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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소진(蘇秦중국 전국시대의 책사(策士). 진(秦)나라에 대항하고자 육국(六國)에 합종책(合從策)을 설득하여 성공함. 말 잘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장의(張儀_중국 전국시대의 변론가(辯論家). 연횡책(連橫策)을 육국(六國)에 부르짖어 소진의 합종책을 깨뜨렸다. 말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구변(口辯)인지 말씀도 잘도 하고, 소강절(邵康節_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소옹(邵雍)을 말한다. 강절은 시호임)의 추수(推數_앞으로 닥쳐올 운수를 미리 헤아려 앎)인지 알기도 영험하다. 남의 단처(短處_부족한 점) 너무 발각 말으시오. 듣는 이도 소견 있소. 만고(萬古) 대성(大聖) 공부자(孔夫子_공자(孔子)의 높임말.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학자)도 진채액(陳蔡厄_공자가 진채 땅에서 당한 봉변과 액운)에 욕보시고, 천하장사 초패왕(楚패王_중국 초(楚)나라의 항우(項羽)를 높이어 이르는 말)도 대택(大澤) 중에 빠졌으니, 화와 복이 하늘에 있고 궁하고 달함이 명수(命數)에_운명과 재수에) 달렸거늘, 그대는 수부에서 여간 호강깨나 한다고 산간처사로 붙여 있는 나를 그다지 괄시하니 무슨 까닭인지 도무지 알 수 없노라.”
자라가 가로되,
“그런 것이 아니라 친구끼리 좋은 도리로 서로 권하려 함이노라. 옛글에 일렀으되 위태한 방위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있지 말라 하였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이같이 분요(紛擾)한_어수선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사느뇨. 이제 나를 만나 계제(階梯_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된 일의 형편이나 기회) 좋은 김에 이 요란한 풍진을 하직하고 나를 따라 수부에 들어가면 선경도 구경하고, 천도(天桃) 반도(蟠桃_선가(仙家)에서, 하늘나라에 있다고 하는 신선 복숭아) 불사약과 천일주(千日酒) 감홍로(甘紅露) 삼편주(三鞭酒)를 매일 장취(長醉)하고, 구중궁궐(九重宮闕_문이 겹겹이 이어진 깊은 궁궐이라는 뜻. 즉 임금이 있는 대궐 안) 같은 높은 집에 무산선녀 벗이 되어 순임금에 오현금(五絃琴_다섯 줄로 된 옛날 거문고의 하나. 중국 순(舜)임금이 만들었다 함)과 왕대욱의 옥퉁소와 춘면곡(春眠曲_작자․연대 미상의 12가사의 하나로 춘흥(春興)을 읊은 내용임) 양양가(襄陽歌_이백(李白)이 양양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악부(樂府)에서 비롯되었다는 조선의 12가사 가운데 하나)를 시시로 화답하는데, 악양루(岳陽樓_중국 후난성(湖南省) 북쪽에 있는 악양의 거리를 둘러싼 성벽 서문 위의 누각. 동정호(洞庭湖)를 조망하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 경개도 보며, 등왕각(藤王閣_당나라 고조(高祖)의 아들 등왕(藤王)이 강서성(江西省)에 세운 누각. 당나라 초기의 시인 왕발(王勃)의 서(序)로 유명함)에 잔치하고, 황학루(黃鶴樓_중국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옛 누각으로 양자강을 조망하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에서 글도 지으며, 봉황대에서 술도 먹고, 태평건곤 마음대로 노닐 적에 세상 고락 꿈 속에 붙여두고 조금이나 생각할까?”
토끼 그 말 듣고 수상이 여겨,
“어허 싫다.”
하고 고개를 흔들면서 가로되,
“그대 말은 비록 좋으나 아마도 위태하지. 속담에 이르기를 노루 피하면 범 만난다 하고, 불가대명(佛家大命)은 독안에 들어가도 못 면한다 하였으니, 육지에서 살다가 무슨 외입으로 공연스레 수궁에 들어가리오. 수궁 고생이 육지 고생보다 더하지 말라는데 어디 있으며, 또는 제일 당장 첫째 고생이 두 콧구멍 멀겋게 뚫렸지만 호흡을 통치 못할 터이니 세상 만물이 숨 못 쉬고 어이 살며, 사지가 멀쩡하여도 헤엄칠 줄 모르거니 만경창파 깊은 물을 무슨 수로 건너갈꼬. 팔자에 없는 남의 호강을 부질없이 심욕(心慾)내어 이 세상을 하직하고 그대를 따라 수궁에 들어가다가는 필연코 칠성(七星)구멍_눈, 귀, 코, 입에 해당하는 7개의 구멍)에 물이 들어 할 수 없이 죽을 것이니, 이 내 목숨 속절없이 고기 배때기 속에 장사지내면 임자 없는 내 혼백이 창파 중에 고혼이 되어, 어하(魚蝦_물고기와 새우. 곧 어류(魚類)를 이르는 말)로 벗을 삼고 굴삼려(屈三閭_굴원은 초(楚)나라의 왕족으로서 삼려대부의 직분을 맡았다. 삼려는 왕족(王族)의 삼성(三姓)인 소(昭)‧굴(屈)‧경(景) 삼가(三家)를 다스리는 자리이다)로 짝을 지어 속절없이 되게 되면, 일가 친척 자손 중에 그 뉘라서 나를 찾을까. 아무리 백천만 가지로 생각하여도 십 분에 팔구분은 위태한 걸. 콩으로 메주를 쑤고 소금으로 장을 담는다 하여도 도무지 곧이 들리지 아니 하니 다시는 그따위 말로 권치 말라.”
자라가 웃으며 가로되,
“그대가 고루하기 심하도다.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알지 못하는구려. 옛글에 하였으되 강의 먼 곳을 한 갈대로 건너간다 하였으니 이러므로 조주(潮州)의 선비인 여선문(餘善文_송나라 문인으로 상량문(上樑文)을 잘 지었다고 함)은 광묘궁에 들어가서 상량문 지어주고, 천하 문장 이태백은 고래를 타고 달 건지러 들어가고, 삼장법사(三藏法師_당나라의 중 현장(玄장). 인도에 가서 불경을 가져다가 한역(漢譯)하였고, 후에 법상종(法相宗) 및 구사종(俱舍宗)의 시조라 불림. 여행기에 ‘대당서역기’(對唐西域記)가 있음)는 약수(弱水_신선이 살았다는 중국 서쪽의 전설적인 강. 길이가 삼천리에 이른다) 삼천리를 건너가서 대장경을 내어 오고, 한나라 사신 장건(張蹇_중국 후한(後漢) 때의 외교가. 무제(武帝) 때 북방의 흉노족을 견제하기 위하여 서역의 대월지와 동맹을 맺고자 서역으로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였음)이는 뗏목을 타고 은하수에 올라가서 직녀의 지기석(支機石_직녀(織女)가 베틀이 움직이지 않도록 받쳤다고 하는 돌)을 주워 오고, 서왕세계(西往世界_서방정토. 곧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 아란존자(阿蘭尊者_석가모니의 사촌동생이자 그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는 연잎에 거북을 타고 만경창파를 임의로 헤쳤으니, 저의 목숨이 하늘에 달렸거든 공연히 죽을손가. 대장부 되어 나서 이대도록 잔망(孱妄_행동이 옹졸하고 경망함)할까? 대저 군자는 사람을 못 쓸 곳에 천거하지 아니 하나니 어찌 그대를 못 쓸 곳에 지시하리오.
맹자 가라사대 군자는 가히 속을 듯한 방술로 속인다 하고, 또 어지러운 나라에 있지 아닐 것이라 하였으니, 이 점잖은 체모에 부모의 혈육을 가지고 반점이나 턱이 바이없는 거짓말을 하겠나. 천금상에 만호후(萬戶候)를 봉하고, 밥 위에 떡을 얹어 준다할지라도 아니하려든, 하물며 아무 해(害)도 없고 이(利)도 없는 일에 무슨 억하심정으로 위태한 지경에 빠지게 하리오.
또는 그대의 상을 보니 미색이 누릇누릇 헷득헷득하야 금빛을 띠었으니 이른바 금생어수(金生於水_금생수(金生水). 오행설에서, 금에서 수가 생함을 이르는 말)라. 물과 상생이 되어 조금도 염려 없고, 목이 길다라니 고향을 바라보고 타향살이 할 기상이오, 하관(下觀_얼굴의 아래쪽)이 뾰족하니 위로 구하면 역리(逆理)가 되어 매사가 극란(極難_극히 어려움)하되, 아래로 구하면 순리가 되어 만사가 크게 길할 것이오, 두 귀가 희고 준수하니 남의 말을 잘 들어 부귀를 할 것이오, 미간이 탁 틔여 화려하니 용문에 올라 이름을 빛낼 것이오, 음성이 화평하니 평생에 험한 일이 없을 것이라. 그대의 상격(相格_관상에서, 사람 얼굴의 생김새)이 이와 같이 가지가지 구격(俱格)하니, 일후의 영화부귀가 무궁하여 행락으로는 당명황(唐明皇)의 양귀비(楊貴妃_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귀비. 재색이 뛰어나 궁녀로 뽑혀 현종의 총애를 받고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안녹산(安祿山)의 난에 죽음)며, 한무제의 승로반이오, 팔자로는 백자천손 곽자의(郭子儀_중국 당나라 숙종(肅宗) 때 사람으로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하여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짐)오, 부자로는 석숭(石崇_중국 진(晉)나라 때의 부호(富豪)이며 문장가)이오, 풍악으로 요임금의 대황곡과 순임금의 봉조곡과 장자방의 옥퉁소가 자재(自在)하고, 유시로 사마상여(司馬相如_중국 전한(前漢)의 문인. 그의 사부(辭賦)는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여한위육조(漢魏六朝)의 문인의 모범이 됨) 거문고에 탁문군이 담을 넘어 올 것이오, 또는 농락수단으로 말하고 보면, 언변에는 육국 종횡하던 소진 장의에게 양두(讓頭_지위를 남에게 넘겨 줌)할 것 전혀 없고, 경륜에는 팔진도(八陳圖)로 지휘하던 제갈량이 바로 적수에 지나지 못할 것이니, 이러한 기골 풍채와 경영 배포가 천고에 제일이오 당시에 독보할 경천위지(經天緯地_온 천하를 경륜하여 다스림)의 영웅호걸이나, 그대가 마치 팔팔 뛰는 버릇이 있음으로 본토에만 묻혀 있어서는 이 위에 여러가지 복락을 결단코 한 가지도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전일과 같이 곤란한 재앙만 돌아올 것이오, 본토를 떠나 외지로 뛰어가야만 분명코 만사여의할 것이니, 내 말을 일호라도 의심치 말고 이번 이 계제 좋은 김에 나와 한가지 수부로 들어가기를 한 말로 결단하라. 정말이지 나와 같이 친구 잘 인도하는 사람을 만나 보기도 그대 평생 처음일 걸. 토선생댁에 참 복성(福星_복덕성(福德星). 길한 별이란 뜻으로 목성을 일컬음)이 비취었나니.”
토끼 가로되,
“나의 기상도 이와 같이 출중하거니와 형의 관상하는 법 신통하도다마는 대저 수요궁달(壽夭窮達_오래 살거나 일찍 죽으며, 궁핍하거나 부유하게 되는 것)이라 하는 것이 뚝 다 상설(相說_관상을 보는 사람이 하는 말)로 되는 일이 없나니, 치부할 상이면 태산 상상봉 백운대 꼭대기에 누웠어도 석숭의 재물이 절로 와서 부자 되며, 장수할 상이면 걸주(桀紂_중국 하(夏)‧은(殷)나라의 걸(桀)과 주(紂)임금. 포악한 임금의 대표자)의 포락(泡烙_불에 달근 뜨거운 쇠로 단근질하는 극형(極刑))하는 형벌을 당하여도 살아날 수 있겠는가? 누구든지 제 상만 믿고 행신(行身_처신)하다가는 패가망신이 십상팔구 되느니라.”
자라가 가로되,
“그대는 저물도록 무식한 말만 하는도다. 누구든지 자기 관상대로 되는 것이니, 실한 증거가 있으니 융준용안(隆準龍眼_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얼굴 특징을 표현한 말. 우뚝한 코와 용의 눈처럼 부리부리한 눈) 한태조는 사상의 정장(亭長)으로 창업한 임금이 되셨고, 용자일표(龍姿逸飄_뛰어나게 깨끗한 몸맵시) 당태종은 서생으로서 나라를 얻고, 백면대이(白面大耳_하얀 얼굴과 커다란 귀)) 송태조는 필부로서 천자 되고, 금반대 채택(蔡澤_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로 진(秦)나라 소왕(昭王)에게 객경(客卿)으로 발탁되었다가 범수(范수)대신 재상이 되었다)이는 범수(范수_중국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변설가로 진(秦)나라 소왕에게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건의하여 제후를 침략하였다)를 대신하여 정승이 되었고, 그외 여러 영웅호걸들이 무비(無比) 다 관상대로 되었으니 왕후와 장상이 어찌 씨가 있다 하리까?
옛말에 일렀으되 범의 굴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어찌 범의 새끼를 얻으리오 하였으니,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자기 일신 사업을 할진대, 되면 좋고 아니 되면 말자 하고 노질부질하여 볼 것이지, 그까진 것 무엇이 무서워서 계집아이 태도처럼 요리 빼끗 조리 빼끗 저무도록 시간만 허비하리요. 그대가 바위 구멍에 홀로 있어 무정한 세월을 보내고 초목과 같이 썩어지면 거 뉘라서 토처사가 세상에 나 있는 줄 알겠느냐. 이는 형산에 흰 옥이 진토 중에 묻힌 모양이니, 영웅호걸이 초야에 묻혀 있어 때를 만나지 못함이라. 도토리와 풀잎이며 칡순과 잔디 싹이 그다지 좋은가? 천일주와 불사약에 비하면 어떠하며, 돌 구멍 찬자리에 벗 없이 누었음이 또한 그리 좋은가? 분벽사창(粉壁紗窓_하얗게 꾸민 벽과 깁으로 바른 창이라는 뜻. 곧 여자가 거처하는, 아름답게 꾸민 방을 말한다)) 반쯤 열고 운문병풍(雲紋屛風) 그림 속에 원앙금침 비단 요에 절대가인 벗이 되어 밤낮으로 희롱하는 그 행락(行樂)에 비할진대 과연 어떠하겠느냐? 그대의 하는 말은 졸장부의 말이오, 나의 하는 말은 당당한 정론 아닌가? 만단(萬端)으로_온갖 방법으로) 호의(狐疑)를 가지고 유예미결(猶豫未決_망설여 결정을 짓지 못함)하는 자는 자고로 매사불성(每事不成_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아니함)하는 법이라.
옛날에 한신(韓信_중국 전한(前漢)의 무장으로 장량(張良)․소하(蕭何)와 더불어 한(漢)나라 창업의 삼걸(三傑) 중 한 사람. 고조(高祖)를 따라 조(趙)․위(魏)․연(燕)․제(齊)를 멸망시키고 항우를 공격하여 큰 공을 세움)이가 괴철의 말을 듣지 않다가 팽구(烹狗)의 화_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에서 나온 말. 산에 있는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 한신이 독립하라는 모사 괴철의 말을 듣지 않고 유방(劉邦)을 도왔다가 제후억멸책에 의해 살해당한 고사를 말한다)를 당하고, 대부 종이 범려(范려_중국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재상. 월(越)왕 구천(九踐)을 잘 도와 부차(夫差)를 쳤으나 벼슬을 내놓고 도(陶)로 가서 거부가 되어 도주공(陶朱公)이라고 자칭하였음))의 말을 들었던들 사금의 환이 없었으리니, 내 어찌 전에 일을 증험(證驗)하여 후에 일을 도모치 아니하리오. 이제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후일에 나를 보고저 하려다가는 그대의 고(故) 고조(高祖)가 다시 살아와도 정말 할 수 없으리니, 때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느니라. 후회하면 무엇하리오. 세상인심은 처음 좋아하다가 나중 되면 헌 신 같이 버리거니와, 우리 수부는 동무를 한 번 천거하면 시종이 여일하니 발천(發闡)하기_앞길을 열어서 세상에 나서기) 이렇게 좋은 곳은 구하여도 얻지 못하리라.”
토끼 이 말을 들으니 든든하기가 태산쯤 되는지라. 마음에 한 반 턱이나 속아 고수이 듣고 밑구멍이 옴질옴질하여 쌩긋쌩긋 웃으며 가로되,
“내 형을 보매 시체(時體_그 시대의 풍습이나 유행) 사람은 아니로다. 의량(意量)이 넓고 선심이 거룩하여 위인이 관후하니 평생에 남을 속일손가? 나같은 부생(浮生)을 좋은 곳에 천거하니 감격하기 측량없으나 수부에 들어가서 벼슬이야 쉬울소냐.”
자라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내념(內念)에 생각하되,
‘요놈 인제야 속았구나.’
하고 흔연히 대답하여 가로되,
“그대가 오히려 경력이 적은 말이로다. 역산(歷山)에 밭 가시던 순임금도 당요(唐堯)의 천자 위(位) 수선(受禪)하고,임금의 자리를 이어받고) 위수(渭水)에 고기 낚던 강태공_중국 주(周)나라 초기의 정치가. 위수 강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문왕을 처음 만나 그의 군사(軍師)가 되었으며, 뒤에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평정하였다)도 주문왕의 스승 되고, 산야에 밭 갈던 이윤(伊尹_중국 고대 전설상의 인물. 탕왕을 보좌하여 하(夏)의 걸왕을 멸망시키고 선정을 하였다))도 탕임금의 아형(阿兄_형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 되고, 부암에 담 쌓던 부열(傅說_중국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재상. 토목공사의 일군이었는데, 당시의 재상으로 등용되어 중흥의 대업을 이루었음)이도 은고종의 양필(良弼_보필하는 임물르 제대로 해 내는 신하) 되고, 소 먹이던 백리해(百里奚_중국 춘추시대 사람. 자신의 조국 우(虞)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진(秦)나라 목공(穆公)을 찾아가 어진 재상이 되었다)도 진목공의 정승 되고, 표모(漂母)에게 밥 빌던 한신이도 한태조의 대장 되었으니, 수부나 인간이나 발천하기는 일반이라. 이런 고로 밝은 임금이 신하를 가리고 어진 신하가 임금을 가리나니, 우리 대왕께서는 성신(誠信)하시고 문무하사 한 가지 능과 한 가지 지조가 있는 선비라도 벼슬 직책을 맡기시고, 닭처럼 울고 개처럼 도적질 하는 유라도 버리지 아니하시는지라. 이러하기로 나같이 재주 없는 인물로도 벼슬이 주부 일품 자리에 외람히 거하였거든, 하물며 그대같이 고명한 자격이야 들어가면 수군절도사는 따논 당상이지 어디 가겠나. 타작말 만한 황금인 덩이를 허리 아래에 빗겨 차고 안올림 벙거지에 동다리 구군복하고 동개_활과 화살을 넣어 등에 지는 제구) 차고 등채_옛날 무장이 쓰던 채찍) 집고 집채 같은 준총 위에 높이 앉아 호강영 바람에 어라 게 물러 있거라, 앞뒤 별배며 에이 기록 좌우 기수 소리 어깨춤이 절로 나고, 장창 대검은 절렁 데그럭 쉬우 아료 소리에 호령이 절로 나리니, 이것이 대장부의 쾌활한 기상이오, 또한 신수 좋은 얼굴을 능연각(凌煙閣)에 걸어 두고 춘추에 빛난 이름을 죽백(竹帛_서적이나 사기(史記)를 이르는 말)에 드리우리니, 이것이 기남자(奇男子_재주가 남달리 뛰어난 사나이)의 보배로운 영광이라.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오. 바로 말이지 토끼 가문 중에 시조(始祖) 되기는 염려가 조금도 없을 터이니라.”
토끼 웃으며 가로되,
“형의 말은 흡사하나 어제밤에 나의 꿈이 불길하여 마음에 종시 꺼림하도다.”
자라가 가로되,
“내가 젊어서 약간 해몽하는 법을 배웠으니 아무커나 그대의 몽사를 듣고저 하노라.”
토끼 가로되,
“칼을 빼서 배에 대이고 몸에 피칠을 하여 보이니, 아마도 좋지 못한 정상을 당할까 염려하노라.”
자라가 책망하여 가로되,
“너무 좋은 몽사를 가지고 공연히 사념(思念)하는구려. 배에 칼을 대였으니 칼은 금이라 금띠를 띨 것이요, 몸에 피칠을 하였으니 홍포(紅袍_조선시대 3품 이상의 관원이 공복(公服)으로 입는 옷)를 입을 징조라. 물망(物望)이 일국에 무거우며 명성이 팔방에 떨칠지니, 이 어찌 공명할 길한 꿈이 아니며 부귀할 좋은 꿈이 아니리오. 공자의 주공을 보고 귀인 성인의 꿈이요, 장자(莊子_기원전 4세기경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도가(道家) 사상의 중심인물)의 나비 된 꿈은 달관의 꿈이요, 공명의 초당 꿈은 선각의 꿈이요, 그외 누구누구의 여간 굼이라 하는 것이 무비관몽(無非觀夢)이요 개시허몽(皆是虛夢_꿈을 보는 것이 아닌 것이 없으니, 모두가 헛된 꿈이로다))이로되, 오직 그대의 꿈은 몽사 중에 제일 갈 꿈이니 수궁에 들어가면 만인 위에 거할지라. 그 아니 좋을손가.”
토끼가 점점 곧이 듣고 조금조금 달려들며 당상의 인(印) 꿈을 지금 당장 차는 듯이 희색이 만면하여 가로되,
“노형의 해몽하는 법은 참 귀신 아니면 도깨비오. 소강절 이순풍이 다시 살아온들 이에서 더할손가. 아름다운 몽조가 이미 나타났으니 내 부귀는 어디 가랴. 떼어 논 당상은 좀이나 먹지. 그러나 만경청파를 어지 득달할고?”
자라가 대희하여 가로되,
“그대는 조금도 염려 말라. 내 등에만 오르면 아무리 걸주 같은 풍파라도 파선할 염려 전혀 없이 순식간에 득달할 터이니 그런 걱정은 행여 두 번도 마시오.”
토끼 웃으며 가로되,
“체면 도리상에 형을 타는 것이 대단 미안치 않소. 어찌하여야 좋을는지요?”
자라가 크게 웃어 가로되,
“형이 오히려 졸직(卒直_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은 하도다. 위수에 고기 낚던 여상(呂尙_강태공. 여(呂)는 그에게 봉해진 영지(領地)이며, 상(尙)은 그의 이름임)이는 주문왕과 수레를 한가지로 타고, 이문(里門)에 문지기 노릇하던 후영이는 신릉군(信陵君_중국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정치가. 소왕(昭王)의 막내 아들)의 상좌에 앉았고, 부춘산에 밭 갈던 엄자릉이는 한광무와 한 베개에 같이 누었으니, 귀천도 관계없고 존비가 아랑곳가? 우리 이제 한 가지로 들어가면 일생 영욕과 백년 고락을 한 가지로 지낼 것이니 무엇이 미안함이 있으리오?”
토끼 대희하여 가로되,
“형의 말대로 될 양이면 높은 은덕이 백골난망이겠노라. 이 세상 천하에 못 당할 노릇이 있으니 저 몹쓸 사람들이 일자총을 들러 메고 암상스러이 보채일 제, 송편으로 목을 따고 접시물에 빠져 죽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온 중, 나의 큰 아들놈은 나무 베는 아희에게 무죄(無罪)이 잡혀가서 구메밥_죄수에게 벽구멍으로 몰래 들여보내는 밥)을 얻어 먹고 감옥에서 갇혀 있은 지 우금(于今_지금까지) 칠팔 년이나 되어도 놓일 가망 바이없고, 둘째 아들놈은 사냥개한테 물려가서 까막까치 밥이 된 지 지금 수년이라. 그 일을 생각하면 갈수록 더욱 절치부심(切齒腐心_몹시 분하여 이를 갈고 속을 썩임)하여 어찌하면, 이 원수의 세상을 떠나갈고 하며 주사야탁(晝思夜度_밤낮으로 깊이 생각하고 헤아림)하옵더니 천만뜻밖에 그대 같은 군자를 만나 어두운 데를 버리고 밝은 곳으로 갈 터이니, 이는 참 하늘이 지시하시고 귀신이 도우심이라. 성인이라야 능히 성인을 안다 하였으니, 나 같은 영웅을 형 같은 영웅 곧 아니면 그 뉘라서 능히 알리오? 하늘에서 내리신 영웅이 형 곧 아니었다면 헛되이 산중에서 늙을 뻔하였고, 나 곧 아니었다면 수중 백성들이 어진 관원을 만나지 못할뻔하였도다. 이번 내 길이 내게도 영광이어니와 수중에서 어찌 경사가 아니리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하늘에서 내 재주를 내매 반드시 싸움이 있다 하더니 내게 당하여 참 빈말이 아니로다.”
하며 의기가 양양하여 자라 등에 오르려 할 즈음에, 저 바위 밑에서 너구리 달첨지가 썩 나서서 하는 말이,
“토끼야, 너 어디 가느냐? 내 아까 수풀 곁에 누워서 너희 둘이 하는 수작을 처음으로부터 끝까지 대강 들었지만은 아마도 위태하지. 옛말에 위태한 지방에 들어가지 말라 하였고, 분수를 지키면 몸에 욕이 없다 하였으니, 저같이 졸지에 남의 부귀를 탐내고야 나중 재앙이 제 어찌 없을소냐? 고기 배때기에 장사지내기가 아마 십중팔구이지.”
하거늘 토끼 말을 듣더니 두 귀를 쫑긋하며 시름없이 물러날 제, 자라가 가만히 생각하되,
‘원수의 몹쓸 놈이 남의 큰일을 작희(作戱)하니_남의 일을 방해하니 참 이른바 좋은 일에 마(魔_일이 잘 되지 않게 헤살을 부리는 것)가 드는 것이로군.’
하며 하는 말이,
“허허 우습도다. 그대가 잘 되고 보면 오히려 내가 술잔이나 얻어먹는다 하려니와 죽을 곳에 들어가는 데야 더구나 내게 무슨 좋을 일이 있을 손가? 달첨지가 토선생 일에 대하여 꽃밭에 불 지르려고 왜 저리 배를 앓노. 제 어디 실없는 똥 떼어 먹을 놈이 다시 그 일에 대하여 말할소냐.”
하고 썩 떨떠리고 하는 말이,
“유유상종이라더니, 모인다니 졸장부 뿐이라. 부귀가 저희에게 아랑곳 있나?”
하며 대단히 비방하고 작별하려 하니, 토선생이 생각하되,
‘천우신조하여 천재일시(千載一時_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좋은 기회)로 좋은 기회를 만났으니 때를 잃지 아니 하리라.’
하고 자라에게 달려들어 두 손을 덥석 쥐며 하는 말이,
“여보시오, 별주부. 천하 사람들이 별말을 다한다 하여도 일단 내 말이 제일이온대, 형이 어찌하여 이다지 그리 경솔하시오?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살 것이니 아무 염려 말고 가시옵시다.”
하거늘 주부가 가로되,
“형의 마음이 굳건하여 변개 아니할 양이면 내 어찌 태를 조금이나 부리리오.”
하고, 토끼를 얼른 등에 얹고 물로 살짝 들어가 만경창파를 희롱하며 소상강을 바라보고 동정호로 들어갈 제, 토끼가 흥에 겨워 혼자 하는 말이,
”홍진자맥(紅塵紫陌_속세의 번화한 거리) 장안 만호에 있는 벗님네야. 사람마다 가사(假使_가령(假令)) 백년을 산다 하여도 걱정 근심과 질병 사고(四苦)를 빼고 보면 태평 안락한 날이 몇 해가 못 되는 것이라. 천백 년을 못살 인생 아니 놀고 무엇하리. 소상 동정의 무한한 경개를 나와 함께 노자세라.“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