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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6-14절
8: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וַֽיְהִ֕י מִקֵּ֖ץ אַרְבָּעִ֣ים יֹ֑ום וַיִּפְתַּ֣ח נֹ֔חַ אֶת־חַלֹּ֥ון הַתֵּבָ֖ה אֲשֶׁ֥ר עָשָֽׂה׃
와이히(~되었다) 믹케스(지나서) 아르바임(사십) 욤(날들) 와이잎타흐(열다) 노아 에트(격조사) 할론(창문) 하테바(방주) 아세르(관계사) 아샤흐(만들었다)
『사십일이 지나』라는 말은 하나님이 궁창위의 물을 아래로 쏟아버리고, 다시 그 물이 되돌아갔다는 의미다. 궁창 위의 물이 다시 돌아가고 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던 그 때처럼 궁창 아래의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게 된다. 새창조가 되는 것이다. 방주에서 나오는 것은 새하늘과 새땅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사십일을 지나서』라는 말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이 끝난 것을 의미한다. 이전의 것은 다 지나갔음이다. 율법은 세례요한의 때라는 말처럼 이제 복음의 시작인 것이다. 율법 아래 있던 존재들은 다 죽고 복음 아래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8:7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וַיְשַׁלַּ֖ח אֶת־הָֽעֹרֵ֑ב וַיֵּצֵ֤א יָצֹוא֙ וָשֹׁ֔וב עַד־יְבֹ֥שֶׁת הַמַּ֖יִם מֵעַ֥ל הָאָֽרֶץ׃
와이살라흐(그가 보냈다) 에트(격조사) 하오렙(까마귀) 와예체(그것이 나아갔다) 야초(가고) 와쵸브(오고) 아드(~때까지) 예보셌트(마르다) 함마임(물들) 메알(~으로부터) 하아레츠(땅)
『내 놓으매』를 히브리어로『샬라흐』라고 한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으로부터 세상에 내보내는 것도『샬라흐』다. 창세기 3장 23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즉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으로 쫒겨났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셨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여기서『보내신』 이라는 헬라어는『펜포』라는 단어로, 같은 의미를 갖는다.
궁창 아래의 물(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율법)에는 궁창 위의 물(생명나무:예수 그리스도)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궁창 아래 물로 가득차 있다. 이 궁창 아래 물에 노아가 까마귀도 보내고 비둘기도 보냈다. 까마귀는 방주 안으로 다시 들어오지 않고, 공중을 배회하거나 물이 마를 때까지 방주 위에 앉아있는 모양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왕래라고 번역되었는데, 가고(야초:기본형은 야짜) 오고(와쵸브:기본형은 슈브) 라는 말이다. 까마귀는 밖으로 보냈는데,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아직은 새하늘과 새땅의 시작이 아니라는 말이다. 까마귀(하오렙:기본형은 오레브 6158) 6158은 6150(아라브)에서 유래되었는데, 기본어근【오히려 천으로 ‘덮다’는 개념을 통해 6148과 동일함】;일몰시 ‘어둑어둑해지다’:-어두워지다, 어두움(명사형), 저녁이라는 의미다. 6150과 철자가 같은 아라브(6151)는 혼합하다, 섞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까마귀는 부정한 새로서 율법을 상징한다. 방주에서 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복음으로 들어왔는데, 다시 율법으로 나가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율법주의와 복음이 뒤섞이므로 어두워지는 것이다. 여전히 흑암 속에 살고 있는 자들이다.
8:8-10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וַיְשַׁלַּ֥ח אֶת־הַיֹּונָ֖ה מֵאִתֹּ֑ו לִרְאֹות֙ הֲקַ֣לּוּ הַמַּ֔יִם מֵעַ֖ל פְּנֵ֥י הָֽאֲדָמָֽה׃
וְלֹֽא־מָצְאָה֩ הַיֹּונָ֨ה מָנֹ֜וחַ לְכַף־רַגְלָ֗הּ וַתָּ֤שָׁב אֵלָיו֙ אֶל־הַתֵּבָ֔ה כִּי־מַ֖יִם עַל־פְּנֵ֣י כָל־הָאָ֑רֶץ וַיִּשְׁלַ֤ח יָדֹו֙ וַיִּקָּחֶ֔הָ וַיָּבֵ֥א אֹתָ֛הּ אֵלָ֖יו אֶל־הַתֵּבָֽה׃
ַיָּ֣חֶל עֹ֔וד שִׁבְעַ֥ת יָמִ֖ים אֲחֵרִ֑ים וַיֹּ֛סֶף שַׁלַּ֥ח אֶת־הַיֹּונָ֖ה מִן־הַתֵּבָֽה׃
웨로(부정) 므췌아(발견하다) 하요나(비둘기) 마노하(쉴만한 장소) 르카프(단독으로) 락라흐(발의) 와타샤브(돌아왔다) 엘로(그에게) 엘(안으로) 하테바(방주) 키(접속사) 마임(물) 알(위에) 프네(얼굴) 콜(모든) 하아레츠(땅) 와이이슬라(나갔다) 야도(그의 손에서) 왕이익카헤하(가졌다) 와야베(그리다) 오타(그녀) 엘로(그의 자신에게) 엘 (안으로) 하테바(방주)
와야헬(기다리다) 오드(아직) 쉬밭(일곱) 야밈(날들) 아헤림(다른) 와요셒(다시) 살라흐(그가 나갔다) 에트(격조사) 하요나(비둘기) 민(~으로부터) 하테바(방주)
까마귀와 비둘기는 비유다. 홍수로 인한 물이 빠졌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등장시킨 새들이다. 하나님은 땅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즉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등장시켜서,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까마귀는 부정한 새로서 이방인을 상징한다. 비둘기는 정한 동물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이다. 레위기 13장 15-19절에서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 말똥가리와 말똥가리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타흐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가마우지와 부엉이와 흰 올빼미와 사다새와 너새와 황새와 백로 종류와 오디새와 박쥐니라』
그런데 많은 교회 사람들은 까마귀와 비둘기에 대해서 전령으로써의 사명을 잘 감당하므로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의 문을 열고 그의 가족들과 수많은 생물들을 이끌고 찬란히 빛나는 햇빛을 받으며 힘차게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교회안에 까마귀와 비둘기가 있다고 더 나아간다.
교회안에서 까마귀 신자는 세상과 교회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교회도 세상과 통해야 하는데 지혜롭고 날쌔게 그리고 용감하게 세상을 향해 나가는 신도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안에는 비둘기 신자가 있으며, 비둘기신자는 거룩함과 순종과 은혜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까마귀의 용맹과 담대함, 비둘기의 거룩함과 순종은 각박하고 음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두 성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교회는 비둘기같은 거룩함과 순종과 은혜를 품고 까마귀같이 용감하고 지혜롭고 날쌔게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해석한다.
비둘기는 제물로 사용되었는데, 가난한 자가 이를 사용하셨다. 누가복음 2장 24절에서『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예수님은 비둘기에 대해서,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순결하다 라는 헬라어는 아케라이오이(ἀκέραιοι)이다. 아는 부정을 의미한다. 케라오이(기본형은 케라이오스 2767번에서 유래)는 순진한, 단순한, 죄없는 의미다. 2767은 섞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아가 있으므로 섞이지 않다 라는 말이다. 히브리어 요나(비둘기)와 같은 의미다. 섞이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둘기는 섞이지 않은 진리의 말씀인 것이다. 예수님이 세례받는 장면에서 비둘기가 등장한다. 요한복음 1장 32절에서『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노아의 홍수는 세례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라고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 말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린 것은 방주에서 비둘기가 나가는 것과 같은 장면인 것이다.
비둘기는 히브리어로 요나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할 때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12장 39-40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예수님은 요나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연결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에서는 비둘기(요나)는 전령사로 역할을 한다.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에 회개를 외치고 복음을 전하는 전령사였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삼일간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을 경험한 것이다.
누가복음 3장 22절에서『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전령사인 비둘기(성령)가 전한 메시지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였다. 마태복음 3장 16-17절에서『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여기는 하늘이 열린 것을 알 수 있다. 성령이 임하려면 하늘이 갈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하늘이 갈라진다는 말은 하늘이 닫혀있다는 전제가 된다.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열리지 않았다는 말이며, 심령 속에 성전의 휘장이 갈라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하늘이 갈라지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이 강제로 찟어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하신다.
8: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וַתָּבֹ֨א אֵלָ֤יו הַיֹּונָה֙ לְעֵ֣ת עֶ֔רֶב וְהִנֵּ֥ה עֲלֵה־זַ֖יִת טָרָ֣ף בְּפִ֑יהָ וַיֵּ֣דַע נֹ֔חַ כִּי־קַ֥לּוּ הַמַּ֖יִם מֵעַ֥ל הָאָֽרֶץ׃
와타보(왔다) 엘로(그에게) 와요나(비둘기) 르엩(안으로) 에레브(저녁) 웨힌네(물다) 알레(잎사귀) 자이트(올리브:감람나무) 타라프(새, 신선한) 베피하(입에) 와예다(알았다) 노아 키(관계사) 칼루(물러났다) 함마임(물들) 메알(~으로부터) 하아레츠(땅)
비둘기는 세번에 걸쳐서 나간다. 두번째는 저녁에 돌아온다. 감람나무 새 잎사귀는 어둠 속에서 빛을 상징한다. 감람산에 대해서 성경은 말한다. 감람산, 감람나무는 기름(성령)을 상징하고 예수님이 메시야 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기름을 부어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마태복음 24장 3절에서『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사도행전 1장 12절에서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감람산은 예수님의 승천 사건을 의미한다. 누가복음 21장 37절에서『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마태복음 26장 36절에서『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겟세마네는 올리브 기름을 짜는 틀을 의미한다. 메시야는 기름부음을 받는 자, 기름은 올리브 기름이다.
감람나무의 새(타라프) 잎사귀는 성령을 의미한다. 물이 빠지고 땅이 마른다는 말은 이제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했다는 말이다. 재창조를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새창조가 일어나면 성령이 임하시고, 성전(새 예루살렘)이 세워지는 것이다.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는 것의 증표는 성령이다. 에스겔 47장 12절에서『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약 재료는 치료하는데 사용된다. 상한 마음을 말씀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비둘기가 노아에게 새 잎사귀를 주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말씀이 성령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8: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וַיִּיָּ֣חֶל עֹ֔וד שִׁבְעַ֥ת יָמִ֖ים אֲחֵרִ֑ים וַיְשַׁלַּח֙ אֶת־הַיֹּונָ֔ה וְלֹֽא־יָסְפָ֥ה שׁוּב־אֵלָ֖יו עֹֽוד׃
와이야헬(기다렸다) 오드(아직) 쉬바트(일곱) 야밈(날들) 아헤림(다른) 와이샬라(보냈다) 에트(격조사) 하요나(비둘기) 웨로(부정) 야세파(다시) 슈브(돌아가다) 엘로(그에게) 오드(다른)
비둘기를 세번째 내보냈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삼이라는 것은 삼일 길을 상징한다. 창조 삼일 째 뭍이 드러났다. 삼이라는 숫자는 숨겨진 것이 드러나는 의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아브라함도 모리야 산에 이삭을 제물로 바치러 갈 때 삼일길을 갔다고 한다. 출애굽기 3장 18절에서 모세가 바로에게 삼일길을 요구했다. 출애굽기 12장 1-6절을 보면, 유월절 어린양을 잡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도 삼일이다. 노아의 방주도 삼층으로 되어 있다. 삼이라는 숫자는 성도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데, 이게 바로 셋째 하늘이라는 말이다.
성소는 성전마당, 성소, 지성소가 있는데, 세번째가 지성소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은 세번째인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성도 역시 성소 뜰에서, 성소, 지성소로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성소의 뜰만 밟는 자, 성소에 들어가는 자, 지성소로 들어가는 왕 같은 제사장이 있다는 말이다.
삼일은 죽음을 상징한다. 누가복음 13장 31-34절에서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구원은 삼일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삼일길은 십자가의 길이기도 하다. 자기 부인의 길이기도 하다.
첫사람 아담(옛사람)은 마지막 아담과 함께 장사되는 것이 삼일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성령이 함께 하는 새사람(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으로 살아가는 것이 구원인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옛사람이 죽고, 성령으로 성전이 세워지면 셋째 하늘인 새하늘이 임재하는 것이다.
8: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날에 땅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וַֽ֠יְהִי בְּאַחַ֨ת וְשֵׁשׁ־מֵאֹ֜ות שָׁנָ֗ה בָּֽרִאשֹׁון֙ בְּאֶחָ֣ד לַחֹ֔דֶשׁ חָֽרְב֥וּ הַמַּ֖יִם מֵעַ֣ל הָאָ֑רֶץ וַיָּ֤סַר נֹ֨חַ֙ אֶת־מִכְסֵ֣ה הַתֵּבָ֔ה וַיַּ֕רְא וְהִנֵּ֥ה חָֽרְב֖וּ פְּנֵ֥י הָֽאֲדָמָֽה׃
와이히(되었다) 베아핱(일) 웨셰셰(육) 메오트(백) 샤나(년) 바리숀(첫번째 안에) 베에하드(첫째에) 라호데스(달의) 하러부(말랐다) 함마임(물들) 메알(~으로부터) 하아렛츠(땅) 와야사르(움직이다) 노아 에트(격조사) 미크세(방주의) 와야르(바라보다) 웨힌네(실로) 하르부(마르다) 프네(표면) 하아다마(땅)
“물이 걷히다” 라는 하라브(기본형)는 마르다 라는 의미다. 이사야 50장 2절에서『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하라브)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바다가 마르는 것과 구속을 연결시킨다. 이사야 51장 10절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나훔 1장 4절에서『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바다를 꾸짖는 것은 마태복음 8장 26절에 있는데,『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홍해를 마르게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구원이라는 말이다.
8:14 둘째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וּבַחֹ֨דֶשׁ֙ הַשֵּׁנִ֔י בְּשִׁבְעָ֧ה וְעֶשְׂרִ֛ים יֹ֖ום לַחֹ֑דֶשׁ יָבְשָׁ֖ה הָאָֽרֶץ׃ ס
우바호데스(달에) 하쉐니(둘째) 베쉬바(일곱) 웨에쉬림(열두번째) 욤(날) 라호데스(달) 야브샤(마르다) 하아레츠(땅)
마르다는 야베쉬(기본형)이다. 여호수아 4장 23절을 보면,『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야베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야베쉬)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홍수 사건에서 물이 마르는 것과 홍해바다를 마르게 하신 것과 요단강을 마르게 하신 것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성도의 심령 속에 온갖 잡동사니의 물들이 다 말라버리고 성전으로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구원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