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만(在滿) 한국독립당의 당군으로서 1931년 10월경에 창설된 한국독립군은 만주사변 이후 일제의 중국 동북지역 침략에 맞서 길림자위군(吉林自衛軍), 길림구국군(吉林救國軍) 등 중국의 반만항일군(反滿抗日軍)과 한중연합전선을 형성하여 일본군에타격
1932년1월2월서란현 전투(舒蘭縣戰鬪),
1932년 3월 영릉가(永陵街)전투
1932년 6월 흥경성전투(興京城戰鬪)
1932년 8월 쌍성보 전투(雙城堡戰鬪),
1932년 11월 경박호 전투(鏡泊湖戰鬪),
1933년 3월 사도하자 전투(四道河子戰鬪),
1933년 5월 동경성 전투(東京城戰鬪),
1933년 6월 대전자령 전투(大甸子嶺戰鬪),
1933년 9월 동녕현성 전투(東寧縣城戰鬪) .
서란현전투
1932년 1월 초 북만주의 오상(五常)·서란현(舒蘭縣) 일대에서 일본군 150여명 사살 전과
조경한(趙擎韓)·권오진(權五鎭) 등이 모병, 편성한 한국독립군 1개(한국독립군 유격독립여단대 대)(편제상 270명 내외)와길림자위군 제 9사(師) 사복성(謝復成)부대를 만나 이에 합류, 공동 작전을 전개
영릉가 전투
흥경현의 영릉가에서 있은 한중 연합군과 일본군 간의 전투였다.
1932년 3월에서 7월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정규전을 벌여 읿본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였다.
이 전투는 총사령관 양세봉의 병력과 중국의 이춘윤의 병력 2만여명이 연합전선을 펴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였다. 이 전투는 특히 만주사변 이후의 승리였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수가 있다
흥경성 전투,
조선 혁명군(양세봉) : 중국 의용군과 연합
1933년 흥경(興京)을 공격하여 일본군을 격퇴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