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공부하면서 많이 헷갈리는 것 중 하나는 사람의 이름(姓名)입니다. 더욱이 시의 제목에 나오는 이름은 거의 본명이 아니라 호(號)나 자(字)를 쓰며 관직명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작가의 이름을 본명으로 쓰는 경우가 흔한데, 중국에서는 성(姓)에 호를 붙여 쓰는 경우가 많습디다. 유명한 시인의 예로 들자면 도연명의 본명은 도잠(陶潛)이고, 이태백은 이백(李白), 백낙천은 백거이(白居易), 소동파는 소식(蘇軾).. 그러나 신라의 최치원(崔致遠), 고려의 정지상(鄭知常), 이규보(李奎報), 조선의 김시습(金時習), 황진이(黃眞伊), 임제(林悌) 등은 흔히 본명 그대로 쓰고 있지요.
姓에 號를 바로 붙여 쓰는 중국, 호를 쓰고 본명을 부기하는 우리
앞서 예로 들었듯이 중국에서는 도연명(陶淵明) 소동파(蘇東坡)와 같이 성에 직접 호를 붙여 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최치원의 경우 최고운(崔孤雲) 또는 최해운(崔海雲)이라 잘 부르지 않으며, 정지상을 정남호(鄭南湖)로, 이규보를 이백운거사(李白雲居士)라 하지 않지요. 포은(圃隱) 정몽주나 송강(松江) 정철, 고산(孤山) 윤선도처럼 호 다음에 본명을 붙여쓰는 경우는 있지만..
그 이유를 밝히는 건 학자들의 몫이고 나는 다만 한가지 가능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중국이나 우리 모두 임금이나 윗 어른의 본명을 바로 부르는 것을 꺼리는(諱)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이란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면, 성이 많고 다양한 중국에선 성과 호를 붙여 쓰는 게 별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성씨가 수두룩한 우리의 경우 굳이 성에 호를 붙이는 게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요. 어차피 호도 비슷비슷한 게 많구요. 차라리 본명을 쓰면 휘(諱)에는 어긋날지는 몰라도 항렬(行列)이 노출(?)되어 본관이 어디인지 알 수 있기에, 가문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중국에서는 호대신 관직명을 쓰는 경우도 많은데
당나라 두보(杜甫)의 경우 호는 子美인데, 끝물(?)에 크게 내세울 만한 벼슬도 아닌 지방의 공부외랑(工部外郞)을 지냈다 하여 두공부(杜工部)라 널리 불립니다. 아마도 황제가 내린 관직명이 그들에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인은 아니지만 동진시대의 걸출한 서예가 왕희지(王羲之)는 자가 逸少인데, 그보다는 쪼그라든 진나라(東晉)에서 잠시 우군장군(右軍將軍) 벼슬을 하였다 하여 王右軍으로 통합니다. 그 외에도 허다한 예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생략토록 합니다.
여기 우리나라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대동강 부벽루에 걸려있어 중국 사신들이 드나들며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정지상(鄭知常, 고려)의 ‘님을 보내며(送人)’를 붙입니다.
雨歇長堤草色多 비개인 긴 둑에 풀빛 가득한데,
送君南浦動悲歌 그대를 보내는 남포엔 슬픈 가락이 울립니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물은 언제나 마를 날이 있을까요.
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파도에 보태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