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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한자]吟味(읊을 음/맛볼 미)
'아름답고 빼어난 푸른 봉우리와 선명하고 짙은 흰 구름을 한참 동안 부러워하다가 마음 속으로 한 손에 움켜다 먹으려 했더니 어금니에서 벌써 군침이 도는 소리가 들렸다. 천하에 가장 먹음직스러운 것치고는 이와 같은 것이 없다.' 이는 조선후기의 북학파 문인인 이덕무의 '蟬橘堂濃笑'(선귤당농소)라는 隨想錄(수상록)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야말로 자연이 작자의 맑은 영혼이 되고 그 맑은 영혼이 문장이 되는 그런 物我一體(물아일체) 物心一如(물심일여)의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산봉우리와 구름을 보면서 군침을 삼키는 이런 경지라면 어느 유명한 커피회사의 상표가 뜻하는 것처럼 커피의 맛을 吟味한다는 말이 통할 법도 하다.
吟味란 본래 詩歌(시가)를 읊조리면서 그 시에 담긴 멋을 감상한다는 뜻이므로,그 字意(자의)로만 보면 커피맛을 吟味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한 표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맛을 吟味'한다거나,'리듬을 吟味'한다거나,아니면 '추억을 吟味'한다는 식으로 吟味라는 말은 실제 언어생활에서 매우 폭넓고도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물론 이같은 용례들도 '어떤 사물이나 문장의 含意(함의)를 새기면서 느끼거나 생각한다'는 吟味의 사전적 정의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터이다.
吟의 今은 含과 통하여 '머금다'는 뜻이므로,吟은 소리나 음식물 같은 것을 입 안에 머금은 채 맛보거나 읊조리는 것이다. 예전에는 시를 지음에 있어 한 구절 한 구절을 읊조리면서 웅얼거리곤 하였으므로,시를 짓는 것을 吟이라 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吟詠(음영)이라 하면 '詩歌를 읊조리다'는 뜻도 되고 '詩歌를 짓다'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吟社(음사)라 하면 '詩歌를 짓는 모임'이란 뜻이 되고 吟風弄月(음풍농월)은 '맑은 바람을 쐬면서 시를 읊고(짓고),밝은 달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시문을 짓는 것)'이라고 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吟은 呻吟(신음)이나 沈吟(침음)에서처럼 '끙끙거리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味는 五味(오미) 山海珍味(산해진미)에서처럼 대개 '음식의 맛' 또는 '맛있는 음식'이란 뜻으로 쓰이며,그러한 음식을 맛보는 것 역시 味라 한다. 이와 달리 趣味(취미) 興味(흥미)의 味는 '어떤 일이나 사물이 지니고 있는 내밀한 의미'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데,이는 앞의 뜻에서 유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의미를 느끼며 맛보는 것 역시 味라 한다.
출처:부산일보 글.<김성진·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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