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려 나는 작은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일들이…….
어떤 사람은 그것을 육감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통찰력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그것을 양심의 소리, 혹은 천사의 속삭임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이름을 붙이든 간에, 우리들은 누구나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어떤 것이 우리가 할 일을 지시해 주는 것 같은 경험을 기억할 수가 있을 것이다.
소설가였던 에디슨 마샬이 경험한 실화 가운데서도 그런 것을 찾아볼 수가 있다.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1931년에는 경제적 불황이 극도로 심했던 때였다.
에디슨 마샬은 낡고 큰 승용차를 타고 4백 마일이나 되는 긴 여행을 하고 있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는 거의 쉬지도 않은 채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떤 작은 마을을 거의 다 지나갈 무렵, 어떤 청년이 눈보라 속에서 모자도 쓰지 않고 누더기 같은 코트를 겨우 걸친 채 차를 향해 태워 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에디슨 마샬은 차를 세워 그 청년을 옆 좌석에 앉혔다. 그 청년은 아주 정중하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다시 차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청년이 길에서 지나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코트도 없이 맨발로 추위에 웅크린 자세였다. 에디슨 마샬은 갈 길이 바빠 그냥 지나쳤으나, 운전하는 동안 계속 그 키 큰 맨발의 청년에 대한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결국 그는 옆 자리에 앉은 청년에게 조금 전에 지나친 맨발의 청년을 태워 주는 것이 좋을 뻔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 사람요! 전 그 사람을 알지요. 그는 내 친구예요”라고, 옆 자리의 청년이 말했다.
“그렇다면 왜 태워 주자고 말하지 않았니? 그 친구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면?” 하고 마샬이 물었다.
“그래요. 사실은 우리 둘이 함께 먼 곳에 있는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가기 위해 차를 얻어 타려고 했는데, 대부분의 운전사들이 두 사람을 함께 태우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는 서로 떨어지기로 했던 거예요. 그런데 제가 운 좋게 먼저 차를 얻어 타게 된 것이랍니다.”
그 순간 마샬은 그 청년을 태우려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고픈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20마일을 지나왔고, 더구나 마샬은 갈 길이 바빴다. 그래서 그는 애써 그 청년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 버리고 운전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추위에 맨발로 서서 떨고 있던 그 청년의 모 습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계속 그의 마음을 꾸짖는 것만 같았다.
어느 덧 차는 조그만 톨게이트(통행료 징수소)에 도착했다. 얼굴에 기쁜 빛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한 늙은이가 나와서 10센트를 받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좀 춥군요.” 하고 마샬이 인사를 건넸다. 그 늙은 관리인은 한 마디의 대꾸도 없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그의 입술은 꽉 다물어진 채였다. 그러나 그가 무뚝뚝하게 대함에도 불구하고, 마샬은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저 좀 보세요. 아마 얼마 후에 어떤 차를 얻어 타고 오는 청년이 하나 있을 터인데, 그는 키가 크고 신발을 신지 않았을 겁니다. 수고스럽지만, 이것 좀 전해 주시겠습니까?” 하면서, 마샬은 현금 얼마를 그 늙은 관리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2년 후, 에디슨 마샬은 같은 길을 따라 또다시 여행을 하게 되었다. 같은 톨게이트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무뚝뚝한 늙은 관리인이 아닌 키 작고 친절한 한 늙은 부인이 통행료를 받고 있었다.
마샬이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2년 전에 제가 아마 당신의 남편인 듯한 관리인에게 현금 얼마를 맡긴 적이 있습니다. 키가 크고 신발을 신지 않은 한 청년에게 전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런 청년이 나타난 적이 있었는지 생각이 나십니까?”
이 말을 들은 그 부인이 다가와 마샬의 손을 붙잡고는,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군요. 그때 내 남편이 그렇게 친절하지가 못했지요? 그는 누구에게나 그렇답니다. 그런데다가 우리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나서부터는 그가 더욱 그렇게 무뚝뚝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내 남편 포프가 그날 여기에 나타난 그 청년에게 그 돈을 넘겨주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답니다. 남편은 그 청년하고 오랜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커피도, 그리고 저녁도 나누었습니다. 그는 참 선량해 보이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날 포프는 그 청년에게 얼마간이라도 여기 남아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자고 청하게 되었고, 작년에 포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여기서 많은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참으로 친절한 젊은이였어요!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만난 것 같았습니다. 그 젊은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하여 보내신 천사와도 같은 얘였습니다. 그는 지금 저쪽 채소밭에 뿌릴 비료를 사러 가까운 마을에 갔습니다. 당신은 그가 우리를 위해 한 일이 어떤 것인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그 늙은 부인의 말은 끝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작은 음성에 키를 기울일 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일들이 어려운 가운데 처해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돕는 큰일을 할 수가 있다. 소음 공해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그래도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이다.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
김득중
삼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