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내에는 어린이 대공원이 있다,
뒤로는 아차산 큰 대로만 건너면 어린이대공원
언덕만 넘으면 한강 걸어서 5분 안에 전철역
사통팔달 연결돼 서울 중심을 관통하는 요 층지다,
참 좋은 곳 그곳에 우리가 산다,
흔히들 말하는 숲 세권 역세권 한술 더 떠 한강권,
그리고 대공원 안에 그녀의 하늘 정원이 있다,
일명 그녀의 아지트다,
원래 아지트란 말은 러시아어다,
합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조직들이 비밀리에
모이는 장소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그런 공간을
하나쯤 가지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휴일 오후 뭘 해도 좋은 시간이다.
좁은 공간에서 넓은 세상이 그리운 날,
그녀는 훌쩍 집을 나선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손에는 간식 보온병에 도수 낮은
커피를 담고 그녀 만의 아지트로 소풍을 떠난다,
그곳에는 나무가 있고 숲도 있고 꽃도 있고
나비도 있고 들고양이들도 있다,
도심 한가운데 아마존 같은 밀림이 있는 곳,
그녀는 그곳에 자신만의 몆 개의 아지트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자랑하듯 오늘 나에게 소개했다,
첫눈에 봐도 풍경 그 자체다,
아름드리 포플러 나무가 서있고
그 가운데 소 공원처럼 펼쳐져 있는 그녀의 정원,
오후 나절 보는 것만으로 평화 그 자체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고풍스럽게 늙어가는
낡은 나무 의자가 한 폭의 그림처럼 고즈넉 스스럽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도 가끔은
오래된 것에서 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세월의 때가 덕지 덕지 묻어있는 낡은 의자,
그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그곳에 나무들,
그곳에 모든 것들이 그녀가 좋아할 만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녀는 나에게 신나서 자랑한다,
이 꽃은 무슨 꽃이고 이 꽃은 언제 펴서 언제 지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신나 보이고 꿈꾸는 소녀처럼
오후 햇살에 해 맑다,
지루한 일상에서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그녀의
그런 모습이 난 좋다,
날개를 꼭 달아야 천사는 아니다,
세상에는 날개를 감추고 사는 천사들도 많으니까,
회색빛 도회지에서 손대면 금방 물들 것 같은 초록에
수채화를 그 일 줄 아는 그녀는 한마디로 멋지다,
그리고 매사에 긍정적이어서 좋다,
성품은 바꿀 수가 있어도 성질은 평생 바꾸지
못하지만 그녀는 성질도 성품도 타고난 천사다,
그런 천사가 기어코 나를 앞세워 그녀의 정원 구석
구석을 돌아보게 한다,
정성 열정 삶에서 묻어나는 진한 무지갯빛 향기다,
우리는 괘나 긴 시간을 그곳에 보냈다,
비스 틈이 자리했던 의지도 방향을 바꾸어 옮겼다,
경사진 바닥을 평평하게 했고 전면에 풍경이 조금 전
보다 한결 좋아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의 정원이 지금보다 더 풍성
해지기를 기원했는지 모른다,
어디 한 곳에 마음 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하얀 도화지에 점 하나 찍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두는 삶의 여유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에서 맨얼굴로 살아간다는 건 용기
없이는 어렵다,
하지만 그녀는 해 낸다,
가식도 허세도 사치도 곁에 두지 않는다,
늘 한결같은 살아있는 정신세계가 곧다,
그녀의 정원에 오후 햇살에 눈이 부시다,
이런 정원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참 부럽고 좋다,
그녀의 삶이 충만해 보여서 더불어 충만해진다,
요즘 들어 그녀는 어렸을 적 향수가 그리운지
고향 충주 달래 강에 가보고 싶어 한다,
마냥 소녀 같은 그녀도 나이를 느끼나 보다
언제 시간 내서 한번 다녀올 계획이다,
너 나 없이 나이 들면서 여려지는 마음이 그럴 거다,
그리고 어제 보았다던 연꽃을 보러 연못으로 갔다,
그곳에는 연꽃이 만개해 있었다,
염화미소(拈華微笑)
천상계에 핀다고 하는 성스러운 흰 연꽃 불교를 상징
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원앙 한 쌍도 있었다,
형형색색 연못에 잠겨있는 세상 풍경들,
보는 것만으로도 와닿는 느낌들,
가끔은 삶 속에 쉼표가 필요한 이유다,
사람들은 꼭 멀리 다녀와야 여행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손만 내밀면 닿는 이런 곳을 두고 굳이 먼 곳을
시간 내서 비용 쓰며 다녀와야 하나 싶다,
동내 한 바퀴를 돌아도 산책이고 작은 공원에
나가는 것도 소풍인데,
그녀는 그곳에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그럴 때면 천진난만한 모습이 그녀의 어린 시절을
보게 하는 것 같아 나도 덩달아 소년이 된다,
나이 들수록 여려지는 마음은 나이를 잊게 한다,
거울만 보지 않으면 그림자만 보지 않으면
난 아직도 청춘이다,
머물렀던 그곳을 밀어내고 소로의 길을 산책한다,
우리는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서 몸도 풀고
동내 어귀에 있는 통닭집에 미리 주문한 통닭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휴일 짧은 시간 긴 여운을 남긴 틈새 소풍이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인생의 길동무로 살아간다는 건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축복이 또 있을까,
오래오래 건강하게 더 이상 길이 없을 때까지
함께 하기를 기원하고 기원한다,
그녀는 요즘 아프다.
대상포진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약 잘 먹으면 낳는
병이지만 고통스러워하는 게 나를 아프게 한다,
빨리 쾌차해서 어제처럼 씩씩하게 틈틈이 정원에서
인생의 시를 쓰는 그녀가 되기를 두 손 모은다,
오늘 그녀의 정원을 다녀오면서 그녀의 초대에
감사 의미로 글을 남긴다,
아이 러브 유 아름다운 인생,