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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yth of Better 좀 더 나은 것에 대한 허구
by Advaita spiritual teacher, Nirmala
(The following is an excerpt from the book, Nothing Personal,
Seeing Beyond the Illusion of a Separate Self by Nirmala.)
(아래 내용은 책, 니르말라의 <나는 없다>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We are conditioned to believe something that has very little truth to it,
so little truth that it’s more accurate to call it a myth:
We believe that things could be better.
We deeply believe that we can have a better experience or a better life
or become a better person. And, of course, the flip side of this is that
we believe that things could be worse.
우리는 아주 작은 진실을 믿도록 조건 지워져 있습니다. 그 작은 진실은 허구(myth)라 부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든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좀 더 나은 경험 혹은 더 나은 삶 혹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아주 깊이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 생각의 뒷면은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One clue that this belief is a myth is that not everyone agrees on
what’s better or worse. There’s always someone who thinks the
exact opposite of what you think.
You don’t even have to look to others for such contradictions:
What you think is better or worse is always changing.
What you once felt was good often becomes bad and visa versa:
One day you think it would be better to be in a relationship,
and then when you’re in one,
you think it would be better to be alone.
The fact that your ideas about better and worse are so variable is
another clue that this is a myth. Better or worse are just ideas with
no substance or final definition.
이 믿음이 허구라는 하나의 근거는 무엇이 더 좋고 더 나쁜 건지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당신의 생각에 정확히 반대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모순적 상황에서 다른 이들의 의견을 따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더 좋음과 더 나쁨은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한때 좋다고 여기던 것이 종종 나쁜 것으로 변해버립니다: 어느 날은 관계 속에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여기다가, 함께 있게 되면 혼자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 것과 더 나쁜 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너무 쉽게 변한다는 사실이 그것이 허구라는 또 다른 근거입니다. 더 좋음과 더 나쁨은 단지 실질적 근거가 없고 명확한 정의도 할 수 없는 생각일 뿐입니다.
The effort to try to make things better or to avoid something worse is
our suffering. In order to hold the idea that something would be
better, you have to narrow your awareness.
Take the example of a relationship:
In the beginning, we’re all masters at narrowing our awareness
onto all the good qualities of the other person.
This narrowing of awareness is effortful, and it causes us to suffer.
This struggle is not natural, so awareness doesn’t stay contracted.
Just naturally, our awareness expands, and we see not only the
advantages to being in a relationship but the disadvantages.
무엇인가 더 낫게 하거나 나쁜 것을 피하려는 노력들이 바로 우리의 고통입니다. 무엇인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유지하려면, 당신의 인식을 좁혀야 합니다. 관계에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초기에, 우리 모두는 다른 이들의 모든 좋은 특성에 좁게 집중할 수 있는 마스터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의식을 좁히는 일은 많은 노력이 요구되고 그래서 우리가 고통을 겪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투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인식은 축소한 상태에서 머무를 수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인식들은 확장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관계 속에서의 이점뿐만 아니라 불리함도 보게 되었습니다.
Or visa versa, for example, if we’ve been avoiding something we
consider bad and then it happens, with time, our awareness naturally
expands to realize that it’s not all bad. Those who’ve experienced
something like cancer often speak about the advantages,
the tremendous blessings in their life, from having cancer,
even when they may be dying from it.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우리는 나쁘다고 여기는 일을 피해왔지만, 결국 일어나게 되었을 때,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인식은 자연스럽게 확장되어 그것이 그리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암과 같은 일을 경험한 이들도 종종 그 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심지어 그것으로 인해 죽어가는 상황이라도 자신들의 삶에서의 커다란 축복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No one can keep the illusion of better going constantly because of the
effort it takes to keep awareness narrowed; so it naturally eventually
expands. When this happens, it often feels like waking up because the
experience is so different. You wake up out of your particular dream
of better, and it’s often a huge relief. You wake up, for instance,
to the fact that you’re in a relationship with a real person, and it’s
both good and bad. Then, if you still choose to move forward with
that person, you’re doing it with more truth,
with your eyes wide open.
인식의 좁힌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도 지속적으로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환영을 계속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인식은 본질적으로 결국 확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확장이 일어나면 깨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경험이 이전과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음에 대한 특정 꿈에서 깨어나게 되면 커다란 안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제적인 사람과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그것은 좋거나 나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좀 더 전진할 것을 선택한다면, 자신의 눈을 크게 뜨고 좀 더 진실로 그 일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We’re so used to operating from this conditioning that even when we
wake up from one dream of better, we usually latch onto another,
although the next illusion may be subtler. For instance, you may now
see that a million dollars won’t make your life better, but you still
believe that enlightenment will, so now you suffer over that idea.
Or you might think that life will be better if your internal state were
different—if you felt this way or if you didn’t feel that way.
우리는 이러한 조건 지움으로 사고하는 것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하나의 상황에 대한 더 나음의 꿈에서 깨어나더라도, 예측이 불안하지만 바로 다음의 상황에 더 나은 것을 기대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당신은 백만 달러가 당신의 삶을 더 좋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했을지 몰라도 여전히 깨달음을 얻게 되면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러한 생각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혹은 당신의 내면의 상태가 달라진다면 삶은 휠씬 좋아질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렇게 느끼고 있거나 혹은 저렇게 느끼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What would it be like to be here without referring to any ideas about
what would be better or worse? What would it be like to be here
without moving towards something “good” or away from something
“bad”? It’s possible that just as much would happen in life.
Life wouldn’t stop. What would it be like without any extra effort
and struggle?
더 좋거나 더 나쁜 것에 대한 어떤 준거도 없이 그냥 있으면 어떤 느낌일까요? ‘좋은 것’으로 향해가거나 ‘나쁜 것’에서 멀어지려는 것 없이 그냥 여기에 있으면 어떨까요? 삶에서 일어나는 일만큼 그 일은 가능합니다. 삶/생명은 멈추지 않습니다. 어떤 추가적인 노력과 투쟁 없이 살아가는 것은 느낌이 어떨까요?
When we stop creating the division between good and bad, we begin
to experience all of what is instead of just half of it. Our perspective
is more complete because we’re no longer denying half of it.
Having ideas about better is like having blinders on.
What you see with blinders on is only a part of the truth.
If you’re aware of the blinders, then there’s no problem if,
for a moment, you step into just a part of the truth.
At times, it’s even functional, like when you’re balancing your
checkbook: It’s better to add up the numbers correctly.
If you’re willing to explore and question the underlying assumption
of better, then you can hold this idea more lightly, with more flexibility. Then, if the numbers don’t add up right, it’s not a big deal.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구분을 창조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 반만 경험하는 것 대신에 모든 전체를 경험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머지 반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관점은 완전합니다. 더 좋음에 대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그에 대해 눈가리개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눈가리개를 하고 보는 것은 단지 진실의 한 부분만 보는 것입니다. 그 눈가리개에 대해 알아차린다면, 잠시 그 진실의 한 부분만을 보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때로는 수표책의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제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숫자를 정확이 기입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일 것입니다. 당신이 기꺼이 더 좋음의 저변에 깔린 추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탐험하려 한다면 이 생각을 좀더 가볍게, 좀더 유연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숫자가 올바르게 기입이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큰일은 아닌 것입니다.
The other question to ask is, Who is it better or worse for?
Not only does the idea of better or worse make our experience very
narrow, it makes the sense of our self very small. In order to even
hold the idea of better or worse, there has to be a me that it will be
better or worse for. Whenever you take on the idea of better,
you feel very small.
또 다른 의문은 누구를 위해 더 좋고 더 나쁜가 하는 것입니다. 좋음과 나쁨이 경험의 폭을 좁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감각의 범위를 아주 작게 만듭니다. 심지어 그 좋음과 나쁨의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혜택 혹은 피해를 받아야 할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좋음에 대한 생각을 가질 때마다, 당신은 아주 작아짐을 느끼게 됩니다.
You also have to watch out for the idea that it would be better to
never think in terms of better or worse.
The myth of better is so much at the heart of our struggle and
suffering that even when it’s pointed out to us, our tendency is to
turn that into a struggle as well. This myth is functioning all the time.
It won’t go away and it doesn’t have to. Just become aware of it and
learn to be flexible about it. Sometimes it’s necessary to step into the
idea of better for a moment, like when you’re at a restaurant and
you’re handed a menu. But if the idea of better starts to be believed
or becomes fixed, the sense of your self becomes very small and
you suffer.
또한 더 좋음과 나쁨의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그 생각 자체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더 좋음의 허구는 우리의 투쟁과 고통의 바로 중심에 있어서 더 좋은 상황에 있다고 여겨질 때도 우리의 습관은 그것을 투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허구는 항상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필요 없어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대해 유연해지도록 배우면 됩니다. 때로는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을 건네 받았을 때처럼 잠시 동안 더 좋음에 대한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좋음에 대한 생각이 믿음이 되고 고정이 되어버리면, 당신의 자아의 감각은 아주 작아지고 고통을 겪게 됩니다.
What is it like when you do have an idea of something being better?
By the way, none of these ideas are yours or your fault.
They’re just what you’ve been told all your life, which is why there
are so many opposite ideas within each of us.
What’s it like when you take on a small self? That small self is just
as mysterious as a larger experience of your Being.
The experience of this small self, this contracted state, is not any
better or worse than the experience of more of your Being;
it’s just different.
어떤 것이 더 좋은 상태라는 생각을 가졌을 때 어떤 느낌이 듭니까? 그러나 그 생각은 당신의 것도 아니며 당신의 잘못도 아닙니다. 더 좋음에 대해 평생 동안 들어왔던 것일 뿐이며, 우리 각자의 내면에 그토록 많은 정반대의 생각을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자신의 작은 자아의 편을 들어줬을 때 어떤 느낌이 듭니까? 그 작은 자아는 당신의 존재의 더 큰 자아의 경험만큼 불확실합니다. 작은 자아의 경험, 그 모순된 상황은 당신이 진정한 존재로 더 다가간 경험보다 더 좋거나 나쁠 수 없습니다: 단지 다를 뿐입니다.
How many different small selves we all have! Every one of your ideas
of better is related to an idea of who you are: If you think it’s better
to get drunk and bust up a bar, there’s an identity that goes with that. And if you think it’s better to sit in meditation and be in touch with
Peace and Being, then there’s an identity that goes with that—an idea
about who you are. What’s it like when you just give up your ideas
about how things might be better and your concern about how things
are going? Things are always different, but they’re never better or
worse. That anything could ever be better or worse than the way it is,
is an illusion.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른 작은 자아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더 나음에 대한 당신의 각 생각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생각과 연관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정체성은 그렇게 형성됩니다. 앉아서 명상하고 평화와 진정한 존재와 접촉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정체성 –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생각 – 은 그렇게 형성됩니다. 어떻게 해야 더 좋아진다거나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걱정을 그냥 포기해 버리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일들은 항상 다양하게 일어나지만 결코 더 나아지거나 더 나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 그 원래의 방식보다 더 낫거나 더 나쁠 수 있다는 것은 환영입니다.
It’s all a question of what you are devoted to in this moment.
Are you devoted to things being better or to what’s real, what’s true,
what’s really going on? There’s no judgment here because there’s a
richness to the experience of having an idea of better and striving
towards that.
However, the possibility exists for that striving to release and to
realize that striving isn’t very relevant—you’ve been devoted to
better your whole life, and you still haven’t gotten there.
You’ve been devoted to avoiding worse, and it still comes around.
Even when you do reach something better, it’s never enough.
모든 의문은 당신이 지금 이 순간 무엇에 열중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좀 더 나은 것 혹은 무엇이 실제이고 진실인지,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더 좋은 것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경험들을 풍부하게 하므로 그에 대한 판단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투쟁을 놓아주고 그러한 투쟁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고 자각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존재하고 있습니다 – 당신은 일생 동안 더 나은 것에 헌신해 왔지만 여전히 거기에는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평생 나쁜 것을 피하는데 집중했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주위에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더 좋은 것에 도달했을 지라도 그 일은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When this is seen, it’s possible to get in touch with a deeper drive,
or longing—the longing to know what is really true.
Rather than getting rid of any of the ideas about better, just let your
devotion get bigger. It’s still fine to try to make your life better in
practical ways. The important thing is where your devotion lies.
What are you really devoted to in your life right now?
Is it the biggest truth? Besides, do you really know what is better?
You’ve taken it all on faith. You’ve believed what others said was
better, but right now do you really know what is better?
You don’t really know what would make your life better or worse.
So, now what? You don’t know. What’s it like to not know?
Life doesn’t grind to a halt. In fact, there’s something very alive about
this place of not knowing. When you don’t know, you look around
a little more. You’re more present to what’s really going on.
이 일을 이해한다면, 더 깊은 욕구 혹은 갈망과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한 갈망입니다. 더 좋음에 대한 생각을 없애기보다는 그냥 더 큰 그림에 집중해보세요. 삶을 실용적인 방식으로 좀 더 낫게 하는 것은 여전히 좋은 일입니다. 중요한 점은 당신이 어디에 집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진정으로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가장 큰 진실입니까? 거기다가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를 진정으로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을 믿어왔지만, 지금 당장 무엇이 더 나은 것인지를 진정으로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자신의 삶을 더 좋고 더 나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모릅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요? 모른다는 것이 어떤 느낌입니까? 삶은 정지할 수 없습니다. 사실 모른다는 그 지점에서 뭔가 살아있는 생생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모를 때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세요.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좀더 자각의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Without the idea of better, you can know things just for the joy of
knowing things. You can know, for instance, the difference between
one shade of green and another. They’re different, but one isn’t better
or worse. When you’re not narrowing your perception onto an idea
of what’s better, you’re free to experience the richness of life and take
in the differences. You can start to really enjoy whatever you’re
experiencing without the added layers of your ideas about good or
bad. When there’s no idea of better, there’s no relationship to the
world; there’s just the world.
더 나음에 대한 생각이 없다면, 어떠한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으로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녹색의 한 톤과 다른 톤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릅니다만, 하나가 더 좋거나 더 나쁘지 않습니다. 무엇이 더 좋은가 하는 것에 자신의 인식을 좁히지 않는다면 삶의 풍요로움과 다름을 즐길 수 있는 풍부한 경험들을 할 수 있습니다. 좋고 나쁨에 대한 생각을 덧입히지만 않는다면 무엇을 경험하든지 진정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더 나음에 대한 생각이 없을 때 세상과의 관계도 없습니다; 단지 세상만 존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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