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 아저씨 이야기>
- 이야기를 듣기 전에 필요한 두 가지 배경지식 -
(1) 우리 어머니는 '채식예찬자'다. 고기를 잘 드시니까(곱창을 특히 좋아하신다) 채식주의자는 아닌데, 채식이 건강에 훨씬 좋다고 생각하신다. 가족들한테도 야채나 과일을 강권하는데 한때는 특히 돼지고기를 미워해서 김치찌개에도 소고기를 쓰셨다. 이것 때문에 아버지가 불평을 하시다가 끝내 한번 상을 엎는 만용을 부리시고 나자 어머니는 다시 찌개에 돼지고기를 넣기 시작하셨다. 그래도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생각은 전혀 변함이 없으셔서 아버지가 암이 걸리신 후에는 완전 채식만 시켰다. 아버지도 그때는 고분고분 야채만 드셨다.
(2) 우리 아버지 친구 분 중에는 "과부씨"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있다. 몇번 아버지한테 여쭤봤는데도 정확한 연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고등학교때부터 별명이 "과부"였다고 한다. 나이가 드신 이후에는 차마 "과부"라고 부를 수가 없었는지 주위에서 "과부씨"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 우리 어머니도 그 아저씨 얘기를 할 때는 스스럼 없이 "과부씨가 어쩌고..." 하시곤 했다. 나도 그분이 안 계실 때는 "과부 아저씨"라고 불렀다.
- 이야기 -
아버지가 암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다.
이미 항암치료와 방사선을 다 받았는데 조금 작아졌던 암이 재발해서 더 이상 병원에서도 해줄 게 없다고 하는 절망적인 시기였다.
그날따라 병실에는 아버지와 나밖에 없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진지하게 나한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식도암이라 목소리도 거의 안 나오는 상태였는데 심각한 어조로,
"내가 이번에는 꼭 나아야 하는데..." 하시더니 "내가 니네 엄마한테 큰 잘못을 한 게 있어서 이번에는 꼭 나아야 하는데."하시는 것이었다.
때가 때인지라 예사롭게 들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엄마한테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저런 말씀을 하실까. 순간적으로 나는 아버지가 혹시 바람을 피운 일이라도 털어놓으시려는 건가, 당황했다. 만약 어디에 숨겨놓은 애라도 있다는 말씀을 하시면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나는 조심스럽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하셨길래 그러세요."라고 물었다.
잔뜩 분위기를 잡은 아버지는 이런 대답을 하셨다.
"내가... 며칠 전에... 과부씨랑 몰래 병원을 나가서... 붕어찜을 먹고 왔거든."
이게 얼마나 웃겼는지는 사실 우리 가족만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다. 아버지 투병기간 동안 채식에 대한 엄마의 집착, 그 전에는 상을 엎을 정도로 남아의 기개(!)를 보이다가 찍 소리 못하고 어머니가 주는 야채만 드시던 아버지의 굴종적인 모습, 그리고 "과부씨랑 몰래 빠져나가서 붕어찜을 먹는 일"이 얼마나 통쾌한 반항인지, 엄마가 알면 얼마나 싫으면서도 웃으실 일인지를 말 안 해도 아는 우리 식구들 입장에서는 배를 잡고 구르지 않을 수 없는 얘기였다.
아마도 종일 누워계시다가 심심하니까 아들이나 웃겨주자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효과 만점이었다. 정말 눈물이 나게 웃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흘장을 했는데 어머니의 주장에 따라 기독교식 장례를 치렀다. 목사님과 어머니 교회 신도분들이 오셔서 계속 예배를 보시면서 자리를 지켜주셨다.
이게 한편으로는 무척 고마운 일이지만, 사실 극단적인 슬픔에 빠져있는 식구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아버지도 교회를 안 다니셨고, 자식인 우리들도 교회를 안 다니는데 장례식장을 처음 보는 교회분들이 주도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속이 상했다.
목사님은 기도를 할 때마다, "금병훈 성도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셨으니 이제 천국에 계실테고 자녀님들도 꼭 교회를 다니셔야 합니다."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알기로는 아버지가 예수님을 받아들이셨는지 지극히 의문인데다 슬퍼 죽겠는데 교회 다니라는 소리를 계속 하시니 정말 남의 속을 이렇게 모르실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발인을 할 때도 예배를 봤는데, 역시나 목사님이 그런 내용의 설교를 하시니까 특히 동생들이 신경이 날카로워진게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뭔가 분위기를 풀어야 했다. 슬품과 화가 섞여서 미치기 직전인 표정들이었다.
예배를 거의 마칠 무렵 목사님께서 가족 대표로 장남이 나와서 인사말을 하라고 했다.
내가 앞으로 나갔다.
친척들은 물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인지 동창들을 비롯해서 친한 분들이 모두 모여 계셨다.
식구들은 나흘 내내 울고도 그때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친구분들도 우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천천히 한번 둘러본 다음에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아버지랑 둘이서 병실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저한테, 이번에 꼭 나아야 하는데... 내가 니네 엄마한테 큰 잘못을 한 게 있어서 이번에는 꼭 일어나야 하는데...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잠깐 멈췄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사람들이 아연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울음 소리는 뚝 그쳤고, 모두 집중해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저 자식이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래서 제가 아버지한테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엄마 몰래 과부씨랑 나가서 붕어찜을 먹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일순 모든 사람이 터져나오는 웃음 때문에 이상한 소리를 냈다. 계속 울던 동생들은 차마 아버지 장례에서 웃을 수는 없으니까, 꺽하는 이상한 소리를 냈고, 아버지 친구분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그리고 다들 한참 울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높았던 긴장이 다 풀어졌다. 목사님도 웃으셨을 것이다.
사실 그때 그 얘기를 한 것은 분위기를 풀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과부 아저씨'한테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려는 마음도 컸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친구를 꼬셔서 마누라한테 마지막 반항을 하게 하는 '사나이의 우정' 덕분에 아버지가 얼마나 즐거우셨을까, 아저씨한테 너무나 고마웠다.
그런데 나흘 내내 장례식장을 지키던 과부 아저씨는 마침 그때만 무슨 일 때문인지 자리에 안 계셔서 내 얘기를 못들으셨다.
나중에 만났을 때 그 얘기를 다시 해드렸는데, 역시 이야기는 그때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져야 재미가 있는 법이라서 그만큼의 극적인 효과는 없었다.
그 과부 아저씨가 어제 돌아가셨다.
다들 어렵게 자라서 힘들게 돈을 벌고, 식구들을 먹이고, 가끔씩 마누라한테 반항도 하면서 즐거워 하던 분들이 한분씩 떠나신다.
이렇게 한 세대가 간다.
* 사랑하는 김기룡 아저씨의 명복을 빕니다. 항상 감사했습니다.
첫댓글 엊그제 베이징에 살고있는 중국인 지인의 위쳇 글 중에 " 사람이 죽으면 모두 화장으로 장례를 하는데, 우리 모두의 삶은 결국 화장장으로 긴 줄을 서있는 겁니다.."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 소식에 사필귀정!!
다음은 왠지 씁쓸하네요...
뜻은비슷할지모르지만
'귀거래사'없이 거처로돌아가는 인생을 지켜보자니 착잡합니다..
선배들의 삶은 비록 각박하였지만 순수한 낭만과 웃음이 넘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잔잔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나이먹으며 철들고
나이먹으면 순수한 동심의세계로
돌아가는것이 이치인가봅니다.
국회의원이 아니었으면 액면 그대로 믿겠는데... 현직 국회의원이라면 별 믿고 싶은 마음이 없네요... 죄송!
신분을 떠나
세상을 등질때의 심정은 서로가
순수한 본심의 표현이라
믿고싶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천국에선 고기 실컷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