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날마다 죽노라- 야망의 죽음(2)
“내가 날마다 죽노라-야망의 죽음”
갈릴리 호수에서 평생 고기 잡던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를 향해 주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사람을 낚으러가 아니라 바다의 고기 낚으러 갔다가 하나님이 손을 보심으로 이번에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다시 발견하게 된 나의 약점이다.
1.아직도 죽어야 할 내 혼적 야망의 모습(근성) 이다.
무엇을 하고 싶다 생각하여 행동에 옮기면 그것의 끝에 도달할 때까지, 싫어질 때까지 하는 어떤 모습은 인내의 모습에서는 좋은 단면이지만, 내 고집이라면 그것은 아직도 내 안에 완전히 죽지 못한 혼적 야망일 수가 있음을 알았다.
2.약속의 성취를 인내로 기다리면서도 하늘처럼 높은 약속과 아직은 계곡 같이 간격이 멀어 찬양과 경배로만 승리할 수 있음을 글로 쓰고 선포하면서도, 때로 속에서 그 오랜 참음과 인내의 세월 속에서도 채 녹아지지 않아 자칫하면,
아무리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해도 순식간에 화산으로 폭발할 수 있는 내 지체 중에 아주 작은 부분인 새끼 손가락 끝마디가 끊어지는 것으로 보여 주신 분노의 단면이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세도를 누리며 야망적인 삶을 살다가 살인하여 도망한 중에 40년 간 그것도 데릴 사위로 장인의 양을 치는 신세로 아직 알지 못하지만 자신을 죽이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도자 과정을 거쳤다.
또 40년 동안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면서 지상에서 모세같이 온유한 사람을 볼 수 없었다는 칭찬을 받았지만,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과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향한 순간적인 분노로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반석을 두 번 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야망의 죽음, 분노의 처리 둘 다 참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러하기에 바울사도처럼 “내가 날마다 죽노라” 고백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무리들을 향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시고 저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기도하신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다.
2016년도에 발간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 처음 부분에 내가 쓴 ‘야망의 죽음’을 다시 한번 읽는다.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3)
1. 신앙의 승리
야망의 죽음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 사이에 인내와 함께 내 야망의 죽음이 있다.
예언적 비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여도 그 비전을 내가 성취하려고 하는 것은 아직도 내 야망이 죽지 못하였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야망은 영적으로 미성숙함 가운데서 일어나는 첫번 째 동기가 된다.
야망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하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힘으로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그것의 실패를 경험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한다.
영적성숙의 과정에 있어서 자신의 최대의 적은 어떤 다른 대상이 아니라 바로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결과적으로 야망이 있는 곳에 “요란과 모든 악한 일”(약 3:16)이 있다. 야망은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우리의 내면을 더욱 빚어가기 원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준비된 것으로 생각하는 영적무지요, 자만에서 비롯되는 그릇된 집념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단숨에 그것을 수행하는 것은 오히려 덜 힘들 수 있다. 그것은 약속을 받고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오랜 신뢰와 인내의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내 야망에노출시키지 않고 그것의 성취까지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실한 사람이다.
초조해 하지 않고 신뢰를 가지고 인내하는 자는 비로소 약속이 성취될 때,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하나님께 한층 더 가까워진자신을 발견하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나를 통해 성취하시기 전에 먼저 내 안에 그의 성품이 빚어 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내가 준비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는 사역은 그의 일을 성취하게 하기 위한 부르심 이전에 나를 죽게 하기 위한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에 온 몸의 살갗과 근육과 핏줄 속에 불이 임해 6개월 째 되는 때에 “주님 뜨거워 죽겠어요”라고 부르짖었을 때, “죽어라”하고 들려 온 음성의 의미를 이제야 헤아리게 되는 것은 그만큼 야망과 자아의 죽음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은 것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약속의 성취와 야망의 완전 죽음 사이에서 단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나를 영적으로 진전하게 한 모든것들은 먼저 내 자신이 죽는 것에 의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진실로 내 야망의 죽음은 약속의 성취로 나아가는 필연적 단계이다. 또한 야망의 죽음, 그것은 주와 함께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며 그와 연합하는 영적성숙의 지름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