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부분 대상을 받은 글의 첫 문단이다.
전통과 탈현대, 모두 현대의 '타자'들이다. 탈현대론도 전통론의 비판처럼 현대적 '탈(post 초월)'을 지향하는 저항 담론이다. '탈현대성'은 단순히 전통을 거부하고 배격하는,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녹아 없어지는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명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에피스테메(인식소)이다. 그러나 현대를 그저 뛰어 넘어가는 '탈(post)'이 아니고 초월 또는 초극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포스트 에롤로지즘(post ecolosism) 적 인식'의 기초이다.
'전통과 탈현대, 모두 현대의 '타자'들이다.'이란 첫 문장부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타자'가 무슨 뜻인지조차도 몰랐다.
며칠이 지난 뒤에서야 위 문장이 처음서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결론을 미리 내린다.
탈자, 오자부터 시작되었다고.
내가 고친다면 아래처럼 쓰겠다.
'탈전통과 탈현대, 모두 현대의 '탈자'들이다'
※ 의문 : 위 글에 나오는 '타자'는 한자로 他者인가?
본문에서는 영어 post가 주는 의미로는 '탈脫'인데...
위 타자를 괄호 ( )안에 한자를 넣었다면 제3자는 보다 쉽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타자'라는 한자말이 제법 많을 게다.
도대체 어떤 한자말인데? 하는 의문을 줄일 수 있겠다.
며칠 째 '포스트 에콜로지즘'이란 문구가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위 문장으로서는...
영어사전으로 영어단어를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한 뒤에서야 이 영어말이 '생태학', '생태주의'를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영어말 단어 몇 개를 입력하고는 뜻을 더 검색한 뒤에에서야 문학인들이 '생태' 운운하는 말들이 때로는 실체가 희박하고, 추상적이라는 결론을 섣불리 미리 내린다.
- 고맙다. 잡초야/ 황대권의 글과 그림
- 생태수필이란 무엇인가/황필오 수필평론집
- 야생초 편지 /황대권
- 생태학적 상상력 /김욱동
- 섬진강 이야기 1, 2 김용택
- 그리운 것드은 산 뒤에 있다 /김용택
- 사람 /김용택
이런 류종의 책은 시골에 잔뜩 있고, 서울에도 더러 있다.
- 시골에서 건달-농사꾼이었기에 책 보면서 농학공부를 해야했기에 시골집 안방, 사랑방, 부엌에는 농사에 관한 책이 수백 권이 훌쩍 넘는다. 식물도감, 원예도감, 야생화... 텃밭농사, 전원생활 등
십여 년째 보는 월간지인 '전원생활', '산림', '디지털농업' 등.
마을회관이 붙은 텃밭 위아래에 수백 그루의 나무를 심고, 삽으로 땅 파고, 호미로 풀을 뽑고, 톱질하던 나한테는 친자연환경이 무엇인지, 생태학이 무엇인지를 얼추 짐작한다. 무경운, 무비료, 무제초제 등 3無농사를 짓던 나.
생태학에 대한... 인식이 무척이나 그렇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영어-지상주의일까? 영어말을 한글로 쓴 것에 불과하고, 영어말, 영어용어를 원음대로 적기만 했지 그 용어에 대한 번역이 없어서 ... 독자를 답답하게 한다고.
아쉽다.
서울에 올라와서 사는 요즘의 나.. 손가락에 흙 묻힐 일이 없다.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 120여 개를 올려놓고는 화분-농사를 짓는 나.
나는 건달-농사꾼, 엉터리-농사군, 초보-농사꾼이다.
2020. 7. 3.자 경향신문 25면 '오피니언'
'김지은' 서울예대문예학교수 겸 아동문학 평론가의 '큰 바위 얼굴' 글이 떴다.
1850년 <너새니 호손>의 '큰 바위 얼굴'.
마을의 바위를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거라는 아메리카의 원주민의 전설이다. 그를 기다리며 일생을 목수로서 성실하게 살아가던 노년의 어니스트가 어느새 큰 바위를 닮은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
이 바위의 얼굴이...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는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을 조각한 바위 ...
미국 대통령인 워싱턴, 제퍼슨은 노예를 소유하였고... 루즈벨트는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 최근 미국에서는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있었다. 체포 과정에서 경찰관은 플로이들 목을 무릎으로 눌러서 8분 여 뒤에는 죽었다. 과잉체포 현장에서 살해당했다.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흑인의 저항운동이 시작.
언어순화에 대한 소식 하나.
<서울시 국어바르게쓰기 위원회>가 행정용어를 순화하기 위해 권고안을 선정했다고 한다.
요즘 '코로나-19' 검진에서 사용하는 보건행정 용어에 대한 순화이다.
하나의 예.
드라이브 스루 검진 → 차 타고 검진
워크 스루 검진 → 걸어서 검진
'1세계언어'의 유령을 걷어낸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 쉬운 우리글자(한글)로 언어생활를 했으면 싶다.
나도 유식한 체하는 한자말, 영어말부터 줄여야겠다. 재미나는 우리말, 사라져가는 우리 토박이 말을 되살려서 말하고, 쓰기 쉬운 한글로서 문자생활을 해야겠다.
이 글 쓰면서 나를 반성한다. 더 생각해야겠다.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는 도시 이마트시장에서 채소 과일 등을 사 먹고는 생태주의를 잘 알고 실천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수준이기에...
'포스트-에콜로지즘'이 무슨 뜻인지를 한참이나 더 생각해야겠다.
'탈-생태주의'인가, 반대로 '지향-생태주의'인가?
나는 후자로 해석하고 싶다.
'脫'은 벗어낸다는 한자어.
'탈-생태주의'라고 해석하면? '생태주의'가 잘못이라는 뜻인가?
현재 우리나라에는 '탈원전', '탈석탄화력발전'이란 용어를 쓴다.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 석탄을 태워서 발전하는 화력발전소를 해체하자는 용어이다.
충남 서해안에는 우리나라 석탄발전의 52% 이상을 차지하는 화력발전소들이 즐비하다. 서천화력발전소, 보령화력발전소, 태안, 당진 등.
반갑게도 서천화력발전소는 폐소되어 동백정 해수욕장이 복원되고, 보령석탄화력발전소도 일부 축소지향하여 오염이 덜 발생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한다고 한다.
이처럼 '탈(脫)'은 벗겨낸다는 뜻을 지녔다. '그만 둔다'는 뜻도 들어 있다.
그런데 위 문학글에서는 '탈-생태주의'라는 용어, 그것도 영어말로 썼다.
이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자꾸만 꼬리를 문다.
내가 생태학, 생태운동, 친환경, 친환경운동 등의 뜻을 모르나? 하는 의구심조차도 일어난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지키고, 새롭게 변화-발전시키는 '우리의 것'이었으면 싶다.
구부렁거리는 논두렁, 밭두둑의 자연환경과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을 더욱 다듬었으면 한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운동이 다시 일어났으면 싶다.
한국문화가 세계속으로 더욱 번졌으면 싶다.
하나의 예.
한국의 김치와 발효식품, 한글, K-pop, 한국인의 興과 情 등등.
배달문화, 1인 식생활시대이라서 그럴까?
쓰레기 대란 시대이란다.
일회성 생활용품이 넘쳐난다.
포장문화, 지나치게 겉포장이 많은 허위문화생활이다.
하나의 예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남의 아파트에서 전월세 사는 큰아들네는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 화분을 하나 들고 왔다.
작은딸네는 외국식물(파피루스)이 든 화분 하나를 가져왔다.
놀랍게도 포장지로 싸고. 또 싸고, 또 싸고...
그 포장지를 뜯어내면서 나는 얼굴을 찌부렸다.
선물의 핵심은 무엇일까? 비닐포장지일까? 플라스틱 그릇일까, 도자기 그릇일까?
전혀 아니다. 살아 있는 식물 그 자체이다.
그런데 겉포장이 핵심인 듯 싶다. 그거 다 돈이다. 그거 곧 쓰레기통으로 버려야 한다.
그 쓰레기를 수거하면 그거 어디에 쌓아두나? 쌓아둔 쓰레기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데?
나는 아파트 실내에서 화분-농사를 짓는다고 말한다. 화분-농사보다 더 작은 컵-농사이다. 연장이고는 꽃삽과 커피를 탈 때 휘젓는 티-스푼이다. 낡아서 못쓰는 수저 등.
내가 가진 화분들... 대부분은 쓰레기장에서 버린 것들을 주워왔다. 화분 밑받침대는 식품자재를 담았던 비닐팩이다. 또는 쓰레기장에서 내던져버린 작은 그릇 등이다.
나는 이들 쓰레기를 재활용한다. 이런 재활용이 친자연환경, 생태주의일 게다.
'한 번 더 쓴다. 끝까지 다 쓴다. 다 쓴 뒤에도 다른 용도로 재활용한다.'
하나의 예다.
쌀 씻은 뜨물은 부엌 싱크대 구멍 속으로 쏟아부어서 버려야 하는가?
나한테는 아니다. 뜨물을 화분에 부어준다. 뜨물에는 식물뿌리가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많이 들어 있을 게다.
나는 이따금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석촌호수를 걷는다. 산책로는 검은 개미가 숱하게 기어다닌다. 작은 개미는 눈에 띄이지 않지만 큰 개미가 눈에 띄이면 나는 조심스럽게 비켜서 걷어야 한다.
또 산책로에 비들기가 보이면 나는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비들기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한다. 비들기도 위험을 느끼면 사람의 눈동자를 쳐다보기에. 나는 모르는 체하고는 비들기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일전...
산책로에서 버름적거리는 매미를 보았다. 숱하게 오가는 사람의 발길에 밟히면 어쩌지?
손으로 가만히 집어올렸더니만 날개를 후드득거리면서 소리를 낸다. 나는 정원수목이 가득 찬 안에 들어가 가죽나무 밑에 가만히 내려놨다. 나무 색깔이 검은 '가죽나무'가 우람하게 껐다. 나무가 큰 탓으로 주변에는 축축한 습기가 가득찼고, 매미는 가죽나무 뿌리에서 7 ~8년 애벌레로 살다가 여름철에 바깥세상으로 나왔을 게다.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은 채 짝짓기를 위해서 소리를 내어 짝짓기를 한 뒤에는 곧 죽는다. 자손을 남기려는 것이 오로지 하나의 목적이었기에...
나는 어떠할까?
일흔세 살인 나도 매미와 비슷할 게다.
아내와 함께 키운 자식이 넷. 이들은 또다시 자식을 낳아서 키우고 있다.
아내와 나는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조만간 나도 저 매미처럼 숨떨어져서 .. 사라질 게다.
대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이 글 쓰면서 마음은 서해안 산골마을에 가 있다.
나는 생태주의, 친환경 등등의 용어에는 별로이다. 내 삶 그자체가 자연그대로의 농법으로 농사 짓고, 살아가기에. 작은 풀 한 포기라도 소중히 여겨서 이를 살려내려고 하고... 갯바다에 나가도 갯사장을 덜 밟으려고 한다. 갯돌 아래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 있기에.
음식물을 먹을 때에는 나는 끝까지 다 발라먹으려고 한다.
생선 뼈 하나라도 소중히 여겨서... 생선도 살아 있을 적에는 소중한 생명체였기에... 아쉽게도 인간이 그의 생명을 빼앗았기에.. 내가 이를 소중히 여겨서 음식쓰레기가 덜 나오게끔 한다.
이런 것들이 생태주의, 친환경일 게다.
동물애호뿐만 아니라 식물애호, 땅애호(땅, 흙, 집터, 바닷가 등), 더 넓게는 대자연 모두를 사랑해야겠다. 먼 훗날 후손들이 이를 활용하며, 즐길 수 있도록...
2020. 7. 3.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