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學問)의 도(道)
율곡 이이 선생은 “학문(學問)의 도(道)”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후세에 도학(道學)이 밝혀지지 않고 행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독서를 널리 하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 아니요 이치(理致)를 정밀(精密)하게 살피지 못함을 근심할 일이다. 지견(知見)이 넓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 아니요 실천(實踐)이 독실(篤實)하지 못함을 근심할 일이다. 정밀하게 살피지 못하는 것은 요점(要點)을 헤아리지 못함에서 연유하고, 실천이 독실하지 못한 것은 정성(精誠)을 다하지 못함에서 연유한다. 요점을 헤아린 뒤에야 그 맛을 알 수 있고, 그 맛을 안 뒤에야 그 정성을 다할 수 있다.”<한국고전번역연구원, 고전의 향기 168호(2011.5.30)>.
학문의 도에 관한 이러한 율곡 선생 말씀의 핵심은 요점을 헤아려서 세상의 이치를 정밀히 살피고 그 이치가 널리 운용됨을 알며, 그 이치를 정성으로 실천함을 독실하게 하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내가 칠십여 년을 살아오며 진리의 핵심을 인간의 지혜로 완전하게 파악하여 밝힌 바를 지금까지 접하여 보지 못하였고, 또 그 나름 사람들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바가 한 점 의혹도 없고 내 영혼에 깊은 감동을 주어 후회 없이 한 평생을 헌신할 만한 바가 되는 것은 없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숫한 철학자들이 해온 일의 한계인 것이다. 이에 나는 이것은 전적으로 전지·전능자이신 하나님의 피조물(被造物)인 인간의 지혜가 가지는 한계점(限界點)이 아닌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성경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살아있고 오늘날에도 운동력(運動力)이 있으며, 이를 믿고 준행하는 자들에게는 내세(來世)에 대한 확실한 비전, 삶의 목적과 미래의 희망과 아울러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브리서 4장12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예레미야 29장 11절)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다”(이사야 55장 12절).
그러나 이러한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여도 위의 율곡 선생의 말씀이 하나님의 진리를 찾아가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울러 백강 이경여 선생이 사람이 나아갈 바로 누누이 말씀한 “하늘을 섬기는 도리(道理)”는 그 설득력을 더하게 된다. 백강 이경여 선생은 인조와 효종 양 임금에게 반드시 “하늘을 섬기는 도리”를 따라 나아갈 것을 아래와 같이 말씀하였다.
“하늘은 이치이니, 한 생각이 싹틀 때 이치에 합하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어기는 것이고, 하나의 일을 행할 때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이는 하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면 천명(天命)이 계속 아름답게 내려지지만 하늘을 어기고 이치를 거스르면 그 천명이 영원히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마음은 인자하여 차마 갑자기 끊어버리지 못하니, 반드시 재이(災異)를 내려 견책한 뒤 흐리멍덩하게 깨닫지 못하여 끝내 고치지 않은 다음에야 크게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 하늘이 멸망시키거나 사랑하여 돕는 것은 공경과 불경(不敬), 정성과 불성(不誠)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천명(天命)은 일정함이 없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으로부터 궁정의 사람 없는 곳과 동작하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이르기까지 삼가 공순하고 공경히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게 하소서. 천명을 스스로 헤아려 천리(天理)로써 보존하고 자연의 법칙으로써 움직여, 공경하고 조심스럽게 하기를 마치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 힘써 성의를 쌓아 기필코 즐겁게 되시도록 하는 것과 같이 하소서.”<조선왕조실록 1631년(인조 9년) 10월 3일 백강 이경여 선생 상차문(上箚文)>.
“허례허식이나 잗단 일을 하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도리가 아닙니다. 정전(正殿)을 피해 거 거처하는 것이 궁궐의 출입을 통제하여 청탁하는 길을 막는 것만 못하며, 수라의 찬수를 줄이는 것이 검소한 덕을 숭상하여 낭비를 줄이는 것만 못하며, 해마다 좋은 말을 구하는 것이 한 가지 일을 실행하는 것만 못하며, 조정에 임하여 애통해 하시는 것이 밤낮으로 삼가고 두려워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깁니다. 삼가 원하건대 성명(聖明)께서는 하늘이 내게 경고한 것은 왜 그런 것이며 내가 하늘을 받드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반드시 살펴서 어떤 일이나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강구하여 체득하고 힘써 행하되, 오랫동안 유지하고 일관성 있게 해 나가 반드시 감응하는 실적이 있게 하고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게 하소서.”<조선왕조실록 1657년(효종 8년) 5월 5일 백강 이경여 선생 상차문(上箚文), 1822년(순조 22년) 10월 15일 해석 김재찬 선생의 인용문>.
이러한 연유로 우리나라에는 성경의 말씀이 전래되기 이전에도 이미 하나님의 은총(恩寵)이 있어 왔다고 해야 하겠고, 아울러 스피노자(Spinoza)의 말처럼 진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학문의 폭을 넓혀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깊은 우물을 파려면 반드시 넓게 파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2024.10. 2.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