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2일, 설 명절 날.
*** 오늘은 설날.
** 어제는 까치설날.
* 어제 오후에는 바로아래 동생(지돈)이 방문한다고 해서 근무시간에 틈을내어 집에 잠시들린다.
동생들이 명절이라고 찾아주는 것이 너무 고맙다.
*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아들내외가 손자를 데리고 들어오고...
동생도 조카를 20개월 여 만에 처음 대하는 것이지만 손자가 낯선사람에게 붙을정도로 붙임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시간이 조금 흐르니 정이라는 것이 붙는지 한결 나아진 모습이다.
* 나는 동생내외를 보내고 곧바로 나도 회사로 가서 근무에 복귀를 한다.
* 설날.
B조의 이영원반장이 일찍 교대를 해주러 나온다.
5시 30분에 경비실을 나서서 산본 4거리 신호를 대기하면서 2023년 설날 아침의 사진을 찍어보고.
* 집에 도착하니 모두가 잠들어있는데 아내도 거실바닥에 쪽이불을 쓰고서 쪼그려 잠을 자는데 아마 내가 없으니 안방 침대방을 아들네에게 양보를 했겠지.
* 현관입구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들을 바라보면서 가족들이 함께모여 제사를 지내던 지난 날들을 생각해 본다.
가족들이 많아서 현관에 신발놓을 자리가 없어서 현관문을 열고서 맞은편 집의 현관문앞에까지 신발을 벗어놓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단촐하구나.
* 앙증맞은 신발은 미래를 담보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되겠지?
태어날 때가 엊그제인데 벌써 신발을 신게되고, 좀 더 있으면 책가방들고 나서는 모습일테고...
** 에구!!! 이제 20개월이야.
벌써 피아노앞에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 의젓한데 음을 맞추는 게 아니고 소리를 엿 듣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지, 그래도 요즘 아이들은 너무 빠른 느낌이 든다.
천천히 가도 어차피 시간인 걸...
* 그런데 벌써 학교에 다닌다네요, 무슨학교? 유아원? 유치원??
엄마 일하는데 그냥 밭두렁에 처박혀서 흙장난이나 하던 우리와는 많이 다른모습인데...
어느것이 더 나은 것인지... 지나온 시절 생각하면 우리방식이 더 인정이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문화를 생각하면 뒤 쳐질까 조바심에 조기유학도 마다할 수 없고...
* 아프리카 반투족 말 중에 "우분트(UBUNTU) 라는 말이 있다는데 그 뜻이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 라고...
그런데 우리문화는 우리보다 나를 더 앞세워야 하니.
인간은 어차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이치이거늘, 그러면 우리도 나보다 우리를 앞세워야 하는 문화로 바뀌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말로 만이 아닌 행동으로...
* 명절이라고 제사는 지내지 않았어도 며칠 전부터 아내의 수고로 도토리 묵에 만두나 떡, 잡채나 나물에 부침개 갈비까지 진수성찬으로 차린 아침밥상을 단촐한 가족이 맞이한다.
* 요놈이 고기 맛은 알아서 고기반찬 빨리달라고 아우성이네요.
단촐하지만 함께하는 식사자리가 좋다.
** 아침식사를 하고 그들은 다시 충남 예산의 처가로 가야한다.
요즘은 본가보다 처가에 충성해야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 자식이 딸이 둘이면 금메달, 아들과 딸이면 은메달, 아들만 둘이면 동메달, 아들만 셋이면 목메달이라고 하나? 참 많이 바뀐 세상이다.
** 설날인데 오늘이 일요일이다.
일요일날은 아내가 교회를 가야한다.
이렇게 설날과 일요일이 겹쳐진 날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같아서는 오늘은 예배를 쉬거나 간단히 드리는 것이 좋을텐데 오늘도 2부예배까지 모두 해야 한다면서 오후 3시나 돼야 집에온다고...
명절이라 웃 어른들 찾아봐야하는데...
* 아내가 교회를 가야하니 나는 그 동안 목욕탕을 향한다.
목욕을 마치고 집에와서 다시 점심을 먹고, 그리고 아내가 올때까지 또다시 컴퓨터 앞으로...
틈만나면 캄퓨터와 수시로 친구해야한다, 할 일이 너무많다.
** 3시가 지나서 아내가 돌아오고...
급히 서둘러서 3시 30분이 되어서야 집을 출발해 먼저 요양원에 계신 셋째 숙모님부터 찾아간다.
* 4촌 여제가 근무도 하는 "라온 실버케어 요양원" 앞에 도착하니 4시 40분 경.
미리 4촌여제에게 전화를 하니 오늘 근무가 아니나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놓겠다고...
* 숙모님은 5층 라온실버케어 요양원에 계시다.
** 도착해서 5층의 요양원 문앞으로 가니 숙모님이 우릴 기다리고 계시다.
얼마나 보고싶고 그리웠으면... 또 마음이 아리다.
대면도 못하고 일정거리를 두고 몇마디 인사말 뿐, 그리고 전달할 거 전달하고 또다시 이별이다.
다음을 기약하지 못하는 미래를 마음으로나마 약속하면서...
돌아가는 뒷모습에 마음을 전해보나 허공이 너무넓다.
** 숙모님 면회를 마치고 5째 아우(지단이 아우)에게로 간다.
아우는 지난 해 9월에 근무하는 회사에서 중하게 다쳐서 병원생활로 들어갔는데 지난 4개월의 시간 말고도 아직 2개월 여를 더 보내야 한다고하네.
목 뒤 2번 척추를 크게 다쳤다고...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체어에 의지해야하는 신세.
* 마침 3째 아우(지균이 아우) 도 질녀(예지)를 데리고 면회를 와서 함께 만난다.
하루빨리 쾌유를 바라면서 다음 코스로 ...
** 목감에 사시는 둘째 숙모님댁으로 간다.
마침 4촌 여동생(수미) 내외와 그 딸이 먼저와서 있었고, 조금 후 아들(지용이)이 찾아와서 모처럼 만에 4촌네 식구들과 즐거운 웃음으로 시간을 보낸다.
* 우리집에서 제사를 함께 올릴 때는 자주 만났지만 그 후로는 자주 만날 수가 없다.
아마 2018년도 제사를 종친 후 삼촌 작고하셨던 2020년 9월의 초상 시에 만나고 처음인 듯.
조카는 그 당시에도 못 만나고, 예전에 내 회감연 때 만났던 기억이다(당시는 초등하교 저 학년), 많이 컷다, 21세라고...
이 모습이 2011년도 내 회갑연때의 모습이다, 둘 중에 누군지도 모르겠다.
** 숙모님과 그 식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그곳을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니 저녁 7시 반이 지난다.
** 묵은사진들은 내 회갑연 때 찍은 사진들이다.
요즘 회갑잔치를 하는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해야했다.
집안 어른이신 삼촌들이 우리 집안의 전통이라고 하셨고, 장손이기에 해야한다고...
* 그래서 지인이었던 범계역의 "엠스테이트 컨벤션" 예식장 주(김성환 사장)에게 딱 100석만 준비해서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 모시고 하겠다고 했지만 김 사장의 뜻대로 넓은 홀로 준비를 한다.
* 초청장은 100여 장을 보냈지만 밀려드는 손님에 성대하게, 황홀하게 치루고 마무리를 해 옆지기 아내도 깜짝 놀라면서 미지근 하던 행사 전의 태도에서 잔치를 하기를 아주 잘 했다고 말하면서 매우 흡족해 한다.
* 지금와서 새삼 사진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니 요즘 문화와는 동떨어진 행사였지만 한편 생각하니 이젠 사라진 문화를 재생시켰다는 생각에 약간의 흥분이 일기도 한다.
** 주변의 많은 지인들이 찾아오셔서 축하해 주셨고, 특히 우리 대가족들이 이렇게 한장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 나를 흡족하게 해 준다.
* 지나간 날이 다시는 올 수없지만 또 지금은 고인이 된 두 분 삼촌과 4촌 여제,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서 함께 호흡하면서 아직도 정을 이어가는 가족들과의 인연을 재생시킬 수 있다는 것에 너무 큰 만족을 갖게된다.
** 아래사진은 가족들이 함께 여행다니면서 찍었던 사진 몇 캇.
* 영덕의 해맞이공원에서(2010년)
** 2006년부터 2012년 사이에 2년에 1회씩 가족여행을 전국으로 다닌 이미지 들.
* 2006년도에 제주도 여행 17명이, 2008년도에 22명(현호까지)이 진주와 통영, 거제, 경주까지.
2010년도에 포항부터 동해안선 따라서 울진, 설악산까지 22명.
2012년 도에 22명이 고성과 여수 엑스포.
** 아래사진은 2016년도 6월에 우리 형제자매 부부(막내 지탁이네는 제외) 14명이 함께 중국으로 3박 5일간의 여행을 다녀온 사진들 몇 장이다.
이 여행에서는 두 삼촌부부와 고모도 노쇠하셔서 함께하지 못했다.
지탁이네는 개인사정상 함께하지 못했다.
** 이 여행을 마지막으로 형제들의 가족여행은 더 이상 하지않는다.
** 정월 초하루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아직은 초 하루의 할일들이 많다.
짐이 무겁더라도 기꺼이 지고가리라
어렵다고 피해본 들 내 인생이 아니더냐
지난시절 생각하면 풍선처럼 가벼운 걸
그 어려웠던 대 가족의 장남이라는 굴레
이젠 내 식구만 챙겨도 된다는 걸
그래도 세월은 흐르고 시간은 재촉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