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Nadīkas-sapat-thera>
진정 부처님은 내 이익을 위해
니련선하의 물가에 오셨었나니
나는 거룩한 그 법을 들어
모든 삿된 소견 버리었노라.
341
나는 가지가지 희생을 바치어
화신(火神)을 공양해 받들었나니
어리석은 범부의 장님인 나는
그것을 청정(淸淨)이라 생각했었다.
342
그릇된 소견의 숲 속을 헤매 들어
가지가지 계금취(戒禁取)에 미혹되어서
어리석고 지혜 없는 장님인 나는
깨끗하지 못한 것을 깨끗하다 생각했다.
343
내 그릇된 소견을 버리고
가지가지 생존(生存)을 부숴 버리자.
공양을 받을만한 화신(化身:부처님)을 공양하고
가장 거룩한 여래(如來)를 예배하자.
344
내 모든 어리석음 버리고
모든 생존(生存)의 사랑을 부수어
생사(生死)의 수레바퀴 끊어서 다했나니,
이제 다시는 두 번 남이 없으리.
카페 게시글
불교를 말한다 !
윤회의 종식은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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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8
26.02.26 06:4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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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윤회의 종식은 ‘어디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불교에서 윤회는 ‘있다/없다’의 사변이기보다
연기의 인과가 어떻게 반복되는가의 문제일 것입니다.
윤회를 부정하면 붓다의 연기설 그 구조 자체를 부숴버리는 일이 될거 같아요.
요즘 스님들..
윤회는 있지않다, 당시 문화적 토양에서 나온 것이다 등으로 윤회를 부정적으로 설하시는 분들 계시잖아요.
조심하셔야 될 부분 같아요.
윤회는 붓다 인과 연기설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생물학적 연속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저는 과학에서 말하는 정보는 사라지지 않고 패턴을 바꾸며 재생한다 는 그 지점으로 생물학적 윤회도 받아들이고 있다능)
불교에 따라 논쟁한다면,
윤회가 있느냐 없느냐의 논쟁은 애시당초 성립할 수 없는거죠.
어떻게 윤회하는가? 그 구조를 살핌이 붓다를 배우는 바른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자기 승적을 스스로 파내고 윤회는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대장부의 길 아니겠습니까?
물론 부처님께서야, 데바닷타도 내비두셨는데, 평등하시니까... 자비로우셔서 차별 없이 수용하시니까... 그게 바로 이 석가모니 부처님 불국토니까... 하하하
개인이야 생각은 자유고 표현도 자유지만, 유니폼을 입으면 유니폼에 맞춰 행동해야 합니다. 경찰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도둑을 잡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