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만원이다” 종로의 애환


"돌격건설"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

청계천 복개 후 청계고가도로를 건설중인 모습-김현옥 시장은 서울시를 공사판으로 만들어 당시 차도 별로 없는데 극심힌 도로 정체가 발생하기도 했다.

남산 1호터널을 시찰하는 김현옥 시장

1970년 4월 8일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서울 최초의 첨단 맨숀아파트인 청계세운상가 1968년에 준공했다.

1966년 4월부터 그해 10월까지 광화문 네거리 지하도 건설장면 김현옥 시장이 되고서 야심차게 시작한 광화문 네거리 지하도 건설을 완공하고 박정희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나 부실공사로 벽으로 누수가 되어 보수공사하는 일이 많았다.

김현옥 시장이 기아자동차을 시찰하는 모습-트럭에 차체로 보인다.

김현옥 시장이 장관시절 전국녹화사업 보고대회

인도네시아 의장이 서울시청을 방문하여 김현옥시장과 접견하는 모습
월남 작가의 서울 스케치
당시 미도파 지하도
의욕 있고 젊은 김현옥 시장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지하도 공사 당시 미도파 지하도 모습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출퇴근 길, 건물에서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일찍이 이런 생각을 품었던 이가 있었으니, 작가 이호철이다. 이름이 다소 생소하게 여겨지는 이들이 있을 텐데, 그는 1960년대 이래 한국문학사에서 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그의 대표작 『서울은 만원이다』와 『소시민』은 한 번 쯤 들어봤을 법 하다.
이호철은 1932년 3월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월남 작가로,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후의 시대상을 기민하게 잡아낸 작품들을 남겼다. 서울 종로를 무대로 쓴 『서울은 만원이다』는 종로의 과거가 잘 그려져 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서울은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공허와 파멸의 공간이었다. 전후 복구와 새로운 질서 확립이 일단락된 시기는 1960년대 중반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울은 쭉 변화의 몸살을 겪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66년, 서울에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이 무렵 전 부산시장 김현옥은 젊은 나이에 서울시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엄청난 추진력으로 서울 전역을 공사장으로 만들어 ‘불도저 시장’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때마침 변화를 예견이나 한 듯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가 세상에 나왔고, 큰 인기를 끌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김현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부산 거리를 의욕적으로 밀어버리고 계속 두 눈 부릅뜨고 서울로 전임해 온 젊은 시장은 부임하자마자 전 시장이 얼마나 일을 안 하고 빈둥빈둥 놀기만 하였는가,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시 행정에 얼마만큼 의욕이 없었는가를 일부러 강조나 하듯이 우선 교통난 완화에, 세종로 미도파 지하도 공사 착수, 도로 확장 공사가 사방에 착수되었다.
세종로에 이어 서울의 변화는 세운상가가 있던 종묘부터 필동까지 이어지는 지역에서 일어났다. 당시 이 일대는 ‘종삼’이라 불렸는데, ‘사창가’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이었다. 종삼은 세운상가가 지어지기 전 공터였다가, 해방 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 이민 갔던 이주민들이 돌아오자, 서울 전체가 집 없는 사람의 소굴처럼 돼버렸다. 귀환자들은 일본인의 생활공간이었던 남산 기슭 회현동의 적산가옥을 차지했다. 전쟁 피난민은 주인 없는 공터에 모여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종삼은 그렇게 형성된 공간이다.
서울 속 세 가지 세계: 토박이, 피난민, 상경민
이호철은 『서울은 만원이다』에서 서울을 독특하게 분석했다. 첫 번째가 바로 ‘서울 토박이들의 세계’다. 일제강점기에도 대대로 종로를 지배하고 살아온 알부자들의 서울을 가리킨다. 두 번째는 ‘피난민의 세계’다. 전쟁 통에 고향에서 떠밀려 해방촌 일대에 무리를 지어 거주했다. 세 번째는 ‘상경민의 세계’다. 5·16 군사정변을 거친 후 산업화의 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할 즈음 상경의 물결이 크게 휘몰아쳤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진척되면서 5·16이 안정되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소설 속에도 등장한다.
당시 서울은 상경민들에게 뚜렷한 일자리를 내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절대적 가난에서 헤어나기 위해 서울에 올 수밖에 없었다. 상경 후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세계는 『서울은 만원이다』에 잘 드러나 있다. 멀리 남쪽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길녀는 친척의 끈이라도 잡아 식모살이를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몸을 팔게 된다. 필동부터 원남동까지 곳곳마다 국가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창가가 들어서 있었고, 길녀와 같은 처지의 여성들은 그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서울 토박이의 집에 월세를 내고, 저축하고, 일부는 고향에 보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세월의 지층을 뚫고 솟은 역사의 흔적
사실 서울에 동도 많고 사람도 많지만 사람 사는 고장다운, 젖은 정감을 느낄 수 있는 동이 얼마나 될까. 중심가 쪽은 날고 뛰는 신식 도깨비들이 나돌아 가는 곳일 터이고, 한다하는 고급 주택이 늘어선 그렇고 그런 동은, 썰렁썰렁하게 ‘공견주의’ 같은 팻말이나 대문에 붙여 놓고 높은 담벼락 위에도 쇠꼬챙이에 삐죽삐죽한 사금파리나 해박았을 터이고, 아래윗집이 삼사 년을 살아도 피차 인사도 없이 냉랭하게 지내기 일쑤다.
이에 비하면 서민촌이 훨씬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같은 서민촌 하고도 금호동, 해방촌 같은 곳은 요 근래에 급하게 부풀어 올라서 그런 뜨내기다운 냄새가 풍기지만 도원동, 도화동, 만리동, 공덕동 근처는 서울 본래의 서민 냄새가 물씬물씬 난다.
소설 속 묘사된 서울의 풍경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경민들은 여전히 ‘만원’의 서울에서 ‘사람 냄새’를 찾는다.
오늘날 우리는 길녀가 사라진 종로를 걷는다. 옛 분위기가 남아 있는 무교동과 원색적 유흥거리인 북창동을 지금도 발견할 수 있다. 보신각이 있는 종로를 지나 낙원동, 옛 세운상가, 청계천까지 고향을 떠나온 이들의 애환을 달래려는 듯 여전히 술집이 들어서 있다. 세운상가는 철거되었으나, 묘동과 종묘는 새 단장을 했다. ‘종삼’은 숨어버리고 한옥 카페가 늘어선 ‘익선동’이 나그네를 반긴다. 비에 씻긴 듯 많은 것이 사라진 거리, 세월의 지층을 뚫고 요행히 삐죽삐죽 솟아난 역사의 흔적을 찾는다. 그것을 통해 도시의 역사와 애환을 간직하고 되새기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글 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
1994년 <창작과 비평> 제1회 신인평론상 당선으로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문학평론집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문학가들의 작품과 삶을 조명한 기행집 『서울문학기행』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