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씩 오류는 있어도 상당히 정리가 잘 된거 같습니다.상농공상의 의미와분류 양반들의 허례허식의 뿌리같은 부분은 분석이 안되있지만 그래도 정리가 잘 되어 있는거 같습니다.정도전의 개혁를 통한 조선초에도 세금을 제대로 낼 수 있었던 비율이 열중 5을 넘기 어렵웠다고 했습니다. 양반들은 대가족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세금을 적게 내고 백성들은 대가족을 운영할 경제적이 뒤받침이 부족해서 소가족으로 분가를 하고 조용조를 그대로 납부를 하게되는 것이 나중에 조선후기에 삼정문란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된것을 보면 나름대로 괜찮은 분석글인거 같습니다.
또 시작인가...-_-; 조선후기 삼정문란의 대표적인 원인은 비총제 등 정부재정을 고정화하는 상황에서 담세층이 줄어들면서 상황이 악화되는 것임...-_-; 또한 조용조제는 중국의 경우는 명대 일조편법 등장 이전까지 유지되는 기본적인 세제였고, 조선이나 베트남에서도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인 세제임. [유교적 농본국가]에서 시행되었던 일종의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제도로 인식되었고... 주원장이 괜히 원대의 금납을 '물납'으로 바꾼 것이 아님. 조선처럼 상공업의 발전이 더딘 나라에서는 '현물징수'가 더 적합한 징세방식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하나?!...ㄲㄲ
"상농공상의 의미와분류 양반들의 허례허식" -> 이건 또 주자성리학 까는 쿨타임 돌아온 거임?!...어엌ㅋㅋㅋ
아 그럼 찬양해 마지않는 일본의 상공업 발전은 어쩔거임?! 병농분리, 농상분리로 아예 사농공상이 철저히 [구분되어 세습]되는 사회... 무사층도 장남이나 데릴사위가 아니라면 손까락 빨다가 굶어 죽어야했고, 심지어 농민신분도 세습이라 장남아니면 세습받을 토지가 없어 에도 같은 대도시 날품팔이로 나서야했던 그들... 그런 중에도 무려 40%에 육박하던 시골출신 하층민 조기 사망률의 위엄은?!
중국은 몰라도 조선정도면 사농공상 신분이동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진실은 어디로?!...ㅎㅎㅎㅎㅎ
★海東天子☆양반들은 대가족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세금을 적게 내고 백성들은 대가족을 운영할 경제적이 뒤받침이 부족해서 소가족으로 분가를 하고 조용조를 그대로 납부를 하게되는 것이 == 조선후기 삼정문란의 대표적인 원인은 비총제 등 정부재정을 고정화하는 상황에서 담세층이 줄어들면서 상황이 악화되는 것임 : 같은 얘기를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겁니다.
★海東天子☆저 위글을 쓴 사람을 제가 모르지만 짜맞춰던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을 개입을 시켰던 전체맥락에서 보면 그렇게까지 틀렸다고 보기도 어려워서 괜찮은 정리라고 한겁니다.사농공상의 원래 농공상은 이견이 없지만 사는 발생하는 기원이 독특한 것이고 허례허식은 유교에 禮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왜 그런지 모르는건데 글쓴 사람이 거기에 대해 분석이 없어서 분석면에서 좀 약하다는 뜻으로 쓴겁니다.별말도 안한거 같은데...
백운청산뭔 헛소리인가 모르겠네...-_-; 백성들을 소가족으로 분리하여 조용조를 그대로 납부시키면 '담세층'이 늘어나는 거죠~ 이 양반아...-_-;;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강제로 민호의 소(핵)가족화를 도모하여 세수를 확충하고 군정을 확보하는 정책이 시행된바가 있건만 뭔 헛소리요?!...ㅎㅎㅎㅎㅎ;;;;; 하는 소리마다 앞뒤가 없어... 그러니 똥글에 낚이는 건가?!...ㄲㄲ
★海東天子☆경제력이 없는 백성들이 소가족으로 분가를 계속하면 담세층이 늘어날가요?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양반들은 대가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세금도 적게 내고 부의 상속이 가능한것이고 백성들은 부양능력이 없어서 자식들 분가시키고 그 자식들도 물려받을 땅이 없어서 경제적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됩니다.조선 중기이후에 소위 부농들도 생기지만 그건 말 그대로 극소수에 한에서 그런겁니다 .정도전이 이상적인 농업기반국가를 꿈꾸었다면 필경 맹가의 균전제를 머리에 그렸겠지만 현실에서는 환상이죠.담세층이 늘어날거라는 생각을 하는 자체가 더 놀랍습니다.
bookmark조선의 성리학은 이데올로기입니다.그 성리학적 관점의 가장 근본 바탕 되는 것이 관혼상제입니다.관혼상제 다 아시는 내용일테니까.생략하고 마지막에 제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요.양반들이 사당에 모셔져 있는 위패를 보면 어째서 양반들이 삼대가 모여사는 대가족제도가 유지될수 있는지 아실텐데요.분가를 해서 일가를 이루더라도 삼대가 모여사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겁니다.천자는 7대 선조를 모시는 것이고 왕은 5대를 모시고 제후는 4대를 사는 3대를 모시는겁니다.성리학적 관점에서는 3대가 일가를 이루지는 겁니다.제가 말한 소가족은 백성들이 아들들 내보내서 일가를 이루 형태를 지칭한겁니다.
유문기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1,2(한국역사연구회) - 제가 읽는 책들이 좀 허접합니다.그 정도는 이해를 해주십시요 조세제도로 이익을 보는 계층,피해를 보는 계층에 부분에 보면 양반의 대가족 유지고 경제적으로도 가호세와 인두세부분등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그리고 조선에 개국시점에도 30~50프로 정도에 인구는 납세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였습니다.그들이 양반들의 땅에 붙여먹게되는 현상과 인구증가등등 모든 사회에서 발생하는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계속나타난 것이 나중에 삼정문란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위의 천자님 말대로 납세한 능력은 양반들인데 그들이 내는 세금은 일정한 비율에서 더 늘어나지
마법의활가호세인두세가 빠져나가는 것은 신분제사회에서는 필연적 현상이있다.지배층일수록 대가족을 구헝하는 경향이 높은 반면,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소가족을 구성하거나 혹은 가족구성이 불완전한 독신형태로 존재했다.<-- 이 의미에서 소가족을 지칭한 것이니까 사생활의 역사을 제가 읽어보지 못해서 마법의 활님이 말하는 소가족과 같은 의미인지 다른 의미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백운청산그 책에서 설명하는 30~50%의 인구는 천인층인데 말이죠.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세금을 전혀 납부하지 않았떤 계층이요. 그리고 그 책에서는 18세기 이후로 급격하게 소멸해 간다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군요. 이런 천인계층을 운운하면서 백성들 소농 운운하는건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디만.......
유문기그 책을 읽어보셨다면 이미 조선초에 상당수의 인구는 제도권밖으로 밀려난 겁니다.이성계와 정도전의 신진사대부들이 소위 조선을 개국하는 명분과 개혁적인 성과라는 과전법의 시행을 하지만 상당수의 인구가 제도권의 밖으로 밀려난 상태에서 제도권안의 사람들이 세금을 내고 거기에서 어느사회에서나 발생하는 빈익빈 부익부현상을 보면 조선개국초기에 이미 그 한계를 명확하게 내재하고 출발했다고 보고 있는 겁니다.
조선중기 이후로 양반도 이미 소가족으로 전환이 됩니다. 계속되는 분할상속으로 인한 경제력 감소 등의 영향도 있었고, 때문에 조선후기가 되면 [문중]이라는 가족을 넘어서는 집단을 구성하게 되는 거죠. 백청씨는 이 문중을 가족으로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중간에 천자칠묘, 제후오묘 등을 거론하면서 이게 뭔 대가족과 연결된다는 식의 얘기도 나오는데, 그건 백청씨 착각이고 [예제적 질서]로 계서를
백운청산정한 것이지 뭔 대가족 어쩌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 또한 백청씨가 한~참 넘겨짚고가는 것이 있는데, 한국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성인이 된 자녀는 [분가]시키는 것이 전통적인 가족형태입니다. 이건 양반도 마찬가지...!!! 때문에 반가에서 장자가 아닌 다른 자녀(나중에는 아들들)에게도 재산을 나누어주는 <분재기>라는 문서가 수도 없이 나오는 것이거덩요. 중국처럼 분가가 아니라 모여사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는 거고... 근데 이런 것은 가볍게 무시해주는 쎈쓰...-_-; 솔직히 사당 위패 드립할 때는 뿜었습니다...ㅋ
백운청산그리고 "백성들은 대가족을 운영할 경제적이 뒤받침이 부족해서 소가족으로 분가를 하고 조용조를 그대로 납부를 하게되는 것"이 "비총제 등 정부재정을 고정화하는 상황에서 담세층이 줄어들면서 상황이 악화되는 것"과 어떻게 같은 얘기가 되는건지 설명좀 해줄라우?!...ㅎㅎㅎㅎㅎ 내가 한 얘기는 조선후기에 신분질서가 문란해지면서 담세층인 소규모 자영농이 줄어들었고, 때문에 고정된 세입을 뽑아내기 위해 호당 조세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을 말하는 겁니다. 근데 이게 백청씨 얘기하고 뭐가 같다는 거요?! 소가족으로 분가하여 늘어난 소농층이 죄다 유리도산하여 조세압이 높아진다는얘길 하려는 것이라면 내 얘기하고는 한참이나
백운청산다른 얘기가 된다는 거... 조선왕조는 후기로가면 갈수록 양반이고 농민이고 [소농화]하는 경향이 보인다는 것이 학계의 분위기입니다. 18세기 쯤 되면 양반이라고는 해도 그냥 중소지주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게다가 납속이나 공명첩 등 국가가 합법적으로 신분질서를 교란시키는 상황인데다 노비부터 양반까지 응시할 수 있었던 '무과'의 경우는 한번에 1만명을 선발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거... 일단 '한량'이라도 되면 양반축에 한발 디딘 거지요...^^; 이러한 신분질서의 교란으로 '유학' 등의 신분표기를 사용하는 자들이 급거 증가하여 [양반화]로 상향평준화되는 상황이니 당연히 담세층이 줄고 부담은 늘어나는 거죠.
백운청산이런 사회경제적 변화(소농화)로 인해 노비층의 비율도 점점 줄어드는 거고, 노비의 소유-사역형태도 소규모, 솔거노비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뭔 백성들만 소농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
또한 조선초기에 말씀하신 제도권 밖의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서 분명히 줄어들었고, 제대로된 성문법도 없이 그때그때 조령모개하는 정부정책에 의해서 수시로 제도권 밖과 안을 넘나들었던 고려농노들에 비해서는 엄청 살만해진 세상이었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최소한 조선왕조에 들어서 노비도 '인간'으로써 국법으로 일정한 권리를 보호받았고, 아무리 상전이라고는 해도 함부로 해하는 경우에는 국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았지요.
백운청산게다가 백청씨가 운운한 그 '한계'라는 것은 전근대 사회 모든 나라가 공유하던 문제입니다. 조선왕조는 <노비안>을 통해서 노비에 대한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인간이면서도 일종의 재산이었던 그들은 엄중한 문서적 절차에 의해서 소유와 존재가 파악되었다는 점도 살펴볼 문제죠. 조선시대 소송 중의 상당 부분이 [노비송]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최소한 조선왕조는 양반이든 상놈이든 "토지소유 및 경작의 권리"에서 법적으로 서로 동등했다는 것입니다. 유럽이나 고려는 이와는 달리 계서적인 측면이 강해서 위에서 무대뽀로 깔아뭉갰죠...ㅎㅎ;;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간단한 원리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큽니다
★海東天子☆그냥 천자님, 백운님에게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님의 논문들을 추천해주세요. 님이나 제가 설명하기에 소농사회론은 너무 넓으니 말입니다. 2003년에 나온 <동아시아 소농사회론과 사상사연구>이나 2009년에 나온 <유교의 제민사상과 소농사회론 : 조선후기 대구 조암방의 사례 > 정도만 추천해도 될 듯 한데 말이죠.
★海東天子☆특별히 더 댓글을 달 필요는 없을거 같습니다.성리학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입니다.천자가 7조를 모시는 것은 그것은 사마천의 사기에도 누누이 나오는 이야기이고 현재 유교의 가례의는 순자가 정리한 것을 정법으로 차용하고 계승한 것이죠. 어떤 현상을 전체맥락에서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부분적인 현상만을 보고 그것을 전체에 대한 해석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서로 주관적인 차이만큼 개인적인 차이라고 이해를 하겠습니다.
bookmark실생활에 지배하는 이념이 곧 성리학이라면 그 당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성리학적인 관점에서 이해를 해야할 겁니다.그 관점에서 제가 관혼상제와 삼대가 일가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성리학에 관점이라고 말했습니다.그 관점에서 양반들의 대가족현상과 그런 이상과는 동떨어진 백성들의 소가족화를 지적한 것이 제가 전체적인 현상을 부분적으로 해석을 한것입니까?이데올로기를 이해할 때 그것을 제외하고 어떤 의미있는 해석이 가능하든가요?불가능하듯이 제가 성리학적 관점에서 삼정문란에 큰 요인이 저런것이라고 지적한 것이 부분을 전체로 해석한 것입니까?양반집에 사당을 모셔서 위패를 모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bookmark맨 위조상의 위패를 묻는 완전한 매장이 가능하듯이 모든 생활의 핵심적인 하나하나의 행동까지도 지켜야하며 고려시대의 부엌과 화장실 위치까지 변하게만든 성리학의 관점에서 저는 댓글을 달았는데 bookmark님은 어떤 부분을 보고 제가 전체를 일부로 해석했는지 좀 가르쳐주시요.
bookmark전체맥락 조선개국에서 일본놈들에게 망할때까지 그럼 bookmark님은 삼정문란에 요인을 도대체으로 어떻게 설명하실겁니까.일부 타락한 권력층과 향반였던이들이 중인계급으로 떨어져서 그들이 삼정문란을 초래했다 이렇게 해석하실건가요? 성리학의 관점을 배제하고 어떻게 저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저 관점을 배제한다면 어떻게 그런거을 설명이 가능할지 궁금하군요?
유문기문기님 이런 인간에게 그런 명문을 추천해봤자 소용없다는거 아시잖아요? 어차피 읽을 만한 뇌도 없고 이해도 못할텐데 말입니다. 정도전갤인가? 거기서는 조선까로 활동하는 인간들 보면 논문으로 조선빠를 조지느니, 역사 카페들에서 이상하게 조선빠들이 많다느니 하면서 비웃던데 그런 놈들이 논문을 읽기나 하겠으며, 제대로 읽을 능력이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어설픈 지식을 자랑하려는 자위질의 대가를 치뤄야하지 괜히 자료를 주지 마세요, 어차피 하질없는 짓이에요 어차피 학계에서도 조금이라도 근거 없으면 까이는데 이정도로 근거 없는 주장하면 더욱더 가루가 되도록 까야죠
무장나드햐~별소리를 다 듣는거 같습니다.나드님이 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나드님 자유입니다.나드님 생각에 제 댓글에 그렇게 동의하던 하지 않던 그건 나드 자유지만 예의 지키십시요.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면서 댓글을 다시던가 나드님 말대로 유문기님한테 응원과 나에대한 비하를 목적으로 한것이라면 쪽지정도면 충분합니다.
백운청산오오미~ 이거 또 큰틀에서 보는 역사 나오시는거요...낄낄~ 당신이 하는 얘기가 당신을 까는 사람들이 여태 하는 얘긴뎁쇼...ㅉㅉ
<사기>에 천자칠묘가 나오는데 이게 '대가족화'와 뭔 상관임?! 그 <사기>가 쓰여지던 시대는 '제민지배'로 중국이 통치되던 시기이고, 제민지배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소가족화가 답이었는데... 내 얘기했잖수?! 천자칠묘 운운은 유교적 계서를 규정하는 거라고... 그럼 천자구묘제를 시행한 원대 이래의 중국은 더욱더 대가족화하는 건가?! 어디서 말갖잖은 소리를... 그리고 유교에서 3대가 모여살아야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운운하는 예는 있지도 않아요.
백운청산대가족화의 근거를 대라니까 관련도 없는 칠묘니 오묘니가 왜 나오고, 삼대가 모여살아야 정상적인 가족이라는 되도않는 개소리는 또 뭐고... 이래서 내가 당신하고는 얘길하기 싫다니까?! 논리가 없어... 근거가 없어... 되도않는 관련없는 지식 나열해놓고 "나 이런 사람이야!!!"라면서 알아모시라고 하는 식의 꼰대거든... 근데 실질적으로 맞는 얘긴 하나도 안나옴...ㅋ 뭐?! "주관적인 차이"?! 놀고 않았네... 애초에 거증도 안되는 소릴 떡 던져놓고 논점회피를 밥먹듯하는 양반이 과연 주관이라는 것이 있나?! 내 참다참다 빡쳐서 이거...ㅋ
백운청산양반의 대가족화에 대해서 얘길 하려면 근거를 가져오라니까?! 분할상속에 의한 경제규모의 축소와 전통적인 가족제도인 [분가]의 영향으로 양반들도 점점 소농화되어갔고, 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것이 '문중'이라는 집단으로써 나중에는 문중의 유무가 양반의 신분증명이 되는 상황까자 온다는 것이 학계정설이라니까?!...나참...
삼정문란 등 조선시대의 여러 현상들이 '성리학'의 영향으로 ㅈㅁ했다는 식의 당신 썩은 동태눈깔이 이상한 거야~ 당신이야말로 [성리학 무용론, 망국론]의 시각으로 조선사를 보면서 뭐?! 큰틀이 어쩌고 어째?! 당신은 공정한 시각을 참칭한 '트루 조선까'일 뿐이요~ 백청씨...ㅉㅉ
백운청산님한테는 예의를 지킬 필요조차 없거든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료적 근거와 학문적인 논의 없이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 카페만이 아니라 학계에서도 대놓고 무시하거든요. 지금 님은 내가 돌직구로 날린 소리보다 다른 사람들이 비웃는 것 부터 신경써야 할 걸요? 지금 님이 제대로 역사를 공부하고 싶으면 별소리 다 듣는 것 정도로 끝나면 다행인데 말이죠, 사실 님보다 훨씬 논리적인 글과 말을 해도 별소리 다듣는게 학계니까 말이죠. 지금 해동천자님이 님 상대해주는 것만해도 대단한 겁니다 ㅋ
첫댓글 만쭈리가 뭘 말하는 거죠? 저 백운청산이란 사람 예전에도 많이 출몰했었나요?
만쭈리는 악질적인 조선까 블로거입니다. 내용은 막장인데 글은 재미있게 써서 인터넷에 만쭈리 글이 나름 널리 퍼져있어요.
ㅎㅎㅎ 조선의 신분질서가 억압적이었다는건 최근 나온 서적으로 어느정도 분쇄되었는데 아직도 그거로 울궈먹네... 이래서 최신자료가 중요한겁니다.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