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관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고 있을까?
인간은 결코 홀로 살 수 없으며 또한 홀로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는 사회와 상관없이 홀로 살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난파선에서 꺼내온 물건들을 사용하면서 그 물건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문명사회를 호흡하면서 살았다. 종일토록 집안에 있는 여인네가 곱게 화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인은 혼자 있으면서도 타인을 의식하고 정성껏 곱게 화장한다.
우리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각자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사회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각자가 맡은 유기적인 역할을 행한다. 인간은 사회를 형성한다. 사회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특징으로 삼는다. 예컨대 학교를 들어보자. 커다란 건물만 있어서는 학교라고 할 수 없다. 선생과 학생과 직원이라는 '인간관계'가 성립할 때 비로소 빈 껍질이 아닌, 알맹이가 가득 찬 학교가 성립할 수 있다. 크고 작은 기타 단체도 학교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바라는 궁극적인 상태는 어떤 것일까?
"당신이 삶에서 원하는 최고`최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물음에 대하여 우리는 몇 가지 가능한 답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목적은 돈입니다. 현대사회는 경제가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따라서 돈만 있으면 안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돈을 멸시하는 사고방식은 낡은 시대의 유물입니다."
"인생의 최고의 목적은 권력입니다. 권력만 있으면 돈뿐만 아니라 인간도 마듬대로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라는 궁극의 목적은 마음의 안정입니다. 돈이나 권력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으니 고통의 원인입니다. 따라서 돈이나 권력은 2차적인 것입니다. 마음의 안정만 있으면 무엇에도 흔들이지 않으니 고통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안정이란 너무 막연한 말입니다. 그런 막연한 것은 얻을 수 없습니다. 나의 최고의 목적은 화목한 가정입니다. 가족끼리 서로 이해하는 화목한 가정 이상으로 더 바랄것은 없다고 봅니다."
"나의 목적은 예술창작입니다. 내가 예술세계에 흠뻑 빠져서 나를 잊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경지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회봉사를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선도함으로써 밝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서로 입장이 다른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은 인간 서로간의 '관계'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행복'을 찾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인간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관계는 무엇에 의하여 성립하는 것일까? 사회는 '우리들'에 의해서 구성되고 '우리들'이란 '너'와 '나'를 말한다. 인간관계는 바로 '너'와 '나'의 관계이다. '너'와 '나'는 바로 내면적인 약속과 외면적인 약속에 의하여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내면적인 약속은 인격에 의한 약속인 반면에 외면적인 약속은 자연적 및 사회적인 약속이다. 외면적인 약속은 인간을 구속시키지만 내면적인 약속은 인간을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