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전 강의 틈틈이 병풍용 <금강경>도 쓰는 혜거스님은 집중이 잘 될 때는 8시간만에 완성된다며 ‘삼매’의 즐거움을 한 번쯤 누려볼 것을 권하기도 한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
28년 전 개포동에 선원 개설
‘사교’ 비롯 불교 유교 망라한
경전 강의로 선교수행 이끌어
서울 개포동 금강선원은 한문 원전 강의로 이름난 곳이다. 1988년 4월 삼우빌딩에 개원한 이래 28년 간 불교는 물론 유교까지 이름을 대면 알만 한 경전들은 거의 강좌에서 만날 수 있었다. 몇 종을 몇 차례 했는지 강사도 수강생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다만 연인원 20만 명 이상의 발걸음이 향했을 것이라고 회자될 뿐이다.
그것도 10여 년 전부터 돌던 이야기이니 수치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수강생들은 한자능력 시험 2~3급의 기본을 갖춘 재가불자들로 대학교수에서 전업 주부들까지, 강사는 본지는 물론 불교방송 불교TV를 통해 ‘금강선원장’으로 널리 알려진 혜거스님이다. 메르스로 인한 걱정이 조금은 가라앉아 가고 있던 지난 1일 금강선원 5층에서 스님을 만났다.
강의가 가장 중요 일정 중의 하나이기에 최근 있었던 외부 일정을 먼저 화제로 올렸다. 6월28일 종단 시설인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불교상담개발원 참선지도자과정으로 진행된 <심우도> 강의. 스님이 생각하는 심우도는 “승찬대사의 <신심명>이 참선수행에 참 좋은 교재인데 그 보다 더 잘 만들어진” 교재다.
“첫 단계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교재로 심우도보다 더 적절한 간화선 수행법 교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좌선의>와 함께 심우도를 확실히 알게 되면 간화선을 어지간히 알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단계라면 끊임없이 수행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곁들여 하고 왔지만 아쉬움이 조금 남은 듯했다.
당일 6시간, 짧은 시간에 10단계를 압축해 참선수행의 핵심을 전하려 노력했지만 마치고 나면 늘 그랬듯 ‘완벽하지 못해 아쉽고’ 또 ‘수강생들은 이해를 했는지’ 하는 생각에 스님은 다시 책을 들게 됐다. 마음이 늘 그렇다보니 강의가 있는 날 금강선원 법당은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늘 빽빽하다.
수, 금요일 첫 강의가 있는 날에는 600~700명이 몰려들어 끝나는 시간까지 움직일 수 없다. 지난해 종단 승려연수과정 강의를 시작해 금강선원에서 <영가집>, 백담사 기본선원 <금강경오가해>에 이어 오는 8월에는 <임제록> 강의를 앞두고 있다.
“(몇 과목을 얼마나 강의했는지) 수치로는 기억 못하죠. 처음 3년간은 온갖 것을 다했죠. 장자, 노자, 도덕경, 대학, 중용에서 우리 불교 경전까지. 그 때 <금강경> <원각경> 한문 원전을 다 암송한 분들이 지금도 오고 있어요. 종류로는 강의한 게 얼마나 되겠어요? 하지만 강원(승가대학) 과목은 다 했어요.” 이런 식으로 서울 개포동에서 시작한 경전 강의가 28년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상계동 한 처소에서도 강의했다고 한다.
“한문공부를 좀 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유교와 불교를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 <맹자>의 ‘진심장’이거든요. 불교를 확실하게 이해하려면 진심장을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불교는 어록과 산문체 중심입니다. 한문 문장으로 말하면 변칙 문장이거든요. 문체로는 거의 정석이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다른 글도 잘 보게 하려면 어조사체가 잘 돼 있는 글을 읽어야 하고 진심장을 공부하는 게 좋다는 얘기입니다.”
금강경 만일결사운동과 함께
강송대회 주관 올해로 5회째
“종단 소의경전 완전히 암송해
남에게 말해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공덕이 있겠습니까…”
금강선원은 오는 10월17일 서울 탄허기념박물관에서 금강경 강송대회를 개최한다. 벌써 5회를 맞이했다. 2회부터는 본지와 함께 진행하면서 참여폭을 넓히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대상인 조계종 총무원장상의 상금은 1000만원으로 올리고 <금강경>을 바탕으로 하는 수행수기 부문도 개설해 작년 4회 대회 때는 구치소 수감자가 수상해 많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금강경을 공부하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나 자신(아상)을 내려놓는 동시에 남을 배려하는 자리이타행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 밝아지고 가정이 화목해졌다.”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즐기게 됐다”는 사례가 금강경 강송대회를 통해서도 수시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힘입었는지 올해 제5회 대회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과 포교원, 불교방송 등 기존 후원처에 이어 서울특별시도 힘을 보태 학생들의 참여가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금강경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이다.
“강원(승가대학) 사교(四敎)를 보면 우리 어른들이 굉장히 잘 뽑아놓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각경> <능엄경> <대승기신론> <금강경오가해>, 그 이상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주 오묘하게 <화엄경>과 연결이 돼 있어요. 전부 화엄사상으로 잘 연결이 되어 있으면서도 섞여있지 않고 가장 일관되게 정리해놓은 것이 금강경입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 사상(四相), 이 거 비우는 것 하나로 아공(我空)과 법공(法空)·구공(俱空)의 삼공(三空)이 정리가 돼요. 금강경 전체로 보면 똑같은 반야인데, 실상반야와 관조반야가 딱 드러나 있단 말이죠. 사상만 끊는 게 바탕이 돼 있는데 거기에다 수행의 깊이가 너무 잘 되어 있는 거예요. 수보리 존자 같은 분이 눈이 뜨인 경전, 이것이 바로 자기중심주의로 흘러가는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나 없는 진리를 설한 금강경이 이 시대의 대표적인 경전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가운데 강송대회가 거듭되면서 금강경을 암송하는 불자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스님에게 더 보람을 느끼게 한다. 수상자를 배출한 지역을 중심으로 그 숫자가 확실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에서도 대회에 참가하러 왔죠. 부산에서는 금강경을 다 외우는 분들이 1000명을 넘어섰다고 하죠. 지금 금강선원 사무장(대각심)과 인연 있는 강릉 지역에도 금강경을 암송하는 불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또 대전의 한 사찰은 신도 대부분이 금강경을 외운다고 하잖아요.”
‘강(講)해서 바친다’는 말이 있듯이 강송(講誦)은 한 경전을 완전히 이해해서 남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단계로 다소 어렵게 비칠 수 있다. 이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회에서는 사경(寫經)과 암송, 수행수기 등에 재능 있는 이들을 발굴하고 격려하기 위해 부분별로 장려상과 특별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5인 이상 단체부문을 신설해 중국어, 랩 형식의 응시자까지 접수한 것으로 알려져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전수지독송과 사경의 공덕을 묻자 스님은 법문같이 쉽게 풀어 설명했다. “경전수지독송의 공덕? 굳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나도 안 읽고 짊어지고만 다녀도 공덕이 된다, 이러잖아요? 왜 그럴까? 경전을 짊어지고 다니다 ‘뭘 짊어지고 다니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한번이라도 펼쳐보게 될 거 아닙니까. 경전도 법보 신앙의 대상입니다. 한 번이라도 읽으면 공덕이 되고 다 외우면 더 큰 공덕이고 남에게 가르칠 수 있으면 최고의 공덕이 된다고 하겠죠. 보급이 여의치 않던 시대에는 경전을 써서 남에게 보급해 주는 것이 사경이었으니 얼마나 큰 공덕이었겠어요.”
스님은 수명 100세 시대 가장 큰 공포는 지금의 메르스 보다 더 한 ‘치매’라며 이를 치유하는 방편 중의 하나로 경전 암송을 들었다. “의학적으로 눈, 귀, 코, 치아 중 하나만 나빠도 치매가 올 수 있다고 하지만 과학문명의 발달로 머리를 너무 안 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이런 측면에서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금강경 강송대회 후원처로 나선 것은 머리 쓰는 운동에 참여한 것이나 다름없다 것.
뿐만 아니라 석보상절도 좋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문 에세이도 좋고 암송의 대상을 확대하자는 의견이 있다면 종교문화축제의 장으로 함께 엮어나갈 용의도 있다는 게 스님의 입장이다.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닌 줄 알면 여래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 혜거스님은 …
“종교는 신앙의 종교 이전에 자기 수행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 혜거스님은 평소 이갈이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자기수행은 뒤로한 채 오직 신앙만 추구하다 보면 종교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벌어져, 종교인은 늘어나도 오히려 세상은 더욱 살기 힘든 곳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생각을 갖고 28년 전 개원한 곳이 금강선원이다. 이어 5년 전인 2010년에는 서울 자곡동에 탄허기념박물관을 열어 탄허대종사의 유물, 유품 전시와 교육박물관을 표방하며 보살사상선양과 만일수행결사 운동, 금강경 강송대회, 명상지도자 과정을 운영해 오고 있다.
1959년 강원도 삼척 영은사에서 탄허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혜거스님은 김제 흥복사 등에서 수선안거했다. <한암대종사문집>, <탄허대화상문집> 편찬위원장을 맡았으며 현재 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불교방송, 불교TV 경전강의 등을 통해 쉬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다.
2005년 동국대 대학원에서 외래교수로 박사과정, 2013년 동국대 불교학술원 불교한문아카데미에서 강의했으며 조계종 교육원 부설 불교서울전문강당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참나>를 비롯해 <혜거스님의 금강경 강의> <유식 30송 강의> <15분 집중 공부법> <혜거스님과 함께 하는 마음공부> <가시가 꽃이 되다> 등의 저서가 있다.
[불교신문3122호/2015년7월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