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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인도네시아 여행기
선교 여행
2020. 1. 16-2020. 1. 23
황선춘. 양의옥
시작하며
여러 번 선교 여행을 하여보았지만 아직 우리 부부만의 선교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년부터 인도네시아 선교를 가고자 우리 교회 백합선교회 임원에게 여러 번 가자고 종용하였어도 워낙 임원들이 회사와 일에 바쁘므로 가자고 선뜻 나서는 분이 없었다.
우리 목사님에게 같이 가시자고 하여도 맘은 있는데 교회 일에 바쁘셔서 결국은 올해로 선교 여행을 확정하고 비교적 교회 일이 적은 1월의 13일 주간을 택하여 선교여행을 결정하였다.
인도네시아 선교사인 박필현 목사님에게 전화로 연결하다가 카톡이 비용이 들지 않아 이 방법으로 서로 연락을 하여 일이 성사되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카톡으로 비행경로와 시간이며 여러 가지 준비의 정보를 주신 박 목사님에게 감사하고 우리 교회의 백합선교와 여러 분들에게 마음의 기도를 하여주심을 감사한다.
카톡시작
장로님 카톡으로 연결했습니다.
여기로 통화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보이스 톡해요.
장로님 인도네시아 저희 집까지의 이동경로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인천 제2터미널(오전 10;35분 출발) 약 7시간 비행
자카르타 제3터미널 오후 3시 35분 도착
약 4시간 공항 대기 오후 7시 50분 출발
자카르타 -스마링 국내선 환승 semarang
자카르타 지도 보내줌
황- 감사합니다,
박 : 저희 집까지 오시는 길은 두 가지 루트가 있습니다.
자카르타 공앙을 통하여 오시는 길 :인천 자카르타 수마링 스마링-자카르타 - 인천
발리Bali 통행서 오시는 길 :인천 발리 족자 족자-발리-yogyakarta 족자 - 발리 - 인천입니다.
비행기표 대부분은 위의 항공권 샘플과 같이 가루다 항공으로 이동하십니다.
항공권 가격은 시즌마다 다릅니다
황: 예, 감사합니다.
박필현 : 인도네시아에서 가보실 만한 곳은 여러군데 있지만 시간대비 저희 집 근처의 유명한 곳은 족 자카르타(집으로부터 2시간 30분 거리), 보르두브로 사원(불교), 세계유산,
parangtritis 해변, 발리 (집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 이동) 휴양지 해변정도입니다.
황 : 목사님 저희 부부가 출발할 때 필요한 것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곳 날씨와 필요한 옷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박필현: 네 아내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이곳은 우기입니다, 보통 10월 말-3월말까지 스콜성 비가 내립니다.
현재 이곳은 아침 6시 35분인데요 섭씨 24도이네요.
여람 옷과 점퍼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있는 곳은 해발 600-650미터 지점이고요 주변에 3,000미터급 산이 2개 있습니다.
황: 선교센터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 목사님에게 말씀해 주시지요.
박 : 네 저희 PPa(컴페션 인도네시아)에 속한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가지 250명 정도 되어서 다음 선교팀이 올 때 도움 주셔도 좋을 듯합니다,
황 : 비행기표 예약 마쳤습니다. 표 보내기
박: 이제 확인하였습니다. 예매 잘 하셨네요.
박: 1/16일-1월 22일일정이시네요 잘 알겠습니다. 환영합니다. 곧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뵙겠습니다
황: 목사님, 인도네시아애서의 일정은 목사님이나 사모님이 준비하여 주시면 비용은 제가 가서 드리겠습니다.
박: 혹시 일정가운데 발리도 방문계획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비행편 및 호텔 확인하겠습니다.
황: 예 있어요. 목사님 내외분도 포함입니다,
박 : 네 알겠습니다.
새해 인사=======
박 : 장로님. 오전에 여행사에 가서 잛은 일정이지만 1/20일(월) - 1/21일(화)1박 2일 간의 발리여행 일정을 위한 항공티켓 예매하고 돌아왔습니다.
호텔과 랜트카는 아직 검색 중에 있고요. 예약되면 바로 호텔 바우처 곧 보내드리겠습니다.
황: 너무 감사합니다. 혹시 떠날 때 더 필요한 것 있나요?
박 : 장로님 물어보겠습니다,
장로님 발리에서 머무르실 호텔은 몇 성급으로 할까요?
대략 1박당
3성=7-10만원 정도,
4상= 10만-15만정도
5성= 15만원 이상입니다.
황 : 4성정도면 어떨까요?
박 : 네 알겠습니다.
황 : 참 라면도 가지고 갈 수 있나요?
박: 네,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시면 3-4시간 대기시간 있습니다.
도착하시는 대로 3층에서 수속하시면 됩니다,
국내선 출발게이트는 3층 스타벅스 커피숍이 있는 쪽에 있습니다.
공항에 대기하시면서 3층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드시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시간상 저희 집에 오시는 시간이 대략 10시경이 넘으니까요.
국내선 자카르타 - 스마링에서는 기내식 빵과 물만 제공됩니다.
자카르타에 도착하시면 입국심사를 하게 됩니다.
짐은 아마도 스마링에서 찾으시고 여행사에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입국 심사하실 때
방문 목적은 여행(TRAVEL) 이라 하시고
혹시 어디에 머무르냐고 물으면 HOTEL LAPAS ASRI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물론 당분간 숙식은 저희 집에서 하시게 되겠지만 입국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됩니다,
주소는 : JI,Kend. Sudirman
No335, Ledok kec. Argomulyo , Kota Sakatkuga, Jawa Tengah 50732
호텔 연락처 : +62 29831222입니다.
황 : 잘 알았습니다.
박 : 재 비상연락처는
+629=(국가번호) (0)82133713873 (0)은 현자국가에서 사용할 때이고 국제통화는 0을 생략합니다. 그리고 제 아내에게 물어보니
고춧가루, 젓갈(명란/창란)...등이 필요하다고 하고요
막내 하연이는 잔짜 쫄면(오뚜기)를 원하더군묘. 공연히 부탁드려 송구합니다,
황 : 예 준비하겠습니다,
박: 감사합니다.
황 : 잘 알겠습니다.
우리나라와 연락하는 것이 바로바로 되어서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니다.
아주 친절하고 정확한 카톡이었다.
아내도 준비가 척척 되었다.
이번 여행은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멀리 해외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님들의 노고를 직접 체험해 보고
생활을 밀착하여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2020년 1월 16일 목요일 맑음
4시에 일어났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면도 하고 세수한다.
초롱이가 염려가 되는지 방안에 들어가니 벌써 깨어있다.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에 진표를 은실네 집에 맞기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나는 먼저 부엌에 가서 밥 반 공기에 깍두기 조금 남은 것을 먹었다.
요기가 되는 음식이다.
다른 사람은 그런 훈련이 되어있지 않고 또 위기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에 식사를 걸러도 양심의 가책이 없다.
짐은 어제 꾸렸다.
선교사 가정이 필요한 라면, 젓갈, 철분 첨가제 그리고 우리 집에서 기른 서리캐 콩도 넣었다.
우리 옷는 따로 다른 가방에 넣었다.
물도 작은 것 여섯 개를 넣었다.
그리고 4시 50분에 집은 나선다.
거리에 차가 거의 없다.
거침없이 신호등 하나 걸린 것 외에는 거칠 것이 없다.
12분에 버스 역에 도착하여 공항리무진 바로 앞에 짐을 옮겨 실었다.
우리는 제2터미널로 가야 하므로 집을 두 번째 칸에 넣었다.
예전에는 버스 기사가 짐을 자기 의향대로 집어 넣어주었는데 요즈음은 손가락으로 뒤집어 놓아라 손잡이가 하늘을 보게 놓아라 한다.
진표가 표를 사지 않았더니 좌석이 있는 차는 어린아이라도 표를 사야 한단다.
알았다고 하고 빈자리가 상당히 많은데 공주에서도 얼마 타지 않아 진표와 할머니가 붙여 앉고 나는 맨 뒤로 가니 그 넓은 의자에 나 혼자 앉았다.
공항까지는 적막이 흐른다.
밖이 깜깜하다.
실내등을 끄고 조명만 비친다.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처음으로 아내와 둘이 하는 선교여행이다.
내 나이가 70이니 매년 한 번을 가면 10번이면 80이 되고 ......
시간이 금이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박필현 선교사 가족은 일본으로 선교사 파견을 할 때 우리 교회를 중심으로 5년간 선교를 하였고 그 뒤 싱가포르에서 한 다음 중국으로 중국에서 선교사를 추방하여 가지 못하고 인도네시아로 옮겨 지금에 이른 것이다.
우리 교회와 인연이 깊어졌다.
고 최현식 집사님과 서월자 권사님의 사위이시다.
부인 최정아 선교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내가 담임을 하였고 예쁘고 상냥하더니 이제 선교사의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인연이 더 깊다.
인천공항 2터미널로 가서 티켓을 놓고 짐은 부치고 비행기표를 받았다.
수속을 하고 나오니 은실이가 찬이를 데리고 온다.
오늘부터 은실이는 진표의 짐이 하나 더 늘었다.
진표를 데리고 가려고 하니 아빠 엄마 짐이 된다고 자기에게 맞기고 가면 찬이와 함께 보다가 우리가 오는 날 다시 만나 진표를 인계한다는 것이다.
맘 씀씀이가 고맙지만 다음부터는 내가 데리고 다니기로 하였다.
아침을 먹자고 지하로 내려간다.
식당을 찾아서 한식으로 먹는다.
정식 하나, 김치찌개 하나, 숨두부 하나를 시켜 먹는다.
양이 상당히 많다.
특히 반찬이 많아서 배가 고프다면 덧밥을 하나 시키면 충분한 양이 될 것이지만 우린 배가 든든하므로 그것으로 식사를 종결지었다.
입국 수속을 위하여 3층으로 올라간다.
진표야 잘 있어라.
이모 말씀 잘 듣고 형아와 재미있게 놀다가 일곱 밤 자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다시 만나자.
진표가 고개를 끄덕이고 우린 입국장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오늘이 우리 셋째 보라의 38번 째 생일이다.
문자로 생일 축하한다고 전하고 케이크는 미리 보냈다.
비행기에 오른다.
가루다 항공이다.
통로 쪽을 택하였다.
잠을 자려고 노력하였으나 잘 오지 않는다.
중간에 점심으로 도시락이 나온다.
아내는 소고기를 택하였고 나는 생선을 택하였다.
맛이 좋으므로 서로 조금씩 나누어 먹기도 한다.
생선 찐 것에 밥을 병행하고 야채, 빵과 치즈, 케이크, 배추김치 통조림을 곁들여 먹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한다.
비행시간 7시간이다.
스마랑 공항에는 기도실이 따로 있다.
이슬람 교도들을 위한 기도실이다.
5시 40분에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고 여기서 4시간을 지체하며 저녁도 먹고 글도 정리하였다.
스마랑으로 가는 비행기는 3층의 스타벅스 앞에 있었다.
거기서 조금 기다리다가 7시가 되어 탑승을 시작한다.
비교적 앞에 서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보니 줄이 길어졌다.
아하, 점잖게 머리가 허연 노인들이 말도 없이 옆에서 나와 줄 사이에 끼어든다.
한 둘이 아니라 여럿이 끼어 서면 앞에 있던 젊은이가 두 손을 합장하고 자기 자리를 양보한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옆의 노인 할머니 두 분이 끼어들고 또 옆에서 아주머니도 끼어든다.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밖은 어둡다.
37번 세 자리 중에 ABC 세 좌석이 있는데 우리 둘은 A와 C좌석이었다.
그런데 가운데 자리는 비어두어 우리가 넓게 편한 자리를 잡았다.
자카르타 올 때도 우리 좌석이 두 군데의 좌석까지 써서 편하게 온 것을 보면 자리로는 만족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앞좌석과의 거리가 너무 좁아서 무릎은 놓기가 불편한데 앞좌석의 젊은 사람은 의자를 뒤로 제끼고 앉으니 앞의 모니터 보기도 힘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입국수속을 밟는다.
아주 편한 수속이었다.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와 짐을 찾는다.
다행이 우리 가방이 바로 나온다.
캐리어에 싣고 나가니 작은 모니터에 ‘황선춘 장로님 인도네시아 온 것을 축하합니다’라 글씨를 들고 박필현 선교사님이 손을 흔들고 있다.
반가웠다.
바로 악수하고 인사를 나눈다.
공항 밖에 준비한 승합차로 옮겨 타고 우린 고속도로를 지나 일반 도로로 접어들어 1시간가량을 달려 살라티가로 향한다.
공항 쪽에는 고속도로가 훤하게 잘 뚫려 있었디.
고속도로 진입하면서 파리채 같은 긴 막대기에 통행카드를 매달아 결재를 하는 모습이 특이하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결제를 일일이 현금으로 해야 하므로 번잡하였는데 올 들어 카드결재로 바뀌어 참 좋아졌단다.
오면서 인도네시아에 대한 이야기,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2차선 도로 중앙에 분리선이 있고 불을 밝힌 차들이 교차한다.
여기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운전석이 우측에 있고 좌측통행을 한다고 한다.
앞에 트럭이 지나가면 옆길로 하여 앞지르기를 한다.
그냥 따라가면 언제 갈지 모른다면서 여기는 통상 트럭이 지나가면 좁은 옆길로 앞지르기를 한다고 한다.
농촌 풍경이 나온다.
고층 건물이 없고 푸른 나무들이 도로주면에 가득하다.
지금은 우기라서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리단다.
길가에 잠시 머무른다.
하얀 고구마를 쌓아놓고 안에서는 고구마를 구워 파는 길거리 군고구마 장수다.
맛이 좋다고 한다.
한번 보면 안다, 우리의 옛 물고구마다.
저울로 달아 파는데 먹어보니 단 맛이 많이 나는 물컹한 고구마다.
구운 것이 호박고구마처럼 생겼다.
아까 은실이가 공항에 고구마를 구워가지고 와서 거기서도 먹었고 가방에 넣어가지고 오다가 공항에서 먹기도 하였는데 여기 또 구구마로구나 하며 먹었다.
맛이 좋았다.
더 좁은 골목기로 접어든다.
우리 채산교회 입구보다는 조금 넓은 길이다.
거기를 여러 번 구부려 간 곳은 제법 좋은 집들이 나타난다.
앞집은 세관에 근무하는 사람이 살고 옆집은 경찰 공무원이 산다는 집이다.
우측에 선교사님이 사는 집이 있다.
주차 공간이 넓지는 않지만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우선 짐을 부엌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최정아 선교사가 반갑게 환영을 한다.
우리 선생님이라고 반가워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을 하여 너무 좋은 추억이 남아있는 선교사다.
우선 우리가 가지고 온 침을 풀었다.
며칠간 고심하며 연락하고 준비한 물품이다.
탁자 위가 푸짐하다.
막내딸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하연이는 우리가 사간 볼펜 한 타스를 보고 그렇게 좋아하였다.
비교적 좋은 품질이어서 아이들이 선호한다 한다.
또 한 가지 선물 오뚜기표 진짜 쫄면은 하연이가 우연히 한국에 와서 마트에 시음하는 코스에서 시음을 하고 맛이 좋아 싶어 하던 라면이었단다.
사진을 찍어 보낼 정도였으니 좋아하기는 높은 산에 올라 좌우를 둘러보는 뿌듯함 자체였다.
입이 크게 벌어지고 미소가 얼굴에 가득 찼다.
사진도 찍고 방을 둘러보기도 한다.
가지고 간 선교헌금을 드렸다.
여기서 쓸 비용도 대강 계산해 드리고 더 들어가면 나중에 더 드린다고 하였다.
방이 아담하고 좋다.
여기는 대학 교수가 쓰던 집이라 그런지 높은 천정과 흰 벽 그리고 화장실이 딸린 방인데 곳곳마다 아담하게 장식한 집안 풍경이 선교사 부인과 딸들의 손 솜씨가 가득 밴 장식들이 많았다.
대강 씻고 잠을 청하자 내일은 6시에 일어나 세계유산을 보러 가야 한단다.
아까 나눈 인도네시아에 관한 설명을 덧붙인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걸쳐 있는 말레이시아 제도의 섬나라다.
2017년 조사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16,056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도시로는 자카르타, 수라바야, 덴파사르, 마카사르, 발릭파판, 암본 등이 있다.
인구는 약 2억 6천만 명으로 세계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인도, 미국에 이어 4번째로 인구가 많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가 강세라 무슬림이 93%로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고대 왕조로, 마자파힛과 스리위자야가 있었던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부터 1602년부터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지배받았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잠깐 일본 제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이후 다시 네덜란드의 점령 시도가 있었으나, 유엔의 중재로 1949년 12월 27일 네덜란드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인도네시아는 1945년을 독립한 해로 여긴다.
수카르노가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1962년에는 자국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다.
독립 전후 인도네시아는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이민자였던 중국인들은 종종 공산주의자로 간주되곤 했다.
1965년 수하르토 장군은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를 무력으로 진압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와 무관한 중국인들이 희생되었다.
이후 수하르토는 수카르노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았고,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다.
수하르토는 재직 중 중국인들을 인도네시아 원주민에 동화시킨다는 정책을 펼쳐, 중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중국식 이름을 인도네시아식으로 개명하게 하는 등 중국인들에 대한 탄압이 잇따랐다.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동티모르를 강제로 점령, 합병하였다.
1998년 혁명으로 수하르토는 하야했고, 이어 부통령이었던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이듬해 압두라만 와힛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해 사실상 민주적인 성격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헌법 개정으로 2004년 첫 대통령 직접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대결하여 유도요노의 승리로 끝났다.
2007년에는 자국을 비롯한 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서 2007년 AFC 아시안컵이 개최되었다.
2012년에는 미국에서 제작된 반 이슬람영화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도 시위가 일어났으며, 반 이슬람영화로 촉발된 시위를 놓고 온건파와 강경파가 대립하였다. 이상 두산 백과 참조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슬람이 전파되는 14~17세기 이전에는 인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힌두교, 불교문화의 뿌리가 깊으며, 지금도 2% 남짓한 인구가 힌두교, 불교 신자다.
이슬람이 도래 이후에는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상당히 이슬람화 되긴 하였으나 인구 과반이 거주하는 자바 지역에는 인도 문화와 융합되어 형성된 자바, 순다 토착 문화가 기층에서 정통 이슬람과 길항 관계를 형성하였고, 독립 이후 수하르토 시대에 이슬람 정치세력 및 이슬람 원리주의가 탄압 내지 견제를 받은 탓에 중동 국가들에 비하면 매우 세속적이다.
또 도서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한 네덜란드와 서구 국가들의 오랜 선교, 이주민인 화교들의 기독교 개종으로 기독교도 전 인구의 약 10%에 달한다.
인도네시아라는 국명은 네덜란드령 동인도 시대인 19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이 명칭은 1850년대 영국인 조지 얼과 제임스 로건이 동인도 제도를 지칭하기 위해 인도라는 뜻의 'Indo'와 섬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nesos'를 합성하여 창안한 것이다.
이후 독일의 인류학자 아돌프 바스티안이 이 용어를 마다가스카르와 타이완 섬 사이에 위치한 도서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이 용어가 학술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도시가 해안, 분지, 평지에 위치하고 덥고 습하지만, 자바섬에서는 반둥, 말랑, 바투, 살라티가 등 인구 10만 이상의 고원 지대 도시도 많이 발달하였으며, 바투나 워노소보 등의 고산 도시는 서늘하여 일부 지역이 아열대 고산 기후를 띠기도 한다.
=두산백과 참조=
2020년 1월 17일 금요일 맑음
4시에 눈을 뜨고 일어남과 동시에 확성기에서 이슬람의 기도소리가 온 동네에 퍼진다.
한 곳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우리가 머무는 바로 옆에서도 크게 들리니 새벽기도를 누워서 하는 꼴이 되었다.
거기서 나오는 소리는 일어나라, 기도시간이다. 모두 나와서 기도에 동참하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5분여 시간동안 들리던 소리가 잠잠하여지자 일어나 세면 하고 목욕을 하였다.
거실에서 모두 모여 큐티 시간을 갖는다.
어느 사이 회정아 선교사는 차를 끓여 탁자에 놓아 마시게 하였고 부엌에서는 현지인 아주머니가 음식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서는 현지인을 일하게 함으로 외국인이 활동하는데 도움을 주게 되어 있는 시스템이란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들은 모였고 박필현 목사님이 사회를 보셨다.
요한복음 5장 16절 이하를 두 절씩 돌아가며 읽고 잠시 묵상하며 메모를 한 다음 다섯 가지 주제를 주신다.
첫째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둘째는 하나님은 무어라 명령을 하셨는가?
셋째는 우리가 죄에서 회개할 것은 무엇인가?
넷째는 우리가 붙잡아야 할 주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다섯째는 말씀 외에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감동은 무엇인가?
서로 메모지에 자기의 생각을 쓰는 시간을 준 다음에 최정아 선교사부터 의견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아내와 내가 차례로 발표하고 최종적으로 목사님이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 일하시는 분이요, 죽은 자를 살리시며 행하심을 보이시는 분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본받아 일하신다는 것과.
우리는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두려움으로 듣고 영생을 향하여 나아가는 명령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하신 바와 같이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고백과 함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따라 하자는 것과,
우리는 놀라운 더 큰 일을 붙잡고 평생을 주님 주신 일을 따라 하는 의무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 하는 중요함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되면 선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다시는 죽지 않고 악한 자는 심판의 부활을 맞는다는 것으로 믿음에 대한 자기들의 의견을 정말 질 말하였고 목사님의 기도로 큐티를 마쳤다.
다시금 생각하면 오늘의 무슬림의 기도소리와 우리 가족들이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 생활을 다짐하는 것이 비교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또 목사님이 이신우 선교사와 부인 김영자 미얀마 선교사의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해방되게 해 달라는 기도와 하임이와 하연이 딸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였다.
아침을 먹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식사기도를 하고 우리 밥상과 비슷한 식사를 한다.
쌀밥, 배추김치, 김, 달걀 찜, 쇠고깃국, 나물무침 정도인데 배추는 현지에서 구입하여 담는다고 한다.
고춧가루가 필요하다는 것이 바로 현지에서 김치를 담글 때 우리 고추가 필요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가지고 간 젓갈도 먹고 가지고 간 김치 통조림도 맛있게 먹었다.
잠시 일정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정원을 돌아본다.
넓지 않은 정원이지만 깨끗이 정돈된 화단에는 알로에가 10여 포기 싱싱하게 자라고 람부탄이라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패션 푸룻이라는 마르끼싸는 정열적인 자태를 보여주고 그 옆 화단에는 세 가지 커피나무가 아직은 어려서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로브스타, 아라비카, 리베리카 세 종류를 모두 심어 내년부터는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키 큰 망고나무가 집을 지켜주고 옆집의 화단과 어울려서 정원속의 그림을 그린다.
여기 동네는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여기 선교사 사택은 은퇴한 교수가 살던 집으로 잘 지어져 있고 앞 집은 세관에 근무하던 사람이 살고 그 옆집은 경찰......
모두가 잘 지어진 집들이라서 살기에 불편함은 없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도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각 집마다 자가용을 들여 놓을 수 있는 대문이 있고 잘 꾸며진 정원을 부럽기도 하다.
그곳에는 잘 자란 바나나 나무, 행운목, 이름 모를 잎이 큰 나무들이 즐비하다.
자연 부러움을 살만한 자연 환경이다.
하늘이 너무 맑다.
흰 구름이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을 보는 것처럼 상쾌하다.
차에 오른다.
우리가 가야 할 족 자카르타까지는 차로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데 길의 교통 사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단다.
출발하면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문단속을 잘 하고 상가에 다녀오라 이르고 골목길을 빠져 나온다.
한참 오다가 최정아 성교사가 핸드폰을 놓고 왔다고 하여 다시 집으로 가는데 이미 아주머니는 문을 잠그고 열쇠를 안에 놓고 가서 별 수 없이 핸드폰 없는 여행을 시작한다.
덕분에 살라티카 동네를 구석구석 사귈 수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매우 컸다고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
우리는 장시간 길을 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교회 문제, 주민과의 관계, 건축 문제와 내가 알아보려고 한 해외 선교지의 교회를 신축하려면 얼마나 비용이 드는가를 이야기 하였다.
우리 교회가 70주년 기념으로 해외 선교지 교회 설립을 기도하고 있는데 대강을 알기 위한 의도였다.
목사님의 말로는 한 집사님이 2500만원을 교회 건축비로 사용하라고 주셨는데 사실상 그 돈은 부지 구입비로 사용하고 건축비는 다른 교회의 도움으로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5000만원 이상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니 우리 교회의 준비로는 벅차다는 것을 알았다.
맑은 하늘 아래 멀리 우뚝 솟은 머라피와 머르바브산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3,000미터급 높은 산이란다.
화산의 폭발로 만들어진 산인데 지금도 하얀 연기를 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정상까지 갈 수 있다고 하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마글랑에 도착하여 사원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댄다.
내리자마자 여자 셋이 손에 갖가지 장신구를 가지고 인사를 정답게 한다.
알라바띠!
무엇을 팔기 위한 인사라서 웃음으로 답하고 돌아선다.
사원입구의 화장실도 돈을 받고 들어간다.
우리나 돈으로 200원 정도다, 2000루피다.
입장권을 사야 하는데 자국인이나 인니에서 오래 거주하는 사람이 구입하는 문과 해외에서 온 이방인이 구입하는 입구가 다르다.
현지 주민은 우리 돈으로 5,000원 정도인데 외국인은 30,000원 정도란다.
이해가 간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835년 건립된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미얀마 바간, 인도네시아 자바섬 보로부두르 사원이며 단일규모로는 전 세계에서 제일 큰 불교 유적지다.
7세기까지 자바섬과 수마트라 섬은 인도에서 건너온 왕조들이 지배하였다.
이들이 결합한 시일랜드라 왕조는 보로도부르 사원을 건설하여다.
한 때 동남아시아의 불교 신앙의 중심이었던 보로두부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12세기에 버려진 뒤 1814년 스탬포드 래플스 경이 200명의 노동자가 45일 동안 나무 베기를 통해 발견해 낼 때 까지 화산재 속에 묻혀 있었다.
언덕위에 자리 잡은 이 층계식 사면 피라미드는 모두 열 개의 정방형 단, 세 개의 원형 테라스, 그리고 꼭대기에는 중앙의 스투바(돔형상의 성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설계는 다섯 가지 상징이 있다.
정방형의 땅과 원형의 하늘을 결합한 우주의 몸이라고 할 수 있는 만다라 부처를 상징하는 피어나는 연꽃, 스투파, 쌍의 중심이라는 수미산, 그리고 깨달음으로 통하는 삼차원의 길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한 층 한 층보다 높은 경지의 개달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대마다 부처의 가르침을 회화로 표현한 조각을 별을 따라가며 볼 수 있단다.
이러한 변화는 아래층의 정방형 플랫폼으로부터 윗층의 원형 플랫폼으로 올라가면서 진행된다.
원형 프랫폼에의 벽에는 72개의 실물 크기의 부처상이 벽속에 안치되어 있다.
꼭대기의 스투파는 해탈을 의미하며 그 내부는 비어 있다.
보르도부두르는 이후 불교건축의 모델이 되었으며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같은 건축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선 지역이 넓으니 관광 자동차로 한 바퀴 돈다.
축전지로 가는 무공해 자동차다.
소리도 없다.
가운데에 사원이 있고 그 둘레가 숲으로 둘려 있다.
거기를 차로 가면서 관람한다.
번얀트리는 우리 나라로 말하면 벤자민이란다.
거대한 나무다.
피톤치스를 발휘하여 호흡에 아주 좋은 나무다.
보로부두르 석탑의 벽면마다 부처의 모습과 이야기들이 조각되어 있다.
맨 아래 기단에는 욕야카르타 사람들, 즉 사일렌드라 왕조 당시의 자바 섬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해 놓았고,
위쪽으로는 석가모니의 일생이나 깨달음을 위한 수양, 경전의 내용 등의 내용이 묘사돼있다. 층을 따라 올라가면 불교에서 진리의 소리를 의미하는 종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의 스투파와, 그 속에 앉아 있는 수많은 불상들을 볼 수 있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기도 하다.
건설 시기, 건설자, 건설 목적 등 전혀 알 수 있는 사항이 없으며. 왜 버려졌는지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건축물의 높이나 폭은 각각 제각각인 반면 사용된 돌들의 높이는 약 23 cm로 통일되었고 접착제도 사용하지 않고 쌓아 올렸다는 점도 참 놀라운 점이다.
보로부두르 사원이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일렌드라 왕조가 몰락하고, 화산이 폭발하면서 유적이 오랜 기간 방치되어 거대한 밀림과 화산재에 덮여 있었던 턱에 발견하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지배 당시에는 불상이 많이 훼손되거나, 무분별한 도굴이 빈번하게 발행해 많은 유물이 사라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보로부두르의 불상 가운데 약 35%는 두상이 없단다.
한 바퀴 돈 다음 출발하던 자리에서 내려 사원으로 올라간다.
입구 정면에 세계문화유산의 간판이 커다랗게 있는 곳에서 인증샷을 한다.
한 장면을 여러 번 찍어주는 목사님의 재치!
그리고 사람 많은 계단을 오르면서 사진을 찍고 탑을 돌며 탑 벽면에 새겨진 부조를 본다.
양각으로 부처와 여러 상들을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한 그 기술 또한 대단하다.
우리가 인도의 에로틱 사원을 보고 감탄한 그 부조인데 모습은 사뭇 다르다.
애로틱 사원은 사람의 성생활 장면인데 여기는 부처의 온화한 모습과 참선하는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
탑을 돌다가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목사님이 찍던 학생보고 들어가 같이 찍으라고 하자 좋아하더니 우리보고도 같이 찍자고 한다.
발랄하고 깜찍하고 귀염성이 많은 이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재미있게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토론도 잘 한다고 한다.
엄청 맑고 밝고 명랑한 여학생들이다.
여기 학생들은 다른 사람과 대화에 아주 적극적이고 말도 매우 잘 한다고 한다.
나도 들어가 두 번을 찍었다.
여러 번을 감돌아 감탄하면서 위치 좋은 곳을 골라 쉬기도 한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사원을 오르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멀리 보이는 광경도 비슷한데 여기는 멀리 슬리핑 부다가 보이는 부처님 누어있는 모양의 등성이를 바라볼 수 있는 산이 있는 것이 다르다.
사원을 내려오는 길은 들어가는 길과 다르다.
길게 늘어선 가게를 지나게 한다.
악세서리를 파는데 손부채가 10개에 만원이라고 외치기도 하지만 사지는 않았다.
어떤 아저씨는 손부채를 한 보따리 사서 들고 가기도 한다.
아마도 선물로 줄 사람이 많은가보다.
우린 과일을 놓고 파는 곳에서 탈락두름을 한 봉지 사서 먹기도 한다.
사각거리고 향이 나고 맛이 좋다.
내가 야자를 좋아하니 머리통보다 더 큰 야자를 두 개 사서 넷이 나누어 먹는다.
나는 아내와 목사님은 자기 아내와 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빨대로 마시고 속의 하얀 살을 긁어먹으라고 수저를 준다.
조금 먹다가 일어난다.
마글랑의 관광을 마치고 다시 차에 오른다.
두 시간을 더 달린다.
족자카르타로 가는 길이다.
오토바이 행렬이 차의 속도를 늦춘다.
갑갑할 정도인데 어디서 나오는지 길모퉁이에서 튀어나오는 오토바이는 조심할 대상이 된다.
흰 구름이 산을 감싼다.
파란 하늘이 우리의 가을하늘 같다.
높은 산에 둘린 휜 구름은 산신령을 맞는 무당처럼 한편으로는 숭고하기도 하다.
나무와 집들과 들판이 연거푸 지나간다.
거기에 오토바이가 비집고 들어오고 우리 차도 곡예운전을 해야 한다.
이 족자카르타에는 술탄이 살고 있다.
이 나라의 왕이 살고 있는 곳이다.
술탄의 딸인 공주님이 우리 한국을 너무 좋아한단다.
케이팝을 좋아하고 한국 문화를 사랑한단다.
그래서인지 한국과 직항 항로는 개설하고 있다고 하니 머지않아 한국에서 직접 족자로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
욕야카르타는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 특별주의 주도로, 인구는 200만 명이며 면적은 32km, 인구밀도는 11,000명이다.
전통적으로 자와 미술의 중심지였으며 바틱, 무용, 연극, 음악, 시, 와양(그림자 연극) 등의 문화가 발달했다.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중이던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인도네시아의 임시 수도였던 곳이다.
족자카르타 대표 관광지는
1.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보로부두르 사원
2. Bukit bintang Jogja
부낏(Bukit)이란 인도네시아어로 '언덕'을, 빈땅(Bintang)은 '별'이라는 의미로, '별이 보이는 언덕'이라는 뜻인데 차로 이곳을 갈 수도 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도 올라갈 수 있다.
3. Taman sari
'물의 궁전'으로 불리는 '따만사리'는 술탄이 후궁을 간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소(후궁들의 목욕탕) 이자, 술탄 왕족의 휴양 공간으로 지어진 별궁이다.
4. Hutan Pinus Pengger
'타노스 손이 있는 곳'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5. Jurang Tembelan Kanigoro 등이란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치킨라이스, 볶음탕밥, 푸에띠아노 면, 그리고 중국차가 등장한다.
만두도 두 접시를 시켰다.
우리들이 밥을 먹으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다.
교인들의 이야기,
전도의 이야기,
목사님의 결혼 이야기,
전도사의 결혼 이야기
그리고는 이야기를 자 했다는 생각을 한다.
식사를 하고 마트로 들어간다.
일본식으로 운영하는 트랜스 마트인데 입구에 거대한 롤러 코스트가 있다.
타지 않겠다는 아내와 사모님을 꼬드겨 롤러코스트를 탄다.
실내에서 시작하여 밖으로도 한 바퀴 도는데 손님이 없으니 두 번을 타라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어 준다.
처음에는 환성을 지르던 여성들이 두 번째는 조금 덜하다.
내려서 빠랑뜨리띠스 해변으로 간다.
가는 도중도 볼만 하다.
벼를 타작하는 곳의 바로 옆에 갓 심은 모가 물위로 고개를 내민다.
타작하고 남은 그루터기가 상당히 길다.
목만 베어간 것 같다.
이 그루터기는 잘라서 말이나 소의 먹이가 된단다.
벼의 일생 체험을 한 자라에서 하는 것 같다.
파랑트리티스 해변의 모래는 검은 모래다.
black sand!
과연 언덕위의 모래가 검은 색이다.
일몰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해변을 조망하는 언덕을 가보자.
고물거리고 경사가 롤러코스트보다 더 험한 길은 아까 연습으로 롤러코스트를 타본 경험이 있어 감탄으로 마친다.
가는 곳마다 입장료, 주차비는 필수다.
복잡한 시내를 빠져 나와 잠깐 시원하게 뚫린다 했더니, 결국 해변을 앞두고 다시 밀리기 시작한다.
길게 늘어진 관광버스에, 주말이 겹쳐 일몰을 보러 가는 현지사람들의 오토바이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목적지는 해변이 아니고, 일몰을 보기에 최적이라는 파랑라양 언덕(Paranglayang Hills).
입장료 4.5천 루피.
고도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심한 경사를 따라 올라 가야 한다.
차로 가볍게 정상에 이른다.
드디어 태양이 바다를 향해 빠르게 침몰하기 시작한다.
일몰은 구름이 너무 많아도, 너무 작아도 안 되지만 오늘은 아쉽게도 구름의 양이 충분치 않아 내가 바랬던 일몰은 아니지만 길게 늘어진 해변과, 언덕에서 일몰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실루엣에서 만족을 느낀다
나와 목사님은 오토바이를 타고 아내와 사모님은 말을 탄다.
저녁 해가 떨어지기 전에 우리는 출발한다.
너무 늦으면 귀가에 지장이 있다.
저녁을 이야기하다가 백종원의 본가로 정했다.
비빔밥은 내가 선택하고, 목사님은 김치찌개, 아내와 사모님은 쇠고기 된장찌개를 시키고 해물전을 시켰다.
값도 비싸지만 손님도 많았다.
심부름하는 종업원이 한국 사람이다.
백종원씨를 아느냐고 하니 가끔 오시기도 하지만 관계는 없단다.
체인점 식으로 헤시피대로 음식을 준비하여 제공한다고 한다.
오는 동안 쇼핑몰에 들러서 내 손목시계를 산다.
8만원 짜리니 내겐 과분하기도 하지만 그것 외에는 없다.
종업원 아가씨가 내 손목에 맞게 줄을 줄이는데 시간이 엄청 걸린다.
펜치 잡는 법도 잘 모르고 둘이 깔깔거리면서 한 사람은 시계줄을 잡고 송곳을 대고 있으면 다른 아가씨가 망치질을 한다,
내가 할까 물어보니 그냥 두란다.
어쨌든 한참 지난 후에 다 되었다고 하고 웃음 다시 한 번 떠드린다.
밤길 졸린 눈을 비비며 12시경에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청한다.
2020년 1월 18일 토요일 흐림
눈을 뜨면 4시다. 아예 알람을 꺼버렸다.
이슬람의 기도소리가 알람보다 더 깨우는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일기를 정리하고 바로 거실에서 하는 큐티로 들어간다.
목사님은 이미 책상위에 성경과 종이를 놓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요한복음 5장 30-40절을 돌려가며 읽고 오늘은 목사님이 먼저 발표하고 다음은 나, 양권사, 사모님 순으로 발표를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게 하는 증언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성경이 나에게 감동을 주고 미련한 것에서 해방이 되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는 나의 의견을 말하였다.
아내는 여지껏 살아 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알지 못했던 말씀을 좀 더 알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목사님은 내일 설교 준비에 들어가셨고 우리는 하연이의 학교에 가서 그룹 발표회를 보러 갔다.
들어가는 입구에 지킴이가 문을 열어 주었고 바로 교문 안으로 들어가 주차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학교 입구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커다란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나무가 있는 곳이 공동묘지인데 이들은 나무 아래 시신을 묻어 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수장이 되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묘지 부근은 공원처럼 항상 싱싱한 나무들이 있다고 한다.
혐오감을 주지 않고 자연스런 묘지로 기억하는 것이 좋다.
학교 간판이 mountain view christian school로 멀리 머르바브 산과 안동산이 흰 구름아래에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멋진 광경의 학교였다.
단층 건물이 사방에 소담하게 아름답게 둘려 있고 여기에 초,중,고등학교가 같이 모여 있는 학교다.
각 건물 사이에 커다란 나무들은 역사를 말해주고 공간은 잔디로 깔려 있으며 농구장이 2개, 수영장이 2개, 축구장이 2개가 넓게 펼쳐져 있다.
유치원 옆에는 놀이터가 산뜻하게 자리 잡고 있다.
교실의 복도 유리창에는 배운 것을 전시하고 있고 책상은 의자를 뒤집어 올려놓고 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쉬는 날인데 체육 교사들이 나와서 학교에 나온 학생들의 농구 지도를 하고 있었다.
수영장에는 교사가 나이 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고 있어서 학교인지 공원인지 놀이터인지도 궁금하게 한다.
국립공원 같은 기분도 든다.
여기에 입학하는 학생은 크리스천 자녀들이 많은데 현지인과 외국인도 입학하고 있다고 한다.
약 250명 정도가 수학하고 있단다.
수업료는 비싸서 한 학기당 300만원 정도를 내야하지만 선교사들의 자녀들과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2층의 계단으로 올라가 강당으로 들어간다,
한창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여섯 명씩 네 그룹으로 나누어 강당위에 앉아 있었고 단 아래에 남자선생님이 영어로 문제를 내주고 그 옆에는 여선생님 둘이 진행 시간과 답을 맞힌 그룹의 통계를 작성한다.
다른 학교 학생을 인솔한 선생님은 자기 학교의 결과를 노트북에 기록하며 비교 검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진행 방법은 미리 10권의 책을 학생들에게 공개하고 읽게 한 뒤에 교사가 어떤 문제 상황을 읽어 가면 학생들이 그 책을 읽는 학생을 중심으로 답을 적어 화이트 판에 쓴 다음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면 문제를 제출한 선생님이 답을 발표하고 그룹들의 정답 맞힌 결과를 O, X로 평가를 한다.
옆의 선생님은 결과를 누적하여 집게 하는데 10권의 책을 한 학생이 다 읽기가 불가능한 것이어서 학생들이 어떻게 읽고 발표하는가가 핵심 포인트였다.
간간이 쉬는 시간도 주며 60문제를 진행하니 3시간 정도 걸린다.
가끔 기도하며 진행을 하였다.
관람하는 부모들이 소리 없이 진행하는 것을 관람한다.
우리도 관람석에 앉아 지켜본다.
결과가 나왔다. 4그룹이 1등을 하였고 하연이가 속한 3그룹이 2등을 하였다.
결과에 따라 우승한 팀에게 트로피를 증정하고 다음 해에 그 그룹의 학교에서 이런 평가를 한다고 한다.
참으로 좋은 발표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생의 골든벨을 울려라 프로그램과 비슷한데 여기는 좀더 자유스런 발표라고 생각되었다.
참가학생들에게 점심을 제공한다고 하니 교정을 둘러보고 돌아온다.
돌아오는 입구의 복도에 작은 판매대가 놓여있고 자물쇠가 잠겨있는데 그 안에는 과자와 음료수 등이 있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삭서 먹고 돈을 넣는 방법인데 우리나라의 예전 학교 판매대와 같다.
다른 것은 학교 판매대는 학용품만 넣어두었는데 여기서는 아이들이 잘 먹는 군것질 하는 과자종류가 더 많다.
이 자유 판매금은 그 학급에서 모아 두었다가 선배들의 졸업파티 진행금으로 사용한단다.
그 금액이 보통 2-300만원 정도 된다고 하고 모두 판매에서 나오는 돈을 파티에 사용하여 선배들에 대한 후배들의 정을 나타낸단다.
그리고 나서 다음 해에는 후배가 일 년 동안 다시 판매를 시작한다고 하니 정말 자유스런 공부를 하는 것 같다.
본받을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학교에서 나와 시장으로 들어간다.
오토바이와 자가용들이 너무 많은 시장 입구다.
차를 정차할 때 한 사람이 나와서 장소를 알려준다.
차를 정차하고 내리면 바로 옆에 두리안을 대여섯 개 가지고 바닥에 앉아 팔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다.
얼마냐고 물으니 좋고 큰 두리안 하나에 우리 돈으로 8천원정도 한단다.
매우 싼 가격이다.
우린 2층으로 올라간다.
약채가게에 들른다.
간판도 없는데 청년 아들과 나이 든 엄마가 주인이다.
가게 안에는 작은 봉지들에 정말 갖가지 약채가 담겨 쌓여있다.
우린 미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하여 온 동방박사가 세 가지 보물을 가지고 왔는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있다.
이 중의 유향을 사러 간 것이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없다고 하는 것 같으니 최 선교사가 핸드폰으로 유향의 모습을 보여주니 한 주머니에서 꺼낸 투명 알갱이를 보인다.
유향이라는 이름을 주인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맞다 하며 두 봉지를 사서 가지고 온다.
한 봉지는 선교사의 어머니 권사님에게 드릴 것이고 하나는 나에게 선물할 것이라나?
관절에 좋다는 유향이었다.
그리고 검은 설탕인데 이 설탕은 우리의 백설탕과 흑설탕과는 다른 설탕인데 인체에 해롭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무게가 상당하니 손에 들고 갈 만큼만 산다.
오다가 참치 작은 것 두 마리, 옥수수 4개를 싼 봉지 하나를 더 사서 시장보기를 마쳤다.
이 옥수수는 바로 찌어져 나왔는데 맛은 우리 옥수수보단 조금 못하지만 모양은 노란 알갱이가 가득 차서 입맛을 돋우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인도네시아 옥수수였다.
조금 후에 방금 사온 참치가 노릇하게 구워져 식탁에 올라온다.
빨리 요리한 것도 신기한데 구운 참치의 맛이 대단하다.
두어 도막씩 먹었다.
설교준비를 마친 목사님과 같이 맛사지를 간다.
2시간 하는데 만 이천원 정도라고 한다.
아주 싼 값이다.
손님들이 말이 아니게 많이 들어온다.
넷이서 가서 두 시간을 소비하고 돌아온다.
샵 바로 2층에 수퍼가 있다.
치약과 휴지 등을 사 온다.
돌아오다가 바나나 과일 가게에 들러서 큰 바나나 한 송이와 망고를 산다.
망고는 끝물이라 좋은 것이 없어 별수 없이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한 봉지 사온다.
집에 돌아와 식탁에 올려놓고 조심하여 칼로 깎아 먹으니 농익은 망고를 먹는 셈이다.
목사님 가족은 아예 손도 대지 않고 아내와 내가 거의 다 먹었다.
약간 알콜 기운이 도는 것 같다.
내가 말하기는 망고주를 먹고 안주로는 옥수수로 하자고 하여 한바탕 웃음보따리가 터졌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일은 아침 7시에 예배를 시작하니 이른 잠을 창하기로 하였다.
2020년 1월 19일 일요일 흐림 후 조금 비
오늘 온 주목적인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날이다.
6시 반에 준비를 하고 아침도 먹지 않고 7시부터 예배를 드리니 6시 반에 출발준비를 한다.
식탁에 오늘 가지고 갈 물건을 쌓아 놓았다.
나는 아내와 바나나와 고구마를 한 개씩 먹었다.
가는 도중에 목사님이 인도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신다.
인도는 언어가 단순하다고 한다.
오랑우탕의 오랑은 사람을 우탕은 숲속을 의미하는데 오랑우탕은 숲속의 인간이란 뜻이다.
사람이 여럿이면 오랑오랑이라고 두 번 반복하면 많다는 뜻이란다.
교회는 가깝다.
교회 앞의 길에 자동차가 늘어선 모습을 보는데 모두 예배하러 오는 성도들의 차량이란다.
한 브럭 앞에는 침례교회도 있었다.
우리도 교회 앞 언덕길에 주차하고 나온다.
성결교회 성도가 차량 안내를 한다.
교회에 붙여 건물 하나를 연결하여 증축공사를 하고 있다.
2층의 거푸집에 벽돌이 올라가고 있었는데 여기가 오라엣다보라교회의 비젼센타를 건립하는 중이란다.
오라엣다보라는 일하며 기도하는 교회라는 뜻이란다.
일층에는 차고가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거기가 예배하는 장소다.
아직 성도가 차지는 않았지만 교단 위에 7명의 찬양대가 찬양을 인도하고 있었다.
세 명의 여자는 찬양을 하고 네 명의남자는 찬양하며 악기를 연주한다.
키타와 드럼과 키보드와 긴 전자키타였는데 연주가 수준급이다.
인도하는 키 큰 젊은이는 일반 성도인데 어찌 찬양을 잘 인도하는지 전도사로 욕심이 날 정도다.
찬양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한 다음에 목사님이 나오셔서 개회기도와 사회를 맡아 진행하신다.
예배 시작할 즈음에는 많은 성도가 자리를 메웠다.
우리 박필현 목사님이 설교를 하신다.
모두가 인도어여서 나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유창한 인도어로 제스쳐를 써서 파워포인트로 설명하신다.
설교가 한 시간 넘게 이어지고 우리 목사님 내려오시고 헌금 시간이 되었다.
사회자는 여기 헌금은 교회 헌금과 비젼 센타 증축헌금이라고 말하며 두 장의 한금 봉투를 나누어 주었고 우리는 일어서서 두 군데에 각각의 봉투를 나누어 넣었다.
그리고 사회자는 일일이 차분하게 모든 성도의 근황을 파워포인트로 광고를 한다.
지난주에는 우리 성도들 중에 두 분이 세상을 뜬 이야기, 이번 주에 생일을 맞는 성도들의 이름과 생일을 알려주고 다른 일도 세세하게 광고를 하였다.
현지 목사님이 다시 성도를 위한 기도와 마무리 기도를 하시는데 차분하게 모든 이들을 위한 오랜 기도를 하셨다.
말씀이 차분하시고 배려하시는 기도가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의 이름과 아내의 이름을 정확하게 물어보시고 뒤로 향해 인사를 하고 박수를 치게 하였다.
하룬 목사님인데 성경이 아론의 이름이란다.
이 목사님은 60세가 넘은 목사님인데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이슬람의 성도에게 전도하기 위해서 2년간 아랍어를 배우시고 나와서 1년 새에 무슬림 15명을 전도하신 목사님이시다.
2년 교회를 비운 사이 우리 박필현 목사님이 이 교회를 담당하게 되었고 지금은 같은 사역으로 이끌어 가신다.
마치는 시간에 나와서 인사하라는 말씀에 박목사님과 나와 최정아 선교사와 아내는 뒤에 서서 홍삼세트와 손잡이가 있는 사탕을 나누어주며 악수를 일일이 하였다.
모두 좋아하는 눈치가 역력하였다.
혹시라도 서운한 성도가 있을까 보아 빠짐없이 200명쯤 되는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교회 선교사내외가 오셔서 인사하다가 선교사 사모가 아픈 사정을 이야기 하니 모두 듣고 안수하며 기도를 하여주신다.
성도가 다 돌아간 다음에 우리 부부와 선교사 부부를 초대하여 아침 식사를 하자고 하신다.
여기 전통 음식이란다.
당신들은 오토바이나 다른 차를 타고 우린 우리 차로 식당에 가는데 나무식탁이 돌아가며 놓여있다.
식탁 가운에 모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덮개로 덮어놓았는데 거기에는 유부에 매운 고추를 넣은 접시며, 꼬치에 닭 내장을 꿴 것과 메추리알을 꿴 것, 조개 말린 고치, 쇠고기 고치, 큰 달걀 두 개, 누룽지 눌려 튀긴 것, 과일 말려 눌러 튀긴 것 등이 놓여 있다.
이것을 먹은 손님은 나갈 때에 자기가 먹은 것을 알려주고 값을 지불하는 식의 식사였다.
인도말로 식사이름을 알아보았다.
우선 차의 이름이 에스테, 두아, 떼띠아다.
닭고치는 아얌삿데, 달걀은 뚤루뜨미유, 조개는 사데로랑, 뗌베는 청국장 튀김, 고렘안은 감자, 따후는 유부, 고랭은 튀김......
하룬 목사님의 사모님이 식사기도를 오래 차분하게 하신다.
사모님의 인자한 모습이 보인다.
우리들이 대화를 더 재미있게 한 것은 메주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여기 메주는 냄새가 나지 않는데 튀겨서 먹는 음식으로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청국장은 냄새로 인하여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냄새가 나지 않는 청국장이 나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사용하는 콩은 작은 것을 이용하는데 콩을 삶아서 효소를 넣고 띄울 때 바나나 잎을 사용하여 덮어주면 냄새도 없고 맛도 좋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청국장은 삶아서 볏짚을 통 사이에 끼워 넣고 아랫목에 24시간 덮어 40도 이상 고온으로 덮어주어 곰팡이 실이 나오면 꺼내어 으깨서 청국장으로 사용한다.
특유한 냄새가 나는 것과 나지 않은 것은 여기서는 효소를 넣고 띄우는데 우리나라는 따로 효소를 쓰지 않는 것이 다른 것 같다.
또 바나나 잎 대신 울금 잎을 쓰기도 한다니 한 번 시험해 볼일이다.
식탁 바로 옆에 이상한 붉은 꽃이 있기에 물어보니 히비스커스라고 한다.
우리의 하와이 무궁화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꽃 모양이 길고 화려하여 히비스커스가 아닐 것이라고 하니 정말이라고 하며 여기에 히비스커스가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과연 일어나 울타리를 보니 하와이 무궁화인 히비스커스와 노란 것 흰 것 등 다양한 히비스커스가 모여 있어 정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핸드폰으로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 좋은 공부를 하였다고 감사하였다.
나오는 길에 앞 가게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있다.
인사를 나누니 세 명이 청년이 모두 사모님의 동생들이었다.
이제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교회를 알아보는 시간이다.
우리는 좁을 길을 들어가 건축 중인 빠랭 지교회의 사정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빠랭 교회는 한국의 안흥교회 집사님이 배를 팔아서 헌금한 2,500만원으로 교회를 설립하기 시작 하였는데 부지 구입으로 1,500만원이 들어가 건축하는데 자금이 모자라는 형편이라고 한다.
지금 기초를 세우고 지붕이 연결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비좁은 공간이지만 자립할 수 있도록 내가 기도하고 목사님이 마무리 기도를 하였다.
무난히 교회를 건축하여 뭇 영혼을 구제하도록 모두가 기도하여 뜻을 이루기를 하나님께 호소하고 돌아온다.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빠랭교회는 바로 위에 이 동네의 이장이 사는데 이장이 도와주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 성도의 집을 이용하여 교회를 운용하다가 이곳에 새로 이사할 교회가 잘 완성되기를 기도하였다.
일본에서 온 대학생 2명이 선교사네 집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점심을 먹기로 되었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예산 사람이고 어머니가 일본 여성이라고 한다.
넷의 자녀를 두었고 딸 둘은 우리나라의 관동대학에 재학 중이고 아들 둘은 인도네시아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우리 목사님이 돌보시고 가끔은 이렇게 식사도 한단다.
이들 부모가 여기에 있는 동안 우리 박 목사님 사시는 집의 집세를 내주기도 했다고 하여 깊은 인연이 되었단다.
점심을 와령이글루 뿌리나 농장속의 음식점에서 먹기로 한다.
간판은 아주 시원치 않고 보잘 것 없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주차 공간이 꽉 찼다.
여러 군데에 식사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닭구이, 쇠고기 안심 갈비구이, 등이 품격 높게 나온다.
먹고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늘의 일정을 모두 마친다.
비가 조금 오더니 날이 덥다.
밖의 의자로 나와 최정아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있다가 막내 하연이와 대화를 나눈다.
주로 독서에 대한 이야기,
공부하는 이야기,
우리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대화하는 동안 아 이 시간적 공간이 너무 좋다는 것을 알았다.
진지하게 카운슬링을 겸하여 좋은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 시간.
저녁 예배를 마치신 우리 목사님이 돌아와 저녁예배가 너무 은혜로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목사님, 바리스타가 되어 커피를 끓이신다.
자격증을 딴 솜씨로 처움 보는 커피를 끓여주신다.
마시면서 두리안도 먹고, 파타야도 먹고, 알로에도 먹고, 이름 모르는 여러 과일을 먹으니 과일 천국이 따로 없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주님의 동산이 너무 감사합니다.
내일은 4시에 족자로 출발해야 하니 일찍 잠을 자자.
하나님 오늘 저녁도 보호하소서.
2020년 1월 20일 일요일 흐림
발리로 가기 위해 족자카르타로 새벽길을 간다.
3시 30분에 기상.
면도하고 목욕하니 무슬림 알람이 오히려 늦게 울린다.
매우 멀리로부터 매우 가까운 소리까지가 알람의 10배가 넘는다.
짐을 챙기고 어둑한 거리를 나선다.
같은 교회의 집사에게 족자까지 운전을 부탁한 것이다.
멀리 머라피 화산이 보인다.
머라피 화산은 활화산으로, 성층 화산이다.
산의 옆구리에도 분화구가 생겨 분출영역이 매우 넓단다.
2010년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화산 주변에 있는 마을 대부분이 화산재에 묻히기도 했단다.
산 꼭대기에서 폭발적 분화 발생하였는데, 화산 폭발 지수 4에 달했고 강력한 화쇄류가 발생하여 약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단다.
화산재는 500km 떨어진 자카르타의 하늘을 가렸다고 한다.
머라피 화산은 4년 주기로 폭발하는데 화산폭발로 인해 인근 주민들이 간혹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한단다.
화산이 폭발하기 몇 달 전부터 징조가 보이면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킨다고 하는데 유일하게 동네 무당만은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벼들이 자라는 평야지대를 한참 달려간다.
오토바이 행렬이 개미떼가 비 오기 전 일렬로 행진하여 자기 집을 찾듯이 검은 색의 점퍼에 검은 화이버를 쓰고 검은 오토바이를 타고 옆길에서 불쑥 나오므로 주의해야 된다.
주로 일본산 오토바이인데 앞길에 야마하 간판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의 오토바이가 제일 많은 것 같다.
힌두교 사원의 길다란 담장이 보이고 웅장한 사원이 연이어 나타난다.
어제 관람하려다 시간이 부족하여 보지 못한 사원을 눈으로 보고 지나간다.날이 밝아오는 무렵 우리는 욕(족)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한다.
높은 건물이 없고 정원이 아름다운 부잣집 마당처럼 보인다.
단층으로 되어있고 수수한 단장을 하였다.
깨끗한 아름다운 여인을 상상한다.
얼마나 순수한 비행장 치장인가?
박 필현 선교사님이 전자로 발권을 하고 비행기 탑승을 기다린다.
아내는 최정아 선교사와 옆에 있는 폴라 상점으로 들어간다.
폴라의 생산지여서 그런지 70% 세일이라고 한다.
돌아다니다가 초롱이가 입고 다니는 옷이 없어 혼자 사기 어렵다고 겉옷과 내복을 산다.
사이즈를 몇 번 맞추고 샀는데 한국에서 한 벌 값에 다섯 개를 산다고 한다.
초롱이는 자기 옷을 살 시간도 부족하니 엄마가 이국에서 사는 것 같다.
QZ844 여객기가 7시 30분 정시에 출발할 준비를 하고 손님을 태운다.
우린 7A, 7C였다. 밖이 잘 보이는 창가에 내가 앉았다.
좋은 자리라고 생각했더니 박 선교사님이 앞 좋은 좌석은 7,000원 정도, 그다음 석은 2,000원 정도를 더 주고 티켓을 산다고 한다.
우린 비교적 좋은 좌석에 앉았다.
출발을 기다리는데 비행기 밖에서 트랩이 다시 우리 비행기에 닿는다.
그러더니 남자 승무원 2명이 비행기 안으로 들어오고 다시 한 명이 내려가더니 다른 승무원에게 지시하고 비행기 엔진부분의 겉 뚜껑을 열고 있다.
이거 이상하다 했더니 우리 승객을 모두 내리라고 한다.
다시 내려 선교사님이 프런트로 가서 상황을 알아가지고 오셨다.
엔진 고장인데 부품이 여기는 없어서 자카르타에서 부픔을 가지고 와서 교체 한 후에 출발하니 12시가 넘는다고 한다.
다른 비행기로 대체할 비행기도 없다고 한다.
결국을 12시 30분에 출발하는 시간보다 늦게 출발하게 된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간식으로 빵을 가져가라 방송을 하고 조금 있다가 도시락 점심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또 조금 있으니 식사 값으로 1인당 3만원 정도의 현금도 나누어 준다.
이 돈이 발리에서 부바 검프(BUBBA GUMP)에서 인기 있는 식사 값이 될 줄은 몰랐다.
몇 년 전에 우리 부부가 스페인 공항에서 폭풍으로 인하여 독일로 가는 비행기가 결항되자 10시간 늦게 이스탐불로 가는 비행기로 교체할 때, 기다리며 식사하는 돈을 주어서 먹고도 남아 좋아하던 생각이 났다.
그 때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교체할 때 우리가 얼마나 초조하고 불길했는지를 생각하며 그래도 덤으로 준 보너스로 기분이 전환되었던 좋은 생각을 하였다.
기다리는 사이에 우리들은 벤치에 앉아 우리들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나누고 있었다.
우리의 결혼 이야기,
목사님의 결혼 이야기,
자녀들의 결혼 이야기,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시간은 급행열차를 타고 금방 흘러간다.
그 사이에 선사님은 발리에 예약한 모든 것을 취소하고 다시 예약을 작한다.
선상낚시와 다른 일정을 교정한 후에 우리는 비행기에 오른다.
욕자카르타 구 공항은 활주로가 하나다.
오르고 내리는 비행기가 한 활주로를 사용한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신 공항은 쾌적하고 넓고 편리하다고 한다.
걸어가서 탑승하고 한 시간 뒤에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내린다.
바다에 연결된 국제공항이다.
상당히 크다.
공항에 내린다.
공항 입구에서부터 흰두교의 냄새가 난다.
꽃과 동물들의 형상으로부터 갖은 신을 모신 작은 사당들이 가는 곳마다 눈에 띈다.
예약한 승합차가 오고 우린 거기 타고 공항을 나선다.
공항 밖을 들어서자 긴 울타리들이 나오고 캄보차라고 하는 파라다이스 꽃나무가 곳곳에 서서 아름다운 꽃잎을 자랑한다.
이 꽃은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에 꽂아주는 꽃이다.
아내가 최정아 선교사에게 선교사가 아내에게 꽂아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었다.
집집마다 많은 신들을 모시기에 집 들어가는 대문을 각을 깎아서 공간을 만들고 작은 탑과 신의 동상을 세우고 음식을 여러 군데 나누어 바치는 모습을 본다.
우리가 저녁 길을 갈 때 잠시 쉬었던 음식점의 차고 각각에 이런 상들이 있고 주인인 여자 아주머니가 꽃과 음식을 곳곳에 돌아가며 바치고 두 손 모아 합장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아 두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토속신을 모시고 정성을 들이던 것과도 같아 새삼스런 생각이 들었다.
발리의 힌두 사원을 ‘뿌라(Pura)’라고 부른다.
각 가정에 사원이 있고, 작은 마을 단위인 데사(Desa)마다 사원이 있으며, 지역마다 큰 사원이 있고 영적인 곳으로 생각되는 곳곳마다 사원이 있다.
개인 사원을 제외하고도 발리에는 수천 개의 크고 작은 사원이 있다.
종교적으로 주요 사원들 중에는 아궁 산의 브사끼 사원, 울루와뜨의 절벽 사원, 박쥐 동굴 고아라와 사원들이 있다.
울루와뜨 사원은 절벽의 절경이 멋지고, 따나롯 사원은 바다 위 돌섬에 세워 독특한 곳이며, 멍키 포레스트 사원은 우붓 시내에 위치하여 시내 관광 중에 들르기가 좋다고 한다.
원숭이가 모자를 빼앗아가고 주머니에서 지갑도 가지고 달아나는 곳이란다.
한 시간 멀리 따나롯 사원을 들린다.
따나 롯 사원은 꾸따의 북서쪽 따바난 해안에 위치한 해상 사원으로, 바다의 신을 모시는 해상 사원이다.
16세기경 자바 섬에서 온 힌두 고승 니라타가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사원을 지었는데,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만 다가갈 수 있는 바다 위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아름다운 석양으로 유명한 곳인데, 우리가 갔을 때 해가 질 무렵 이어서 황금빛으로 물드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원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일몰에 맞추어 돌려가며 사진을 찍었다.
손님이 많은 벤치 옆에서는 누런 구렁이를 어깨에 메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보인다.
따나롯 사원 안은 힌두교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하여 바다가 비치는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나온다.
해가 지고 우리는 서둘러 호텔에 들어온다.
ACCOR HOTELS
짐을 풀어놓고 30분 걸려 좁은 명동길을 지나 BUBBA GUMP식당에 들어간다.
이 식당은 포레스트 검프 영화의 주인공의 동생의 소유라고 하여 유명해진 식당이다.
식당 외벽의 모니터엔 폴스트 검프 영화의 장면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아내도 그 영화를 보고 줄거리를 생각해 내었다.
포레스트 검프는 유아기 시절부터 다리가 불편한 아이여서, 두 다리에 교정기를 부착하고 걸어 다녔다.
다리가 불편하기에 보통은 특수학교에 가야 하지만, 포레스트의 어머니는 지능에 문제가 없기에 충분히 일반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반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처음에 반대했지만 포레스트의 어머니의 설득에 넘어가게 된다.
포레스트는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고, 거기서 미래의 아내가 될 여자아이를 만났고, 그 아이는 포레스트에게 끊임없이 앞을 보고 달리라며 계속 조언을 해준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괴롭히고, 대학교에 미식축구 팀에도 들어가고, 군대에 들어가서 베트남 파병을 가고, 거기서 전우를 구하는 등 끊임없이 앞을 보고 달린다.
그리고 전쟁에서 만난 상사와 함께 새우잡이 어부생활을 하면서 큰 돈을 벌기도 한다.
포레스트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해준 여자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있었지만 그 사람은 포레스트와의 반복되는 재회와 이별로 인해서 마약 등으로 인해 생활이 많이 망가져 있었다.
그렇지만 포레스트는 계속 그녀를 그리워하고, 끊임없이 다가간 끝에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새우 요리로 식사 하고 차도 마시고 음악도 들으며 배불리 먹는다.
식사 후에 배도 양을 줄일 겸 호텔까지 걸어오며 시내를 돌아본다.
피곤한 몸으로 높은 킹사이즈 침대에 누워 하나님께 감사하고 아침까지 꿀잠을 잔다.
멋진 하루여 굳!
두산백과에서 알아본 발리의 대강을 공부하였다.
발리섬은 자와 섬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310만 명이다.
소순다 열도 섬으로 자와 섬에서 북쪽으로 3.2 km 떨어져 있다.
기원전 2000년경에는 대만에서 기원한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 거주하고 있었고, 기원전 1 세기경부터 교역을 통해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동손 문화의 영향을 받은 구리 북이 발견되는 등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면서,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문명이 시작하고 있었다.
4 세기에 들어서면서 힌두교에 속하는 자바 사람들이 건너와 살게 되었고, 힌두 자바 시대를 맞아 와르마데와 왕조가 세워졌다고 한다.
발리섬의 관광 개발은 1969년 응우라라이 공항의 개항에 의해 단체 관광을 위한 대규모 개발이 시작되었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누사 두아에 고급 리조트를 건설하는 개발이 진행되었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발의 물결은 이들 지역을 너머 꾸따 남북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2020년 1월 21일 화요일 맑음
아침 7시 10분 아크로 호텔 기상
기분이 상쾌하다.
잠을 충분히 잔 덕택이다.
호텔에서 나와 아침 산책을 하다.
호텔 길 건너편이 바로 이름 난 발리 해수욕장이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보다 훨씬 길어서 끝이 보이지 않고 바다 파도가 주파수처럼 간격을 두고 밀려온다.
100여미터 앞에 스키보드 하는 남자가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묘기를 부린다.
나는 슬리퍼를 벗어 허리에 묶고 밀려오는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
흰 거품을 품은 악마 같은 천사의 물결이 내게 밀려오지만 두럽지도 않고 부드러움 속에 옷 젖는 줄도 모른다,
아내와 최 선교샤도 덩달아 물가에 달리며 웃고 소리를 지른다.
박선교사는 연신 사진 셔터를 눌러대신다.
모래가 부드러운데 바퀴 뒤에 긴 갈퀴를 단 불도져가 해변을 따라 달려가면 밤새 놀며 버린 휴지며 쓰레기가 건져지고 몽근 모래밭에 새 그림을 그린다.
손으로 줍기보다는 훨씬 진보된 청소 방법이다.
작은 산호조각이 모래 속에 묻혀있다.
모래가 부드러워 발로 커다랗게 ‘사랑’이라고 쓰기 시작한다.
선명하게 긄시가 나오자 아내도 내가 그린 글자 위에 더 깊이 파서 선명한 사랑이 되었다.
높은 파도가 밀려와 써놓은 글자를 덮어 깨끗하게 밀어버린다.
우리의 인생도 사랑도 슬픔도 한 번에 밀려오는 파도로 깨끗해짐을 보고 겸허하게 살라는 교훈을 남긴다.
발을 씻고 호텔로 들어온다.
다소 늦게 먹는 식사는 현지 한인 선교사를 만나기 위함이다ㅣ.
정문교 선교사는 10년 전에 인도네시아에 들어오셔 한인교회 목사 겸 선교사로 일하시다가 작년 2019년에 새로 교회를 건축하고 선교를 하시는 분이시다.
호텔 4층에 식당이 있다.
나는 식사보다는 여름 과일을 먼저 가지고 온다.
망고스티나를 여러 번 가져다 먹는다.
한인 목사님의 목회 비젼과 선교 상황을 듣고 같이 식사를 한다.
사모님도 같이 오셔서 즐거운 아침 식사시간이 되었다.
잠시 후에 한인 목사님은 떠나시고 우리는 해변으로 이동한다.
선상낚시를 하기 위함이다.
스노우 쿨링은 시간상 생략한다.
많은 여행객이 모여 식탁에 앉아서 준비를 한다.
모터보트를 타는 사람.
바나나 보트를 타는 사람.
고속 보트에 고무 침대를 놓고 달리다가 하늘로 비행하며 소리 지르는 사람.
제트 스키를 타는 사람과 낚싯배에도 돌아오는 사람으로 해변이 꽉 차 있었다.
우리는 작은 배에 올라 안전 조끼를 입고 바다 가운데로 들어간다.
딴중부노 낚시란다.
배를 운전하는 선장과 우리를 인도하는 현지인인데 한국말을 잘 하는 가이드와 키 큰 잠수부가 함께 한다.
한참을 가서 배가 닻을 내리면 우리들은 낚싯대를 바닷물에 담그고 새우로 낚시를 하고 잠수부는 잠수복을 입고 작살을 들고 소리 나지 않게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 고기는 큰 우럭이나 광어가 아니고 열대어와 자리돗 같은 소형 물고기다.
낚시도 하도 작아서 좀 큰 고기가 걸리면 튀어나가는 장난감 같은 낚시다.
섬에서 근무할 때는 우럭이며, 아나고며, 심지어 문어 등 고기를 낚시할 때는 손맛이 그만인데 여기서는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듯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므로 재미가 없었다.
여성은 세밀한 것을 좋아하는 듯 최정아 선교사와 아내는 연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나는 겨우 한 마리 낚고 말았다.
두 시간동안 잠수부는 그물 망태기를 띄우고 잠수질을 하는데 산소를 메지 않고 그냥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잠수질을 한다.
우리나라 해녀들은 바구니를 띄우고 잠수질하며 물 밖으로 나오면서 휘파람 소리를 지르는데 이 남자는 소리가 없다.
두 시간 지난 뒤에 바구니를 끌어올리며 잠수부가 나오고 줄에 꿴 커다란 물고기 세 마리를 가지고 나온다.
40킬로급 고기를 잡았는데 작살을 끊고 도망갔다고 하며 아쉬워한다.
말이 필요 없다.
물에서 나와 얼굴을 연신 문지르고 약을 바른다,
노출된 부분에 해파리가 쏘아서 독이 오른 탓이다.
한참을 문지르고 소독하는 것은 그만큼 해파리의 독이 강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배 위에서 잡은 고기를 손질한다,
내장을 꺼내 바다에 버리고 등을 갈라 두 쪽으로 나누고 회칼로 살을 빼내어 휴지로 물기를 닦아낸다.
아주 조심스럽게 위생에 주의하여 썰어 쟁반에 올려놓은 다음 가이드가 준비한 마늘과 상치와 된장, 소스 등을 서로 맞추어가며 그 많은 회를 모두 먹어 치운다.
뱃사람들이 신기하듯 우리를 쳐다보고 웃는다.
자기들은 회를 먹지 않는 모양이다.
머리와 꼬리 부분은 한 쪽에 모아놓으니 작은 배가 와서 그것을 가져간다.
음식점에서 왔든지 아니면 자기 집에서 먹든지 하는 모양이다.
배에서 내려 즐거운 시간을 점검하며 차에 오르며 맹그로브 울창한 숲길을 가로지른다.
6시 Bali, Bandara Ngurah Rai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작은 몰을 들렀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고 바로 나온다.
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 공항도 국내선은 게이트가 가끔 바뀐다.
48게이트로 옮겨 7시 55분 비행기에 오르는데 처음 타보는 프로펠러 비행기다.
마침 내좌석이 프로펠러 바로 뒤에 위치하였다.
프로펠러는 내 의자보다 2미터 정도 높게 달려있어서 관망에는 더 좋을 수 없었다.
이윽고 비행을 시작하자 프로펠러나 제트 추진기의 속도가 똑 같다는 것을 알았고 다른 이상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더 아늑한 느낌을 받았다.
밤하늘을 조명하는 스마랑의 불빛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국내선은 다른 보안조치를 하지 않고 스마랑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출구로 연결되었다.
어제 우리를 욕자로 인도해 준 그 교회 집사가 스마랑에서도 도와주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몰에서 야끼만두를 맛있게 먹었다.
일본음식이 인도네시아에 정착된 느낌이다.
일본이 3년간 여기를 지배하였는데 인니 사람들은 일본에 적대감이 없다고 한다,
살라타가까지 고속도로로 신나게 달려 저녁 늦은 시각에 집에 도착하였다.
짐을 내리고 늦은 시각까지 마중 나온 하연이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잠자리로 들어가 대강을 정리하고 잠을 청한다.
2020년 1월 22일 수요일 흐림 비
아침은 식빵으로 하자고 하였다.
피곤하여 아내도 무슬림의 시끄러운 알람을 듣지 못했다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여기 무슬림의 기도소리에 익숙해진 탓일까?
모든 준비를 하고 식탁에 앉았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식빵은 방부제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거의 사먹지 않고 집에서 구워 먹는다고 한다.
식빵은 알맞게 구워져 있었고 잼으로는 오디 잼을 내놓았다.
잼 알갱이가 우리 것 보다 작지만 시큼한 맛과 짠 맛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설명에 최정아 선교사가 제빵 연수를 하고 자격증을 따고 그리고 중요한 손님에게 구워드린다는 식빵이다.
시장에 판매하는 식빵보다 부드럽고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삶에 대한 지식을 넓혀가고 어려운 난관이 있을 때 헤쳐 나가고 있는 최선교사가 정말 듬직한 살림꾼 같다.
여행 마지막 날이다.
우리 박필현 목사님은 식탁위에 우리들의 선물을 준비하고 계셨다.
주로 당신이 비싸게 준비한 커피 중 토라자 커피와 루악 커피인데 루악 커피는 여기서도 구하기 힘든 커피란다.
루악커피는 사향 고양이가 먹고 배설한 배설물에서 커피 알을 선별하여 가공 과정을 거쳐서 만든 커피란다.
현지 잘 알고 있는 선교사에게 부탁하여 원두를 수입하고 볶아 만든 원두다.
루악 원두커피를 제품으로 만든 것인데 한 봉지에 200불정도 호가한단다.
목사님은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다고 하신다.
직접 시범을 보이신다.
부엌에서 원두를 간다.
원두를 4-6수저 넣고 분쇄기를 돌리면 10초 안에 원두 갈기는 마쳐진다.
다음에 식탁으로 가져와 드립퍼, 서버, 필터를 설명하면서 드립퍼 위에 횔터를 접어 올려놓고 방금 간 원두 가루를 넣는다.
그런 다음 데워진 물을 길고 가는 둥근 입을 가진 주전자에서 조금씩 동전만한 크기로 돌려가며 천천히 붓는다.
전체를 부으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단다.
냉커피를 내리는데 컵 아래에 얼음덩어리는 많이 붓고 거기 내린 커피 액을 쏟은 다음 물을 희석하는데 조금씩 음미하며 마시는 커피는 위속까지 시원한 향기가 내린다.
선물을 받은 채종석 목사님과 추양호 장로님 그리고 장모님, 나 이렇게 경우에 맞게 준비하시느라고 힘도 드셨겠다.
최정아 선교사는 두 봉지를 따로 한국에 가서 택배로 부탁하기도 하였다.
식사 후 최선교사는 모임을 진행하기 위해 출발하고 우리는 박목사님의 소개로 시장 구경과 시내투어를 시작한다.
살라타가 시내 투어는 자전거 럭셔로 시작한다.
시내에 주차하고 자전거 운전자를 뽑아 나와 아내가 탄다.
나이 든 운전자가 식식거리며 페달을 밟는데 내가 즐거울 리가 있는가?
언덕에서 내려오자 자전거 럭셔는 그만 두었다.
타기 찜찜한 느낌을 주었으니 말이다.
코너로 돌아가니 이번에는 말 투어가 있다.
세 마리의 마차가 있었다.
가운데 건장한 마부가 능글맞기도 하지만 선교사와 흥정이 되어 우리 셋이서 한 마차를 타고 시내 투어를 한다.
우리를 끌고 가는 흰색 얼룩이의 이름이 핸드릭이라고 한다.
말 발굽 소리가 아스팔트 거리에 경쾌하게 들린다.
호키핑 스텝으로 기분마저 상쾌하다.
이슬람교의 둥근 탑들은 멀리서도 잘 보인다.
가는 곳마다 돔이 보이는 것은 그만큼 이슬람교가 성행하는 까닭이다.
기독교의 십자가도 보인다.
시청도, 소방서도 경창청도 지나간다.
가는 곳마다 설명을 듣지만 일일이 외울 필요는 없다.
작은 소도시 살라타가는 한 시간도 안 되어 투어가 끝난다.
내릴 시간에 마부는 핸드릭! 이름을 불러주기도 하였다.
다시 자동차에 와서 주차 팁을 주고 이번에는 목사님 차로 시내 투어를 한다.
기독교 대학을 보자고 하신다.
차가 교정 안으로 들어간다.
일본 청년 두 명도 여기 경제학부를 다닌다고 한다,
엄청 넓은 대지다.
각 대학이 사이사이 건물 안에 있고 학부 학생들이 거리에 바삐 돌아다닌다.
여기 입학하는 학생과 부모는 특수 목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다른 대학과는 다르게 유흥가가 없다는 사실이다.
술도 없고 물가도 싸다.
학생과 학부모 모두를 만족하는 대학이다.
우리 최정아 선교사도 여기서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서 무슬림 학생들에게 전도한다고 한다.
경찰학교도 부근에 있고, 공군기지도 있으니 불량배나 사기꾼도 없다.
치안이 잘 되어 있으니 안심하고 자녀를 공부시킬 수 있는 곳이다.
지나가는 길옆에 새생명 교회가 있다.
한국의 하호성 선교사가 활동하는 교회다.
새 시장을 간다.
우리가 이상하게 들리는 새 시장은 새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시장이다.
주로 앵무새가 많고 다른 작은 새들도 많다.
새 모이도 파는데 개미 밥과 귀뚜라미를 판다.
새장도 갖가지 모양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다.
여기서는 새 경연대회도 한다고 한다.
소리 내기, 울음소리 흉내를 내며 갖가지 묘기를 부려 경영하는 시장이다.
가 먹는 약도 판다.
새 관리도 해준다고 한다.
특이한 모양이어서 자세히 돌아보고 나온다.
다음에 우리는 바나란(BANARAN)이라고 하는 커피 농장을 간다.
하와이의 코나 농장에 버금가는 커피 농장인데 고도 600에서 1300까지의 400ha 면적에 여러 커피를 심었고 각 표지판에는 커피 심은 해와 품종을 자세하게 기록한 정확성이 남다르다.
단체복을 입은 유치원 아이들이 여럿이 뛰어다닌다.
학부모와 교사가 동반된 커피 농장에서 3일간 캠프를 하는 증이란다.
거기서 트레따 기차를 탄다,
울퉁불퉁한 길은 돌조각을 잘 맞춘 보도블럭이어서 자동차 겸 기차가 다닐 때 흔들거리고 등짝이 충격을 받는다.
좌우로 층계가 연이어 나오는데 여기에 우리 키 보다 조금 더 큰 50년 쯤 되었다는 커피나무가 재배되고 있다.
40년 이상 된 나무의 줄기는 베어 울타리로 쓰고 있었다.
고무나무 단지도 지나는데 굵고 긴 고무나무줄기가 고무체취로 빗금 친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여기서 빗금 친 부분에서 흰 액체가 나오면 그것을 수집하여 놓아두고 굳으면 뭉쳐 고무공장으로 판매한단다.
이것이 가공되어 라택스 침대 이불 등을 생산한다고 한다.
커피나무 재배 코너에는 숫자가 쓰여 있고 나무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1,970, 2,000의 기록은 1970년도, 2,000년도에 재배한 햇수와 커피의 종류가 그렇다는 기록이다.
초창기부터 이런 기록은 종장의 큰 재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넓이가 400핵타아르에 한 핵타아르에 1,600포씨 심었다니 나무의 숫자도 엄청나다.
중간부분에 차가 멈추고 우리는 내려서 나무에 가까이 가서 열매도 따보고 잎도 만져본다.
아직 꽃이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커피 알은 갖게 보이고 익은 열매가 없어 시원치 않지만 가까이 관찰할 기회가 되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커피 말고도 카카오, 아보카드, 용과, 람부단 등의 열매나무가 탐스럽게 열려있다.
두리안은 큰 열매를 검은 비닐봉지로 씌워놓았다.
코코아 열매를 기사가 내려 열매를 따서 열어 보이고 먹어보라고 한다.
아직 다 익지 않아서 나만 조금 맛을 보았는데 상큼한 향기가 났다.
과육은 먹고 열매는 가공하여 쵸콜릿을 만드는 재료가 된단다.
용과는 길
기다란 선인장의 줄기에 큰 꽃이 피는데 꽃이 떨어지고 나면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
다 크면 우리 주먹 둘을 합한 분홍색 열매가 열리고 그것을 수확하여 껍질을 벗기면 검은 깨알 같은 것이 박힌 붉은 열매가 나온다.
선교사의 집에서 두 개 껍질을 벗기고 먹어 본다.
큰 맛은 없지만 보기에 화려하고 수박 맛이 난다.
레스토랑에 앉아 박선교사님은 실사, 람부, 아보카의 세 가지 음료를 주문하였다.
색깔도 아름답고 맛도 아름답다.
시원하게 한 잔씩 들이마시고 우린 집으로 향한다.
길가에 박 선교사가 고정 고객으로 사가는 두리안 가게가 있다.
가게라기보다는 길가의 포장마차 식으로 대나무 탁자 위에 두리안을 끈으로 묶어 매달아 놓고 골라 사가는 판매 형식이다.
가격표도 있을 리 만무하다.
몇 번을 고른 후에 7,500원 정도의 값에 한 개를 산다.
상당히 높은 가격이라 여기 사람들도 두리안을 먹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그 옆 마루 구석에는 생후 2년 정도 보이는 남자아기가 이불에 덮여 땀을 흘리며 자고 있다.
이 더위에 덮어주지 않아도 될 텐데 아마도 주인아주머니는 모기에 물릴까 봐서 더운 이불을 덮어주는 것이리라.
우리 아내가 아기를 예쁘다고 하니 젊은 상점 아주머니가 좋아하는 얼굴 웃음을 짓는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엄마의 행복한 웃음이다.
두리안 한 개를 사가지고 나오는데 덥수룩한 키 큰 남자 한 분이 와서 손을 내밀고 주차비를 받는다.
주차비?
길거리 어디서도 차만 멈추면 달려와 주차비를 받아가니 주차비를 내지 않으려면 달리는 찬에서 거래를 하란 말인가?
선교사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주차비를 건네고 집으로 달려온다.
마지막 점심은 최정아 선교사가 잘 하는 닭요리다.
아침부터 최정아 선교사는 도우미 아주머니와 같이 우리들을 위해 닭요리를 했다고 한다.
닭다리와 감자를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고 삶고 볶는 과정을 오래 하여 색깔도 보기 좋고 맛도 좋은 닭요리가 된다.
거기에 오이 썬 것과 양배추 그리고 향기 나는 스프를 곁들인 요리는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정성인 듯 하여 내가 다리 두 개를 먹었다.
그 시간에 학교에 갔던 하연이가 돌아왔다.
어제 만나지 못하고 건네준 격려금을 우리보고 주는 것이 좋다고 하여 격려의 말과 함께 건네준다.
순박한 웃음으로 답하는 고 2년생의 하연이가 사랑스럽다.
비가 순식간에 큰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여기 말하는 스콜인데 보지 못하고 갈 뻔한 이 스콜은 우리가 마지막 가는 시간에 인사라도 하려고 그렇게 세차게 내리는 것인가?
지붕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이것 또한 감사하다.
못 보고 갈 뻔한 스콜이 그나마 인사를 하여 주니 말이다.
우린 짐을 싣고 스마랑 공항으로 달린다.
길을 나서니 비도 오기를 멈춘다.
얼굴만 내밀어 우리에게 인사해준 스콜이 무척도 감사하다.
우기에 매일 비만 오면 어쩌나 싶어 노심초사 걱정하셨던 선교사 내외분의 걱정도 해피 엔딩으로 마쳐진 셈이니까 말이다.
비행장에 도착한다.
한산하다.
바로 1층에 들어가 티켓팅을 한다.
화물 속에는 현지 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손수 만들어 주신 청국장 두부 낫또를 바나나 잎에 싼 것을 주셨는데 세관을 통과하느냐에 관심을 두었으나 무사히 통과 된 듯하다.
화물을 부치고 인사를 나눈다.
선교사님 수고하십시오.
많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도네시아의 선지자로 남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2층 트랩으로 올라갈 때가지 가지 않으시고 연신 손을 흔드신다.
우린 기다릴 시간도 없이 비행기에 오른다.
자카르타 수카르노 하타 비행장에 내려 온 것과 반대로 국제선을 이용하는 수순을 밟는다.
10시 10분에 출발하여 내일 아침 8시 1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잠이나 자 두자.
비행장에서 이륙장까지 25분간을 지나간 후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깜깜한 밤하늘을 가루다 여객기는 거침없이 날아오른다.
인천공항을 향해 일곱 시간의 긴 비행을 시작한다.
밤하늘에 비치는 인도네시아 시가지가 아름답게 비쳐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후기
비행기 안에서 아침을 보내다.
스마량에서 기다리며 한국에 올 생각을 하니 꿈만 같았다.
자카르타에서 인천공항까지 7시간인데 기다리는 시간을 합하면 10시간이다.
우리 박필현 선교사님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유리창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시던 광경이 차창 넘어로 보이는 듯하였다.
박필현 선교사님이 동영상을 보냈다.
우리가 다녀가 후로 연일 비가 억수로 온다는 것이다.
다행이고 감사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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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 다녀가신 후로 이곳 살라티가엔 스콜성 강우가 연이어 내리네요.
역시 장로님은 해를 몰고 다니시는 분이셨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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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덕분에 인도네시아 잘 다녀왔습니다.
너무 큰 은혜의 시간들이었어요.
우리 목사님 만나 선물 전해드렸고요.
목사님, 최정아 선교사, 박하연 따님에게 큰 박수 보냅니다.
황선춘 양의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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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가운데 잘 도착하셔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장로님 고생 많으셨어요.
저희에게 은혜롭고 축복된 방문이었습니다.
감사드리며 또 평강 가운데 다시 뵙기를 소망합니다.
가족들과 구정 명절 즐겁게 보내십시오. 박필현 최정아 올림.
이제 또 다른 선교지 여행 준비를 하도록 마음의 기도를 올립니다,
첫댓글 아름답고 사랑스런 제자와 목사님 덕분에 인도네시아 단기 선교여행 잘 다녀오셨군요. 앞으로도 계속될 선교의 꿈이 계획대로 잘 이뤄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