하게 방치했는가"라며 군주의 실정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제4수]에선, 귀뚜라미(促織)를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는 백성의 고초에 비유했다. '촉직(促織)'은 귀뚜라미의 한자어로, 그 울음소리가 마치 베를 짜라고 재촉(促)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귀뚜라미는 밤새 울며 베를 짜라고 독촉하지만, 정작 가난한 백성들의 베틀 위에는 실 한 가닥조차 남아있지 않다. 과도한 공세(세금)로 인해 삶의 기반이 무너진 농민들의 비참한 현실과 가혹한 수탈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민시(民詩)적 성격이 강한 구절이다. [제5수]에선, 반딧불이(螢火)는 어두운 세상 속 고고한 지조이다. 반딧불이의 불빛은 스스로를 따뜻하게 데우지도 못할 만큼 미약하지만, 바람과 이슬이 맑은 빈 뜰을 은은하게 밝힌다. 당시 사람들은 반딧불이가 썩은 풀이 변해서 생긴다고 믿었으나, 시인은 이를 부정하며 '하늘의 별들이 정기를 내려준 존재'라고 격상시켰다. 이는 혼탁하고 어두운 정치적 현실 속에서도 세상의 유혹이나 비천한 무리에 동조하지 않고, 하늘의 뜻(의리)을 받들어 고고하게 지조를 지키려는 선비의 정신을 상징한다.
결국 저자 이행이 살았던 시기는 연산군 때의 갑자사화와 중종반정 등 극심한 정치적 격변기와 훈구·사림 간의 갈등이 이어지던 때였다. 작가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다섯 곤충의 생태적 특징을 관찰하여, 권력가들의 음모(거미), 위선(매미), 간신배의 횡포(파리), 백성들의 고통(귀뚜라미), 그리고 그 속에서 지켜야 할 선비의 지조(반딧불이)를 한 편의 유기적인 서사로 엮어내었다.
4) 다음 ‘支’ 운목의 오언절구(五言絶句) 「람물유감(覽物有感)」 ‘사물을 보다가 느낌이 일어‘는 조선전기 문신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측기식 한시로, 『용재집(容齋集) 권5(卷之五) 적거록(謫居錄)』에 수록되어 있다. 적거록은 갑자년(1504년) 여름 4월, 충주(忠州)로 귀양 간 이후 지은 시들이다(弘治甲子夏四月 謫忠州以後作). 이 시는 제철을 맞아 탐스럽게 익어가는 과일을 바라보며,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동시에 자신을 길러주신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깨닫는 효심(孝心)과 부성애(父性愛)를 담은 따뜻하고 서정적인 작품이다.
**「람물유감(覽物有感)」** 사물을 보다가 느낌이 일어 / 이행(李荇 1478~1534)
庭杏欲黃熟 뜰의 살구는 누렇게 익어 가고
含桃紅滿枝 앵두(含桃) 알들은 가지 가득 붉구나.
方知父母意 비로소 알겠도다 부모님의 뜻,
我亦念吾兒 나 또한 나의 아들을 생각하노라.
○ 내용인즉, 이 시는 거창한 유교적 이념이나 가르침을 늘어놓지 않고, '살구와 앵두가 익어가는 일상적인 풍경'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인 내리사랑(부성애)과 치사랑(효도)을 연결짓고 있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낳아 길러보아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담고 있으며, 자식을 아끼는 마음을 통해 거꾸로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화자의 따뜻한 인품이 돋보인다. 앞서 보셨던 기발한 고사 인용이나 역설적인 위트 대신, 이번 시에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박하고 진솔한 가족 가득한 정을 담백하게 노래했다.
5) 다음 ‘屋’ ‘麻’ ‘冬’ ‘紙’ ‘有’ ‘虞’ ‘灰’ 운목의 오언절구(五言絶句) 「중양일 울울독폐 국화종차불수개 부칠절기의(重陽日 鬱鬱獨閉 菊花從此不須開 賦七絶寄意)」 ‘중양일(重陽日)에 울울하게 홀로 문을 닫고 지내다가 ‘국화종차불수개(菊花從此不須開)’를 운(韻)으로 삼아 절구 일곱 수를 읊어 나의 뜻을 부치다‘ 7수(首)는 조선전기 문신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작품으로, 『용재집(容齋集) 권7(卷之七) 해도록(海島錄)』에 수록되어 있다. 해도록은 정덕(正德) 병인년(1506년) 봄 2월, 거제도(巨濟島)로 귀양 간 이후 지은 시들이다(正德丙寅春二月 赴巨濟以後作). 7수(首)의 압운법(작법)은 순서대로 평기식, 측기식, 평기식, 평기식, 측기식, 평기식, 측기식이다. 이 작품은 저자 이행(李荇)이 중양절(음력 9월 9일)을 맞이하여 귀양살이 중인 고독한 처지에서 지은 연작 시(7首)다. 제목의 ‘국화종차불수개(菊花從此不須開)’는 “국화야, 이제부터는 모름지기 피지 말아라”라는 뜻이다. 도연명(陶淵明)과 장한(張翰, 자는 계응)의 고사를 인용하여 정치적 환멸, 고향과 전원에 대한 그리움, 늙고 병든 처지의 슬픔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중양일(重陽日)에 울울하게 홀로 문을 닫고 지내다가 ‘국화종차불수개(菊花從此不須開)’를 운(韻)으로 삼아 절구 일곱 수를 읊어 나의 뜻을 부치다(重陽日 鬱鬱獨閉 以菊花從此不須開爲韻 賦七絶寄意)」** / 이행(李荇 1478~1534)
浮生垂白頭 덧없는 인생 백발이 가까운데
三歲負黃菊 삼 년 동안 국화를 저버렸구나.
何日田園歸 그 언제나 전원으로 돌아가서
采之得盈匊 그 꽃잎을 한 움큼 따볼거나.
秋酒久未熟 가을 술은 오랫동안 익지 않고
甕頭浮白花 항아리에 흰 거품만 떠 있어라.
佳辰還獨臥 이 좋은 날 외려 홀로 누웠으니
節物但成嗟 계절 변화에 그저 탄식만 나올 뿐.
登高豈無侶 함께 등고할 사람 어이 없으랴만
愁病斷過從 시름과 병으로 사람 왕래 끊었느니
嶺上晴雲色 산봉우리 위에는 구름빛도 맑건만
多慚一竹筇 못 올라가니 지팡이에 부끄럽구나.
向來千古心 예전에는 천고의 마음 품었더니
今者有如此 지금은 그저 이와 같은 신세로세.
高詠陶公篇 도연명의 시편을 높이 읊조리니
斯人不可企 이 사람은 정녕 따를 수 없어라.
有口但飮酒 입이 있어 그저 술만 마시나니
酒中無可不 술 속에는 옳음도 그름도 없어라.
久知憔悴人 안 지 오래어라 귀양 온 사람은
未及藉糟叟 지게미 깔고 누웠던 노인만 못하지.
一名空自苦 한 이름 속절없이 괴롭기만 했지
身後亦何須 죽은 후엔 또한 무슨 소용이람.
萬里渺雲水 만 리라 펼쳐진 아득한 운수
季鷹眞丈夫 계응은 참으로 장부이로고.
病後身全懶 병든 후로 도무지 게을러져
荊扉亦莫開 사립문도 이젠 열지 않는도다.
江山還落木 강산에 다시금 낙엽이 지니
心興轉悠哉 마음의 흥은 더욱 아득하여라.
[주1] 삼 년 …… 저버렸구나 :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는 국화 꽃잎을 술잔에 띄워 마시는 풍속이 있는데, 용재가 귀양 온 지 삼 년 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말한 것이다.
[주2] 도연명(陶淵明)의 시편 :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고 노래한 도연명의 〈잡시(雜詩)〉를 가리킨다.
[주3] 지게미 …… 노인 :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유령(劉伶)을 가리킨다. 그는 술을 매우 좋아하여 〈주덕송(酒德頌)〉에서, “누룩을 베고 술지게미를 깔고 눕는다.” 하였다.
[주4] 계응(季鷹) : 계응은 후한 오군(吳郡) 사람인 장한(張翰)의 자이다. 그는 낙양(洛陽)에서 벼슬하다가 천하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다. 용재는 난세(亂世)에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나지 못하여 그만 찬축(竄逐)되었기 때문에 장한을 부러워한 것이다.
○ 내용인즉, [제1수]에선, 국화(菊)를 통해 전원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한탄을 담았다. 나이는 들어 머리가 세어가는데, 지난 3년 동안 제대로 국화를 감상하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음을 한탄한다. '3년 동안 국화를 저버렸다'는 것은 유배 생활로 인해 마음의 여유를 잃었음을 뜻한다. 하루빨리 해배되어 고향(전원)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국화꽃을 따며 살고 싶다는 귀거래(歸去來)의 소망을 나타냈다. [제2수]에선, 가을 술(秋酒)을 보며 좋은 명절에 홀로 누워 있는 쓸쓸함을 노래했다. 중양절에는 원래 술을 마시며 즐겨야 하지만, 마실 술조차 제대로 익지 않아 항아리에는 거품만 겉돌고 있다. 가을의 좋은 명절(佳辰)을 맞이했음에도 축제를 즐기기는커녕, 외롭게 방에 홀로 누워 흘러가는 계절과 세월을 바라보며 깊은 탄식과 쓸쓸함을 삼키고 있다. [제3수]에선, 지팡이(筇)를 보며 병들어 등고(登高)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중양절의 오랜 풍습 중 하나는 높은 곳에 올라가 액운을 막는 '등고(登高)'다. 함께 갈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인은 마음의 시름과 육체의 병으로 인해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문을 닫아걸었다. 저 멀리 산봉우리의 구름은 맑게 개어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인데, 정작 자신은 방안에 갇혀 있으니 애꿎은 산행용 대나무 지팡이(竹筇)에게 부끄럽다고 고백하며 처량한 신세를 한탄한다. [제4수]에선, 도연명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자괴감을 느낀다. 과거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대단한 포부(천고의 마음)를 품었으나, 지금 현실의 내 신세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전원생활의 대명사이자 중양절에 국화를 사랑했던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公)의 시를 소리 높여 읽어보지만, 현실의 집착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자신은 도연명처럼 초연하고 은일한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며 자괴감을 토로한다. [제5수]에선, 술 뒤에 숨겨진 정치적 환멸을 떠올린다. 현실의 고통과 정치적 혼란에서 도망치기 위해 그저 입에 술을 털어 넣는다. 취중에는 조정의 시비(옳고 그름)를 따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오랜 세월 초췌하게 살아온 유배객인 자신은, 차라리 술지게미를 이불 삼아 널브러져 아무 걱정 없이 잠들던 옛날의 술 취한 노인보다도 못한 처지라며 정치 현실에 대한 깊은 환멸을 술에 의탁해 표현했다. [제6수] 명예의 허무함과 장한(張翰)의 결단 흠모한다. 세상에서 이름 한 줄(一名) 얻으려고 괴롭게 아등바등 살았지만, 죽고 나면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깨달음이다. 시인은 진(晉)나라 때 낙양에서 벼슬을 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그리워 그 길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장한(계응)'을 진정한 장부라고 치켜세운다. 자신도 장한처럼 과감하게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만 리 넓은 강산으로 떠나고 싶은 은거의 염원을 담았다. [제7수]에선, 문을 닫아건 채 깊어가는 가을의 흥취를 읊조렸다. 늙고 병든 몸은 이제 만사가 귀찮아져 사립문조차 열지 않고 철저히 세상과 단절된 삶을 택한다. 밖을 보니 강산에는 낙엽이 우수수 지고 있다. 비록 현실의 몸은 초라하고 쓸쓸하지만, 사립문을 닫아걸고 바라보는 가을 강산의 풍경 속에서 시인의 정신적 흥취(心興)는 오히려 저 멀리 아득하게 뻗어나가며 세속을 초탈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화려한 명절인 '중양절'과 대비되는 시인의 독방, 병고, 가난, 그리고 고독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이행은 세상의 시비(是非)와 벼슬길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역사 속 은자(도연명, 장한)들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선뜻 그렇게 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고스란히 고백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국화야 피지 말아라"라고 외치는 것은, "국화가 피어도 찾아와 함께 술 마실 이 없고 고향으로 갈 수 없으니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는 깊은 슬픔의 반어법적 표현이다.
○ 이 시를 지은 이날, 음력 1506년 9월 9일 저녁에 사면서(赦免書)가 거제현 관청에 도착했다. 이행은 이날 밤에 견내량(見乃梁)을 건넜고, 이튿날 의령(宜寧)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갑자년(1504년) 여름 4월, 장형(杖刑)을 받고 충주(忠州)로 유배되었고, 6월에는 중열(仲說)의 논사(論事)에 연루되어 재차 장형을 받고 배소로 돌아가 관례에 따라 노역(勞役)에 충원되었으며, 가을 9월에는 다시 앞의 사안(事案)을 문제 삼아 뒤미처 포박하여 고문하는 통에 거의 죽음에 이를 뻔한 것이 여러 차례였다. 그해 겨울 12월에 이르러서는 사형에서 감면되어 장형을 받고 함안군(咸安郡) 관노(官奴)로 유배되어, 을축년(1505년) 봄 정월에야 비로소 배소(配所)에 당도하였고, 가을 8월에는 또 익명서(匿名書)의 옥사로 포박되어 고문을 받으면서 겨울을 지냈다. 이듬해 병인년(1506년) 봄 정월에 거제도로 유배되어 2월에야 비로소 배소에 당도하여 고절령(高絶嶺) 아래 가시울을 둘러친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해 가을 또 서울로 압송하여 죽도록 곤장을 치라는 명(命)이 떨어져 길을 오르려던 차에, 성상(聖上, 중종반정)의 즉위를 만나 사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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