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 땅이름 /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김포시 땅이름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장
02) 703-5300
김포한강신도시
김포 금포 검포 검개
일제 초기 김포 일대의 지도 1910년대 초.
김포의 원이름은 금포이고 이 이름은 검개(검포)에서 나왔디.
김포시 땅이름
김포시 땅이름
일제 초기 지도에는 김포가 '구무뽀'로 표기. 김포가 금포로 불려 왔음을 말해 준다.
일제 초기 1910년대의 지도. 한자 옆에 카다카나로 토박이 땅이름이 붙어 있다.
김포 고을 땅이름이 일제 때 이렇게 바뀌었다. 김포군 군내면과 양촌면의 땅이름.
한국땅이름학회 배우리 회장과 김포의 향토사학자 류지만 님이 김포신도시 안의 시설물 이름들을 짓기 위해 김포문화원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김포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의 공사 현장
김포시 양촌면 두부리
김포신도시 안의 소공원 후보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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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냐 금포냐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김포는 금(金)의 도시이다.
금이 많이 나서? 그게 아니다. 그렇다면 옛날에 금광이 많이 있어서? 그것도 아니고---.
조금은 억지 같지만, 그 이름 김포, 아니 금포가 안고 있는 이미지로서의 ‘금의 도시’라는 얘기다.
그래서 나온 생산품 이름이겠지. ‘김포 금쌀’ 말이다. ‘김포 금쌀’이라 했는데, 사실은 ‘금포 금쌀’이 맞다. 이미 땅이름이 그렇게 굳어 버려 지금은 ‘김포’로 정착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정작은 ‘금포’로 불리고 또 그렇게 표기되어 왔어야 했다.
▼ 김포 고을 이름의 뿌리는 ‘검개’
김포 땅이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면 ‘검개’에 도달
‘검’은 ‘금’으로도 읽혀 ‘금개’라고도 불려 왔을 듯.
김포 고을 땅이름이 나타나는 최초 문헌은 <삼국사기 지리지>
삼국시대 초기에는 이 고을이 고구려에 속함.
당시 이름‘검포현(黔浦縣)’.
지금은 인천광역시로 옮겨져 가 버린
전 김포 ‘검단면(黔丹面)’의 그 ‘검(黔)’자와 같은 한자.
신라 35대 경덕왕 16년(757)에 금포(金浦)가 되어
장제군(長堤郡=부평)으로 합해 들어갔지만,
조선 3대 태종 14년(1414) 8월 양천현을 합하여 금양현(金陽縣)
이는 금포(김포)와 양천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
따라서, ‘김포’가 아닌 ‘금포’로 불려 왔음을 알 수가 있다.
검포나 금포(김포) 모두 ‘검개’의 한자식 표기로 보이는데, 고대 지리지나 고지도 등의 문헌에 나타나는 한자식 지명들은 대부분 우리의 원이름(토박이 땅이름)을 의역 또는 의역해 기록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노루목’을 ‘장항(獐項)‘, 감바위’를 ‘감암(甘岩)’ 식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검개’는 무슨뜻일까?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큰 물가’ 또는 ‘신성한(거룩한) 곳’의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다. ‘검()’은 ‘거룩한’, 신성한‘, 중심적인’ 등의 뜻을 갖는다. 이 말은 일본어의 ‘가미(神)’와도 상통한다.
‘검(감)’은 ‘금’으로도 불리다가 ‘김’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지금의 한자 ‘金’을 ‘금’으로도 읽고 ‘김’으로도 읽는 것은 이에 연유하는 것이다.
‘검개’의 ‘개’는 ‘물가(수변)’을 뜻한다. 물가의 뜻을 갖는 ‘개’는 한자식 땅이름에선 대개 ‘포(浦)’로 의역되어 있다. 따라서, ‘검개’는 ‘큰 물가’의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땅의 한 중심을 흐르는 한강의 가장 하류쪽 지점에 있고, 서해와도 맞닿아 있는 곳. 바로 ‘검개’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 땅이름의 억지 해석은 곤란
많은 이들은 한자식 땅이름에 ‘금(金)’이 들어가면 우선 금속의 ‘금’을 연상한다. 즉, 이 글자가 붙은 땅이름들을 보면 먼저 금(金)‘을 떠올린다. 그러나, 천만에! 전혀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전국에 많은 ’쇳골(샛골)‘ 중에 한자로 ’금곡(金谷)‘으로 된 것이 무척 많은데, 이런 이름의 마을 또는 골짜기 이름들은 ’쇠‘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샛골(사잇골)‘이 ’쇳골‘로 된 것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포의 감바위 근처 생태 환경을 보러 가던 중 그 어귀의 ‘에코센터’에 들렀다가 김포 고을 소개 부분에서 ‘김포’라는 땅이름이 나온 배경 설명 부분을 보았다. 그런데, 너무도 우습게 김포‘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이유를 투금포(投金浦) 전설과 결부지어 설명해 놓은 것이었다. 그것도, ’---이러이러한 전설이 있어 김포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설이 있다‘는 식이 아니라 아예 단정해 해 놓다싶이 해 놓았다. 이러한 이야기는 그냥 단순히 전설로 처리해 놓았어야 했다.
어떻거나 금과 별 관련이 없을 금포(김포)지만, 어차피 정착된 지명, 김포에는 그 금에 어울리는 그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금쌀’ 말고도 금과 관련한 그 무엇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농산물 이름이나 약용 식물 이름에 계속 ‘금’을 달아내도 좋겠다. ‘김포 금포도’도 좋고 ‘김포 금딸기’도 좋다. 금(金) 하면 우선 고급스러운 느낌부터 갖게 하니, 판매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지금은 우리가 거의 모두 ‘김포’로 부르지만,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일제 때까지도 ‘금포’로 많이 불려 온 듯하다.
일제 때인 1914년에 발행한 1;25,000의 지도에 보면 당시에 ‘김포’가 ‘금포’로 불렸음을 알게 해 주는 일본의 가타카나 표기가 발견된다. ‘金浦’라고 한자로 표기된 밑에 아주 작은 글씨로 적은 ‘구무포(クムポ)’가 보인다. 이것은 ‘금포’의 일본식 표기이다. 당시에 ‘김포’라고 했다면 ‘기무포(キムポ )’라고 썼지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당시에 발행한 가타카나의 표기는 대개 그 지역 주민들이 부르는 음(音)에 근거하였다. 예를 들어, 김포 고을의 곡촌(谷村)이 ‘골말(골자기 마을)’의 표기인 ‘고루마루(コルマル)’로, 감암(甘岩)이 ‘가무바우(カムバウ)’ 식으로 표기된 것.
김포는 금포이고 금쌀의 고향. 앞으로는 금땅이 될 고을이다. 김포한강 신도시가 바로 금땅이 될 것이고, 얼마 안 있어 여기저기 금택(金宅)들이 들어설 것이다. 김포 이름의 그 ‘금’이 금빛을 불러들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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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金浦 (구무뽀 クムポ) 금포
黔岩 (고무바오 コマバオ) 검바오(검바우)
店村 (지오무마루 チョムマル) 점말
黔丹 (고무당 コムタン) 검단
陵谷 (능고루 ヌンコル) 능골
吾尼山 (오리상 エリサン) 오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