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05:16인순 1~3 현숙 1~3 | g1
작성자 : 김영순 (gamsun2) (2003-07-06
제1신 10. 19. 97 To 인순
안개 자욱한 어느 봄날 새벽녘!! 저 멀리 사직다리 건너에 까만 교복의 하얀 칼라 소녀가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남" 이란 단어가 그처럼 내 가슴에 설레이게 다가왔던 시절이
지금 우리에겐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 내 추억의 영상 속에 정지된 화면으로 가끔 떠올리곤 한단다.
숨막히게 몰아치는 인생의 회오리에 휩쓸려 이곳 Colorado에 자리잡고 있다만
분하고 가슴 떨리는 일들을 잊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지.
모든걸 포기하고 체념한 지금은 무엇을 얻기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그 아귀다툼 속에서 용케도 살아남음을 스스로 대견스러워 하고 있단다.
바쁜 이곳 생활에서 내가 유일하게 사색이란 걸 할 수있는건
운전대에 손을 얹고 잘빠진 도로를 달리는 시간뿐이란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미국땅 하늘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 알라미다 공동묘지에 묻히리라 생각하면
마음의 평화가 절로 생겨나더구나. 외로운 인생길 언제 끝나도 미련 없다는
그러한 각오로 이를 질근 씹어보면 왜그리 어깨에 힘이 생겨나는지.....
난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달래며 열심히 중년을 보내고 있다.
말 한마디, 몸짓하나에도 글쟁이 티가 물씬 풍겨나는 너 였기에
그 동안의 너의 삶은 어떤 빛깔이었을까?
아무튼 오늘은 너를 생각해 냈기에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친구여! 안녕. Denver에서 영순
. 제2신 5. 16. 98 To 인순
눈가엔 약간 주름이 지고 퍼머머리한 너를 엊그제 봤건만
여전히 넌-- 단발머리에 하얀 미소의 소녀로만 기억되니 어쩌란 말인가!
곱디곱게만 자라온 너 였기에 몇십 년의 세월도 그 밝음을 앗아가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간직하게 두었나보다
. 어쩌면 네 운명의 신은 너무도 완벽주의 인 것만 같구나. 그리고 널 무지 사랑하고 아끼기에
항상 지키고 보호해 주는 것만 같아 보는 마음이 얼마나 흐뭇하고 좋은지 모른다.
그게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
내 운명의 신은 나의 조그마한 교만도 어여삐 보지 않으셨다.
남에게 있는 교만 야심 사치 허영 모두 보아 넘겨주면서 왜 하필 나에겐 그게 허용되지 않는가?
난 그런 신을 가졌다. 모든걸 죽이란다. 숨도 죽이고 가슴도 죽이고 죽여 죽여 꾸겨 넣고
마음 졸이며 그렇게 살란게 내 운명 인가보다.
이번 짧은 일정동안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왔지
내가 남보다 유일하게 많이 가질 수 있는 건 바로 친구들인 것만 같다
맨발의 이사도라처럼 자유로워 보이던 친구__
의지의 한국인 같은__
흐드러지게 핀 벚꽃만큼이나 수다스럽던__
그리고 Good bye to my love 하며 그 옛날 용기 없었음을 한탄하던 옛친구도 만났지.
내 그들 하나하나에 꽃이름을 붙혀주었단다.
글라디오라스, 동백, 튤립....... 난__ 산 속에 외따로 피어있는 진달래 인것만같아
오늘도 피울음으로 그리움의 편지를 쓴다.
친구여 안녕.
제 3 신 12-17-98 To 인순
전화 기다렸었니? 미안해!
어려움에 처해있는 친구를 보고 그렇게 라도 네게 전화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
나는 이렇게 오지랍이 넓단다. 그저 멀리 있다는 핑계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너를 생각했겠는가?
아무튼 고맙고 네게 까지 신경 쓰게 할 일이 아닌가 싶어 지난번 부탁했던 얘기는 없던 걸로 해주라.
그렇지만 넌 뭔지 모르게 내겐 조금은 힘이 됐고 위로가 됐어
외동아드님 입시지옥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한지 너의 무게 있는 목소리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단다.
모든게 잘되길 바랄게. 안녕
제1신 10. 초. 97 to 현숙
"눈이 부시게 푸르른날은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라"는 노시인의 말씀을 받들어네게 편지를 쓴다.
연애편지 쓰듯하라는 달콤한 네 속삭임에 내 그리하마 했것만
젊었을 때도 못써본 그 연서라는 것 그런 재주가 내겐 없구나.
다만 눈이 부시게 푸른 날이기에 pen을 들어본다.
현숙아! 얼마만에 불러보는 정다운 이름인가!
너네집 아랫마당에서부터 서울 아줌마까지 많고 많은 추억들이 정지된 화면처럼 떠 오르고
길고 긴 우리의 인연을 헤아려보며 새삼 중년에 접어든 우리의 우정을 재다짐 하고싶구나. '
Love me tender'를 불러 네 잠자리를 황홀케 했다는 하나 아빠를 샘내서
하다못해 낯설은 타향 땅에 라는 트롯 한 곡조라도 불러달라 졸라도 쑥스러워 하지 못한 우리남편은
지금도 여전히 고지식하고 어쩌고저쩌고... 흉보면 뭐하노...
모처럼의 일요일 나 혼자만의 시간! 한번에 먹기엔 좀 크다싶은 사과를 한입 두입 베어먹다 보니
렌지에 물이 끓고 있지 않는가!! 그래 난 분명 커피를 마시려 했는데 사과를 먹고 있다니.....
이런 건망증상들이 씁쓰레이 웃게 하는구나.
내가 말이다 까마득한 옛날일은 생생한데 냉장고속에 어제 넣어둔 통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어 일일이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니
이건 치매 초기증상이 아닐까 한다. 난 이렇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데 너는 어떠니?
안녕. Denver에서 영순.
제2신 12. 7. 97
이현령 비현령 그렇게 살아도 한 인생
현문 현답하며 이렇게 살아도 한 세상
숙식제공 해줄테니 위 모든 것 잊어버리고 한번 다녀가도록.
나 하나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소서
정 몽주의 일편단심으로 부인께 향하소서
주상전하 섬기듯이 현숙이를 섬기소서.
습관처럼, 눈부시게 푸른 날이기에 네게 편지를 쓴다.
깨알같은 네 글씨 돋보기를 끼고 폼 잡으면서 읽고 또 읽었단다.
그리고나서 그리움이 일렁이는 파도속에 한참을 앓았구나.
가고싶고 보고싶을 때 언제든지 비행기를 탈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아픔의 희열을 모를게다. 짜곡재!! 말만 들어도 입이 절로 벌어지누나
그들을 생각노라면 젊음의 정기가 내안 깊숙이 흘러들어 얼마나 생기가 도는지모른단다
묘약처럼 고이 간직했다가 가끔 되새기며 홀로 흐믓해 하기도하지
참으로 우린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갖은게 분명해.
그들을 만나거든 이렇게 전해다오 제 아무리 세월이 흘러흘러 반백이 되드라도
우리들의 모습은 영원히 소년 소녀로 남을거라고
세속의 눈으로 보지말고 마음의 눈으로 보길 바라노라고
"그 시절로 다시 갈 수 없드래도 그 속에 감춰진 오묘한 빛을 찾으리" 라고 노래한
"초원의 빛" 처럼 말야.
현숙아! 너의 세딸 잘지내고 있겠지 멋쟁이 엄마가 그딸을 이대에 보냈으니
얼마나 멋진 여대생이 되었을꼬 정말 보고싶구나
중년신사 되셨을 하나 아빠께도 안부 전해 드리렴.
우리들은 유난스럽게도 만나기 좋아하고 헤어지길 아쉬워 했드랬는데
이처럼 긴 이별의 바다가 우리에게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내 인생을 엮은 조물주께서는 아주 드라마틱 한 분인것만 같구나
. 자! 그 분을 위해 건배를! 안녕. Denver에서 영순.
제3신 5-21-98
현숙아 내 그곳에서 너를 본 순간 뛰어가 널 끌어안지 않고는
그 마음을 표현 할 길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 멋진 장면도 우리들이 아니고는 아무도 연출해 내지 못할 거다.
어쩌면 넌 내가 꼭 보고 싶었던 사람들만 데리고 (?) 나왔을까 생각만 해도 기특하더구나.
제대로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한 게 약간은 서운하다만 아무튼 너무나도 반가웠다.
현숙아 우리 같이 살았으면 죽이 척척 맞아 사는 재미가 짭짤 했을 텐데
그걸 시샘한 운명의 신이나를 국제적인 집시로 만들어 놓았구나
여기서는 마음잡지 못하고 그곳에는 더 더욱 자리잡지 못하고
어떻게 살아야 현명한 인생인지 답이 안 나온다.
20대 초반에 이곳에 와서 터를 잡으라고 정해져 있었는데 쉽게 살려고 꾀를 부리다가
그 운명을 거역한 죄로 늙으막에 이처럼 애처러운 신세가 된것같아
자책감에 혀를 깨물기도 한단다.
한국에 다녀온 뒤로 심리적인 방황과 대 반란 같은걸 일으켰다가 그 벌을 톡톡히 받았단다.
녹음기가 고장나고 CD 플레이어가 망가지고 드라이 기가 말썽이고
그리고 이유 없이 자동차 시동이 안 걸리지 뭐냐
카센터에 여러 군데 가져갔지만 원인을 못케내어 애를 먹이더니 그게 한달 가량이나 가더라.
마음에 캥기는데가 있었지 처음부터 난 내게 벌이 가해지는구나 느꼈었지
그 방황을 추슬렀을 때 미신처럼 아니 신앙처럼 가닥이 잡혔어
돈은 들었지만 참 다행이었지 아직 할부금도 끝나지 않는 차를 잃는 줄 알고 혼줄이 났단다.
내 운명의 신은 나의 조그마한 교만도 어여삐 보지 않으셨다.
남에게 있는 교만 사치 허영 야심 모두 보아 넘게 주면서 왜 하필 나에겐 그게 허용되지 않는가?
난 그런 신을 갖었다 모든걸 죽이고 살란다. 숨도 죽이고 가슴도 죽이고 죽여 죽여 꾸겨 넣고
마음졸이며 그렇게 살란 게 내 운명이나 보다.
주어진 내 운명에 순응하며 현실에 만족하며 작은 가슴으로 조용히 살란다.
현숙아 우리 함께 잘 살아 보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