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말5초에 고구려군이 한반도 남부에서 4개의 세력을 만나는데 당시 삼국사기 역시 4대 세력이 존재합니다. 양쪽을 비교해보겠습니다.
광개토왕비문에 나오는 4국(세력순) 4말5초 삼국사기에 나오는 4국(세력순)
1. 왜: 고구려와 한반도 패권을 다투는 강력한 존재 1. 백제본기의 왜: 백제가 인질을 보내는 존재
2. 백잔: 고구려에 끝까지 대항하여 싸우는 상당한 존재 2. 백제: 신라가 250년(4~6세기 중반) 동안 못 덤비는 존재
3. 임나: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무너지는 평범한 존재 3. 신라본기의 왜: 신라가 겨우 방어해내는 존재
4. 신라: 고구려가 도와주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존재 4. 신라: 생존 자체가 힘든 존재
이름만 다를 뿐 두 사료의 기록이 동일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百殘 新羅 舊是屬民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 百殘 (任那) 新羅 以爲臣民
광개토왕비문의 신묘년조의 빈칸에 들어갈 나라는 임나입니다. 세력순으로 정확하고, 이 중에 임나를 제외한 백잔과 신라만 고구려의 속민이었다는 것도 정확합니다. 전성기의 5세기의 고구려가 비문에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면 임나가 언제 저렇게 강국이 되었는가를 보겠습니다.
가야사는 3세기 전반까지를 전기가야, 3세기 후반부터를 후기가야라고 하는데, 전반은 농경민족이 지배층이고 후반은 유목민족이 지배충입니다. 3세기 후반부터 가야지역에 동북아시아 유목민족의 목곽분이 등장하는데 이전 농경민족의 고분군을 모두 쓸어버리고 그 위에 새로 축조합니다. 정복국가의 특징으로 순장도 이 시기인 3세기 후반부터 등장합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253년 여름 4월에 왜국이 우도주군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군대를 보내 신라 왕족인 석우로를 죽입니다. 석우로가 왜왕을 경멸했다고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죽인 것이 아닙니다. 왜왕이 퇴역 관리인 석우로를 하필 여름 4월에 꼭 죽여야만 되는 이유를 알면(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나옴) 삼국사기를 다 이해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신라는 저항은 커녕 첨해이사금이 피신하고 눈치만 봅니다. 당시 신라는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왜병을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참고로 3세기 전반의 내해-조분 시기 왜국은 신라를 공격하지만 사신은 안 보내는데 그 이유는 외교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3세기 전반의 신라본기 왜국이 어떤 나라였는지 왕권, 정치, 경제, 문화, 외교, 군사 등등을 삼국사기로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나중에 자세히 설명)
*신라 조분이사금 16년(245), 겨울 10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이 기록이 가야사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경계입니다. 신라본기에 외교권을 가진 강력한 왜국이 등장합니다.
고구려와 임나의 첫번째 전쟁은 245년 겨울에 낙동강 하류에서 벌어져 임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김해 대성동과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당시 동북아 최강이던 임나 기병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 남부 최초의 등자도 이때 낙동강하류에서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고구려군과 임나군 모두 등자를 사용했습니다.(이 전쟁도 나중에 설명할 것입니다.)
4세기 초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실 분도 계실텐데 대부분 증명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 기록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 유적으로 연도 증명이 가능합니다. 나중에 어떻게 증명하는지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림이사금 3년(300), 봄 정월, 왜국과 친선사절을 교환하였다.
첫댓글 대왕비에서 정확하게 판독되지 않은 빈 공간에 임나라고 단정짓는 것 자체가 문제가 많은 자의적 확대추측일수밖에 없지요 현재 전해지는 대왕비의 신묘년 사본 내용들은 일본측 사본 자료들이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에 유리한 임나 기록이 대왕비 신묘년조 내용에 있었다면 못 전해질 필요가 있습니까 신묘년의 이위신민으로 언급된 백잔 신라는 신묘년조 사본에 확실하게 나오는데 임나만 안나왔다니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에 유리한 임나가 신묘년 이위신민 대상국가에 수록되지 않은 것을 보면 신묘년조의 임나는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봐야됩니다
그리고 신라가 왜국을 상대할수 없다는건 식민사관의 과장 폄하일수밖에요 신라본기에 왜와 신라의 전쟁 기록이 한둘이 아닐 정도로
그런 왜국과의 전쟁에 익숙한 신라가 왜국을 못 이긴다 당시 일본열도의 왜를 신라를 침략한 왜국으로 간주하나요
4세기 당시 전기고분시대의 일본열도에는 국가가 없었습니다. 4세기는 가야지역 유물의 전성기로 신라지역의 유물 수준을 압도합니다.
@과거와 미래 일본에는 390년에 응신조의 국가가 건국되긴 합니다. 마한왜가 도해해서 건국한 신생국가이긴 하지만요.
그 이전에는 국가다운 국가는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而倭以辛卯年來 渡海 破百殘 [任那] 新羅 以爲臣民
그러나 왜가 신묘년이래 바다를 건너고 백잔[임나]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라고 해석을 해야 합니다.
당시 왜는 열도가 아니라 마한왜를 말하므로 [도해]를 반도에서 열도로 건너다 라고 해석을 해야 올바른 해석이라 할수 있습니다.
knjpark님께 질문은 더 안 한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습니다.
1) 마한왜는 언제 누구에 의하여 어떻게 건국되었습니까? 건국이란 국명을 정하는 것인데 마한왜의 국명은 무엇입니까?
2) 마한왜의 중앙과 지방의 통치 구조는 무엇이며 수도는 어디입니까? 한반도 내에서 천도한 적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어디로 왜 천도하였습니까?
3) 중국 사서는 마한왜에 대한 어떤 기록들을 남겼습니까? 2세기, 3세기, 4세기로 나누어 설명해주십시오.
4) 390년 1월에 즉위한 마한왜의 응신이 왜 하필 390년에 열도로 건너갑니까? 그 전 해인 389년에 어떤 대사건이라도 일어났습니까? 건너간 달은 몇 월입니까?
5) 응신은 왜 하필 15세 왕입니까? 그러면 그 앞의 14세, 13세, 12세 마한왜 왕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6) 한반도시절 마한왜와 백제, 마한왜와 신라, 마한왜와 가야의 관계는 어떠하였습니까?
7) 마한왜가 한반도에서 남긴 유물을 3가지만 들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