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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미래는 신선학 시대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로서 사회적 모든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인류들은 이제 처음 경험하는 문명과 문화를 누리고 나날이 달라지는 시대에 적응하느라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금세 뒤떨어지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야말로 빛처럼 빠른 속도로 변화되는 세상이 지금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많은 직업도 바뀌고, 학문도 바뀌고, 종교도, 사상도 크게 달라지고 바뀔 것이다.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기술을 와칭(Watching)이라 한다. 와칭은 미래를 직시하는 눈이다. 와칭으로 미래의 눈을 뜨면 미래를 대비하여 무엇을 준비하고 버려야 할지 알게 된다. 세상을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물론 현대를 바라보는 눈도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어긋난 삶에 휘둘리지 않고 바른 목적지를 향한 이상과 꿈을 불태울 수 있다. 현대인들은 영리한 눈으로 신을 바라보기도 하고 미래를 바라보기도 한다. 앞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눈으로 신선학이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신선은 이제 설화나 전설로만 전해지는 상상속의 존재들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인류들이 장차 성취할 목표이며, 신선사상은 모든사상 중 가장 근본적인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신선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는 자연을 초월한 존재다. 요즘 미래학에서 회자되는 호모데우스와 같은 의미로의 신선이기도 하다. 다만 호모데우스와 신선의차이는 '두뇌진화의 무한성'과 '두뇌진화의 무한성 + 생존력의 무한성'의 차이다. 호모데우스는 두뇌진화의 무한성이 가능하여 신을 능가하고 초월할 수있는 무소불능의 힘을 소지한 반면 신선은 호모데우스의 무한진화와 더불어 생존력의 무한성을 겸비한다는 점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제 인류는 호모사피엔스를 넘어 호모데우스로, 호모데우스를 넘어 신선으로 그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신선은 종교의 교리가 아닌 학문으로서, 그리고 시대정신에 맞는 필연적 과제로서 인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신선학이란 신선답게 사는 길을 이론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는 학문이다. 신선답게 사는 길이란, 크게 보면 든 인간의 본능이 지닐 수 있는 탐욕과 동물적 에고이즘의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초월하여 자유로운 영혼으로 숨겨진 참자아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 주변에서 욕심을 모르고 세상의 이기주의와 타협할 줄 모르면서 초자아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발견하면 <신선 같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고 현대인들이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가며 다양한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한, 완전히 사회와 결별된 초월적 삶을 실천함이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꼭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고 초자연적인 삶을 실천하지는 못하더라도 의식부터 이기주의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영혼의 참 자유를 위해 초자아적 대인대의를 실천하며 세상에 대한 적선공덕을 쌓아가는 삶을 살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선학이란 사전적 의미의 반신반인이라든가, 초인 또는 초자연적인 삶을 가르치는 학문이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렇게 신선 같은 의식을 실천하며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생3고를 해결하기 위해 실사구시적 신선양생술에 대한 학문적,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신선학 神仙學>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신선이란 이름은 지금까지 설화나 전설의 기록만으로만 전해져 내려온 것이 사실이며, 실사구시의 실현성에 있어서는 누구나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신선도神仙道는 비현실적 이상만을 추구하지 않으며, 현실적 삶에 적용하여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목줄 관성에 사로잡힌 인간의 몸과 맘을 새롭게 개조하는 사상이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성이 있다. 이제까지 세상에 출현한 종교, 시상, 철학은 모두 죽음을 바탕으로 한 사상에 중을심 두었다면, 신선도, 신선사상은 불사영생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 실천방안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라는 철학적 본질 앞에 ' 인간은 죽을 이유가 없다'는 과학적 신논제로서 신선학은 미래의 새로운 종교와 철학적 사상으로 뜨겁게 회자되어 갈 것이다. 신선사상은 본래 환인의 제세이화 홍익인간정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제세이화 濟世理化란 어두운 세상을 이화理化시켜 구재한다는 의미이다. 예수는 인류의 죄를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값으로 대속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인류를 구원한다는 구원관을 제시하며 스스로 구세주라 자처했다. 그러나 환인은 2만 년 전 지상에 내려와 원시 야만인들에 가까운 인류들을 하늘의 밝은 덕으로 이화理化시켜 이성, 지성, 영성을 새롭게 열게 하여 이도여치, 광명이세의 홍익인간정신으로 선도를 펼쳐갔다. 미국의 코벨 박시는 한국의 고대 유물을 발견하기 위해 옛 한민족의 역사적 터전인 만주의 요동 땅에서 발굴을 시도하던 중 1만 7천년 전의 한민족 유골에서 평균수명 1.000세에 달하는 DNA를 찾아냈다. 즉 1만 7천년 전 한민족의 조상들은 평균수명 천년을 향유하며 불로장생 신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 한민족의 유물 터에서 의미 있는 고고학적 자료와 야생 법씨가 아닌 재배종 볍씨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한민족들이 이미 상당한 기간의 역사동안 고도로 진화된 문화를 누리고 살아왔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본래 동이족이라 불리는 한민족들이 거의 2만 년 전부터 천년의 불로장생을 누렸다는 뜻은 이미 이 땅에 신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의미를 알려주는 역사적 사실이기도 할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생물과도 같다. 과거에 존재했던 역사가 이 시대에 다시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불로장생 신선의 역사는 과거에 존재했었고 그 신선의 DNVA는 그 후손인 우리들의 몸속에 잠재되어 살아서 숨 쉬고 있을 것이며, 때가 되면 그 신선의 DNA는 활성화되어 4차원문명세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역사적 대 이벤트를 장식할 것이다. 신선학이란 신선 같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다. 신선 같은 삶이 무엇인가? 욕심 없는 삶이요, 얽매이지 않는 삶이요. 늘 초자아적으로 명덕과 적선을 실천하는 삶이다. 신선 같은 삶은 늘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삼가며, 인간으로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삼가며, 세상을 억지로 사는 법이 없고, 순리대로 물 흐르듯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신선 같은 삶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습관을 버리며, 남과 다투거나 분쟁을 일으키는 일을 삼가 한다. 신선의 길은 불로불사하는 삶을 추구하고, 선경에서 아름다운 영혼들과 어울리며, 신선놀음을 즐기고, 태평성대를 누리는 삶을 의미한다. 신선가를 부르며 신선의 춤을 추고 신선놀음을 즐기는 이유는 우리 몸속에 숨겨져 있는 신선의 DNA를 일깨워 우리 몸을 새로운 선체로 리폼하기 위해서다.
신선의 삶은 늘 우리 몸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설계하며, 낡고 녹슨 현 몸을 새 몸으로 리품하기 위해 선도3법을 꾸준히 연마하여 실천함에 있다. 신선의 몸은 육체를 초월한 삶이 이니라 낡고 고장 난 몸을 늘 새롭게 고처 쓰고 텔로미어 생명의 시계를 연장시키며, 나이의 숫자에 굴복하지 말고 젊음을 유지하며 늘 새것처럼 사는 삶이다. 신선의 몸으로 살기 위해서는 늘 '즐거움의 불로초'를 실천해야 하고 신선놀음의 훈련이 필요하다. 어린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놀이와 장난질을 통해 가능해진다. 어린이들이 장난치고 노는 것은 어른들을 귀찮게 하기 위한 말썽이 아니라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신체적 발달을 도모하고 지혜와 사고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신선의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선가와 신선놀음을 하면서 몸속에서 신선의 DNA를 일깨워 신선의 습관을 기르는 훈련이 필요하다. 신선놀음은 신선을 길들이는 훈련이다. 우리 맘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 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늙고 병들어간다. 늙고 병들어가는 삶은 신선에 반하는 삶이다.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생3고를 해결하기 위해 신선의 삶이 필요하고 신선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신선의 몸은 늘 젊음을 유지하는 몸인데 나이가 들어서 늙거나 건강을 잃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달프고 힘들어서 늙고 녹슬어 간다. 나이와 상관없이 늘 젊은 몸으로 살기 위해서는 신선가와 신선놀음으로 즐겁게 살아야 한다. 신선이란 이름은 사전적 의미의 존재가 아니라 낡고 고장 난 우리 몸을 새롭게 고쳐서 얻을 수 있는 이름이다. 사람을 사람이라 부르니 사람이요 사람을 신선이라 부르면 신선이 된다.
천지의 만물은 그것을 그것이라 부를 때 그것이 되고 그 이름을 그렇게 부를때 그 이름의 가치를 만들어 낸다. 사람의 이름을 자꾸 신선이라 불러주면 어느덧 그 몸에서 신선의 DNA가 살아나고 신선의 기운이 붙어서 신선의 몸을 이루게 된다. 신선을 살고 싶다면 우리 몸을 늘 신선의 이름을 지어서 신선의 이름으로 불러보자. 이름을 붙인다는 건 무엇을 뜻함일까? 천지 삼라만상의 존재들은 각각 이름값을 한다. 그 이름을 붙이면 그 기운이 따라 붙는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부르는 이름에는 긍정적인 기운이 따라붙고 부정적인 이름에는 부정적인 기운이 따라붙는다. 항상 절망적인 말을 늘어놓는 사람의 생활은 늘 어둡게 산다. 항상 희망적인 말을 늘어놓는 사람의 생활은 늘 밝게 산다. 인생이란 이름은 인생고해의 이름이기 때문에 인생3고의 삶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선이란 이름은 자유로운 영혼의 이름이기 때문에 인생3고의 목줄 관성에서 자유롭다. 사람에겐 동물적 자아가 있고 이성적 자아가 있고 초자아적 자아가 있으며 영적 자아가 있다. 그리고 크게는 내적인 자아의 속사람과 외적인 자아의 겉사람으로 구분된다. 속사람이 진짜의 대아이면 겉사람은 가짜의 소아이다. 대아인은 우주적으로 살며 군자의 길을 가고 소아인은 속물로 살며 소인배의 길을 걸어간다. 우주적인 삶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표현하며 자유로운 영혼의 길이 신선의 길이다. 신선 같은 사람이라고 할 때 우주적 대인의 길을 걷는 자유로운 영혼을 뜻한다. 자유로운 영혼들은 세상의 속물적 근성에 얽매이지 않고 중용을 지키고 인의에지신을 실천하며 세상에 누가 되지 않는 돈오견성의 길을 걷는다.
그래서 신선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반목과 갈등이 생기지 않고 조화로움과 상생의 물결이 어우러짐 속에서 정겨움이 넘치는 선경을 이루며 살아간다. 흔히들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진 곳을 찾아가면 저절로 입에서 '선경 같다'는 말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신선 같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조화로운 세상의 사람의 꽃들이 사람의 향기로 만들어내는 상생의 물결만큼은 아름다운 경관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사람의 향기가 만발한 인꽃이라 한다. 무릉도원 선경이란 복숭아꽃이 만발한 도화선원이 아니라 인꽃이 만발한 인화선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져 있어도 그곳에서 이기적인 싸움과 갈등,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아비규환이 벌어진다면 그곳은 선경이라 부르지 않고 아수라장阿修羅場이라 하리라. 인간세상에서 항상 조화와 상생의 물결이 일어나지 않고 반목과 갈등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그치지 않음은 아수라 악령들의 이간질 때문이다. 아수라 악령의 특성은 사람들 간의 반목과 갈등을 일으켜서 서로 오해하고 시기 질투하게 만들어서 이간질시키고 우정과 화목을 깨는 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선경이란 다름 아닌 아수라의 이간질이 멈춘 세상이요, 신선 같은 사람이란 다름 아닌 아수라의 이간질에 넘어가지 않고 하늘 중용을 지키며 인의예지신을 실천하는 우주적 자아의 자유로운 영혼을 뜻함이다. 사람을 사람이라 부르지 못하고 짐승이라고 할 때 아수라의 악령에 사로잡힌 영혼을 뜻한다. 사람은 마음 하나 잘 쓰면 신선의 삶을 살고 마음 하나 잘못 쓰면 아수라 짐승의 삶을 산다.
자아의 무의식 속에 항상 남을 비방하고 시기 질투하며 이간질에 앞장서는 기질이 있다면 스스로 아수라 악령의 오염으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제세이화의 선도를 찾아 자유로운 영혼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곧 이화인理化人이요 이화인이 신선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신선학에서 신선 같은 사람을 추구할 때 이화인의 길, 이화인의 도리를 논리적으로 규명함에 있는 것이다. 이화인의 길을 처음 밝힌 것은 환인의 제세이화 홍익인간정신이다. 제세이화란 인간과 세상을 이화시켜 인간을 모두 신선 같은 삶을 살게 하여 인생고해를 해결하고 절망에 빠진 세상을 구원코자 하는 홍익인간정신을 뜻한다. 진정으로 절망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는 길은 저 아수라의 악령에 물든 인류를 제세이화 홍익인간정신으로 이화시키는 길이다. 동물적 자아로 표현하면 사람이 짐승이요, 이성적 자아로 표현하면 사람이 이성인이요, 초자아로 표현하면 인간이 신성체요, 영적인 자아로 표현하면 사람이 영성체다. 사람의 무의식 속에는 짐승의 생각과 이성적 생각과 신성한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생겨나는 생각들은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는 감정에 의한 것이며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는 감정을 잘 컨트롤하는 힘이 이성이다. 짐승의 생각을 가진 마음을 이성포理性으로 길들이는 이치를 이화라 한다. 이화세상이 지상낙원 선경세상이다. 이화된 인간이 신선 같은 사람이다. 이화의 길을 걸을 때 신선의 길이라 한다. 그래서 제세이화 홍익인간정신으로부터 시작된 한민족의 역사는 신선의 역사이고 중국의 신선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원류가 한민족의 선맥에서 비롯되고 있다.
신선학은 인류구원의 학문이다. 신선의 길은 인류구원의 길이다. 이제 이화신선 理化神仙을 논하지 않고 아수라의 절망과 깊은 갈등에 휘말린 인류 역사를 바로잡을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증산은 '나는 선운을 열어 세계 창생을 구하려 하노라' 라고 서원을 세운 후 제자들에게 도통진경이라는 지상선경 건설의 예언을 남겼다. 증산의 선운학통을 이어받는 천봉은 직접 자신의 제자들을 이끌고 선운의 실험장으로서 신선놀음을 시작했고, 신선놀음으로 길들여진 신선 같은 사람들이 이제 스스로 무릉도원을 건설하며 눈에 보이는 선경을 가꾸기 위해 일심 노력하는 중이라고 알고 있다. 불로불사의 신선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이화된 삶을 살아가는 신선 같은 인류들이 이 시대의 역사를 주관하는 주인공으로 자리매김 해야만 한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아수라의 악령이 그림자처럼 스며든다. 아수라의 DNA는 혼돈이다. 아수라의 DNA는 사람들의 조화와 상생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모인 곳에 스며들어 늘 이간질을 시키고 화합을 깨뜨리려 한다. 인류들이 서로 분열되고 그 사회에 혼돈이 절정에 이를수록 아수라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춤을 춘다. 사회의 혼돈현상은 아수라가 춤추며 날뛰기 때문이다. 아수라의 목적은 결국 사회를 혼돈으로 몰고 가서 사회적 대충돌을 불러일으켜 인류 스스로가 자멸케 하는 전략을 세운다. 아수라의 계략으로부터 인류사회를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이화시키고 신선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선경 같은 사회를 구축함에 있다. 신선학이란 이런 의미에서 인류구원학이다.
마음의 향기香氣를 찾아서 5권 중
도선당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