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固城 蓮花山 玉泉寺 柱聯 :
(고성 연화산 옥천사 주련)
경남 고성군固城郡 개천면介川面 북평리北坪里 소재 옥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末寺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옥천사는 화엄10찰(華嚴十刹) 중 하나였다.
670년 (문무왕 10)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고,
1208년 (희종4)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수선사修禪社의
법석法席을 물려주려 하자 그 뜻을 뿌리치고
이곳으로 들어와서 자취를 감추었던 혜심慧諶이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소 후 1639년 (인조 17)에 학명學明과 의오義悟가
다시 중창하였으며, 1883년 (고종 20)에 용성龍城이 중건하였다.
1919년에는 영호暎湖가 이 절의 강사로 있으면서
세진교洗塵橋를 놓은 것을 비롯하여 두 차례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에 자방루滋芳樓,
좌측에 심검당尋劍堂, 우측에 적묵당寂默堂이 있으며,
그 밖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6호로 지정된 명부전과
삼천불전, 금당金堂, 팔상전八相殿, 나한전, 산신각,
독성각獨聖閣, 산령각, 옥천각, 범종각, 요사채寮舍寨,
종무소宗務所 등이 있다. 건물 하나하나가 큰 규모를 보이고 있고,
가람의 지붕이 마치 연꽃무늬처럼 배열되어 있어
규모면에서 본사인 쌍계사를 능가하고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95호로 지정된 임자명반자壬子銘飯子를
비롯하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인 자방루, 제60호인 반종飯鐘,
제132호인 대웅전, 제299호인 고성 옥천사 여러 소장품 등이 있다.
임자명반자는 고려시대에 동으로 만든 것이고,
자방루는 지은 지 300년이 넘는 우아한 건물로서
이 절의 품위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이 밖에도 큰 법고法鼓와
자방루 앞뜰에 하얀 화강암으로 다듬어 세운 청담靑潭의 사리탑이 있다.
옥천사는 청담스님이 처음 출가한 사찰이기도 하며,
고려 말의 펀조遍照 신돈辛旽이 노비로 살았던 절이기도 하다.
절의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1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 청련암靑蓮庵, 연대암蓮臺庵 등이 있고,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약수는 수질이 다소 변질되어서
좀 많이 마시면 설사를 일으키게 되는데, 변비 증세가 있는 사람은
단 한 번의 복용으로 오히려 효력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찰 주변에는 송이버섯과 산딸기 등의 특산물이 많이 자생한다.
1. 玉泉寺 大雄殿 柱聯 :
(옥천사 대웅전 주련)
修遠離法起隧順行 (수원리법기수순행)
번뇌 벗어나는 법 닦되 착한 행을 하여라
無邊衆生苦樂境界 (무변중생고락경계)
가없는 중생은 괴롭고 즐거운 경계뿐이니
滅一切苦得究竟樂 (멸일체고득구경락)
일체의 괴로움을 멸하고 대열반大涅槃樂을 얻을지어다
有一大事生死因緣 (유일대사생사인연)
유일한 큰일은 나고 죽는 인연이로다
世出世間一切是法 (세출세간일체시법)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일체가 이 법이니
天上天下獨存者心 (천상천하독존자심)
하늘 위아래에 홀로 높은 것은 이 마음이로다
崇山峻嶺茂林修竹 (숭산준령무림수죽)
높은 산 높은 고개에 숲은 무성하고 대나무는 곧으니
松風水月僊露明珠 (송풍수월선로명주)
솔바람은 물 위의 달을 흔들고 맑은 이슬은 구슬을 꿰었네
옥천사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57년 (효종 8)에
용성화상이 중창하였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팔작八作 지붕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 양식 건물이다.
건물의 규모는 일반 대웅전과 비슷하나, 마주보고 있는
자방루나 적묵장의 크기에 비하면 초라하리만큼 작은 편이다.
앞마당의 뜰(中庭)도 자방루에 비해 훨씬 작고,
부속 건물에 둘러싸여 답답한 느낌을 준다.
다만 높이 쌓은 석축 위에 건물을 조성함으로써,
이곳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든 위를 올려보게 하여 중심 건물이 갖는
당당한 권위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건물의 부재部材들 역시 고급스럽고
튼실하여 조선후기 남해안 지방에 건립된 일반 사찰에 비해
훨씬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기둥은 장식물들은
길게 뻗어있으면서도 완만하게 상승하고 있어서
힘과 유려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대웅전은 조선후기 다포계 팔작집의
화려한 격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므로,
당시의 대웅전 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2. 玉泉寺 冥府殿 柱聯 :
(옥천사 명부전 주련)
地藏大聖威神力 (지장대성위신력)
지장보살님의 위의한 신통력은
恒河沙劫說難盡 (항하사겁설난진)
수만갑을 설명한들 끝이 없어라
見聞噡禮一念間 (견문첨례일년간)
보고 듣고 예배하는 잠간 사이에
利益人天無量事 (이익인천무량사)
인간과 세상에 이익 된 일 무량하여라
명부전은 지장보살地藏菩薩과 명부冥府, 즉 저승의
염라대왕 등 10대왕十大王을 봉안한 전각으로
지장전地藏殿 혹은 시왕전十王殿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앙의 부처님은 지장보살이시고, 좌우보처左右補處는 합장을 한
도명존자道明尊者와 읍을 한 무독귀왕無毒鬼王이 시립侍立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 입멸 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부처 없는 세계에 머물면서 육도六道 중생을 교화한다는 보살이다.
옥천사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730년에 지어졌으며, 쇠서를 이용하여 네 모서리마다
각 7마리의 봉황새를 앉혔으며 내부에는 활처럼 굽은 대들보
2량을 가구하여 조선시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한껏 표현하고 있다.
1895년 (고종 32) 옛 궁선당窮禪堂 터에 중수 되었다.
현재 명부전 옆에는 흙과 기와로 빚은 정겨운 옛 굴뚝이
나란히 자리하여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기도 한다.
명부전 불단에는 역시 포근하고 귀여운 인상의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시립해 계신다.
3. 玉泉寺 八相殿 柱聯 :
(옥천사 팔상전 주련)
塵墨劫前早成佛 (진묵겁전조성불)
한없이 오랜 옛적 이미 일찍 성불하셔
爲度衆生現世間 (위도중생현새간)
중생 제도 위해 친히 이 세상에 오셨네
嵬嵬悳相月輪滿 (외외덕상월륜만)
덕 높으신 부처님 보름달 같이 환한 모습
於三界中作導師 (어삼계중작도사)
삼계 가운데 큰 스님이 되시네
팔상전은 부처의 일생을 담은 8폭의 그림을 담은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전각은 1890년 (고종 27년)에 세워진 것으로
8상 탱화는 도난을 방지하고자 보장각에 따로 보관하고 있으며,
탱화의 사진을 대신 걸어두고 있다.
4. 玉泉寺 寂黙堂 柱聯 :
(옥천사 적묵당 주련)
山堂靜夜生無言 (산당정야생무언)
고요한 밤 절간에 말없이 앉아있으니
寂寂寥寥本自然 (적적요요본자연)
적적하고 고요함이 자연의 본 모습인데
何事西風東林野 (하사서풍동임야)
서풍은 무슨 일로 들 숲을 흔들었나
一聲寒雁唳長天 (일성한안려장천)
기러기 추운데 소리 내 울며 먼 하늘로 날아가는구나
이 적묵당과 건너편의 탐진당探眞堂은 스님들이 거처하는 큰방이다.
순치順治年間(1644-1661)에 창건되어 영조 34년 (1758)에
중창된 건물로 서로 마주보는 대칭관계를 이루고 있다.
적묵당의 주련글씨는 조선말에 이조판서를 지낸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의 글씨다.
해사는 송대宋代 미남궁체米南宮體를 잘 썼던 명필로
여러 사찰에 많은 글씨를 남겼다.
5. 玉泉寺 寶藏閣 柱聯 :
(옥천사 보장각 주련)
祖印恒作七佛師 (조인항작칠불사)
문수보살은 적멸인寂滅忍으로 칠불의 스승이 되셨고
大智亦爲菩薩首 (대지역위보살수)
큰 지혜로 또한 보살 가운데 으뜸이네
刹刹現身示無身 (찰찰현신시무신)
온 세상에 나타나시되 몸 없는 몸을 보이시어
普令衆生超三有 (보령중생초삼유)
중생으로 하여금 삼계를 벗어나게 하셨네
옥천사의 안내문에 의하면 상기 4구절의 주련은,
"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靜寺 주련 문구로서
문수보살을 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문수전文殊殿 주련 내용 일부와도 같다.
화엄華嚴 10찰刹 중 하나였던 옥천사가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상원사 문수전 주련 일부와 같은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6. 玉泉寺 祖師殿 柱聯 :
(옥천사 조사전 주련)
西來祖意最堂堂 (서래조의최당당)
서쪽에서 오신 달마조사의 뜻 당당하기도 하여라
自淨其心性本鄕 (자정기심성본향)
본래 청정한 마음자리가 곧 본성품의 고향이라
妙體湛然無處行 (묘체담연무처행)
마음이란 맑고 묘해 있는 곳이 따로 없어
山海大地現眞光 (산해대지현진광)
삼라만상 그대로가 한 마음의 나툼이라네
사조전은 이 절에 주석하셨던 조사祖師스님들을 모신 전각이다.
중앙에는 이 절을 창건하신 의상대사9625-702년)의 진영을 모셨고
좌측에는 채서응蔡瑞應의 진영을 모셨는데, 이분은 구한말 옥천사에서
동진출가童眞出家한 후 대원사, 벽송사, 영원사, 천은사 등에서
불경을 배워 당시 우리나라 5대 강사 중 한 분의 대사로
일제강점기 때의 사법寺法에 의거 옥천사 초대 주지를 하신 후
광복직후 좌탈입망坐脫入亡하셨다.
우측에는 근대의 고승 청담靑潭 성철性徹(1902-1971년)
대종사大宗師의 진영을 모셨다.
7. 玉泉寺 羅漢殿 柱聯 :
(옥천사 나한전 주련)
古佛未生前 (고불미생전)
옛 부처님 나시기 전에
凝然一相圓 (응연일상원)
둥그런 모습 하나 서렸더라
釋迦猶未會 (석가유미회)
석가께서도 몰랐거니
迦葉豈能傳 (가섭기능전)
가섭이 어찌 전하리오
나한상을 모시는 당우堂宇가 나한전이다.
석가모니를 주불로 하여 좌우에 석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성자들을 봉안한다.
500나한상을 모신 오백나한전과 16나한상을
모신 응진전應眞殿으로 구분된다.
옥천사 나한전은 16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羅漢은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불법을 수호하도록
부처님의 부촉을 받은 분들로서 곧 잘 영험을 나타내는
수가 있는데 옥천사에서도 가끔 영험을 보이신다고 한다.
중앙의 유리장 안에는 석조로 된 석가모니불과 목조로 된 미륵보살,
제화가리보살 등의 삼존을 모셨는데 정조연간 (1776~1799)의
아름다운 불상들이다. 나한상은 상단 불상의 상단 불상의 좌우로
각 여덟 분씩 16분을 모셨다.
이 건물은 고종 32년 (1895)에 건립된 단포(單包) 집으로
내부에는 4모서리에 비룡을 조각하여 매다는 등
뛰어난 건축술을 발휘하였다. 바깥 기둥의 주련은
성파星坡 하동주河東州 ( 986~1944)의 글씨다.
8. 玉泉寺 滋方樓 柱聯 :
(옥천사 자방루 주련)
圓覺山中生一樹 (원각산중생일수)
원각산 가운데 한 나무가 자라서
開花天地未分前 (개화천지미분전)
천지에 꽃을 피어 앞을 분간할 수 없구나
非靑非白亦非黑 (비청비백역비흑)
푸르지도 희지도 또한 검지도 않은
不在春風不在天 (부재춘풍부재천)
봄바람도 존재하지 않으며 하늘도 존재하지 않는다
三界猶如汲井綸 (삼계유여급정륜)
삼계가 오히려 두레박으로 우물에서 물을 푸니
百千萬劫歷微塵 (백천만겁역미진)
백천만겁도 작은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此身不向今生導 (차신불향금생도)
이 몸이 지금 생애에 인도받지 못하면
更待何生度此身 (갱대하생도차신)
다시 어찌 생애에 이 몸을 인도 받을 수 있을까
‘자방루滋芳樓’란 ‘꽃다운 향기가 점점 퍼져간다’는 말이며,
불도佛道를 닦는 누각이라는 의미이다.
자방루는 1764년 (영조 40) 뇌원대사雷遠大師가 처음 지었으며
1888년 (고종 25)에 중수한 누각으로 경남 유형문화재 제53호이다.
대들보 6개 중 왼쪽에서 네 번째에는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비천상이
쌍방으로 그려져 있고 세 번째에는 비룡飛龍이 그려져 있다.
4개의 기둥 중 2번, 3번의 기둥머리에는 용두龍頭가
쌍방으로 조각되어 있다.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단층 팔작지붕이다.
기둥 사이를 모두 두터운 문으로 막고 오직 앞마당과
면하는 전면만을 개방하여 큰 성채를 방불케 한다.
건물 내부는 화려하게 장식했는데, 이런 건물 형식은
단순히 불교신도를 위한 설법용이나 불구佛具를 두기 위한
공간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임진왜란 직후 조정에서는 전략 요충지에 비상시를 대비한
군사적 목적의 사찰을 건립한 예가 있는데 옥천사도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즉 군사적 회합의 대 공간과 사찰 보호용 외곽의 방어용 성채,
군사 훈련을 위한 대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므로
산지의 사찰로는 보기 힘들 만큼 넓은 앞마당이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거대한 성채 같은 자방루는
조선후기사찰 건립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9. 玉泉寺 玉泉閣 柱聯 :
(옥천사 옥천각 주련)
松風水月遷露明珠 (청풍수월천로명주)
솔바람은 물속 달을 일렁거리게 하고
찬 이슬을 밝은 구슬로 만드는 구나
崇山峻嶺茂林修竹 (숭산준령무림수죽)
높은 산 험준한 재에 숲은 무성하고 대는 곧으니,
〔 世出世間一切是法 (세출세간일체시법)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일체가 이 법이거늘
天上天下獨存者心 (천상천하독존자심)
하늘 위아래 홀로 높은 것은 이 마음일세 〕
팔상전 뒤쪽에는 옥천각이란 조촐한 건물이 있는데,
바로 그 안 옥천사의 명물인 옥천玉泉이 고여 있다.
옥천은 물이 솟는 샘터로 절에서는 그를 위해
옥천각이란 수각水閣까지 씌웠는데,
이 샘터는 옥천사 창건시절부터 있었다고 하며,
옥천사란 이름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창건 이후 물과 함께 일정량의 쌀이 흘러나와
그걸로 공양을 했다고 하며, 어느 욕심꾸러기
승려가 더 많은 쌀을 취하고자 샘을 파헤쳤는데,
샘이 크게 노해 쌀은커녕 물도 끊겼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승려가 지극정성으로 잘못했다고
기도를 올리며 샘을 달래니 샘도 화를 풀었는지
연꽃 1송이가 활짝 피어나면서 물이 콸콸 솟아나
만병통치의 약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성 지역에 이름난 약수로 왕년에는 샘물에서
목욕을 하는 중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하며,
지금은 목욕은 못하고 물만 떠 마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