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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얀 메밀꽃이 들판을 수놓고 영근 감자알 세상 밖에 나와 땅속의 기운을 나누는 가을 들녘으로 늘어진 수염 매달고 행진하는 옥수수들의 가을마치를 들으며 구불구불 험난한 고갯길을 넘느라 숨이 거친 차를 몰고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
남단 끝에 살고 있는 나에게 경춘가도나 영동 고속도로는 라디오 전망대에서나 들어 익숙한 이름이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빨갛게 타들어가는 오대산에 다녀오고 싶다던 나의 오랜 바램 을 기억 해준 고마운 친구, 쓴 소리도 달게 할 줄 아는 친구의 막바지 휴가에 편승해 설악산, 오대산, 평창군 미탄 면에 있는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 치악산 일대를 돌아보았다.
경기도 양평을 지나 경춘가도를 달려 재즈에 들썩이는 가평 자라 섬을 지나고,80년대 강변 가요제에서 주옥같은 노래를 만들어 낸 추억의 남이섬을 지나 메밀꽃 축제가 한창인 장터에서 막국수를 늦은 점심으로 말아 먹고 시간에 쫓기어 굽이굽이 소양호를 돌아 양구에 도착, 푸른 산과 맑은 물이 어우러져 비교적 잘 보존된 자연생태 관광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관리되어진 양구의 옛길을 가다 뜻밖의 횡재를 만났다. 양구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재주가 뛰어났던 화가 박 수근은 12세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깊은 감동을 느껴 그로부터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양구가 낳아 평생을 그림에 바쳤던 그의 향토애가 진한 작품들을 기리기 위한 사업으로 군에서 건립 운영되어지고 있는 <박 수근 미술관>을 둘러보며 척박한 문화의 작은 도시에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을 위로한다.
강원도! 누구나 젊은 시절의 감상적인 추억거리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고장, 국토의 대동맥이며 관동팔경의 수려한 경관, 소양호가 어우러지는 호반의 정취에 흠뻑 취해 콧노래로 주거니 받거니 비록 오색 단풍은 아니 반겼어도 그대로가 천국이고 피안이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등지고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가겠다’는 군인들의 애환이 서린 인제를 지나고 원통을 지나 한계령을 넘는다. 밤이 찾아든 설악산엔 바람을 몰고 온 구름이 가벼운 차림의 내 몸을 친친 감고 어느새 입술이 파래지고 이가 부딪힌다. 한계령 휴게소에 발 도장을 찍으며 핫 초콜릿으로 에뜨랑제의 쓸쓸함과 피로를 달래본다.
‘동해안에 왔으니 그래도 산 오징어는 먹어야지!’ 하고 찾아간 식당이 ‘여수횟집’ 이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는 것이 나도 이제 여기 사람이 다 된 모양이다. 서비스로 내어 주신 주홍빛 탐스런 알이 꽉 찬 멍게 한 접시로 식욕을 돋아 오징어 한 접시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나니 이제 슬슬 시원한 된장 국물에 흰밥 생각이 난다. “아주머니! 된장국도 끓여 주시나요?” 여쭈니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어 넘치는 된장국과 잘 익은 돌산 갓김치를 내어 오신다. 현지 음식을 먹어 보는 것 또한 여행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이어지고 흩어지는 한려수도와 고흥반도를 잇는 미항 여수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미풍에 떠밀려온 하얀 파도가 해안가에 제 몸을 부비는 모습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니 마치 흰 고래새끼들 같다. 예외 없이 이곳저곳에서 폭죽이 울어대고 철없어 보이는 청년들 대여섯이 모래밭을 뒤지고 다니는데 사연인즉 파도의 부름에 끌려 열심히 파도 쫓기 하다 그만 밤이 되어버렸고 아무생각 없이 신발을 벗어 두고 갔다 장소를 잊은 것이다. 밤새도록 달빛을 받아 신발을 찾아다닐지언정 새파랗고 무모한 청춘이 부러운 걸 어쩌랴. 늦은 밤 산사를 거닐어 보는 것도 꽤나 낭만 적일 것 같아 관동팔경의 하나, 낙산사를 올랐으나 출입금지 안내판이 정중히 걸려 있다. 지난 봄 양양의 큰 산불로 인해 대부분이 소실되었다는데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불에 타 거뭇거뭇한 낙락장송이 처연하다.
이틀 째 되는 날, 조금 더 자고 싶은 게으름을 물리치고 낙산사를 찾았다. 경내에 들어서자 화마를 비껴간 경내 한쪽으로 비탈진 그곳에 요요하게 자리한 홍련암이 보인다. 불사재건을 위한 불자들의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이어지고 있었고, 법당 마루바닥 오른 쪽에 만들어 놓은 작은 유리창을 통해 기이한 절벽 사이로 바닷물이 드나들고 용의 형상과 거북의 머리 모양을 한 바위 모양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는데 우린 염불을 외고 있는 스님 뒤로 조심히 들어가 납작 엎드려 석굴을 들여다보는 아슬아슬하고도 짜릿한 경험을 했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보기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바다에 투신하려 한 이때 바닷가 굴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와 수정염주를 건네주며 “나의 전신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 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원통보전이며, 의상이 입산을 하는 도중에 돌다리 위에서 색깔이 파란 이상한 새를 보고 이를 쫓아가자 새는 석굴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아 더욱 이상하게 여기고 석굴 앞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 나체로 정좌하여 지성으로 기도를 드렸단다. 그렇게 칠일 낮 칠일 밤을 보내자 깊은 바다 속에서 홍련이 솟아오르고 그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나 의상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원을 기원하니 만사가 뜻대로 성취되어 무상대도를 얻었으므로 이곳에 홍련암 이라는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경내를 돌아 조금 걸어 올라가야 하는 원통보전의 표지판을 따라가며 내 친구 특유의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나보다. “도대체 낙산사가 어디야?” 라고 묻는다. 낙산사 경내에서 낙산사가 어디라니......, 화엄사 경내에 들어와 대웅전, 지장 암, 칠성 암, 영기 암, 이러하니 화엄사가 어디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호호호 평소에 예리한 통찰력과 예지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곧잘 엉뚱한 발상을 하는 친구의 이런 모습이 난 또 사랑스럽다. 불사재건에 힘써준 이곳을 방문한 모든 불자들에게 점심 공양을 제공한다는 안내에 따라 경내 공양소에 들러 사람 사는 냄새도 맡고 요기도 하자는 나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잘라버리고 운전대를 잡은 그 친구 쏜살같이 낙산사 주차장을 빠져 나간다.
다음 행선지를 향하여 국토를 달리다 언뜻 어디선가 많이 본 할매의 얼굴을 실사로 뺀 대형 간판이 걸려 있다. ‘욕쟁이 할매 식당’, 인간극장에도 여러 차례 나왔던 그 할머니는 서른여섯 명의 독거노인들을 거두시는 분이다. 메뉴는 칼국수와 순두부국. 단촐한 메뉴에 단촐한 조립식 식당이 초라한 것에 반해 입간판이 거창한 것이 아마도 어디선가 제공해 준 듯 사진 속 할머니는 이빨이 다 빠지고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웃고 있다. 삼년 묵은 김치에 옛날 두부와 칼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 할머니의 모습은커녕 욕도 들을 수 없다. ‘ 이게 웬일 섭섭하다.’ 생각 할 즈음 허리 22인치의 주인공이 나타나신다. “죽으면 썩어 버릴 육신 아껴 뭐 하냐 ”는 할머니의 가녀린 허리와 당신 특유의 윙크를 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신다 “실제가 훨씬 예쁘다.”고 해드렸다. 남들 돌보시느라 자신의 치아가 술술 뽑혀 나가도록 치과에 한 번 가보지 않으셨나보다. 활짝 웃으시는 할머니의 앞니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활짝 웃으신다. 손으로 직접 비벼 뽑은 칼국수와 할머니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는 듯 국물 맛이 끝내 준다.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 독을 묻어 그곳에서 숙성 시켰다는 3년 된 묵은 김치를 두 접시나 비우고 커피까지 먹었는데도 만원이 채 안된다. 역시 친구 말 듣기를 잘했다.
이제 드디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진부 I.C에서 오대산을 들어선다. 목적지는 월정사, 카톨릭 신부들과 족구를 하고 절 앞마당에 청소년들을 위한 길거리 댄스와 노래 경연대회를 열어주고 대중 앞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이곳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 먼저 월정사를 지난 상원사를 다녀오기로 했다. 월정사를 조금 지나자 곧 바로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다.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자연을 보호하려는 배려에서였는지 곳곳에 취사금지, 야영금지 표시가 눈에 띈다. 물이 정말 맑다. 너무 맑아 감히 손도 담가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겨우 20km의 속도조차도 내지 못한 채 7-8km를 가자니 조금은 따분하다. 빼곡하게 우거진 숲에 하늘이 가려져 창공이 보이질 않는다. 남쪽엔 태풍 나비가 북상하고 있다는데 이곳은 바람 한 점이 없다. 신사 성덕대왕 때 창건하였다는 상원사는 천년의 고찰을 기대했던 나의 바램이 무색케도 초입부터 주차되어있는 대형관광버스와 관광객들의 분주하고 요란한 발걸음이 식상해버린다.
절 찻집에 들어가 격에 맞지 않은 인스턴트 마가목 차를 억지 춘향이가 되어 마셨는데 찻집에서 느낄 수 없었던 차 맛이 월정사 경내에 들어서자 비로소 입안에서 여운 돈다.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키고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염불소리와 목탁소리는 들리지 않고 대금소리와 몇 가지의 국악이 어우러진 웅장한 소리가 하늘을 휘감아 오른다. 아니 이게 왠 따따블 횡재란 말인가? 잠시 후에 있을 김 영동의 산사음악회 리허설 중이다. 월정사 주지 스님은 어떤 사람일 까“ 궁금증은 벌써 달아나고 열심히 무대를 바라보았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이 깊은 산사에 바람소리와 대금소리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잣는다. 해가 지기 전에 동막골 촬영지까지 갔어야 했던 무리한 욕심이 음악 감상은 리허설로 만족하고 아쉬운 걸음을 돌리게 한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마음이 바빠진다. 상원사를 찾아 들어가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 같아 초행길을 나서는 나그네들을 재촉한다. 예정에는 없었던 일정이었는데 여행을 떠나오기 전날 우연히 펼쳐 본 D일보사의 여행안내에 최근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어 놓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라는 큰 글자가 눈에 들어와 눈도장을 해뒀었는데 시간이 나면 어차피 영동 고속도로에 있으니 들러보겠다 욕심을 냈더랬다.
월정사를 나와 장평 I.C에서 빠지면 영화 촬영지 표시가 되어있는데 안내에 따라 찾아 가면 된다는 그 기자의 길잡이대로 찾아들었다가 피곤한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가 들어섰던 길이 다름 아니라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겠다던 그 고장 평창이며 겨울이면 용평스키장을 소리치던 그곳 평창이며, 사북탄광 사북사태는 알았어도 그곳이 정선 땅이고 내가 들어서는 그 길이 정선 아오라지 가는 길이었으니, 어렴풋이 아우라지 탄광? 아니면 에오라지......,어쩌고 이 효석 이름도 가물거리는데 ‘메밀꽃 필 무렵’ 소설이 기억 속에서 왔다갔다 하며 고갯길을 넘는다. 이번 여행으로 강원도에 대한 나의 인상은 완전히 바뀌었고 이제 눈을 감고서도 그 지리멸렬했던 학창시절의 사회과 지리부도를 멋지게 그려 낼 수 있을 것 같다. 화전으로 일구어 내었을 비탈진 돌밭마다 감자와 옥수수가 심어져있고 고랭지의 배추와 무가 심어져 산비탈을 오르고 내리며 그 개체에 대한 별스런 미감은 없었으나 그러한 평범성이 군락을 이루어 드러내는 종합미의 아름다움에 이제야 눈을 돌리게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연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다. 물어물어 찾아 들어가건만 영화촬영지라는 안내는 찾아볼 수 없다. 조금 큰 동네의 초입에 들어서자 젊은 친구가 보인다. 창문을 열고 소리쳐 불러 세워 물으니 앞으로도 30~40분을 족히 더 가 미탄 면이 나오는데 그곳에 가면 표시판이 나온단다. ‘산골 동네엔 벌써 어둠이 자리를 틀고 언제 그곳을 찾나? 혼자서 궁시렁 거리며, 둘 다 많이 지쳐 있었고 운전하는 친구에게도 미안하고 하여 차를 돌려 나갔으면 하는데 이 친구는 예까지 왔는데 기어이 가잔다.
미탄 이정표가 나오고도 앞으로도 15KM 더 가야지 촬영지가 나온다는 친절한 안내 표지판이 야속하다. 게다가 표지판의 글자는 왜 그리도 옹색한지 유심히 살펴 찾아가는 이들에게나 겨우 뜨일까말까 한 글씨로 한쪽 귀퉁이에서 마치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듯 서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아주 작고 조용한 산골 동네 한 가운데를 민망스레 가로질러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약 5분 정도를 올라가니 허탈한 너와집 세트 몇 개가 놓여있고 영화 사진 몇 장 붙여 놓고 영화 촬영지라 하여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단 말인가? 차라리 잘된 영화 한편으로 끝내고 말일이지......, 금세 칠흑 같은 어둠이다 마치 영화의 도입부분에서 내가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공포감이 엄습하는데 영화에서 꽝꽝 울려대는 음향효과와 마을로 들어서는 길에 훤히 밝혀 둔 짚으로 만들어진 호롱불과 마을 한 가운데서 마을의 번영과 안위를 지키는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마치 반지의 제왕을 보는 듯 한국판 블록버스터라는 평이 무색하다.
또 하룻밤의 여정을 풀만한 곳을 정하지 못한 채 오던 길을 되짚어 나오다 안흥 이란 이정표 아래서 문득 “원주!” 하고 외쳤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잘 곳이 정해지자 한 결 마음이 가벼워 진다. 길 따라 들어서니 온통 ‘안흥찐빵’ 이다. 원조 찐빵, 30년 전통찐빵, 심순녀 찐빵 알뜰 휴가를 보내느라 군것질도 삼갔더니 속이 출출해진다. 심순녀 찐빵집에 들어가 이천 원에 여섯 개를 받아 들고 한 입에 쏘옥 친구의 입과 내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팥이 달지 않고 포근포근하고 아주 담백한 것이 원조 안흥 찐빵 이구나!’ 했다 .
횡성에 접어들자 뵈는 것이 온통 갈비집이다. ‘아하! 이 곳은 한우로 유명한 곳인가 보구나 ’ 여행에서 얻어진 노하우다. 그 고장의 특산물을 가지고 요리하는 곳에 들어가면 실수하는 법이 없다. 소머리국밥 간판이 붙은 곳에 들어가 국밥을 주문했다 깍두기 몇 알과 국물을 넣은 다음 다대기와 소금 후추로 간을 해서 난생 처음 소머리 국밥이라는 것을 먹었다, 입안에서 고기가 살살 녹는다. 식당을 나오며 친구는 그곳에 써빙하는 아주머니께 원주나 인근에 깨끗한 숙박시설이 있겠냐고 묻는다. 내심으로 어째 불안했으나 찾아보기로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깊은 골짜기에 보이는 것이라곤 아주 오래되고 낡아 형광 불빛마저 희미해진 산장뿐이다. 그야말로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산장이다. 금방이라도 하얀 소복 입은 여인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나올 것만 같은 곳을 서둘러 나왔다. 또다시 우리의 모텔 탐색전이 시작되었다.
관광호텔이라 이름 한 야리꾸리하고 현란한 곳을 슬쩍 훔쳐보고선 기겁해서 나온다. 무슨 공장 함바집 대문처럼 생긴 각 방의 쇠문들이 도저히 호텔은 아니었다. 그러면 그렇지, 호텔에 무슨 이런 찬란한 오색 네온 간판? 고개를 하나 넘자 진짜 치악산 관광호텔이 나왔다. 관광급 호텔 치고는 숙박비도 저렴하다. 숙박계를 쓰고 룸을 찾아 들어갔다. “ 야! 트윈룸이다.” 물부터 받자고 목욕탕 문을 여니 이런 실망도 없다. 글쎄 유럽 변방에서나 볼만한 그러한 호텔이다. 샤워부스만 달랑 있는......, 망했다. 애써 마음을 추슬러 깨끗한 것만도 다행이라고 무작정 홀랑 벗고 들어갔다 또 한번 낭패다. 더운물을 사용한지 오래된 객실이라서 한참을 기다려야 더운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대충 샤워를 마치고 추위에 덜덜 떨며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구겨져 잘 잤다.
창문을 휘갈기는 바람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어느새 태풍 ‘나비’는 이곳까지 왔나보다. 원주 이곳엔 지금 군악 축제가 또 한참이다. 곳곳을 둘러보며 테마별로 체계적인 관광사업을 진흥시켜 나가고 있는 강원도 일대의 시군 기초단체장들의 눈부신 의정활동을 엿볼 수 있었다. 간밤에 호텔을 찾아 헤매이다 치악산 입구에 들어서며 친구에게 이 산이 그 유명한 전래동화 <까치와 구렁이> 이야기의 발원지라 했더니 그 친구가 맞다! ‘치’자가 까치 치 자라며 한 술 더 떠서 까치가 멍들어 죽어버렸다며 한바탕을 웃기더니 급기야 뇌진탕을 일으켰다고 한다. 까치둥지에서 알을 훔쳐 먹으려던 구렁이를 발견한 선비가 활을 쏘아 어린 까치 새끼들을 살려주었는데 과거 길에 오른 그 선비가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는데 원수를 갚기 위한 구렁이각시가 선비를 헤하려 하자 이를 본 까치는 선비를 깨우기 위해 종을 들이 받아 절명하는 것으로 보은을 대신한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체크아웃하며 호텔 로비에 구비된 관광 책을 유심히 보니 친구의 ‘치’자는 까치 치가 아니고 꿩 치자 였던 것이다. 우린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배꼽이 떨어져라 웃었다.
슬슬 빗줄기가 강해지는 원주 시내에 들어가 아점을 먹기로 했다. 까치 해장국이라는 곳에 들어가 선지해장국을 먹었는데 맛이 또 일품이다. 깔끔한 실내도 마음에 들었지만 이곳이 한우 생산지인 횡성 근교여서인지 선지가 무척 신선하고 탱글거리며 고소하다.
태풍 나비의 여향으로 여수행 비행기가 결항되고 강남터미널에서 친구와 난 아쉬운 작별을 했다. 누군가 여행을 나서면서 책을 짊어지고 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난 매번 책을 들고 떠난다. 오랜 여행엔 당연히 권수도 많아진다. 이번 여행길엔 ‘친디아’라는 책을 들고 떠나왔지만 역시나 한줄 도 읽지 못했다.돌아오는 차 속에서 다섯 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두 좌석에 길게 누워 아주 맛난 독서를 했다.
언젠가 한번 쯤 여행기를 쓰고 싶었다. 삼십 여년 가까이를 일기와 독서 일기를 꾸준히 써오는 오랜 나의 습관에 버릇이 생겼다. 글을 쓰기 전 까지는 무지 꼼지락 거리는 편으로 머릿속에 대충 스케치를 한 다음 실행에 옮기는데 것도 요사인
컴을 조금 다룰 수 있게 되어 자판을 두드려야지만 글쓰기가 안정되고 술술 잘 풀어진다. 아직도 한글 97을 사용하고 있는 나 오늘은 무작정 글을 올리다 한방 크게 얻어맞았다. 점심 먹자고 재촉하고 서
있는 동료의 성화에 마지막을 멋지게 갈무리를 하고 엔터키를 치고 일어서며 게시판에 글이 오르기도 전에 나의 엄지발가락이 재부팅 버튼을 툭
건드리고 말았다. 아뿔싸!!!
으~~~~~~~~~~~악! 무식한 컴퓨터, 멍청한 놈 , 시킨 것만 잘하는 놈, 천하에 못된 것이라고
악다구니를 질러대다 결국 점심 먹고 다시 시작하자며 심기일전의 자세로 다시 돌아와 컴 앞에 앉아 나의 스파링 상대를 부른다. 야! 한판
붙자.
첫댓글 작년에 썼던 것인데 하늘과 바다님 글보고 울컥 해서 올렸어요. 후니님! 거슬리시거든 삭제하시와요
아~ 애쓰셨네 가만보니 내 여행일정을 모두 다니셨군 기억력도 좋치 난 적어도 한달에 한번 많으면 두번 은 여행을 하는데 기억력이 없어서 암튼 가볼만한데는 다 가는데 친구랑 셋이서 다리힘있을때 다니자고 발길 닫는 대로 그렇게 다닌다,기억력이 부럽네요 여행기는 늘 써도 빠지는게 다반사 오늘밤 여행 잘 했습니다.
다니면서 늘 메모를 해요. 안되면 핸펀에 글을 써서 저장하기도 하구요. 다리에 힘있을 때 많이 댕기라는 친정어머니의 말씀 덕분에 여행을 자주 한답니다. ^^ 친구가 계시어 여행이 더욱 즐거우시겠어요.
덕분에 강원도 여러 곳을 같이 여행하게 된것 같습니다. 저는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초록물고기님 덕분에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초록물고기님 고운밤 되세요~~
고도님 발바닥에 티눈 달고 그새 따라붙으셨어요? 진물흐르겠네요.
초록물고기님 내래 고향이 강원도래요.그것도 고냉지 채소로 유명한 아주 산골이래요.나도 울컥하는 마음에 한번 써 볼까???
무시기 고향이 강원도래요? 함 써보시드래요. 담엔 강원도에서 충청북도로 넘어가보려구요.기회가 오면 아마 보리싹이 들판에서 춤을 출 그 즈음에나 될것 같아요. 경주도 갔다와야하고.. 그런데 꼬마 신랑 때문에 발목이 자꾸 잡히네요.ㅎㅎㅎ
초록물고기님의 여정에 동행하며 차오르는 추억을 다독이는 아침입니다....강원도..참 추억이 많은 곳이지요..아름다운 여행기 감사히 보고 갑니다..고운 날 되세요...^^
여정은 즐거우셨나요? 욕쟁이 할매집 칼국수 먹으로 또 한 번 가야할 것 같아요...감사합니다.
역시~ 초록물고기님 이십니다. 언젠가부터 내마음을 빼앗는 초록물고기님의 글.. 유난히 강원도를 사랑하는 저에게 행복을 주네요
혜랑님 맘을 머물게 한 곳은 강원도 어딜까요?궁금하네요. 헤랑님 오늘도 행복하세요.
저도 강원도 사람인데,,,이렇게까지 자세히 알지못합니다,,참,,,대단하십니다,,,강원도를 다녀온것보다 더 좋습니다,,,,초록물고기님!~ 고마워요,,,,마음에 부자가되여 갑니다,,,,,,,,,,,좋은하루 되십시요,,,,,,,
강원도엔 미인도 많고 인심도 좋고 그런가봅니다. 아름이님 부자되셨어요? 지금도 부자이신데...더 부자되셨어요? 원래는 시가 올라와야 할 자리에 그만...감사합니다.
마음의 짐 벗어놓고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지요.원주는 제가 사는 인근 지역이라 친근감이 드는 곳이랍니다.기행문을 잘 쓰신걸 보면 수필가로 등단해도 되겠습니다. 초록물고기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원도에 사시는 분들 세계는 다 웅장한 것 같아요. 깊은 산과 넓은 바다를 끼고 사셔서들 그러신지요. 새벽별님! 어여삐 보아 주시어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강원도 여행길을 저도 한바퀴 돌아온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초록물고기님!...감사!~ 샬롬!...*^^*
순전히 하늘과 바다님께 떠밀려서 한 번 더 다녀온 것이랍니다. 샬롬!^^
예전에 상원사 다녀온 기억이 새롭네요. 상원사에는 사고가 보관되었던 곳이기도 하지요.첩첩산중 아름다운 산사였습니다.산안개가 분위기를 잡아주었던....같이 여행갔던 친구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네요. 세월이 빠르기도 합니다.
깊은 산속 끝여름이 너무 추웠답니다. 정훈님도 다녀오셨구나. 옥수수와 찐감자 맛이 일품이었어요. 오늘 같은 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감자 생각이 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