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 같은 인생 / 황정혜
글감이 주어지면 가족에게 묻는다. 무엇을 소재로 쓰면 좋을까? 나를 잘 알기에 큰 도움이 된다. 이번 주는 취향이라고 말했더니 제발 김치 좋아한다는 말은 쓰지 말라고 이구동성이다. 밥 한술 떠서 김치 한 가닥 척 걸쳐 넣으면 꿀떡꿀떡 요동치는 침샘에 입안 가득 채워지는 따끈한 밥과 시원하고 개운한 김치맛의 조화로움에 푹 빠져든다.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는 어느 음식을 먹어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혼자 밥 먹을 때도 김치만 먹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다.
학창 시절 도시락 반찬은 늘 엄마의 김치였다. 친구들이 맛있다고 먹어주니 제일 먼저 반찬통은 바닥을 드러냈다. 한참 클 때는 밥을 세 그릇씩 먹었다. 고추장에 쓱쓱 비벼 김치를 올려 먹으면 꿀맛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그 맛은 에너지원이었다. 우리 어머님도 음식솜씨가 좋았다. 특히 새우젓을 넣어서 담그는 김치는 맛깔스럽다. 나는 김치 담는 게 어렵고 머리가 무겁다. 그 깊은 맛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종류는 많지만 김장김치의 숙성된 맛은 일품이다. 그래서 재료들을 미리 준비한다. 5월 중순 쯤 바지락이 제철이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바지락살을 주문한다. 천일염을 솔솔 뿌려 꾹꾹 눌러 김치냉장고에 보관한다. 김장 때쯤 열어보면 노릇노릇 잘 숙성되어 있다. 짠맛을 잘 빼서 새우젓과 함께 넣으면 감칠맛이 최고다. 까마중(먹때깔 나무)으로 효소를 담군다. 3개월이 지나면 건더기는 버리고 숙성시킨다. 다른 효소에 비해 순해서 조금만 넣어주면 양념이 조화롭다. 감이 익을 무렵 단단한 대봉을 대바구니에 펼쳐놓는다. 김장철에 사려면 냉장 보관된 것이라 맛이 떨어진다. 곱게 채에 바쳐 양념에 넣으면 더 맛있게 숙성된다. 고추도 첫 수학시기에 사야 두껍고 맛이 좋다. 붉은색이 선명하고 윤기나는 것을 고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소하고 아삭한 배추를 골라 간질을 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와 어머님께 맛있다는 평을 받아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김치냉장고 두 개 가득 채워두면 부자가 된 기분이다.
식감이 아삭하고 잘 숙성된 맛의 묵은지는 발효과학의 재탄생이다. 살아보니 인생도 묵은김치와 같더라. 푸성귀 시절 초록의 싱그런 꿈을 꾸었지. 비바람 맞고 서리 맞아 소금에 절여지고 각종 양념에 버무려진 채 몸살을 겪고 나면 새로운 세상맛이 우러난다. 내가 녹록지 않은 시간을 살다보니 진솔한 사람이 좋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내면의 향기를 지닌 사람이 참으로 좋아진다.
우리의 취향은 살아가면서 바뀌는 것은 참 다행스럽다. 어린 시절에는 꽃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새싹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이제는 가을 햇살 한 줌 움켜쥐고 황혼의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단풍이 곱게만 느껴진다. 이런 무수한 변덕을 위해 세상이 창조된 것처럼 우리는 한취향에서 다른 취향으로 옮겨 다닌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히 여기며 성숙해지는 삶은 묵은지의 깊은맛과 견주리라 생각해본다.
첫댓글 침 삼키며 읽었습니다. 자취하다 보니 잘 익은 김치가 더 그립더라고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김치는 그리움이고 에너지원이라 생각합니다.. 댓글 큰 힘이 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김치인데 선생님의 김치를 맛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일거예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글쓰기는 항상 어려운데 늘 편안하게 느껴지는 선생님 글은 저를 행복하게 한답니다.
댓글에 힘을 얻어봅니다.
김장김치는 김치 냉장고에서 숙성해야 깊은 맛이 나는 묵은지로 발효되죠. 잘 익은 묵은지는 어떤 재료와 찌개를 끓여도 맛있어요.
여름날 찬물에 보리쌀 넣은 밥 물 말아 묵은지 척 걸쳐 한 입 먹으면 일품인데요.
김치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위로가 됩니다.
사위들이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김치라고 말 할사람이라고 핀잔 듣고 살거든요. 김치 한 입 먹으면 기운이 솟는답니다. 찬물에 보리밥 말아 묵은지 말씀하시니 입안 가득 침샘 폭발 ㅎ ㅎ ㅎ
댓글 고맙습니다.
가족과 함께 글감을 나누는 게 인상적입니다.
그래서 멋진 글이 잘 나오는군요.
김치도 담으신다니 멋져요.
저는 못 담아요. 먹는 입만 있어요 하하
정성스럽게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야무지지 못해서 가족이 관심이 많아요.
똑부러지는 선생님 뵈면서 가족들이 편안하시리라 생각한답니다.
김치도 잘 담그지를 못하니
노력을 많이합니다.
바쁘실텐데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